보로메오 고리(Borromean Rings)

제1 

우주의 자기 충족적 구조

 

삼(三)은 원형의 견고한 틀이다.

셋(3)은 원형적인 우주를 일그러뜨리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우주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자기 충족적 구조이다.

 

 

모든 것은 세 가지 양상이 통합되어 있다.

자연의 질서 속에 구조와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며, 구조 속에 질서와 기능이, 기능 속에 구조와 질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삼(3)을 토대로 한 우주의 자기 충족적 구조는 우주의 일체성과 완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원형적인 이미지를 포착하고 표현하며 문명을 쌓아 왔다.

 

수천 년을 풍우 속에서 견디어 온 피라미드의 구조라든지, 힌두교의 얀트라의 구조, 변증법의 운동법칙인 정‧반‧합, 소송의 3심 구조 등은 모두 셋의 원형이 인류의 문명으로 표현된 것이다.

 

많은 신화와 동화 속에도, “세 가지 소원, 세 가지의 시련, 세 개의 문, 세 개의 강, 세 번의 도전, 만세 삼창 등, ......”으로 3의 리듬이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세 가지의 패턴에 아주 익숙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제2

보로메오 고리(Borromean Ring)

 

삼(3)은 원래 하나의 원형이 펼쳐진 것으로, 서로 분리되지 않고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보로메오 고리(Borromean Ring)이다.

세 개의 링들은 결코 자기들의 고유성을 잃지 않는다. 또한 자기의 위치도 잃지 않는다.

먼저 빨간 링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보자. 그는 노란 링 위에 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끊어짐 없이 자신의 길을 완성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란 링은 빨강 아래와 파랑 위의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노랑도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과 자신의 원형의 길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란 링도 노란 고리 아래에만 위치한다.

이 세 개의 링들이 교묘히 모두를 결합시키고 있다. 이 셋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일체가 되어 있다.

 

 

보로미언 링(Borromean Ring)은 르네상스 시대 보로메오(Borromeo)라는 가문이 그들의 문장(紋章)에 이 상징을 시용했던 데서 비롯한 이름이라고 한다.  

 

보로메오 고리는 2개의 매듭이 항상 제3의 매듭을 매개해야만 모두 연결된다.

매듭 중 어느 하나가 제거된다면, 다른 2개의 매듭도 연결고리를 상실해버리고, 이들은 더 이상 한 몸을 유지할 수 없고 모두 흩어져 버린다.

세 개가 합쳐져야 “하나”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제3

보로메오 고리를 응용해서 성공한 자크라캉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이 보로메오 고리의 삼위 일체성을 그의 정신분석학에 응용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에게 있어, 보로메오 매듭(Borromean Knot)은 의식을 하나로 묶는 ‘정신적 매듭’으로 여겨졌으리라.

이 그림은 정신분석을 위해 자크 라캉이 상상했던 다이어그램이다.  라캉은 의식세계를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의 셋으로 나누어 이를 보로메오 고리에 대응시켰다. 

이 그림에서 알(R) 고리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실재계이다.  에스(S) 고리는 상징계이다. 아이(I) 고리는 상상계이다.

내 우아한 아름다움의 체계에서는 이깟 학자들의 이름붙이기가 그리 신성하지도 않고, 현대의 정신 분석학에서 별 영감도 못 얻는 터라, 다음에 간단히 라캉이 무엇을 의도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대강만 언급하기로 한다.

이 그림에 보이는 다른 글자들은 다음과 같다.

제이 에이(JA)는 타자의 주이상스 (Jouissance of the Other, 주이상스는 쾌락, 희열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스몰 에이(a)는 여분의 주이상스 (surplus jouissance).
제이 파이(J-Phi)는 남근의 주이상스 (Jouissance of the Phallus).
이 그림을 좀 더 음미하고 싶은 분들은, 교집합을 상상하길 바란다. 몸(body)은 나 같으면 합집합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이 그림은 그렇게 표현되지 않았다. 이 그림은 미국의 어느 정신분석 세미나에서 사용되었던 자료이다.  

한편,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에너지와 물질, 의미가 우주를 이루고 있다고 했는데, 만약 나라면, 세 개 링의 교집합 자리에 의미(meaning)를 놓을 것이다.

 

라캉에 따르면, 각각의 매듭은 제거될 수 없는 “실재계(the Real)”로서 육체로 표현된다. 

하나의 완결된 구조는 “상징계(The Symbolic)”를 의미하며, 의미(meaning)로 표현된다.

이미지 형태로 제시되는 것은 “상상계(the Imaginary)”를 의미한다.  

 

 

보로메오 고리가 풀려서 하나 또는 둘로 축소되어 버리면,

의식은 붕괴된 보로메오 매듭을 거짓 매듭으로 복구하려 하는데,

라캉은, 이 거짓 매듭이 바로 망상이나 환각 등 정신 분열이라 보고 있다.

 

제4

영적 전통의 유사성

 

삼위일체는 종교적 전통 속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사점이다.

종교적 전통 속에 유사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구원 체험과 진실한 삶의 길을 찾아가는 인류의 사유 양식이 모두 닮아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정수를 크리스트교에서는 ‘신(神)’이라 부르고,

힌두교에서는 ‘자아(Atman)’,  ‘시바’,  ‘브라흐만’,  ‘비슈누’라고 일컬으며,

이슬람 수피즘의 신비주의자는 ‘숨겨진 정수’,

그리고 불교에선 ‘불성(佛性)’이라고 부른다.

 

일체 존재는 세 가지 모습으로 드러나며, 유서 깊은 영적 전통에서도 존재의 정수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크리스트교는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삼위일체(Trinity)로 이 진리를 표현한다.

 

힌두교는 시트‧아난다‧사트(sit-ananda-sat)로 신의 속성을 표현한다.

 

동북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전승되는 천지인(天地人)의 3재 사상이나,

정기신(精氣神)의 체계를 세우고 있는 단학도 이러한 세 가지 존재 양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제5

존재의 3단계

 

삼위일체는 인류의 마음에 드러나는 공통적 원형이자, 본성의 표현이다.

 

카야는 몸이다. 그리고 존재는 세가지 카야로 자기 충족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삼신(三身)이다.

 

세 가지 카야(kaya) 곧 삼신은 마음의 본성임과 동시에 만물의 본성이다.

 

세 가지 카야는 보로메오 고리처럼, 우주가 스스로 지탱하는 자기 충족적 구조인 동시에 한순간도 분리되지 않는 우주의 모습이다.

보로메오 고리는 하나로 통일된 셋이요, 삼위일체(trinity)의 상징이다.

 

 

삼위일체는 하느님 아버지(God)라는 근거로부터, 성스러운 성령(the Holy Spirit)의 신비한 매개를 통해, 형상으로 현현된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가 한 몸이라는 진리이다.

 

이러한 세 가지 존재 양상은 인위적으로 구성한 신비적 허구가 아니라,

인류의 영적 전통이 깊은 통찰 속에서 발견해낸 실존 규범이다.

 

본성 속에서 다르마카야(법신), 삼보가카야(보신), 니르마나카야(화신)의 세 가지 카야는 서로 분리됨 없이 온전히 하나로 현존한다.

 

첫째의 정수는 다르마카야(法身)로서, 텅 비어 있는 하늘같은 정수이다.

크리스트교에서는 절대적 근거인 ‘하느님 아버지’로 표현된다.

힌두교에선 시트(sit)로 표현되는 신의 ‘의식’이다.

 

둘째의 정수는 삼보가카야(報身)로서, 찬란히 빛나는 본성이다.

크리스트교에선 ‘성령’에 해당하며,

힌두교에서는 신의 ‘축복’인 아난다(ananda)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의 정수인 니르마나카야(化身)는 어떤 것에도 제약받지 않고 일체에 스며드는 사랑의 에너지이다.

크리스트교에선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로 표현되며,

힌두교에서는 신의 ‘현현’인 사트(sat)가 니르마나카야에 해당된다.

 

 

연미소 (yeonmi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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