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龜壽(용구수) - 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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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청계 안정환

龍龜壽(용구수) - 청계

연송 김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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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구수(龍龜壽) - 청계 안정환 (경주역 소재)

용과 거북이는 장생하는 동물로 사람의 장수를 축하하는 뜻으로 쓰인다.

회갑연(61), 고희연(70), 미수(88), 상수(100세이상)를 맞이한 어르신들께 드리는 대표 문구이다.

 

용구수(龍龜壽)

축 경주역 발전지희 기묘원단 금정산인 안정환 (祝 慶州驛 發展之禧 己卯元旦 金井山人 安定煥)

* 기묘원단 : 1999년

 

 

 

龍(용 용)

 

기린, 봉황, 거북이와 더불어 사령이라 불려온 상상의 동물이다.

 

 

갑골문의 ‘龍’자는 머리와 뿔이 있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으며 몸은 구불구불하다. 용은 고대 중국인들이 상상해낸 동물이다. 그들은 용을 신비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물속에 있고 때로는 하늘에 있어서 하늘, 강, 호수, 바다와 모든 동물을 관장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인의 조상인 황제(黃帝)는 용을 타고 하늘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인은 명절 때 용모양의 등을 들고 춤을 추거나 용모양의 배를 타고 경주를 한다.

 

용은 위인과 같은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로 비유되면서 왕권이나 왕위가 용으로 상징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천자(天子)에 대하여 그 얼굴을 용안(龍顔), 덕을 용덕(龍德), 지위를 용위(龍位), 의복을 용포(龍袍)라 하였는데, 그것이 우리 나라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어 임금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졌다.

 

용은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큰 희망과 성취의 상징으로도 여겨져 왔다. 그래서 입신출세의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 하고, 사람이 출세하면 ‘개천에서 용났다.’라고도 한다.

 

용이 등장하는 문헌·설화·민속 등에서 보면 용의 등장은 반드시 어떠한 미래를 예시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의 개술서(槪述書)라 할 『문헌비고』에 보면 신라 시조 원년으로부터 조선조 1714년(숙종 40) 사이에 무려 29차나 용의 출현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기록 뒤에는 거의 빠짐없이 태평성대, 성인의 탄생, 군주의 승하, 큰 인물의 죽음, 농사의 풍흉, 군사의 동태, 민심의 흉흉 등 거국적인 대사(大事)의 기록들이 따르고 있다.

 

 

 

龜 (거북 구/거북 귀, 땅 이름 구, 터질 균)

 

 

 

고대의 ‘龜(구)’자는 거북이의 모습이다. 어떤 거북은 천여 년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한다.

 

대우치수(大禹治水)의 고사에 나오는 전설에 따르면, 대우(大禹, 우임금)가 치수(治水)에 성공한 후 한 마리 거북이 낙하(洛河)로부터 올라왔는데, 등에 65자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한자이다. 실제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최초의 한자는 거북의 껍질과 동물의 뼈 위에 새겨진 것으로 ‘갑골문’이다.

 

하 왕조(夏 王朝)

고대 중국 은 왕조 이전 3황(皇) 5제(帝)를 잇는 전설적인 왕조이다. 황허 유역에서 이리두 문화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실재하는 것으로 믿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夏(하)는 중국역사상 최초의 왕조로 용산문화후기시대의 방국들이 창조한 조기문명으로 하상주 삼대의 개시로 중국문명발전의 기초를 형성한 시대이다.

전설중의 왕조로 구원한 연대로 문자의 탄생이전으로 최권위적 고대문헌이나 구전을 통해 전하는 편린의 왕조이다.

 

그래서 하왕조의 존재를 회의하게 되는데 사학게를 곤혹스럽게 해온 주제로 부단한 고고발굴로 여산진면목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하남성 禹州시의 우왕묘우의 가도는 수천년간 위대한 역사인물을 기념하는 곳우로 전설고사가 전해오는데 정신도 대대로 전해온다.

 

우주시는 하대 우임금시 초기도성으로 하우치수의 신화전설유적으로 원고시대 우주지역은 홍수범람으로 교룡존숭의 풍속이 전해오는데 교룡의 장난으로 堤防수축을 위해 백성들은 고난의 행군을 한다.

 

대우는 제신의 도움으로 교룡을 서서히 제거하는데 그중 한 마리를 팔각정에 가두고 이후 우물앞에 우왕의 사당을 세우고 은덕에 감사한다.

 

요임금 시대에 곤(鯀)이 치수 사업에 실패하자 순임금(舜)은 그의 아들 우(禹)를 추천하여 치수 사업을 관장하게 하였다.

우는 치수 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서 크게 인정받았다. 그 공으로 순임금(舜)이 죽자 제후(諸侯)들이 우를 받들어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우는 요순(堯舜)임금처럼 제위를 현인에게 선양하려 했으나 제후들이 인정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우의 아들 계(啓)가 제후들의 추대를 받아 제위에 올랐는데 이때부터 선양제(禪讓制)가 없어지고 상속제에 의한 왕조가 출현했다.

하 왕조는 17대까지 이어졌는데 17대 걸왕이 포악한 정치를 실행하여 민심을 잃어 은나라의 탕왕(湯王)에 의해 멸망하였다. 하 왕조의 존재 시기는 대략 신석기시대 말기와 청동기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치수(治水)에 성공한 우임금(禹)

우임금(禹)의 성은 사(姒)씨이고 이름은 문명(文命)으로 황제의 현손이며 전욱의 손자이다.

어머니는 유신씨(有辛氏)의 딸로 여지(女志) 또는 수기(脩己)라고 부른다.

역사에서는 우임금을 대우(大禹) 또는 제우(帝禹)라고 부르는데 하우씨(夏后氏)의 수령이며 하왕조를 개국한 군왕이다. (우임금이 전욱의 육세손이라는 설도 있다)

 

 

 

壽 (수)

장수(長壽) / 오래 살다 / 축수(祝壽 : 오래 살기를 빌다)

 

壽(수)자는 ‘목숨’이나 ‘수명’, ‘장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壽자는 士(선비 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선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壽자의 금문을 보면 밭을 가리키고 있는 노인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밭에 나와 이것저것을 참견하던 노인을 표현한 것으로 壽자는 나이가 많은 노인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본래 의미는 ‘노령’이나 ‘노인’이었다.

 

그러나 후에 노인과 관련된 뜻이 확대되면서 지금은 ‘목숨’이나 ‘수명’, ‘장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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