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心竹(허심죽) - 無圓(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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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무원 이돈섭

虛心竹(허심죽) - 無圓(무원)

연송 김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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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心竹(허심죽)

 

虛心竹有低頭葉 (허심죽유저두엽)

傲骨梅無仰面花 (오골매무앙면화)

 

마음 비운 대나무는 잎 끝이 고개를 숙이고

기개 있는 매화는 꽃잎이 얼굴을 쳐들지 않네.  - 無圓(무원) 李敦燮(이돈섭)  

 

겸허한 품성을 지녀야 하고

세속의 권세에 눌리거나 아부하지 않아야 한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있다.

이에 대나무는 겸허한 품성을 표시한다.

 

대나무 이파리의 끝은 항상 아래를 향하고

위를 향하지 않는다.

 

겸허한 품성을 지녀야함을 일깨운다.

 

매화는 가지의 윗쪽(陽面)에서 꽃이 나오지,

가지의 아래쪽(陰面)에서 나오지 않는다.

매화는 절개를 표시한다.

꽃도 가지의 위쪽에서 나오지,

아래쪽에서 나와 위를 쳐다보면서 올라가지는 않는다.

 

세속의 권세에 아부하거나 눌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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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心竹(허심죽)- 板橋 鄭燮 (판교 정섭)

 

양주팔괴(揚州八怪)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강소성 홍화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섭(燮), 판교(板橋)는 그의 호이다.

옹정 10년(1732년)에 향시에 합격하고, 건륭 원년(1736년)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산동성 범현 현령, 유현 현령을 역임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후 많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가뭄이 들면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자신의 녹봉을 모두 들이는 등 청렴한 관리로서의 모범을 보였으나, 건륭 17년 이재민 구휼문제로 상관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관직을 잃었다.

이 후, 그는 낙향하여 청빈하게 살면서 난, 대나무, 돌을 그리며 일생을 보냈다

 

중국에 양주팔괴(揚州八怪)라는 말이 있다. 18세기 청(淸) 중엽을 살았던 8명의 괴짜 문인화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강남의 번화한 도시 양주를 무대로 활약했던 이들은 파격적인 화풍 못지않게 삶의 방식 또한 자유분방해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룹의 좌장격이자 유일하게 과거급제자였던 정판교(鄭板橋, 1693~1765)는 시 · 서 · 화에 두루 능한 삼절(三絶)로도 호가 높았지만 '돈을 말하지도 만지지도 않는다'는 사대부의 불문율을 깬 예술사적 사건으로 특히 유명하다. 작품의 가격을 스스로 매긴 '판교윤격(板橋潤格; 정판교가 그린 그림값)'이 그것이다.

 

"대폭(大幅) 6냥, 중폭 4냥, 소폭 2냥, 족자나 대련은 1냥… 예물이나 음식보다 현금을 환영함. 현금을 받으면 내 마음이 기뻐져 작품이 절로 잘되기 때문임(送現銀則心中喜樂,書畵皆佳)."

 

평생 불우했던 그가 나이 오십이 넘어 지낸 산동지방의 현령 11년 동안에는 빈민을 보듬는 선정(善政)을 편 탓에 악덕관리와 지방부호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결국 이것을 못견뎌 사직한 그를 현 백성들이 모두 나와 통곡하며 전송했는데, 그의 행장은 자신과 길 안내인, 짐을 태운 당나귀 세 마리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집집마다 그의 초상화를 그려놓고 산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현령 시절 정판교는 자칭 '바보 늙은이(糊塗老人)'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다. 이름과는 달리 노인에게 풍기는 대인의 풍모에 압도당한 그는 기념으로 '이처럼 바보인 척하기도 어려워라(難得糊塗)'라는 글을 써주고 이렇게 낙관(落款)했다.

 

'강희에 수재, 옹정에 거인, 건륭에 진사된 정판교(康熙秀才, 雍正擧人, 乾隆進士)'

이에 호도노인은 답글 하기를 '미석(美石)은 얻기 어렵고, 잡석은 더 얻기 어려워라. 운운'한 다음 역시 도장을 찍었다.

 

'초시 일등, 향시 이등, 전시 삼등한 아무개(院試第一,鄕試第二,殿試第三)'

거들먹거리다가 보기 좋게 한방 먹고 돌아온 정판교는 '난득호도'라 제(題)한 아래에 이렇게 덧붙였다.

 

'총명하기 어렵고 멍청하기도 어렵다. 총명한 이가 멍청하게 살기는 더 어렵다. '

정판교는 내친 김에 '흘휴시복(吃虧是福; 손해를 보는 것이 곧 복이다)'이라는 작품도 쓰고 주를 달았다.

 

'내가 손해보면 남이 이익을 보는 법(損於己則盈於彼). 그가 이익을 보고 나는 마음에 편함을 얻으니 어찌 복이 아니랴!"

 

정판교의 두 메시지는 유독 처세술을 좋아하는 중국인 사이에 내용이 덧붙여지면서 마침내 '난득호도경(經)'(일명 바보경)이라는 경전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이나 채근담의 '세상살이엔 손해보는 것이 나를 높이는 길(處世,讓一步爲高)'보다 훨씬 사랑받는 경구라고 한다.

 


樂書齋偶吟(낙서재우음) / 尹善道(윤선도, 1587~1671)

 

眼在靑山耳在琴(안재청산이재금)

보는 것은 청산이요 듣는 건 거문고니

 

世間何事到吾心(세간하사도오심)

세상 일 어떤 것이 내 마음에 들어오랴

 

滿腔浩氣無人識(만강호기무인식)

내 마음 속 바른 기운 알아주는 이 없어

 

一曲狂歌獨自吟(일곡광가독자음)

미친 듯 노래 한 곡 나 홀로 읊노라

 

孤山 先生 詩(고산선생 시) / 庚子 端午(경자 단오) / 無圓(무원) 李敦燮(이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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