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역사를 바꾼 한통의 전화

작성일 작성자 개똥벌래

                                                         역사를 바꾼 한통의 전화


1896년 8월26일

인천감옥에 한통의 전화가 울렸다.

이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한 사람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역사를 바꾼 한통의 전화

1895년8월20일 새벽

경복궁안 옥호루를 급습한 일본 낭인들

그리고

그들의손에 처참하게 시해당한 명성황후 (을미사변 발생)

을미사변의 참극이 있은 지 얼마후





치하포 나루터 주막에서

밥을 먹고있던 조선청년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

단발을 하고 한복을 입은채 들어서는 일본 남자

당시 일본 남자가 나타난 '치하포 나루터'는

일본인들이 자기들의 본래 행색대로 통행하는 곳 


그렇다면 왜?

저자는 굳이 조선 사람으로 위장한 것일까?

청년의 의문이 가시지 않을 무렵

일본남자의 두루마기 밑으로 보이는 칼집!

"혹시 저자가 우리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는 아닐까?"

"혹시 경성에서 일어난 분란 때문에 도망하여

당분간 숨으려는 건 아닐까?"

만약 아니라 해도 칼을 차고  숨어다니는  왜인이

우리 민족의 독버섯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조선인으로서 국가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

"그렇다면 .....죽여야 한다."(당시 청년의 기록中)


자문자답 끝에 죽을 작정을 하고

일본남자에게 접근한 청년

"당신,그 칼은 대체 무엇이요!

대체 왜 칼을 숨기고 조선사람으로 위장한 것이요"

청년의 말에 칼을 빼어든 일본남자!

청년과 일본남자의 격투

결국

일본남자를 살해한 청년!

일본남자의 정체는 일본 장교'쓰치다'

명성황후 시해 가담자



그후

인천 감옥에 투옥된 청년

그리고 3개월후(1896년8월26일)

옥에 갇힌 청년은 사형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그 시각

인천 감옥안에 울려 퍼진 전화벨 소리

"당장 조선 청년의 사형을 멈추어라!"

전화를 건 이는  조선의 임금인 "고종"



그랬다

청년이 사형 집행장에 나온 그 시각!

"조선의 국모를 시해했다고 생각한 일본인을 살해한 죄로

한 청년이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보고받은 고종!

그는 평소 마음을 사로잡았던 서양문물인 전화가

3일전 궁중과 인천에 개통되었다는 사실을 떠 올리고

최초의 장거리 전화를 이용해

직접 청년의 사형을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날 목슴을 구한 조선 청년의 이름은

"김 창수"

바로

백범 "김구"였다.


그때 경성부 안에서는 전화가 가설된지 오래 였으나

경성 외에 장거리 전화가 설치된 곳은

인천이 처음 이었다고 한다.

만에 하나 그때까지 전화개통이 못 돼었다면

바로 사형이 집행되었을 거라고들 한다.


위 내용은 정부 공식 문건으로 기록되진 않었으나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 "백범 일지"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