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아버지를 업고 금강산을 오른 효자( 실화)

작성일 작성자 개똥벌래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을 다녀온

아들이 있어 화제가 된적이 있다.

충남 서산의 빈농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군익 42세)씨.

그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2006년  아버지 이선주(92세)씨를 지게에태워 업고 혼자도

오르기 힙들다는 급강산을 다녀온게 한 신문 독자란에 올라와 유명인사가 됐다.

이군익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독립기념관을 다녀오는길에

아버지가 언뜻 금강산 이야기를 꺼내셨다.한해전

어머니를 떠나보내시고  적적해 하실까 싶어

산으로 들로 모시고 다니던 때 였다.



~불효자는 웁니다. 조아람 ~


7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느라 허리한번 못펴신 아버지가

금강산 이야기를 꺼내자 "예,아버지 금강산아니라 그 할아버지 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다짐을 하고 6월 아버지 생신에 즈음하여 금강산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형제들과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시는건 불가능 했다.

휠체어도 무용지물일테고,몇일을 어떻게 하면 금강산의 절경을 아버지 눈에

담어 드릴수 있을까 고민하다,아버지를 등에업고가면 될텐데 기력이 쇠약하셔서

아들을 단단히 잡지 못하실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어릴때 나무하던 생각이나

"아!지게에 아버지 의자를 만들어 태우고 가면 되겠구나"생각하고

가볍고 튼튼한 지게를 만들려고 알루미늄으로 만들 설계도를 그려서

지게를 만들 기술자를 찾았으나 모두들 손사래를 치거나 턱없는 공임을 요구했다.


집과 직장이 있는 인천을 바롯해 서울 곳곳을 뒤젔으나

사람이 앉을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 준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오래 헤멘끝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사람이 앉을수있는 지게를 만들게 됐다.

♥                           ♥                         ♥

지게를 지느라 온몸에 피멍이 들었지만

아버지의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즐거웠다.

북측 안내원이 지게를보고 정색을 하며 무엇이냐고 묻기에

아버지를 모실거라 했더니 연세를 묻기에 아흔둘에 아들의 등에 업혀

금강산을 가신다고하니 호탕하게 웃으며"하하하 어서 통과 하시라요"하며 웃는다.


지게와 아버지 때문에 여행 내내 단연 스타였다.

초여름 날씨에 혼자도 힘든길을 아버지를 업고 오르는

이군익씨를 연배가 높은분은 다가와 땀을 닦아주고 어께를 다독여 주며

격려를 하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가 길을 비켜주며 응원해 주었다.

함께한 큰누나 이춘익(62)씨와 형 이관익(55)씨도 땀을 닦아주며 막내동생의

효행에 힘을 보태주며 함께 올랐다.그렇게 아버지를 업고 천선대로 귀면암으로,

구룡폭포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에게 짐이 될까봐 망설이시며

한사코 거부하시던 아버지도 "저기가면 뭐가 있다냐?"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감탄사를 연발 하시며 구경에 흠뻑 빠지셨다.



지게는 줄잡아 15kg아버지를 합치면 60kg이 넘는다.

산행이 이어지며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어께와 팔이

뻗뻗하게 굳고 허리가 끈질듯 아파 왔지만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얼마든지 견딜수 있을것 같았다.

산행을 마치고 금강산 온천엘 갔더니 함께간 형님이 깜작 놀라는 것이였다.

지게 지는동안 실핏줄이 터젔는지 상반신이 피멍이 들었다며 형님이

울컥 하시는데 제가 웃자고 했습니다.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금강산 구경을 마음껏 하셨는데  이보다 더 좋을게 있느냐고..


기자가 인터뷰를 하려고 찾은 이군익씨 마당한켠 작은 정자에

금강산 이야기를 듣는 기자를 보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노부는

"우리 막내가 일곱놈 중에 제일 이뻐,제일 귀엽구 아버지라면......."

"충남 서산에서 평생 농사만 지은 내가 남한땅 안밟아 본데가 없고

금강산도 구경 했으니 이제 더 갈데가 없는겨..."막내아들 자랑이 그칠줄 모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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