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이런 시어머니도 있답니다.(감동 실화) 시어머니사랑

작성일 작성자 개똥벌래



제나이35살,어느덧 결혼 6년차 맞벌이 주부이며 남편과는 2살 차이입니다.

항상 날 보시면 반가워 하시고 웃어주시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네요.

자다가,밥 먹다가,일하다가도 생각나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럽고 사랑하는 어머님,

먼저 결혼한 친구들 시집살이 남편 속썩이는일 이야기 들으며

결혼을 망설였던 제게 다정한 웃음으로 며느리가 되 달라시는 어머님을 보고 결혼 했답니다.

신혼을 시댁에서 시작을 했습니다.제가  그러자 했지요.




처음부터 직장일 하느라 힘드니 살림을 하시겠다며 모든일을 어머님이 하시고

저에게는 손도 못대게 하시던 어머님,설 음식을 준비하다 정신이 없어 산적을 태웠을때

오히려 내가 잘 살펴봤어야 하는데...내 탓이라며 절 위로하시던 시어머님,

이런 어머님을 닮으셔서 시아주버님과 시누이도 시집살이 '시'자도 시키질 않으셨습니다.

어느날은 술이 잔뜩 취해서 온갖 푸념을 어머님께 했던 나에게 화를 내시지도 않으시고

꼬옥 안아 주시며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으면 나에게 털어 놓으라시며 등을 두드려 주시던 어머님,



이런 어머니가 감사해 명절날 백화접에서 옷 한벌 사 드렸더니 한사코 거절 하시며

환불하라고 하셔서 그냥 두고 나왔답니다.

어머님은 그옷이 너무 좋다시며 내가 나중에 죽거든 이옷 입혀서 화장해 달라시던 어머님,

이말을 듣고 펑펑 울었던나,

첫째 임신 소식을 들으시고 얼마나 좋아 하시던지,청소나 빨래,설거지라도 하려 하면

큰 일이라도 난듯 뺏으시고 손수 하시며 아이가 힘들어 한다며 일하지 말라시던 어머님,

남편에게 청소하라,세탁기 돌리라며 야단 치시던 어머님,



어느날 갑작이 배가 끈어질듯 아파 병원에가니 예정일보다 아기가 빨리 나올것 같다며

입원을 하라기에 어머님께 연락 드렀더니 만사 제처 두시고 달려 오셔서

제 손을 잡아주시며 "많이 힘들지?"하시며 힘들면 수술하자고 하시서 견뎌 보겠다고

참아 보겠다는 나를 위로하시며 잠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던 어머님,

고통을 참는 나를 곁에서 땀을 닦아 주시며 지켜주셔서 그 힘든 순간을 넘기고 자연 분만을 했답니다.

수고했다 정말 고생했다시며 손주를 바라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님,




맞벌이로 다시 직장을 나가야 겠다는 말에 아기는 내가 키울테니 걱정 말라시며

잠시도 손주에게서 손을 떼지 않으시며 좋아 하시던 어머님이 저희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님은 어느날 아프시다고 병원에 가셨는데 췌장암4기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우리 모두는 할말을 잃었답니다.저는 순간 온세상이 하얗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냥 어머님 손만 꼬옥 잡고 있었네요.

그렇게 눈물만 흘리며 어머님을 보내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지구의 한 축이 무너진듯

허물어진 마음으로 어머님을 보내 드렸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얼마나 고통 스러우셨을까? 땅을 치며 통곡해도 어머님을 잡을수 없으니...

마지막 가시는길에 제가 사다준 옷을 입으시고 먼길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님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와 유품을 정리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 지네요.

울며 어머님 유품을 정리하다 어머님 일기장을 발견하고 눈물 범벅으로 읽어보니

저를 처음 만나시던날 "어쩜 이렇게 예의바르고 착한 아이를 만났지.

나는 참 운이 좋은가 보다.이뻐해 줘야겠다"라고 저를 좋게 봐 주셨던 어머님...

저희 결혼식날엔"우리 며느리가 제일 잘났다.부디 지난날 아품속에서 벗어나고

항상 행복한 웃음을 웃으면 좋겠다"고 적으셨네요

제일 기억에 남는건 "내가 죽으면 우리 며느리를 누가 도와주고 지켜줄까.조금더 살고싶다"

이말 한마디에 난 통곡을하며 어머님 유품에 쓰러졌다 일어나길 몇번...

어머님이 가신지도 벌써 1년,어머님 감사합니다.

잘난것 하나없는저를 이렇게 이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생이 있다면 어머님딸로 꼭 태어나 사랑받고 습니다.

어머님,고맙고,감사하고 사랑합니다.저에게 정말 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영원히 어머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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