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할머니!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

작성일 작성자 개똥벌래



빨간 김치국물이 뚝둑 떨어지는 가방에서 만원짜리 두장을 손에 쥐어 주시던 할머니,

그 할머니 때문에 버스안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나이 다섯살,아빠를 교통사고로 잃고 어머니마저 빛을 값겠다며 떠나고

저와 세살짜리 남매는 그렇게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갖고 있겠지만 저에겐 6살때 아픈 기억밖엔 생각이 나지 않는답니다.

제가 6살의 어느 봄날 친척들이 할머니집에 모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와 동생을 고아원이나 자식이 없는집으로 보내자며 할머니 혼자서

저희를 키울수 없고 도와줄 수 도 없다는 친척들과 절대로 보낼수 없다는 할머니 사이에

큰 소리가 이어지고 결국엔 할머니는 단돈 10원도 도움을 받지 않을테니 저 불쌍한 것들을 나에게 맡기라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 사랑이 오늘날 저희가 있게 했습니다.



할머니는 친척들의 도움 한 푼 없이 남의 일을 하시며 저희를 위해서

억척스럽게 궂은일 마다 않으시고 저희를 위해고생하신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것,남의옷 얻어 입는것,부족한 학용품,과자한번 마음껏 먹는것,

소풍갈때 용돈 한번 받는것,운동회때 부모님과 달리는것등...온갖 불만 투성이 였습니다.

그 많은 불만을 체워주지 못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지 그때는 몰랐지만 

철이 들면서 할머니의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제 몸이 부서져도 그 은혜를 다 값지 못하겠지요. 

    어쩌다 동생과 싸우기라도 하는날엔 종아리에 빨간 줄이 생기도록 때리시고

그 빨갛게 생긴 곳에 약을 발라 주시며 우시던 억척스럽지만 마음이 여린분이셨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저희 남매를 위해 온갖 힘든일을 하시며 저희를 키워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와 보냈던 유년시간들이 스물아홉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것 같습니다.

사춘기에 가난과 일만하는 할머니가 그토록 싫었던게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답니다.

그때는 할머니가 우리 남매만 없으면 편히 사실수 있다는걸 몰랐고 철이든 후에야 알았습니다.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렇게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고등학생이 되어 자희 남매는천안에 있는 상고와 예산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취 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주말마다 할머니집엘 내려가면 일하시며 새참으로 받으신 빵과 우유가 냉장고에 가득했습니다.

남들 다 새참을 먹을때 할머니는 저희들을 생각하시며 드시지 않고 냉장고에 쌓아 두신 것입니다.

그런 할머니가 처음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아마도 그때 철이 난것 같습니다.

한번은 쌀과 김치를 가져다 주신다며 올라오신다는 할머니를 만나려 터미널엘 갔는데 할머니는

첫차로 올라 오셔서 계시다가 혼자서 짜장면을 드셨다며 양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계신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며 눈물을 흘렸답니다.



커다란 가방을 할머니가 열자 안에는 김치통에서 흘러 나온 빨간 김치국물이 가득 했습니다.

"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어,김치만 비닐 봉투에 담아오지 이게 뭐야"

난 그 큰가방을 힘들게 고생 하시며 들고오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화가 났습니다.

어쩔줄 몰라 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다음부턴 내가 가서 가져올게,할머니가 들고 오지마"

할머니는 슈퍼에서 비닐 봉투를 얻어오셔서 담으시며 김치국물이 범벅인 가방에서

꼬깃꼬깃 접은 돈 이만원을 내손에 쥐어 주시며 닦어서 쓰라시며 미안해 하신다.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 빨간 김치국물이 묻은 이만원을 보며 난 또 눈물을 흘린다.

                                        "할머니!고맙고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중소기업에 취직하면서 이제는 할머니께 무엇이든 해드릴 수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고 주말이면 한주도 거르지 않고 할머니를 찾아뵙고 맛난것도 사드리고

용돈도 많이는 못 드려도 드릴수 있어서 행복이란 것을 느꼈답니다.

한번은 돈까스를 사 드렸더니 이렇게 맛난것은 처음 이라시는 할머니 말씀에 또 눈물이 나네요.

그까짓 돈까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 가슴이 아파 오네요.

이제는 검은머리 하나없는 할머니가 80살, 진짜 할머니가 됐습니다.

손녀딸 좋은사람 만나 잘 살고 이쁜 아기 낳고 사는걸 보고 죽는게 소원 이라시던 소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좋은사람 만나 결혼하고 다음 달이면 예쁜 딸도 낳는답니다.



꽃으로 태어나서 들풀로 사신 우리할머니,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헤지고 저희를 위해 고생만 하신 할머니...

그 할머니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날까지 할머니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수 있을까요?

남은날 이라도 들풀로 살지 않으시고 고운 꽃으로 사시도록 해 드릴께요.

    따스한 어느날 할머니 손을 잡고 옛날 이야기하며 우리 할머니품에 안겨 울고도 싶고 웃고도 싶습니다.

      "할머니.저희남매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우리 할머니!!"

                                                -철없던 손녀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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