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얘기하지 않는 시리아 사태의 배경 이해(*제국주의 국가 프랑스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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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얘기하지 않는 시리아 사태의 배경 이해(*제국주의 국가 프랑스의 위선)

이가(利家)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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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국가 프랑스의 위선

 

글쓴이 : 그렇군 2015.11.15. 16:20

 

 

시리아에서 위기가 생겨난 시기는 미국이 아랍의 봄이라는 컬러 혁명을 시작했던

20113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부터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시위가 시리아 다마스쿠스 등지에서 빈발하기 시작하죠.

 

참고로 시리아는 영미식 정치 체제를 따르고 있는 세속주의 국가로

종교적 자유 수준은 이스라엘이나 터키 등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자유로운 국가입니다.

 

이런 점은 시리아 내전 이전에 국내의 여행이나 다큐 등의 방송에서도 언급됐던 사실이죠.

아주 자유롭게 기독교와 이슬람 주민이 함께 공존하는, 독재와는 아주 거리가 먼

그들의 생활상이 국내에도 방송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자 국내 방송들의 보도는 180도 달라졌었죠.

갑자기 시리아는 북한보다 더한 독재가 되어 버렸고 국제 정치에 무지한 국민들은

이전의 방송은 모두 잊었고, 언론의 북소리에 따라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독재 정권으로 인식했고 지금도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을 정도죠.

 

아무튼 시리아에서 영미 배후의 의심스러운 극단 이슬람 세력의 시위가 빈발하면서

다마스쿠스는 이를 진압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시리아는 수니파가 다수인 국가이지만, 아사드 정권은 시아파 계통의 알라위트로

수니파 극단주의 시위대에 대한 강력한 진압이 종교 탄압으로 비춰질 것을 두려워했었죠.

그래서 시위 진압에 소극적으로 나섰는데, 반대로 이들 시위대는 정부의 도발을 끌어내고자

폭력 시위를 이어갑니다.

 

이것이 20113월의 상황이며, 이를 보도한 서구 언론들은 당시 튀니지에서부터 확산됐던

'아랍의 봄' 혁명의 시리아 확산이라면서 바람을 잡기 시작하며 시위의 규모도 과장해 보도하면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도록 부추기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구 언론의 보도에 의심을 품은 독립 언론가 등이 시리아에 직접 취재를 가면서

서구 언론의 보도와 180도 다른 현지 상황들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시위대의 규모는 아주 적었으며 정부의 시위 진압은 너무 소극적이어서

극단 이슬람 시위대의 폭력에 사망자가 속출할 정도였으며, 세속주의 국가인 시리아에선

극우 이슬람 시위대의 주장에 동조하는 주민들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 알려지죠.

 

이러한 점은 알카에다나 IS 등의 여성에 대한 인식만을 봐도 뻔하게 나오는 것이죠.

이들은 여성을 남성의 가축(재산)으로 취급할 정도로 인권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죠. 

그런데 이미 세속화된 시리아에서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서구의 주장처럼 아사드에 반대해서 이들 극우 이슬람 세력의 주장에 동조했을까요??

 

심지어 이들은 타크피리즘의 극단적인 종교 사상도 가지고 있죠. 

자신과 다른 종교를 믿는 야지디족에 대한 학살만을 봐도

이들의 사상이 얼마나 극단적인가를 보여주는데

세속주의 국가로 다양한 종파와 종교들을 차별없이 인정해주던 시리아 체제에서

과연 주민들이 이에 동조했을까요??

 

시리아에서 이들이 영미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5년째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큰 성과를 얻지 못한 이유는 주민들 자체가 이들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이죠.

 

여성들에게, 이들의 집권은 재앙일 것이고 (동물, 가축으로 전락하는 것이라서)

타종교와 종파를 믿는 주민들에게도 재앙이죠.

(타크피리즘에 따른 학살이 필연적이기에)

 

쓰레기 서구 언론의 주장과 다르게 시리아 내전 상황이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 자체도 아사드 정권의 세속주의 체제를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IS의 극단적인 신정 국가 체제에 공포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만일 IS에 동조했다면 진작에 아사드 정권은

이란이나 러시아, 중국 등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붕괴됐을 겁니다.

 

아무튼 20113월부터 영,미,프 등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전복을 노리면서

시리아의 극단적인 이슬람 단체들을 지원하면서 폭력 시위를 벌이게 만들죠.

 

이에 아사드 정권은 소수종파로, 종교 탄압으로 비춰질 것을 두려워해

초기 소극적인 대응으로 나서면서 시위가 점점 더 과격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만듭니다.

 

영,미,프 등은 튀니지나 이집트, 예멘, 리비아 등에서처럼 극단적 이슬람 세력들을 지원하여

주도적으로 시위를 확산시켜서 아사드 정권을 와해시키고 전복하려고 했었고

이것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봤었죠. 

이미 그러한 사례가 연이어서 이어졌기에 시리아 정권도 쉽게 전복될지 알고

컬러 혁명을 먼저 시도한 것이죠. (시민 불복종의 비폭력 혁명)

 

하지만 아랍 지역에서 가장 세속주의적이며, 가장 영미식 체제에 근접하며 민주적이었던

아사드의 시리아에선 이러한 시위 확산이 생겨나질 않았습니다.

세속화된 주민들은 오히려 이들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죠.

 

이렇게 되자 영미프는 전략을 바꾸죠.

예멘의 사례처럼, 이들 시위대를 이젠 반군으로 전환하여 내전을 통해서

정권을 전복하는 방식을 추진하기 시작하죠.

 

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이러한 영미프의 전략에 따라서 타협을 통해서 결국 정권을 내놓죠.

그러한 방식을 시리아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영미프가 주도해서 만든

자유시리아군 (FSA)이.

 

아사드 정권의 타도를 목표로 만든 이 군사 단체를 서구는 시리아 정부에 반대하는

야권 인사들이나 탈영병들이라는 개소리를 하면서 지원하기 시작했죠. (2011.7)

그러면서 동시에 리비아의 사례를 적용하려고 시작합니다.

 

영,프와 미국은 이미 20113월에 리비아의 카다피를 독재 정권이라면서

유엔 안보리를 통해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후 침략해서

카다피 정권을 전복해버렸었죠.

 

이러한 개입의 명분은 보호책임원칙 (R2P)이라는 내정간섭의 규정을 통해서 정당화시켰죠.

미 강경파들 (자유 매파와 네오콘들)이 타국의 침략 전쟁을 합법화 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개념이 바로 이 R2P 개념입니다.<펌자 註: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주로 R2P로 불리는) >

 

만일 중,러가 미국보다 힘이 쎄다면 이 R2P 개념에 따라서

미국 퍼거슨시에서의 흑인 사태를 명분으로 미국을 침략해 백악관을 전복해도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R2P 개념은 강자의 침략 전쟁 명분을 주기 위한

개소리에 불과한 것이죠.

 

2001년에 부시 정권 시절에 추진됐던 것으로

2006년 안보리에서 국제 규범으로 확정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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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규정을 악용하면 강대국은 모든 국가들을 전부 합법적으로 침략할 수 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한국을 침략해 전복하고 싶다면 미 CIANED 등을 통해서

반정부 야권을 만들고 지원해서 대대적인 폭력 시위를 하게 만들면 됩니다.

 

이 경우 그 어떤 국가라도 어쩔 수 없이 시위대를 탄압하게 되고

그 과정에선 인명 사상 등도 생겨나게 되죠.

 

심지어 이런 일이 없더라도 시위대에 비밀 조직들을 또 만들고

같은 시위대를 몰래 공격해서 사상자를 만들고, 이를 정부와 경찰 등의 탄압으로

뒤집어씌우면 간단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R2P 규정을 적용시켜

한국의 정권 전복을 명분으로 침략 전쟁을 감행하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이런 전략에 따라서 카다피의 리비아가 영미프에 의해서 침략 당하고

전복됐죠.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서 벌어진 폭력 시위와 그리고 의심스러운 저격 사건

그리고 이후의 쿠테타는 이러한 개념의 악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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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시 이 규정을 적용해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직접 침략의 전면전 옵션 적용)

영미프가 안보리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추진했지만

,러의 세 번에 걸친 연속 반대로 합법적인 침략 명분을 얻지 못하게 되죠.

 

(사실 이 사건은 국제 정치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91년말 소련의 해체 이후에 그 누구도 미국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고

이전 리비아의 카다피 제거에도 중, 러가 모두 묵인해줬지만, 시리아에서부터

,러가 영미프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세 번 연속,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간의 대결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는 다른 말로 기존 강대국들의 헤게모니가 약화됐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죠.

,러의 부상(浮上)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죠.)

 

그러면서 영미프는 FSA 지원을 통한 아사드 정권 전복을 노리게 되고

시리아의 친구들이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연합 단체를 결성하게 되죠. (2012.2)

 

하지만 이러한 전략에도 아사드 정권은 주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으며

튀니지나 이집트, 예멘, 리비아 등의 국가와는 다르게 정권을 공고하게 유지하면서

(여기에 배후 중,, 이란의 지원도 함께 했으며)

미 오바마는 아사드 정권의 전복을 포기하게 됩니다.

 

2011-2012년 당시의 국제 정세를 보면

미국은 부채 문제로 셧다운의 위기를 겪었고 신용등급도 강등 당했으며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가 시작되죠.

그러면서 긴축 재정의 압박에 전면 전쟁의 옵션을 빼기 시작하죠.

 

또한 2010년부터 중국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중동에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201111월에 아시아 귀환의 정책이 공식 선언되기도 하죠.

 

2012년 말에 대선도 있었고, 이런 배경 속에서 오바마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재지배 전략을 포기하고 아시아로 귀환을 위해서

중동에 휴식기를 갖고자 하게 되죠.

 

그러면서 러시아와 20126월 제네바 1 합의를 맺게 됩니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서 (CSTO) 중동을 안정시킨 이후에

아시아로 귀환한다는 전략이었죠.

 

그런데 이러한 합의가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가 재임에 실패하고

올랑드가 취임하면서 미 행정부를 장악했던 자유 매파들과 손을 잡고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하며 합의를 깨버립니다. (2012.7)

그러면서 시리아 내전이 2라운드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죠.

 

프랑스 파리에서 지금 벌어진 테러가, 많이 양보해서 아랍의 이슬람 세력의 테러라고 해도

기껏해야 사상자수는 수백 명 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프랑스가 20113월부터 시리아 아사드 정권 전복을 위한 개입으로 발생한

시리아 사망자 수만 20만 명이 넘습니다.

유엔조차도 10만 명이 넘어서자 공식 집계를 포기했을 정도로 사람이 죽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리아에선 5백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가 생겨났었죠.

 

2천여 만명의 인구 중에서 거의 절반이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서 살고 있고

5백만 명은 난민이 됐을 정도로 시리아를 박살 낸 국가가 바로 프랑스.

 

서구우월주의에 빠진 대한민국에선 프랑스라고 하면 선진국의 우상이며

인권과 민주주의 절대 기준으로 알지만, 그냥 쓰레기 국가일 뿐이죠.

 

그런데 이런 프랑스가 자신이 시리아에서 한 악행의 10분의 1, 백분의 1도 안되는 피해를 받고

아랍의 이슬람 주민들을 전부 악의 축으로 몰고 있죠.

 

마치 일제 시대에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테러범으로 봤듯이

똑같은 제국주의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죠.

 

더 웃긴 점은 한국도 과거 이러한 상황을 당했었지만 한국 국민들 대부분이 프랑스에

동정을 하는 황당한 상황이죠.

 

사실 일제 강점기 때도 다르지 않았죠.

영미의 서구는 일제를 동정해줬지 그들의 눈에 보였던

서구의 인식에서의 조선의 테러범인 안중근을 동정해주지 않았죠.

(제가 안중근 의사를 테러범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 독립 투사로 봅니다.)

 

프랑스는 왜 시리아에 이토록 집착할까요?

 

프랑스는 이미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시리아 북부 지역 등을 점령했던 적이 있던 국가로

본래 종교적 극단주의의 원조 국가들이 바로 유럽이었고 로마의 카톨릭이었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교도에 대한 살인도 정당화했던 민족들

바로 이들 유럽인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알카에다나 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배후 지원할 수 있는 이유도

이 같이 기본적인 사상이나 이념이 같기 때문이죠.

 

로마 교황청은 200여년이나 자신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셀주크 투르크와 전쟁을 벌였을 정도죠.

인류의 역사상 이런 서구보다 더 극단적 종교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사상인 타크피리즘의 본류가 바로 이들입니다.

 

이들이 그래서 무자헤딘을 만들고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인종청소에 가까운 일들은 서구의 역사에선 사실 일상적이었을 정도죠.

라틴 지역(남미)을 점령했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의 유럽인들이 벌였던 인종청소 등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죠.

 

역사적으로 기독교보다 잔인했던 종교는 없었습니다.

 

서구의 언론 조작으로 마치 이슬람이 가장 패륜적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어떤 종교 국가도 서구의 기독교처럼 자신과 종교가 다르다고 살인을 정당화하고

200여년 간 전쟁을 벌인 적은 없었죠.

 

이런 서구는 같은 기독교 내의 종파 간의 전쟁도 끊임없이 벌였었죠.

대중 조작으로 중동의 이슬람만, 같은 종교끼리도 수니파, 시아파로 나누어서

치고 박고 전쟁을 한다고 알지만, 이런 종파 간 전쟁의 본류도 서구 기독교였죠.

 

신교와 구교 간의 전쟁이 영국에선 청교도 혁명으로, 프랑스에선 시민 혁명으로

미국에선 남북 전쟁으로까지 이어졌었죠.

 

물론 이러한 종파 간의 전쟁을 서구는 시민 혁명이라고 왜곡하고 있지만

신구교 간의 전쟁은 신성로마제국 시기에 30년 전쟁의 원인이기도 했으며

16세기 초 로마 교황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발생한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에

유럽에서 일상화됐던 일들이었죠.

 

이런 극단적 개신교도들인 서구가 자신들이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지원했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태를 비난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개그입니다.

 

아무튼 서구는 과거엔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을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꾸준히 정복하려고 했었고 (, 인도와의 차나 비단, 도자기, 향신료 무역의 잇권을 위해서)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 등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후엔 에너지 자원의 약탈을 위해서

정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영국과 프랑스가 밀약을 맺었던 사이크스- 피코 협정

프랑스가 시리아를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 밝혀진 대표적인 사건이었죠.

1차 세계 대전이 왜 발생한 것이지에 대한 지정학적 이해를 하게 해주죠.

 

이후 영,프는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에 (1차 대전 승리 이후에)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전부 빼앗고 갈갈이 나눠서 찢어 먹죠.

오스만 제국은 지금의 터키 지역만을 남긴 채 북아프리카 지역과 아랍 지역의 영토를

모두 영프에게 뺏기죠.

그러면서 시리아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전 석유 지정학사에서 언급했던 1920년 산레모 협정

전후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을 영프가 갈라먹기 위한 강화 협정입니다.

그 결과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은 모든 영토를 다 빼앗겼죠.

 

그리고 영프는 사이코스- 피코 협정을 기반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은 프랑스가 처먹었고 그리고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이 처먹는다는 협정을 맺게 되죠.

 

동시에 여기에 이라크 석유 잇권에 대한 합의가 함께 있던 것이죠.

영국이 석유 잇권의 75%를 갖고 프랑스가 25%를 갖는 협정을 맺게 되는데

여기에 논공행상에서 제외된 미국이 반발하면서 영,미 간의 대립이 시작되죠.

 

미국을 논공행상에서 제외시켰지만

영국은 시오니즘의 대부인 로스차일드가와의 벨푸어 선언에 따른 약속은 지킬 것을

선언하죠.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의 건국을 추진하면서

지금 중동 불안의 씨앗을 탄생시키게 되죠.

 

미국도 유대 국가의 건설엔 이견은 없었고

그러면서 윌슨이 1918년엔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게 되는데

이는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을 배제한 채 아랍 지역의 석유에 대한

이권을 배분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영프가 미국을 배제시키면

미국은 이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서 아랍의 민족주의를 부추키고 (이슬람 민족주의 세력 지원)

영프가 아랍을 쉽게 지배할 수 없게 하려던 것이었죠.

 

1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은 당시 아랍의 석유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록펠러의 석유 회사들을 통해서 독일 제국을 견제하고 영프에 석유를 공급해주면서

전쟁 배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었고 전쟁의 승리에도 큰 영향을 줬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배제됨으로써 영국과 대립하기 시작하고

이후 결국 미국이 영국을 굴복시키면서 1928년 아크나카리 협정을 맺으면서

영미가 아랍의 에너지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에 대한 밀약을 맺게 되죠.

이것이 레드라인 협정, AS IS 협정이죠.

 

당시 프랑스가 식민 지배했던 시리아가 1946년에 독립하고

1970년에 지금의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피즈 알 아사드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 정권이 쭉 이어지고 있죠.

 

서구가 지원하던 이슬람 민족주의 세력들 때문에 혼란을 겪으면서,

온건 이슬람 세력을 지원하면서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세속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중동 국가 중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자유로운 지금의 시리아가 된 것이죠.

종교나 종파 그리고 민족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 정책을 통해서 시리아를 안정시켰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가장 혁신적인 지도자라고 찬사를 보냈던 대통령이

바로 지금의 아사드입니다.

 

아버지보다 더 혁신적이며 그래서 그 스스로 세습 정권을 포기하고

영미식 대의제를 통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 방식으로 개헌을 하고

이후 내전의 혼란 속에서 대선을 통해서 정권을 다시 잡게 되죠.

 

시리아는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와는 오랜 동맹국이었으며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었죠.

 

아무튼 시리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 쓰레기 국가 프랑스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시리아가 자신의 식민지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2010년 영국과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밀약을 맺으면서 (신 사이크스 -피코 협정)

영국은 카다피의 리비아를, 프랑스는 아사드의 시리아를 처먹는다는 협정을 맺습니다.

이후 프랑스는 터키의 에르도안과 밀약을 맺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전복에 나섭니다.

 

여기에서 프랑스가 터키의 EU 가입을 지원하기로 하며

터키가 리비아와 시리아 전쟁에 참여할 때 지원을 약속하고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의 움직임에도 프랑스가 터키의 영토 보존을 약속해주게 됩니다.

(2006년 부시 정권에서의 랄프 피터스 대령의 중동 분할 지도의 쿠르드 국가 건설에 따른

터키 분할안에 반대하는 )

대신 터키는 시리아에서 프랑스의 이권을 보장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도대체 시리아에 무슨 잇권이 있길래 하이에나와 같은 쓰레기 국가인 프랑스가

시리아에 눈독을 드린 것일까요???

 

시리아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데

한 가지는 아랍이나 페르시아 에너지의 유럽 수송을 위해서 거쳐가야할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 때문에 사우디와 카타르가 시리아 정권 전복에 함께 개입하게 됩니다.

 

카타르의 가스와 사우디의 석유를 시리아를 거쳐서 터키로 그리고 유럽으로 연결하려는

에너지 수송로의 건설을 시리아의 아사드가 전통적 동맹국인 러시아의 이익훼손을 우려하여

반대함으로써 사우디, 카타르가 아사드 정권 전복에 참여하게 만들죠.

 

이 안(案)은 결국 포기되며 플랜 B가 추진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라크를 통과하는 라인으로,

이 때문에 이라크를 점령할 필요가 생겼으며

이것이 IS가 이라크 중부에서 크게 확장한 배경입니다.

 

여기에서 큰 문제가 발생된 것이 이들이 창조한 IS가 미국의 전략을 반대로 훼손하며

통제를 이탈하면서 이라크 북부의 모술 지역 등의 유전 지대를 장악하기 시작하고

아래로는 사우디 국경을 공격하면서 사우디 침략을 시도하는 황당한 상황도 나오게 되죠.

 

그러면서 사우디는 IS에 대한 지원을 끊고 이들을 공격하는 상황도 나오는 등의

중동의 혼란이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빠져들죠.

이것이 2013년 중반 이후부터 2014년의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사실 세부적으로 많은 복잡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20138월엔 터키가 사우디, 카타르 등의 지원을 받아서

시리아 반군을 지원해서 고타에서 화학무기 자작(自作) 사건을 발생시키면서

전면전에 소극적인 오바마 행정부를 전쟁에 끌어들이려고도 했었죠.

 

시리아는 아랍이나 페르시아의 유럽으로의 에너지 수송에서의

지정학적인 중요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레반트 지역에 막대한 가스 등의 에너지 자원이

매장된 것이 알려지면서 국제적으로 핫한 지역이 되어버립니다.

 

특히나 시리아엔 카타르보다 많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리아를 처먹기 위한 미국과 영프 등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

이것이 클린턴 행정부 시절이었고, 이에 지금도 힐러리가 시리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죠.

 

제국주의 국가 프랑스 올랑드가 그토록 시리아 아사드 정권 전복에 목을 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과거 자신이 식민 지배하던 국가에 막대한 에너지가 매장된 것이 알려지면서

눈이 뒤집혀진 것이 지금 프랑스의 모습이죠.

 

이 때문에 올랑드는 내정이고 나발이고 전부 내팽겨치고 시리아 정권 전복에 임기 내내

목을 매다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막장 정치의 끝을 보여주고 있죠. 

이것이 역사상 최악의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고 그러면서 더욱 극단적인 정책에

손을 대는 모습입니다.

 

사우디는 자국에선 와하비즘에 따른 정치를 하며

대외적으론 살라피즘에 따른 알카에다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카타르가 이집트에서 기원한 이슬람 형제단 세력을 지원하면서

중동의 자스민 혁명을 배후에서 지원했죠.

 

미국은 카타르의 재정을 통해서 이슬람 형제단을 지원하여

당시 세속주의 정권이었던 알제리에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 시리아, 이란 등까지

북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카스피해까지 지역의 에너지를 장악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튀니지에서부터 혁명이 발생한 것이죠.

이것이 이후에 혁명이 발생된 국가에서 이슬람 형제단과 관련된 정권들이

이들 국가에 들어선 이유죠.

 

하지만 카타르와 중동에서 경쟁 관계를 가졌던 사우디가 이슬람 형제단 세력의 확장에

위기 의식을 갖게 되면서, 이들끼리 싸우는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카타르는 사실 이슬람 형제단 세력의 확장을 통해서 사우디를 고립시키려고 했었고

사우디는 이집트 혁명에서 이슬람 형제단의 무르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이를 견제하기 시작하죠.

그러면서 알시시의 군부를 지원해서 카타르의 지원을 받던 무르시를 제거해버리고

군부 쿠테타 세력을 지원해주죠.

 

사우디는 카타르의 견제를 위해서 미에게 막대한 무기를 구입해주기도 하며

자신을 따르는 GCC 국가들을 통해서 카타르를 고립시켜버립니다.

결국 이러한 전략에 따라서 카타르의 하마드 국왕이 퇴임하고 아들이 정권을 잡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이집트에선 알시시 군부가 정권 공고화를 위해서

이슬람 형제단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하고 이들이 이를 피해서 카타르로 갔지만

카타르도 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죠.

 

이들을 그 이후에 받아준 세력이 바로 터키의 에르도안입니다

카타르가 손을 뗀 상황에서 무주공산이 된 이슬람 형제단 세력의 지원의 대부로

터키의 에르도안이 된 것이죠.

 

에르도안은 이들을 지원하며 프랑스 올랑드와 함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전복을 노리고 있죠.

 

현재 시리아엔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알카에다 관련한 알 누스라 전선 등의 세력,

터키의 지원을 받는 아흐다르 알샴과 같은 이슬람 형제단 기반의 세력들,

사우디와 터키가 이라크 전복을 위해서 지원했던

알카에다에서 분리시킨 IS 세력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도 작년 초 의회에서 IS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면서 엠바고를 무시한 언론의 보도로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미 오바마가 이들에 대한 제거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스스로 칼리프 국가를 선언하며 (IS 탄생. 2014.6)

이라크 자치 정부와 사우디 북부를 공격하면서, 미 제어를 이탈하며

중동의 혼란이 더욱 확산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미국은 자신이 지원했던 IS를 제거한다면서 온건한 반군들을 육성해서

이들을 제거하며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겠다는 황당한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었죠.

 

미국은 IS 세력의 이라크 확장을 통해서

당시 미 이해에 벗어나려던 알 말라키 이라크 총리 제거를 추진했었는데

이에 이란이 동의함으로써 알 아바디가 총리에 오르는 일도 생겨났죠.

 

미와 이란은 이미 당시에도 화해를 위한 대화가 비밀리에 계속 추진되는 상황이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말라키 총리의 제거를 이란이 찬성해주는 상황도 나오게 된 것이죠.

 

아무튼 미국은 그러면서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IS를 제거하기 위해서

20149엔 반IS 연합군을 창설하게 됩니다.

 

여기에 22개국 이상이 군사적으로 직접 참여를 결정하고, 이외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표명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게 되죠.

한국도 간접 지원에 참여합니다.

그러면서 IS에 대한 공습이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문제는 세부적으론 미국은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IS를 제거하는 것이 미국에겐 여전히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목표도 아니였고

리폼맵에 따른 중동 재지배 정책에 촛점이 맞춰지면서

IS 세력들을 여전히 아사드 정권의 전복에 이용하려고 하면서

이들에 대한 직접 군사 공격을 피하죠. 

그래서 지금까지 미국이 총 2,600회 이상의 공습에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이죠.

 

러시아에서도 그럽니다.

처음에 러시아가 IS 공습을 밝히자 시리아의 지하드 세력들은 걱정하지도 않았다고 하죠.

미와 나토의 공습과 같을 것이다라고 보고 대비조차도 안 했다고 합니다.

미와 나토 등 반 IS 연합군은 이제까진 실제로 IS 타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IS도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공습이 시작되고

이것이 서구 공습과는 다른 것이 밝혀지면서 시리아에서 활동하던 많은 지하드 세력들이

이웃 터키와 이라크 등지로 근거지를 옮겨가고 있다고 합니다.

 

1년 이상을 수십 개 국가가 연합해서 공습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으나 러시아 단독으로 단, 1개월여 공습 후엔

성과가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이라크 정부도 (반미적인 말라키 제거 이후에 바뀐 친미의 알 아바디 총리)

친이란 시아파 세력들의 압력에 러시아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실제 그동안 IS를 제거하기 위해서 공습한 것이 아니라

IS를 제어 (관리 지역을 벗어나서 확장되는 것을 통제하는 )하거나 이를 명분으로 해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시리아에 경제난을 만들기 위해서

시리아의 유전 지대나 산업 시설들을 공습하며 파괴하고 다녔고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그 대상 시설은 중국이 투자한 유전 지역에 집중됐던 것이죠.

이 때문에 중국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죠.

 

그러니 이렇게 1년 간 수천 회를 공습해도 IS가 멀쩡했던 것이죠.

심지어 미국 이외엔 실제론 시리아에선 IS 공습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고 알려지죠.

프랑스가 이제까지 단 두 번의 공습만을 형식적으로 했을 정도로 미국만의 원맨쇼였고

그것도 IS가 대상도 아니였다는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은 시리아 코바니에서 IS와 시리아 쿠르드 세력인 YPG 간의 전투에서도

뽀록났죠.

 

당시 야디지족에 대한 IS의 인종청소 만행에 국제 사회의 비난이 커지면서

미국이 코바니의 YPG를 몰아내려는 IS를 공습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제 미국은 이들에게 무기를 공수해주면서 이것이 뽀록나자 실수로 투하했다는

황당한 변명도 했었죠.

 

실수로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히말리아 산맥을 넘었다면서 이 산이 아닌가벼 하는

나폴레옹의 코미디도 아니고, 위성항법 시스템에 의해서 정밀 타격의 능력까지 보여주는

미국의 군용기가 코바니에 투하해야할 무기와 탄약을 IS에 실수로 투하해줬다는

소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21세기에 미국의 군용기는 지도를 펼치고 나침판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운항을 하는 것일까요???

더구나 군사용 GPS는 민수용보다 그 정확성이 월등이 높죠.

그 오차는 몇십센티급에 불과할 텐데 미국의 변명은 황당한 수준이었죠.

 

IS의 장악 지역을 탈환한 영상들을 보면

미국이 IS에 공수해준 많은 전쟁 물자들과 그 박스 등

증거품이 그대로 남아 있는 현장들의 영상들이 나오는데

미국이 1년 이상 IS를 공습한다면서 무슨 짓거리를 한 것인지

미와 나토가 어떤 집단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죠.

 

그런데 그런 IS가 미국과 유럽을 적으로 삼아서 테러를 한다???

개그죠.

 

이번 파리 테러 사건은 얼핏 봐도

2001911의 프랑스판 리바이벌로 보일 정도입니다.

 

미국이 1979년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만들고 지원했던 알카에다 세력이(무자헤딘)

미국의 쌍둥이 빌딩을 파괴했다는 코미디처럼, 황당한 일이죠.

프랑스의 현 상황이나 앞으로의 행동 등도 거의 유사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부시가 이를 빌미로 아프칸과 이라크 전쟁을 연속으로 벌였듯이

올랑드도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아주 높죠.

 

자국 내에서의 정치적 위기와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정권 위기를

가장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전략은 바로 외부에서 그 적을 찾고

전쟁을 벌이는 것이죠.

 

2차 세계 대전을 벌일 당시에 히틀러의 독일 경제 상황이나 정치 상황은

사실상 위기였죠.

파시즘적인 경제 정책도 위기에 빠지면서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렸었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위기 탈출법은 전쟁이었죠.,

 

로마 카톨릭 교황이 벌였던 십자군 전쟁,,, 왜 했을까요??

마찬가지죠.

내부적 위기의 관심을 외부로 돌린 것이죠.

이를 통해서 위태로워진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시킨 것이죠.

 

무려 200년 가까이 오직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위해서 이 추악한 개짓거리를 하면서

역사상 가장 더러운 전쟁을 벌였었죠.

이것이 서구 기독교 역사의 민낯이며 교황의 본모습이죠.

(제가 기독교 사상이나 이념 자체를 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누누히 말하지만 권력의 지배 도구화된 종교를 비난하는 겁니다.)

 

이런 서구가 동양의 이슬람을 욕합니다.

종교적 관용도 없는 극단주의 종교가 이슬람이며, 테러와 살상만을 벌인다고 말이죠.

이것도, 도대체 무슨 개소리일까요???

 

십자군 전쟁은 도대체 그럼 무슨 전쟁이었을까요???

지금의 알카에다나 IS 세력들이 조상님으로 모시고 기도 드려야 할 대상이

바로 서구의 기독교가 아니였나요???

 

이교도에 대한 살인은 살인이 아니라고 가르쳤던 극단주의적인 종교가 어디였나요???

무려 거의 1천 년 전에 이러한 사상을 가졌던 국가가 서구 아니였나요???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바뀌었나요???

여전히 바뀌지 않았죠.

 

이슬람을 적대시하고 (이교도에 대한 증오) 이들 전체를 테러 세력으로 몰고

이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점은 일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죠.

 

서구의 이 미개한 종족들은 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인권이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죠.

앞으로 천 년이 흘러도 이들 유럽인들이 이를 깨달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며 벌였던 인종청소의 만행들이나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식민 지배하며 벌였던 만행들에 비한다면

지금 파리에서 발생된 테러의 피해는 애교 수준입니다.

 

더구나 이 사건이 진짜 IS에 의한 것인지도 불확실하다는 점이죠..

 

과거 영국은 2차 대전 당시에 인도에서 가뭄과 기아를 고의적으로 방치하여

2-3천 만명에 이르는 인도인들을 아사시키기도 했었죠.

인종청소의 원조 국가답게 규모도 아주 인류 역사에 남을 수준으로 기록적입니다.

지금의 인구 수준으로 따진다면 몇 억의 인구를 아사시킨 것이죠.

 

이런 국가를 서구는 신사의 나라라고 합니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조차도 영국의 인도에 대한 학살에 발 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했을 정도죠.

 

영국이 인도를 지배했던 200여년 간 인도에서 벌인 만행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죠.

당시 영국인들은 인도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선 위인으로 불리는 처칠도 마찬가지였죠.

 

동물 또는 가축으로 인도인들을 봤고 그래서 이들의 죽음을 아무도 비참하게 보지 않았죠.

이들은 영국인들의 건강을 위한 약품을 개발하는데 인체 실험용 쥐이기도 했으며

영국의 세계 지배 야욕을 위한 화학무기 개발에 인체 실험용 동물들에 불과했던 존재였죠.

 

인도인들이 아사의 상태에서 힘들게 일을 하면 그 부는 모두 영국인들이 본국으로 가져갔고

인도엔 기아와 질병 그리고 죽음만이 남았었죠.

 

사실 한국도 남의 일, 남의 역사가 아니죠.

일제의 지배 기간 동안에 자행됐던 수많은 학살과 착취...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강제 징용 등의 문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등...

 

이러한 역사를 잊는 것은 둘째이고 아예 정부가 나서서 이를 조작하여

일본인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역사 국정화가 뻔뻔스럽게 자행되고 있는데

21세기의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역사를 잊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조작된 역사를 아는 겁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뇌라도 당하지 않지만

조작된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에겐 조작된 미래만이 존재할 뿐이죠.

 

 

가져온 곳 : 블로그 >그렇군의 국제정치|글쓴이 : 그렇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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