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우표 매니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매사냥 Falconry). 초일커버

작성일 작성자 공룡우표매니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매사냥 Falconry). 초일커버


우표발행일 : 2019. 11.  27    우표번호 : 3423 ~ 3424     우표디자인 : 용사와 매. 매사냥 장면    

인쇄 및 색수 : 평판 / 4도 금분.    디자이너 : 유지형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Royal johEnschede)

  훈련된 매를 이용하여 사냥하는 매사냥이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고기를 얻기 위한 수단이자 왕과 귀족의 스포츠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0년 나라마다 배경이 달라도 매사냥은 보편적 가치, 전통, 기술을 공유한다.라는 유네스코의 공식 발표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랐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린 매사냥을 기념우표로 발행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매사냥은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그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매사냥의 모습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역사를 약 2000년으로 추정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의 제17대 아신왕이 기풍이 호방하고 매사냥을 즐겼고 신라의 제26대 진평왕이 매사냥에 푹 빠져 신하들이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응방(鷹坊)이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매를 관리했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지금의 서울 성동구 응봉산 기슭에 응방을 설치하고 이 지역을 왕실 전용 매사냥터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의 태종 역시 매사냥을 즐기기로 소문났고 세종대왕도 매사냥 구경을 즐겼다고 합니다. 왕과 귀족의 스포츠였던 매사냥이 연산군 이후부터는 고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왕실은 매사냥꾼(응사)에게 꿩고기의 납품을 맡겼고, 응사는 꿩고기 납품의 대가로 쌀을 받았습니다. 사냥을 잘하는 매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주요 자산이기도 하여 일반인 매사냥꾼도 많았습니다. 매사냥꾼들은 일제강점기에도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으나 전쟁을 거치고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부터 서서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번 우표는 두 종류로, 한겨울 설원을 배경으로 매를 날려 보내려는 응사와 날개를 활짝 펼친 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인간과 자연을 이어준 매사냥의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화려한 색감의 꿩을 두 발로 거침없이 낚아채는 매의 모습에선 웅장한 매의 기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제왕운기에 백제의 국호를 한때 매를 뜻하는 응준(鷹準)이라 칭했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매는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이자 우리 민족의 혼이었습니다. 이번 기념우표를 통해 우리 매사냥의 문화와 역사가 다시금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매사냥을 옛날 기록에는 방응(放鷹)이라고 하였다. 길들인 매로 사냥을 하는 것은 활이나 총으로 짐승을 잡는 수렵 행위보다는 자연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우리 선인들은 아득한 고대부터 매사냥을 하였다.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은 성품이 호매하여 매사냥을 좋아했으며, 법왕 1년(599) 12월에는 살생을 금지하여 집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전부 놓아 주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유사≫ 영취사에는 어떤 사람이 매를 놓아서 꿩을 쫓게 하였는데, 그 매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가 매에 달아 놓은 방울 소리를 듣고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매의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까지 설치했는데, 충렬왕은 매사냥에 열중하여 민간에 피해가 많았다. 그래서 충목왕 때는 응방을 폐지했는데, 공민왕이 매를 사랑하여 다시 설치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응방이 있고 응방군까지 있어서 매사냥이 한층 성행하였음을 알려 준다. 조선시대의 태종은 매사냥을 자주 즐겼으며, 연산군 때는 매사냥 때문에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중종 때는 일부 폐지하였으나 민간에서 행하는 매사냥은 금지하지 않았다.

  김창업(金昌業)은 매사냥의 호쾌한 기개를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자 넘은 보라매를 엊그제 갓 손 떼어/빼짓체 방울 달아 석양에 받고 나니/장부의 평생 득의는 이뿐인가 하노라.”  김창업은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파묻혀 살면서 농사짓고 매사냥이나 즐기며 유유자적 학문에만 열중한 큰 학자였다. ‘빼짓체’란 ‘빼깃이’라고 해서 매의 꽁지 위에 표하기 위해 덧꽂아 맨 새의 깃을 말하는데, 이 깃에 맑은 소리가 나는 청동방울을 달아 놓아 매가 움직이는 대로 방울 소리가 울리기 때문에 꿩을 쫓아 날아간 매를 방울 소리로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사냥을 하는 매는 송골매라 하며, 새끼를 길들여서 사냥에 쓰는 매를 보라매라고 하고, 보라매를 해동청(海東靑)이라고도 부른다. 산에서 제풀로 자란 매를 산지니라고 하는데, 이 산지니는 길이 들지 않아서 먹이를 뜯어 먹고 배가 부르면 제멋대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사냥에는 이용할 수가 없다. 사냥매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를 잡아서 사람 손으로 길들인 매라야 한다. 이렇게 길들인 매를 보라매 외에 육지니, 수지니, 수진개, 수진매라고도 한다. 보라매도 1년 이내 것은 초지니 또는 갈지개라고 하고, 1년에서 2년까지는 재지니, 2년에서 3년까지는 삼지니라고 부르는데, 사냥하기에는 초지니가 날렵하고 용맹무쌍하여 가장 좋으며, 재지니, 삼지니쯤 되면 동작이 느려서 별로 신통치 못하다.

  매 중에서도 백송고리는 성질이 굳세고 날쌔어 해동청 가운데 아주 귀하게 아끼는 종류이며, 도롱태, 황조롱이, 새호리기 같은 것은 육지니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기르지 않는다. 새매의 수컷인 난추니는 깃이 예리하여 새를 후려쳐서 잡고, 암컷인 익더귀는 독수리를 닮아 능히 호랑이를 잡는다고 한다. 매사냥은 보라매를 중심으로 행한다. 매의 발톱이 날카롭기 때문에 보라매를 받아드는 매꾼은 팔뚝에 두툼한 토시를 끼고, 그 토시 위에 매를 받아들고 사방이 잘 내다보이는 산마루에 오른다. 몰이꾼과 털이꾼들이 ‘우·우·’ 소리를 내면서 산줄기 나무숲을 훑어서 꿩을 퉁긴다. 어디서 꿩이 날아오르면 산마루에서 목을 지키고 있던 매꾼은 보라매가 날아가는 꿩을 확실하게 알아차리게 하고 나서 매를 떠나 보낸다.

  ‘매나간다’고 매꾼이 소리 지르면 몰이꾼들은 방울 소리를 듣고 매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려간다. 험준한 산줄기를 타고 넘고 골짜기를 허겁지겁 건너 질러 쫓아가다가 방향을 모르게 되면 잠시 귀기울여 보라매의 방울 소리를 찾아 듣는다. 이때는 아무리 숨이 가빠도 쉴 여유가 없다. 일각이라도 속히 매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매가 꿩을 잡았을 때는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꿩 등 위에 올라타고 앉아서 표독한 주둥이로 꿩의 머리를 쪼거나 눈을 뽑아내는데, 그럴 적마다 꿩이 고통에 못 이겨 꿈틀거리면 매의 빼깃에 달린 방울이 가볍게 울리곤 한다. 사냥꾼이 일찌감치 도착하면 매의 발 밑에 깔려 꼼짝달싹 못하고 살아 있는 꿩을 그대로 빼앗아 낼 수 있지만, 웬만큼 늦어지면 벌써 꿩은 눈이 빠지고 머리가 깨져서 죽어 있게 마련이다.

  수렵 행위는 고대인의 생활활동이었다. 원시인은 식량을 획득하기 위해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였고, 부족국가시대에는 무예의 수련으로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수렵을 행하였다. 매사냥은 자연에서 호매한 지기를 기르는 활달한 행락으로서 우리 선인들이 즐겨 해왔고, 일정한 제약 없이 산야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스포츠로서도 심신을 단련하는 데 손색이 없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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