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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레옹 제롬의 작품세계Ⅰ[1840~1865]-Jean Leon Gerome

작성일 작성자 구름에 달가듯이

장 레옹 제롬의 작품세계Ⅰ[1840~1865]-Jean Leon Gerome

(1824-1904)- 오리엔탈리스트

 

 

 

Jean Léon Gérôme(1824~1904), French Academic(Orientalism) Painter and Sculptor

Born 10 May 1824, Vesoul(Haute-Saône), France, Died 10 January 1904,Paris,France

 

 

프레데릭 브릿지맨의 스승이었던 장 레옹 제롬 ( Jean-Leon Gerome / 1824-1904) 은 1824년 프랑스 베술(Vesoul)에서 금세공인 세공사인 아버지와 상인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첫째 아이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고향에 있는 학교에서 여러 방면에 걸쳐 두각을 나타냈다. 화학과 물리, 미술에서 특히 뛰어 났는데 정작 회화공부는 16살이 되어서 시작했다. 처음에 제롬이 화가가 되겠다는 것을 막았던 아버지가 나중에 동의했기 때문인 것 같다.

 

16살에 고향에서 공부를 마친 제롬은 대가로 인정받고 있던 들라로슈에게 보여 줄 추천장을 가지고 파리로 간. 당시 화실의 학생들의 수업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가혹할 정도였다. 매일 아침 5시간씩 모델이나 소조물을 앞에 놓고 드로잉 연습을 해야 했다오후에는 길거리나 야외로 나가서 스케치를 해야 했다때로는 루브르에 가서 대가들의 옛 작품을 모사해야 했다.

 

부게로 밑에서 그림을 배우던 앙리 마티스도 결국 이런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뛰어 나갔다. 잘 뛰어 나가면 새로운 길을 열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아닌 것이 인생이긴 하다.

 

제롬은 화실의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다.아버지가 보내주는 용돈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자취방은 항상 열려 있었고 자주 친구들을 먹이기 위해 그가 먹는 식사량을 위험할 정도로 줄였다고 하니까 사람에 대한 애정도 많았던 모양이다.  

 

1840년 파리로 가서 역사화가인 들라로슈(Paul Delaroche)의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 스승인 들라로슈가 화실을 닫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아내의 죽음으로 낙담하고 있던 들라로슈에게 이 번에는 제자 중 한 명이 결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들라로슈가 로마로 갈 계획인 것을 안 제롬은 스승에게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요청을 했고, 스승은 그를 데리고 로마로 떠난다. 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고전 작품들을 연구하는데 보내는데 훗날 제롬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제롬은 로마에 있었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했다.  1843년과 1844년 사이 스승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했다.그곳에서 그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확한 사실성과 정교한 완성미에 고무되어 이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탈리아에서의 그의 꿈 같은 생활도 그가 장티푸스에 걸리는 바람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그를 간호하기 위해 로마로 왔고 제롬은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파리로 돌아 온 후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스위스 출신인  샤를 글레이어(Charles Gleyre)의 아틀리에에 들어가게 되는데 제롬에게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파리로 돌아와  짧은 기간이었지만 샤를 글레이어(Charles Gleyre)의 아틀리에에서 미술공부를 계속하였으며 이어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갔다.   글레어는 인기 있는 선생님이자 박식한 기술자였다. 특히 당시에는 튜브에 들어 있는 물감이 공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물감의 혼합 기술이 무척 중요했다.

 

글레어는 이 방면에서 대가였는데, 그는 이 기술을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주었다. 학생들의 이름을 보면 모네, 르노아르, 바질, 휘슬러 -- 나중에 쟁쟁해진 사람들이었다. 글레어는 학생들을 자신의 자산으로 생각해서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1847년 살롱 전시회에서 《닭싸움에 참가하는 젊은 그리스인들(1946)》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고전적인 이야기와 부드러운 붓 터치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그가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제롬은 급진적인 인상주의 화풍의 등장으로 인한 갈등 속에서도 전통과 진보를 적절히 조화시킨 자신만의 아카데미즘적 기술을 후세에 전수하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일생동안 흔들리지 않는 예술관을 이어갔다.  고전주의적인 주제를 사진을 찍은 것과 같은 질감으로 그린 그의 작품은 대중성을 얻어, 1863년 에콜데보자르에서 회화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1853년 제롬은 콘스탄티노플로의 여행을 시작으로 동방의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었다. 그는 터키의 다른 여러 지역을 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노예 시장과 하렘,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 여인들의 목욕 장면을 담은 그의 작품은 당시 프랑스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제롬은 부드러우면서도 창백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로 동양의 정취와 관능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선보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들라로슈의 스타일 즉 아카데미의 스타일을 물려받은 것으로서 고전적인 주제와 자신이 여행하였던 터키와 이집트, 북아프리카 지방의 풍물을 그린 작가로 생전에 널리 알려졌다.

 

제롬은 에콜 데 보자르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한편 1870년대 후반 시력을 잃을 무렵인 1870년대 후반부터 조각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의 조각은 회화와 마찬가지로 신고전주의의 엄밀성이 깃들어 있다. 

 

아카데미의 전통을 지지하는 화가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화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주요 작품으로는 《화실에서의 미켈란젤로》(1849), 《노예시장》(1867),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82) 등이 있다.

  

 

 

 

The Tryst, 1840,  Oil on panel , 55.1 x 32.5 cm, 

Saint Louis Art Museum, St. Louis, MO, USA

 

 

Head of a Peasant from the Roman Campagne,  1843 ,

oil on canvas , 40.5 cm X 33 cm , Private collection

 

 

The Tryst, 1844, Oil on panel ,  55.2 x 31.8 cm

 Saint Louis Art Museum, St. Louis, MO, USA

 

 

Portrait of a Roman Wom
an, 1843-1844 , oil on canvas , 44.45 cm X 38.1 cm

Cleveland Museum of Art  (United States - Cleveland, Ohio)

 

 

Portrait of M. Leblond, 1844,  oil on canvas , 102.87 cm X 83.82 cm

Musée Georges Garret  (France - Vesoul) 

 

 

Young Greeks Encouraging Cocks to Fight, 1846,  Oil on canvas , 

Musée d'Orsay, Paris, France

 

 

들라로슈가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주문 받은 작품들의 제작을 위해 제자들을 소집하자, 제롬도 글레어의 화실에서 스승의 화실로 자리를 옮긴다. 스승에 대한 예의가 깍듯했다. 거의 1년간 스승의 곁에서 작품 제작을 도왔는데 들라로슈는 제롬에게 살롱에 출품 할 작품을 준비하라고 격려한다.

 

그가 살롱에 출품한 작품 중 ‘수탉 싸움’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고티에르의 호평이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고티에르는 제롬의 오랜 기간 후원자가 된다다.

 

 

 살롱에서 인기를 얻은 그의 작품 때문이었는지 제롬에게도 정부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제롬은 새벽부터 하루 종일 작업을 했다. 더구나 그의 작품 가격도 조금씩 높아졌는데 나중에 프랑스 정부가 생각보다 제롬에게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기록을 보면 제롬은 상술도 뛰어났던 것 아닐까 싶다.

 

 

Saint Vincent of Paule, 1847, Oil on  canvas, 155.89 cm X 118.11 cm

Musée Georges Garret  (France - Vesoul) 

 

 

View of Paestum, (study), 1847,oil on canvas, 18.5 cm X 27 cm , Private collection  

 

 

Greek Interior, 1848, OIl on  canvas ,  Musée d'Orsay, Paris, France

 

 

The Virgin the Infant Jesus and St. John, 1848,

oil on canvas, 107.95 cm X 74.93 cm , Private collection

 

 

Anacreon, Bacchus, and Amor, 1848, oil on canvas , 135.89 cm X 211.14 cm

Musée des Augustins  (France - Toulouse)

 

Portrait of Armand Gérôme, 1848,oil on canvas , 50.7 cm X 43.82 cm

National Gallery - London  (United Kingdom - London)  

 

 

The Republic, 
1848,oil on canvas, 228.6 cm X 193.04 cm , Private collection

 

 

Michelangelo (in His Studio),  1849 ,  oil on canvas , 51.44 cm X 37.47 cm

Dahesh Museum of Art  (United States - New York, New York)

 

 

 

Portrait of Marianne Elisa Birch, 1849, Oil on canvas , 

Musee Ingres, Montauban, France

 

Two Italian Peasant Women and an Infant, 1849 ,

oil on canvas ,  88.27 cm X 67.31 cm , Private collection

 

 

Drunken Bacchus and Cupid, 1850,oil on canvas , 149.23 cm X 113.03 cm

Musée des Beaux-Arts de Bordeaux  (France - Bordeaux)

 

 

Grecian Interior, Le Gynecee,
1850,  oil on canvas, 64 cm X 88 cm, Private collection 

 

 

Portrait of Cecile Viter, 1850,oil on canvas, 59 cm X 48 cm, Private collection

 

 

Portrait of a Lady,
1851,oil on canvas , 92.71 cm X 75.88 cm

Art Institute of Chicago  (United States - Chicago) 

 

The Idylle  (also known as Daphnis and Chloe),  1852, oil on canvas ,

212.09 cm X 155.89 cm, Musée Massey  (France - Tarbes)

 

 

Portrait of a Gentleman, a Cactus Collector,
1853 ,

oil on canvas ,  57 cm X 46.5 cm ,  Private collection

 

 

Portrait of Mademoiselle Durand,
1853,

oil on canvas ,  127 cm X  87 cm ,  Private collection

 

 

Bacchante, 1853, Museo Thyssen-Bornemisza  (Spain - Madrid)

 

 

 

A Soul Taken away by an Angel, 1853,

 

 

The Reign of Augustus (study), 1853-1854, oil on canvas, 37 cm X 53 cm

J. Paul Getty Museum - Los Angeles  (United States - Los Angeles)  

 

 

An Italian Girl Playing a Mandolin,
1855,

oil on canvas ,  17.8 cm X  11.4 cm ,  Private collection 

 

 

Italian Playing a Doodlesack, 1855, 

oil on canvas ,  17.8 cm X  11.4 cm ,  Private collection 

 

 

Recreation in a Russian Camp, Remembering Moldavia, 1855,

oil on canvas ,  59.5 cm X  101.5 cm ,  Private collection

 

 

Funeral Wake, 1845-1855, Oil on  canvas

 

 

 

The Leap of Marcus Curtius,
1850-1855,  oil on canvas, 53.3 cm X 76.2 cm

Smith College Museum of Art - Northampton, Massachusetts  (United States) 

 

 

Night, 1850-1855, oil on canvas,76.2 cm X 45.72 cm, Musée d'Orsay (France - Paris)

 

 

Memnon and Sesostris, (study), 1856,

oil on canvas ,  35 cm X  49.5 cm ,  Private collection

 

 

 Pifferaro, 1856 , oil on panel , 17.78 cm X 12.7 cm ,   

Musée des Beaux-Arts de Nantes  (France - Nantes)

 

 

 

Thebes Colosseums, Memnon and Sesostris (study), 1856, Oil on  canvas

 

 

Memnon And Sesostris, 1857

 

 

Prayer In The House Of An Arnaut Chief, 1857

 

 

 

Egyptian Recruits Crossing the Desert, 1857~1859,

oil on canvas, 61.9 cm X 106 cm,  Private collection

 

 

Arnaut Officer, 1857 , oil on canvas ,  32 cm X  25.7 cm ,  Private collection

 

 

Camels at a Watering Trough, 1857 , oil on canvas , 73.6 cm X 119.4 cm

National Gallery of Canada - Ottawa  (Canada - Ottawa) 

 

 

Piffereri, 1857 , oil on panel , 25.4 cm X 19.05 cm

Cantor Arts Center  (United States - Stanford, California)

 

 

Suite d’un bal masqué (Duel after the Masquerade), 1857,  oil on canvas, 50 X 72 cm Musée Condé - Chantilly  (France - Chantilly) 

 

 

가면 무도회 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연극 같은 배경 속에서 결투가 벌어졌고 결과는 금방 결정 된 것 같다. 칼을 버리고 떠나는 승자 옆에는 한 사람뿐이지만 패한 사람 옆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의 사람들이 셋이나 된다.

 

제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제롬은 작품의 구상을 위해 터키를 방문한다. 터키 방문을 통해 중동지방의 맛을 알게 된 그는 곧 이어 이집트도 여행한다.  그가 묘사한 중동 지방의 다양한 그림과 주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오리엔탈리스트로서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작이 된다.

 

37살이 되던 해 제롬은 8개월 일정으로 이집트 여행을 끝낸 후 자신의 그림을 취급하던 화상의 딸과 결혼할 계획을 준비한다다. 그런데 위의 그림과 같은 일이 실제로 그에게 일어났다. 어떤 파티에 참석했다가 미술상이었던 사람과 아마 여자 문제로 심한 말을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결국 결투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제롬은 결투가 처음이었지만 그 미술상은‘프로’였다. 제롬의 의사가 결투 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의사는 제롬에게 비스듬히 서라고 충고한다다. 상대의 총알은 제롬의 오른 손을 스쳤고 제롬은 목숨을 건졌다. 물론 결과는 제롬의 패배였다.

 

삼각 붕대를 하고 이집트 여행길에 오른 제롬은 시리아를 거쳐 성지 순례까지 끝내고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다. 대단한 정열이다.

 

결혼을 한 제롬은 그 후 1남 4녀를 두었다. 딸들은 자라서 유명 인사들과 결혼을 해서 손자 손녀를 그에게 안겨주었지만 아들은 화가의 길을 걷다가 폐결핵에 걸려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를 프랑스 정부는 정부 주도로 개설된 학교의 교수로 임명한다. 학생은 16명이었는데 아마도 그의 개인 화실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었던 것 같다. 학생들 사이의 친목을 도모할 목적으로 제롬은 학생들을 이끌고 석 달 반의 중동 여행을 다시 떠난다다. 이 때는 아랍어도 배웠다고 하니까 준비를 철저하게 한 모양이다.

 

중동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제롬의 그림에는 그가 수집했던 옷과 소품들이 꼼꼼히 묘사되기 시작했다. 또 작품 속의 주제들도 대개 정해졌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중동지방 묘사를 위한 매뉴얼이 만들어 진 것이다.

 

마치 화보 사진을 찍는 듯한 모습이다. 성장을 한 여인의 고혹적인 자태를 보다가 평상복 차림이 아닌 것에 잠시 의혹의 눈빛을 보냈다. 제롬의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여왕의 단골 초대 손님이었고 유럽 각국으로부터 명예로운 호칭이 그에게 쏟아졌다. 프랑스 최고 인사들만 초대받았던 수에즈 운하 개통식에도 참석을 했으니까 당시 그의 위상이 짐작된다.

 

이때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한다. 식구들과 함께 고향으로 피신했던 제롬은 파리가 함락 위기라는 소식을 듣고는, 식구들을 바다 건너 런던으로 보내고 자신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돌아간다.‘ 붓을 버리고 조국을 위해 총을’ 잡은 제롬

 

파리로 돌아갔지만 상황은 좋지 않아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제롬은 가족이 있는 런던으로 떠나야 했다.런던에서도 그의 작업은 계속되었는데 이 때 소위‘목욕탕 시리즈’가 완성된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제롬의 재산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프랑스 정부도 보호 했지만 프로이센 정부도 제롬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롬은 파리코뮌에 의해 황폐해진 학교에서 다시 강의를 시작한다. 세상은 바뀌어 공화정이 되었고 그 동안 왕궁과의 친분 때문에 상대적으로 떨어진 그의 명성도 다시 끌어 올려야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일주일에 두 번 말을 타고 출근을 했는데 기병장교처럼 보였던 그의 모습은 당시 신문에 끝없는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말년의 제롬은 인상주의와의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카유보트가 수집해서 남긴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뤽상부르 미술관에 걸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의 화실에서 전시회를 반대하는 조직을 구성한다. 신문 기자들도 불러서 이 사실을 보도케 하고는 본격적으로 압력을 넣었다. 또 마네의 추모 전시회가 에콜에서 열리는 것을 거부했다.

 

내세운 이유는 마네가 에콜에서 공부한 적도 가르친 적도 없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인상파가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네의 전시회가 열렸다. 할 수 없이 전시회에 참석한 그가 작품을 둘러보고 한 마디 했다.‘생각보다 나쁘지 않더군’ 제롬이 인상파에 대해 남긴 최고의 찬사였다.

 

1904년 1월 9일 처남과 화가 알프레드 스티븐슨의 미망인과 점심을 함께 했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다음 날 아침, 화실 옆 조그만 방에서 제롬이 숨져 있는 것을 하녀가 발견했다. 그가 쓰러진 곳은 생전에 좋아 했던 렘브란트의 초상화 앞이었다.  

유언대로 꽃 송이 하나 없이 그는 몽마르뜨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지는 그가 먼저 죽은 아들을 추억하기 위해 조각했던‘ 슬픔 Sorrow’동상 앞이었다.

 

 

 

View of the Nile at Luxor, 1857 , oil on canvas laid onto board, 16.5 cm X 28.7 cm  
Ashmolean Museum - University of Oxford  (United Kingdom - Oxford)

 

 

 

King Candaules of Lydia, 1858~1859, Oil on canvas , 67.3 x 99 cm

Museo de Arte de Ponce  (United States - Ponce, Puerto Rico)

 

 

이 그림을 이해하려면 터키의 머나먼 뿌리 리디아에 관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리디아에는 3개의 왕조가 있었는데 그 역사가 BC. 3000년까지 올라간다. 이 중 둘째 왕조의 마지막 왕이 칸다우레스(Candaules)인데, 그는 나이가 들어서 노망이 들었다. 자기 부인 니시아(Nyssia)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여자로 생각한 나머지, 창을 나르는 충직한 신하였던 기게스(Gyges)에게 어느날 자기 부인의 알몸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침실에 숨어있던 그는 왕비와 눈이 마주쳤지만, 왕비는그를 못 본체하고, 왕비는 다음날 기게스를 불러 왕을 죽일 것을 명령하게 된다. 기게스는 왕을 죽이고 왕비와 결혼해서 왕이 되었는데, 이로써 리디아의 둘째 왕조는 무너지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기이한 반지와 기게스라는 목동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이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조금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착한 목동에 불과했던 기게스는 반지의 힘을 이용해서 국왕을 죽이고 그 왕비를 부인으로 삼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는 역사속의 이야기이다.

 

백옥같이 하얀 니시아의 몸과 오른쪽 컴컴한 곳에서 몰래 지켜보는 기게스의 모습, 그것을 지켜보는 망령든 왕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Old Woman with a Pipe (sketch), 1858, Oil on  canvas

 

 

 The Odyssey, A Wall Decoration Project for the Drawing Room of Prince Napoleon's Neo-Pompeian Residence, Avenue Montaigne, 1858, Oil on metal , copper,

55.88 cm X 44.45 cm, Musée Georges Garret  (France - Vesoul) 

 

 

Nude from behind (Study for King Candaule), 1859 , Oil on  canvas

 

 

Ave Caesar, Morituri Te Salutant, 1859, oil on canvas , 93.35 cm X 145.42 cm

Yale University Art Gallery  (United States - New Haven, Connecticut) 

 

 

The Dead Caesar, 1859,  graphite ,  16.7 cm X 32.6 cm,  

National Gallery of Art - Washington DC  (United States - Washington)

 

 

The Draught Players (Arnauts Playing Chess), 1859, Oil on panel,  40.3 cm X 28.6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United Kingdom - London)

 

 

Duel after the Masked Ball, 1857-1859 , oil on canvas ,   39.05 cm X 56.52 cm

Walters Art Museum - Baltimore  (United States - Baltimore, Maryland) 

 

Allegory of Night, 1859,  oil on canvas ,  228 cm X 228 cm, Private collection 

 

 

Rachel Felix, 
1859,  oil on canvas ,  218.12 cm X 152.08 cm ,

Comédie-Française - Palais-Royal  (France - Paris)

 

 

Treading Out The Grain In Egypt, 1859

 

 

Diogenes, 1860, Oil on  canvas , 75 cm X 99 cm,

 Walters Art Museum - Baltimore  (United States - Baltimore, Maryland)

 

 

Phryne before the Areopagus, 1861, Oil on canvas , 80.5 cm x 128 cm

 Hamburger Kunsthalle, Hamburg, Germany

 

제롬의 작품 중에서 우리에게 많이 소개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리이스의 아름다운 창녀였던 프리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당시 유명한 조각가 프락시틸레스(Praxitilles)가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신상을 제작할 때 모델로 선 여인이었던 고급창부 프뤼네(Phryne)는 신에게 자신의 형상을 빌려주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란 죄명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녀를 변호하던 애인 히페르데스는 고지식하고 완고한 심판관들 앞에서 최후의 카드를 쓴다.

그는 프리네의 알몸위에 천을 덮어 쒸운 뒤 법정에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는 동상 제막식을 하듯 그녀의 알몸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겼다. 이때 "신상에 자기의 형상을 빌려줄 만큼 아름다운 이 여인을 꼭 죽여야 하는가" 라고 물었고,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란 배심원은 " 저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로 받아들어야 할 정도로 완벽하다. 따라서 그녀 앞에서 사람이 만들어낸 법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고는 무죄 선언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원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이스 신화에서 아레스는 군신 (軍神)이.  아레스와 아글라로스 사이에는 알시페라는 딸이 있었는데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가 알시페를 겁탈하고 만다다. ‘정신 나간’ 짓이었다아레스는 군신답게 자신의 딸을 겁탈한 할리로티오스를 찾아 내 죽인다.

 

바다의 신의 아들을 죽였으니  결국 고발을 당한 아레스는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의 아레오파고스에서 신들의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빛나는 육체를 가진 알시페를 겁탈했다는 것을 알고는 신들이 아레스의 무죄를 선고한다.

 

 

Arnaut Guards in Cairo, 1861, oil on panel ,50 cm X 37.5 cm , Private collection

 

 

First Guardian of the Presents, Luang-in-Manki, 1861,

oil on canvas , 27.5 cm X 21.8 cm,  Private collection  

 

 

Nai Sombun, 1861 , 27 cm X 21.5 cm,  Private collection

 

 

Pho Xai, 1861, oil on canvas , 27.5 cm X 21.8 cm,  Private collection

 

 

The Prisoner,1861, oil on panel ,45 cm X 78 cm,  

Musée des Beaux-Arts de Nantes  (France - Nantes) 

 

 

Socrates Seeking Alcibiades in the House of Aspasia,
1861,  

oil on canvas ,  63.8 cm X 97.2 cm , Private collection

 

 

The Day of the Last Judgmemt, 1861

 

 

Jean Bart, 1862, oil on panel ,   32.5 cm X 27 cm , Private collection

 

 

Louis XIV and Moliere, 1862, Oil on  panel,  42 x 75 cm

Malden Public Library - MA  (United States - Malden, Massachusetts)

 

 

A Turkish Butcher Boy in Jerusalem, 1862 ,

oil on panel,  33.02 cm X 26.67 cm , Private collection

 

 

 

General Bonaparte with his Military Staff in Egypt, 1863, Oil on wood, 21  X 33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St. Petersburg)

 

 

 

General Bonaparte with his Military Staff in Egypt, 1863, Oil on wood, 21  X 33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St. Petersburg)

 

 

 

The Dance of the Almeh, 1863, Oil on panel , 50 cm X 81.3 cm

The Dayton Art Institute, Dayton, Ohio, USA

 

 

 

Portrait of M. Amedee Thierry, 1863,oil on canvas , 145.8 cm X 181 cm

Musée des Beaux-Arts de Blois  (France - Blois) 

 

 

Portrait of M. Edouard Delessert, 1864, oil on panel, 31.5  X 22 cm, Private collection

 

 

Albanian Warior (Prayer in the Desert), 1864, oil on panel , Private collection

 

 

 

Reception of Siamese Ambassadors by Napoleon III at the Palace of

Fontainebleau, 27 June 1861,1864 , oil on canvas

Château de Versailles  (France - Versailles, Greater Paris)

 

 

Napoleon III, Eugenie and their Son for Adoption Siamese Ambassadors (detail) 

 

 

The Execution of Marshal Ney, 1855-1865,  oil on canvas ,  65.2 cm X 104.2 cm

Sheffield City Art Galleries  (England - Sheffield) 

 

 

Janissary Smoking, 1865, oil on panel , 35.6 cm X 25.4 cm

 

 

Portrait of a Lady (Marie Gérôme, née Goupil, 1865,  oil on canvas, 64.14  X 46.04 cm

Musée Goupil  (France - Bordeaux) 

 

 

Prayer in Cairo, 1865, Oil on canvas ,  Hamburger Kunsthalle, Hamburg, Germany

 

앞 서 보았던 기도 시각을 알리는 사람들이 높은 망루마다 서 있다. 뿌연 먼지 속에 사람들의 모습은 환상처럼 보인다.

 

 

Young Greeks in a Mosque, 1865, oil on panel , 37.8 cm X 27.3 cm

Minneapolis Institute of Arts  (United States - Minneapolis, Minnesota)

 

 

 

The Syrian Shepherd, 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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