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그림을 읽다 [ 1회~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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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그림을 읽다 [ 1회~11회]

구름에 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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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그림을 읽다 [ 1회~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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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그림을 읽다』 [  1회~11회]  http://blog.daum.net/yonghwan6158/4609 

『정여울, 그림을 읽다』 [12회~22회]  http://blog.daum.net/yonghwan6158/4610




1. 가망 없는 싸움과 모험에 도전한 영웅들

- 상처와 저항으로 성장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오디세우스와 이카루스

… 금기를 깨고 권위에 저항한 프로메테우스와 오르페우스, 안티고네와 아라크네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이성과 호기심이 충돌하는 순간에도 지혜를 발휘해 두 가지 욕구를 모두 얻는 용기의 소유자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작 <율리시스와 사이렌>(1909).

얼마 전 ‘최고의 스펙’은 토익 점수나 학점이 아니라 ‘부모의 신분’이라는 뉴스를 읽었다.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마음 한구석의 단단한 장벽 하나가 무너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바라볼 때 재능보다도 성실과 인내를 더 높이 평가하곤 했다. ‘주어진 것’보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향해 얼마나 달려갈 수 있는지, 천부적인 것보다 천부적이지 않은 것을 향해 얼마나 땀 흘릴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젊은이는 노력으로 인정받고, 성실함으로 불안을 견디며,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어른들의 격려를 받아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바꾸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들의 희망을 꺾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겠는가? 드높은 유리천장으로 가로막힌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운명에 맞서 싸우는 자의 용기’가 짓밟힌다는 점이다.

고전이나 역사 속 인물들에게서 끝없이 용기를 얻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이 시대보다도 더 척박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아닌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바라보았다.

제우스의 독재에 저항한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외삼촌이자 국왕이자 시아버지가 될 사람이었던 크레온에게 저항한 안티고네에 이르기까지, 신화 속 인물들은 어떤 시대의 변화에도 끄떡 없이 ‘가망 없는 싸움에 도전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첫머리에는 항상 프로메테우스와 오디세우스가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생이 보장된 신(神)으로 태어났지만 나약하고 철없는 인류를 위해 ‘불’이라는 문명의 도구를 제우스로부터 훔쳐다 주었다. 오디세우스 역시 고향 이타카에 눌러 앉았다면 별 문제없이 살 수 있었지만, 모험을 택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그리스의 운명을 뒤바꾼다.

나는 이런 인물들이 여전히 이 갑갑한 사회에 희망의 빛과 영감의 원천을 제공 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매일 그들로부터 ‘그럼에도, 오늘 또 살아갈 용기’를 얻으니까.


프로메테우스와 오디세우스 - 주어진 운명에 끝내 맞서는 존재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제우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우스의 뜻을 어긴 것,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 때문에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인간에게 과분한 선물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는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에 처한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준 것은 불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철학, 의술, 그리고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이기도 했다.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전달받은 것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받는 형벌은 그가 신이기 때문에 더 처절하다. 불사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그는 죽을 수도 없었기에, 제우스의 심부름꾼인 독수리가 매일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어도 그의 간은 다음 날 아침 새살이 돋아난다.

구스타프 모로의 그림은 온몸을 덮쳐오는 고통조차 뛰어넘는 프로메테우스의 고결함을 그려낸다. 이 그림에 가장 어울리는 접속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것이다. 그는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나운 독수리가 자신의 간을 쪼아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우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앙다문 채 두려움 없이 정면을 바라본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괴로움을 토로해보기도 하지만, 모로의 그림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 프로메테우스가 고뇌하는 지식인이자 혁명가처럼 그려진다면, 모로는 그를 탄탄한 근육질의 용맹스러운 전사(戰士)로 그려낸다.

프로메테우스는 골치 아픈 인류를 절멸시키고 좀 더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새로운 종족을 만들려 했던 제우스의 독재에 저항하여 인간에게 최고의 기회를 선물해준다.

그는 인간에게 감사인사 한 번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진보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은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아니라 ‘신들의 반역자’ 프로메테우스이니, 그의 꿈이 절반 정도는 이뤄진 것이 아닐까.


 모로의 그림 속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노려보는 것은 누구일까, 아니 무엇일까. 그가 노려보는 것은 자신을 굴복시키려는 독재자의 폭력을 넘어, 자신을 좌절시키려는 가혹한 운명 자체가 아닐까?

도전은 탐욕과 다르다. 부귀영화와 이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진정한 도전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결과를 위한 노력은 탐욕에 그칠 뿐이다. 오디세우스가 만약 야심만 가득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현실을 고려했을 때, 역시 오디세우스는 떠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다. 하나뿐인 아들 텔레마코스는 유복자로 커야 할 운명에 처할 것이고, 아내 페넬로페는 수많은 구혼자의 ‘애정을 가장한 협박’ 속에서 두려움으로 밤을 지새리라. 무엇보다 항해술조차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먼 바다를 향해 무작정 나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는 <율리시스와 사이렌>에서 뭇 남성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정사이렌과 맞서는 오디세우스의 투쟁을 그린다.

드레이퍼의 그림에서 오디세우스의 용기나 기지보다 더욱 강조되는 것은 ‘유혹의 스펙터클’이다. 모든 방향에서 울려 퍼질 듯한 사이렌의 달콤한 유혹은 ‘아름다운 음악을 그림으로도 묘사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느끼게 한다.

검은 날개를 퍼덕이며 오디세우스의 뱃머리와 선미(船尾)를 위협하는 사이렌은 오디세우스가 고개를 돌릴수록, 귀를 막을수록, 더욱 위협적인 날갯짓으로 그의 영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다.

외눈박이 괴물이나 식인괴물들과도 맞서 싸워 이겼지만, 오디세우스에게는 그 험난한 트로이전쟁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체가 도전이었다. 온갖 유혹과 폭력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고향을 잊지 않는 것’, 자신이 돌아올 곳을 잊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도전이었던 셈이다.

오디세우스는 어떤 곤경에서도 이성적 판단과 무한한 탐구욕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이성’과 ‘호기심’은 위험한 순간마다 충돌하게 마련이다. 사이렌의 노래가 들려올 때, 다른 선원들처럼 밀랍으로 귀를 막으면 될 일이었지만,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가 못 견디게 듣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노래기에 그 노래를 듣고 죽은 뭇 남성의 시체가 해변에 쌓여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노래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뱃사람들의 강심장조차 흔적 없이 녹여버리는가? 오디세우스는 합리적 이성을 발휘하여 무사히 살아남으면서도, 자신의 못 말리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밧줄로 단단히 배에 묶은 뒤, 사이렌의 치명적인 합창을 듣는 쪽을 택한다. 결국엔 세상을 향한 무한한 탐구욕과 이성적 판단 모두를 지켜낸다. 이렇듯 온갖 적대적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리는 것,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떻게든 자기편으로 만들 줄 아는 것이 오디세우스의 용기 밑바닥에 깔린 지혜였다.

프로메테우스의 용기의 원천이 투철한 정의감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면 오디세우스의 그것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조용한 지혜와 성찰이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도 오디세우스는 끝내 ‘아무도 걷지 않은, 두렵고 힘겨운 길들’을 택한다. 오디세우스의 용감한 탐험이 없었다면 척박한 땅에서 굶주렸던 그리스인들은 저 드넓은 지중해를 ‘그리스의 연못’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카루스와 안티고네 - 비극적인 실패가 아름다운 순간 


1. 안티고네는 독재자에게 저항한 투쟁의 아이콘이다. 니키포로스 리트라스 작 <폴리네이케스의 시체 앞에 선 안티고네>(1865). / 2.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1555)에서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영웅 이카루스는 바다에 빠져 발을 허우적대는 익살스런 모습으로 그려졌다.

프로메테우스와 오디세우스가 도전과 모험의 궁극적 승리를 보여줬다면, 이카루스와 안티고네는 ‘운명과 싸우다 끝내 패배하는 이들’의 죽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증언한다. 이카루스와 안티고네는 옛이야기들 속에서 가장 참혹하게 실패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늘 상위권에 오를만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하늘을 날기 위해 밀랍으로 새들의 깃털을 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이카루스의 실험은, ‘상상한 것’은 끝내 이루고야 마는 인류의 투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안티고네는 어떤 대단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를 향한 투쟁의 아이콘으로서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들의 실패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힘겨운 도전 앞에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실패조차 아름다운 도전의 의미’를 증언하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이다.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을 보면 ‘목동과 농부가 저 가련한 이카루스의 추락을 정말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속한 느낌이 든다. 세상에 도와줄 사람 하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환기시키는 그림 같다.

하지만 이 그림 전반을 흐르는 미묘한 정서는 해학성이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화면 오른쪽에서 엑스트라로 전락해버린 이카루스는 가련하다기보다는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이 사람이 바로 하늘을 날기 위해 태양에 가까이 가자 밀랍이 녹아서 추락해버린 그 저주받은 영웅이야!”라고 설명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저 유명한 이카루스임을 알지 못할 정도로 어떤 고상한 자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림 전체를 감싸는 기묘한 활기와 화사한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이카루스의 도전이 실패했더라도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듯하다.

실패한 당사자만큼 실패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목격자와 방관자 사이를 오갈 뿐 진정으로 내 실패를 체험하고,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실패의 당사자, 나 자신뿐이다. 내가 의식하고, 신경 쓰고, 주눅든 만큼, 남들은 나를 항상 관찰하고 있지 않다.

이카루스 같은 황당한 실험을 계속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늘을 날지 못했을 것이고, 평생 저 드넓은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을 꿈꾸거나, 우주로 나아가는 꿈 자체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들 이카루스를 안쓰러워 하겠지만, 적어도 이카루스는 맨몸으로 저 푸르른 공중을 날아본 최초의 존재였다.

누구도 이카루스 만큼 멀리, 높이 날아가지 못했다. 그것이야말로 이카루스의 모험이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인간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이카루스는 개인의 실패를 통해 인류의 성공으로 도약해나가는 집단적 희망의 상징이다.

안티고네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그녀를 생각하면 내가 ‘힘겹다’고 생각한 모든 문제가 턱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뒤 그를 보살핀 것은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였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안티고네가 고향 테베로 돌아와보니, 오빠들은 왕권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모두 죽고 없었다. 오빠들 중 폴리네이케스는 왕이 된 외삼촌 크레온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는 사람 또한 사형에 처하리라는 크레온의 명령이 내려진다.

니키포로스의 그림은 안티고네가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오빠의 시체 곁으로 가서 그를 묻어주려고하는 장면을 포착한다. 주인공 안티고네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마치 살아있는 듯 젊고 아리따운 모습을 한 오빠의 시체가 화면 앞쪽을 과감하게 압도하고 있다.

안티고네를 감싸고 있는 어둠이 짙은 만큼, 그녀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크레온의 명령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더 숭고한 진실이었다. 그녀는 짐승의 밥이 될 위기에 처한 오빠의 시신을 장례 치러주는 것이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녀는 지엄한 국법과 왕의 명령에 맞서 마침내 스스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도의 권리’를 지켜낸다. 나는 가끔 안티고네가 매서운 고독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 여린 맨손으로 땅을 파서 오빠의 시체를 묻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비참했을까.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녀는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를 지킨 그녀의 투쟁은 테베의 민중에게 ‘국법’보다 더 소중한 ‘나 자신의 감정’이라는 보물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오르페우스와 아라크네 - ‘예술’이라는 저항의 무기를 찾아내다
 

예술가의 영원한 롤모델인 오르페우스의 삶 또한 그렇게 ‘아름다운 피날레’로 끝나지는 못했다. 그가 하프를 연주하면 숲 속의 동물들, 나무들과 바위까지도 귀 기울여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아손이 이끄는 아르고 원정에 참가해 하프연주로 폭풍을 잠재우고, 사이렌들의 죽음의 노래조차 물리침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그의 노래는 감미로울 뿐만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고, 목숨을 살리고, 무쇠로 된 심장조차 녹이는 강렬한 파토스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 암초였다. 그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오르페우스는 ‘위대한 예술가’에서 ‘불멸의 연인’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자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찾아가 간곡히 부탁을 한다. 제발 아내를 되돌려달라고. 아내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오르페우스의 간절한 애원과 노래에 감복한 페르세포네는 한 가지 단서를 달며 에우리디케를 살려준다. 아내를 돌려줄 테니, 하데스를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절대로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지만 자신을 뒤따라오는 것이 과연 아내가 맞는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녀의 모습이 상하지나 않았는지 얼마나 궁금했겠는가.

로댕은 바로 그 순간, 금기가 깨어지는 순간의 비극을 그려낸다. 에우리디케는 제발 나를 한 번만 바라봐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모습으로 오르페우스를 뒤에서 포옹하고 있고, 오르페우스는 절대로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여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다음 순간, 그는 아내에 대한 걱정과 연민, 사랑과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뒤를 돌아볼 것이다. 에우리디케는 돌아올 수 없는 하데스의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가 뒤돌아보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맞았으리라.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뒤돌아보기’라는 금기의 파괴를 통해 예술가의 본성을 보여준다. 엄혹한 금기를 깨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자 축복이기도 하다. 금기를 깨지 않는다면 어떻게 새로운 예술의 창조가 가능하겠는가.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영원히 잃는 대가로 예술가의 찬란한 본성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애도의 정서, 그리고 ‘넘지 말라’는 선을 끝내 넘고 마는 금기 파괴의 욕망은 예술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지나가버린 시간에 담긴 비밀을 발설하는 것, 그때 표현하지 못한 욕망과 감정을 끝내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예술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워터하우스와 모로의 그림은 오르페우스의 ‘죽음’조차 결국 예술의 피사체로 승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고 슬피 울던 오르페우스가 죽음을 맞이 하자, 그의 잘린 목이 헤브로스강으로 떠내려가 음악의 요정 뮤즈들에게 발견된다.

오르페우스의 목은 죽어서도 애절한 노래를 불렀고, 뮤즈들은 오르페우스의 간절한 노랫소리에 담긴 슬픔의 절규를 알아듣는다. 오르페우스를 죽인 것은 디오니소스의 사주를 받은 요정 마이나스들이었다. 오르페우스가 예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펼쳐나가자 디오니소스가 징벌한 것이다.

하지만 뮤즈들은 이미 죽어버린 오르페우스의 잘린 목을 안아 들고 마치 ‘피에타’의 한 장면처럼 안타까운 애도의 장면을 연출한다. 뮤즈들은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레스보스 섬에 묻었고, 오르페우스의 가호를 받은 이 섬에는 수많은 문인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뮤즈들은 또 오르페우스의 리라를 하늘에 안치했는데, 이것이 바로 거문고별자리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배운다. 예술의 입에 재갈이 물렸을 때,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은 ‘예술가의 생존’이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해줄 ‘감상자들’임을. 워터하우스와 모로가 그린 오르페우스의 잘린 목, 그리고 그 잘린 목의 노래를 듣는 뮤즈는 ‘진정한 예술가의 죽음’을 향한 애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이 이야기에는 궁극적으로 오르페우스의 승리로 귀결 된다. 예술가는 죽었지만, 예술은 죽지 않았으며, 예술을 죽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고, 끝내 부활시키는 관객들의 몫이니까. 



예술가의 담대한 자유를 옹호하는 시선



아라크네의 태피스트리는 여성의 숙명적 노동이 아니라 금지된 자유를 향해 끝없이 도전하는 위대한 예술적 무기였다. 벨라스케스 작 <직녀들: 아라크네의 우화>(1657).








베틀의 달인이었던 아라크네는 자기가 여신 아테나보다 아름다운 직물을 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이를 알게 된 아테나는 노파로 변장해 아라크네의 실력을 엿본다. 벨라스케스가 묘사하는 대목은 바로 노파로 변신한 화면 왼쪽의 아테나가 오른쪽의 젊은 여인 아라크네의 베틀 솜씨에 감탄하는 장면, 그러니까 자신을 뛰어넘는 아라크네의 솜씨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신에게 겁 없이 도전한 아라크네에게 대노한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변신시켜 ‘평생 거미줄이나 짜라!’는 저주를 내리지만, 화가들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아라크네의 반란을 은근히 옹호한다.

틴토레토의 <미네르바와 아라크네>에서는 아테나가 아라크네의 솜씨에 감탄해 넋을 놓고 쳐다보는 장면이 포착되고, 벨라스케스의 <직녀들>에는 화면 뒤쪽에 제우스가 에우로파를 납치하는 장면을 태피스트리로 만들어낸 아라크네의 신출귀몰한 솜씨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아라크네는 최고의 신 제우스의 악행을 폭로함으로써 그의 딸인 아테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아라크네는 예술에는 성역이 없다는 것, 신들 조차 인간의 예술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한 최초의 여성이자 예술가가 아니었을까.

이 그림은 액자구성을 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아라크네와 아테나의 유례없는 ‘신과 인간의 대결’이 화면 앞쪽을 위태로운 분위기로 가득 채우고 있고, 무대 위쪽에는 이미 완성된 아라크네의 걸작이 희미하게 가로놓여 있다.

관객을 향해 고개를 돌린 아라크네의 얼굴은 신비감을 자극하고, 아라크네의 외모가 아니라 아라크네의 작품 자체를 보라는 듯, 화면은 아련하게 ‘그림이라는 액자 속의 또 다른 액자’ 속으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에우로파를 강간하는 제우스의 악행을 고발하는 태피스트리는 ‘신들의 질서’ 전체를 위협하는 행동이었기에 아테나는 분기탱천했다. 더욱이 아라크네의 솜씨가 자신보다 낫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했기에 분노는 극에 달한다.

아라크네는 비록 거미가 되어버렸지만, 이 이야기에서 ‘인간의 오만’을 꾸짖는 교훈을 얻기보다 ‘예술가의 담대한 자유’를 이끌어내는 화가들의 시선이 우리를 더욱 흥분하게 한다. 우리는 아라크네의 도전을 통해 신조차 예술가의 창조적 열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아라크네에게 베를 짜는 행위는 ‘여성의 숙명적 노동’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태피스트리는 신에게조차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위대한 무기였으며, ‘내가 누구인가,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절체절명의 예술행위이다. 금지된 자유를 향한 끝없는 도전이야말로 창조적인 삶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최고의 무기이니까.

정여울 - 1976년생. 문학평론가. 서울대 독문과 및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침. 2004년 ‘문학동네’로 등단. 저서로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잘 있지 말아요> <마음의 서재> <시네필다이어리>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등이 있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1. 17.




2. 그림 속 유머의 미학 - 삶은 아름다우니 웃어라 


지위와 명예의 근엄함으로 포장된 속살의 해학 드러내고,

일상에서 스치고 간 익살맞은 장면 통해 삶의 즐거움을 깨닫는다

‘웃지 않고 보낸 날은 허탕친 날’이라는 프랑스 속담을 생각하면, 나는 왠지 억울해졌다. 웃음은커녕 희미한 미소조차 짓지 않은 채 보낸 날이 얼마나 많은데, 웃지 않고 보낸 날은 헛되이 날려버린 날이라니. 웃지 않는 게 무슨 죄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이 간절해진다.

어린 조카들의 코믹한 사진을 항상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침울해질 때마다 꺼내보면서 키득키득 웃곤 하는 나를 발견한다. 웃음은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지려 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의식의 방어기제였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미소로 우울한 감정을 치유하고 있었다.

이제 갓난아기처럼 해맑게 웃을 수는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아기들의 미소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 천진난만한 미소를 따라 하게 된다. 뉴스를 시청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웃음이 간절해진다.

나는 늘 희극의 가벼움보다는 비극의 처절함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었다. ‘잘 웃는 사람들’, ‘잘 웃기는 사람들’에 대한 콤플렉스도 심했다. 하지만 ‘웃프다’는 신조어처럼 삶 자체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희비극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사람을 울리기보다 웃기기가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장면들을 볼 때마다 그 사소한 유머에 진심으로 커다란 감사를 느낀다. 자연스레 웃는 법을 잊어버렸던 나는 뒤늦게 웃음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안다. 참된 웃음을 배우는 것이 눈물의 의미를 깨닫기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슬픔은 자기의 내부로 끝없이 파고드는 감정의 중력이다. 슬픔과 어울리는 단어들은 ‘깊이’, ‘빠져든다’, ‘아래로’, ‘헤어나올 수 없다’ 같은 무거운 느낌을 준다. 슬픔은 주체를 스스로 만든 감정의 감옥에 가둔다. 그리하여 슬픔에 빠진 사람들 곁에는 거대한 장벽이 느껴진다.

슬픔에 빠졌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슬픔에 빠졌을 때 오히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상태로 빠진다. 그것이 슬픔이 갖는 부정적 내향성이다. 그런데 웃음은 잠깐 ‘자기’라는 존재를 불현듯 놓아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현실, 나의 책임이 무엇이고, 내 슬픔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 이 모든 것을 그 순간 잠깐 확 놓아버리는 것이다. 웃음은 자기를 잊음으로써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웃음이 가진 긍정적 외향성이다. 



코믹 릴리프: 미소 속의 위안 찾기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 책이 되어 버린 역사학자의 초상화는 ‘책만 읽는 바보’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풍자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작 <도서수집가>(1566년) / 사진제공·정여울

돌이켜보면 인간의 생로병사에서도 울음보다 더 늦게 터지는 것은 웃음이다. 태어나자마자 아기가 하는 일은 우렁차게 우는 것이다. 엄마의 양수 속에서 편안히 헤엄치며 지내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아기가 맨 처음 느끼는 것은 고통이 아닐까. 웃음은 아기가 어느 정도 바깥세계의 동향을 감지했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웃는 부모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하면서 아이는 웃는 법을 배운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울음은 배울 필요가 없지만, 웃음은 그 공동체의 감수성을 배워야 알 수 있는 문명의 관습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사회적 필요에 따른 ‘사교적 웃음’이 더욱 많아지기 때문에 진심으로 웃을 일은 더욱 적어진다. 아무도 당신을 보고 있지 않을 때 당신이 큰소리로 웃을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웃고 있는 순간인 셈이다.

그림을 볼 때도 예전에는 비극적인 스토리가 담겨 있는 작품을 좋아했지만, 언제부턴가 점점 해학과 풍자가 있는 그림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미소 찾아 삼만리’를 떠나게 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스케이트 타는 목사님>이었다.

이 그림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스케이트 타는 목사님>을 알게 된 그날 이후로 나는 자꾸 ‘유머러스한 그림’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의 코 바로 밑에서 ‘미소’라는 이름의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서 왜 그토록 애타게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다니는 것일까?

스케이트 타는 목사님은 미끌미끌한 빙판 위에서 전혀 힘들지 않은 듯, 어쩌면 자신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는 듯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놀라운 평온함, 목사님의 얼굴에서 은근히 배어 나오는 장난기, 그리고 그가 입은 엄격한 성직자의 복장이 흥미로운 불균형을 이룬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몸소 겪어본 사람은 이 그림의 소중한 정서를 더욱 간절히 느끼게 된다. 그의 경이로운 스케이팅 장면을 보면 기나긴 겨울이 꼭 춥고 외롭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우아하면서도 확신이 어린 그의 몸놀림은 그림 전체에 절제된 활기를 부여한다.

스케이트를 전혀 못 타는 나 같은 사람도 이 그림을 보면 왠지 스케이트를 아주 잘 탈 수 있을 것 같은 유쾌한 기분에 감염된다.

스코틀랜드의 혹독한 겨울을 묘사하는 저 배경화면 속의 황량한 산들과 대조되는 그의 멋진 스케이팅은, 황량한 벌판 위에서도 아름다운 몸놀림으로 이 겨울의 우울증을 날려버리는 인간의 작지만 위대한 승리를 보여준다. 배경은 황량하기 그지없는데 그는 마치 아늑한 배를 타고 저절로 떠 있는 듯 유쾌하게 얼음 위를 질주한다.

이 그림이 내뿜는 절제된 유머의 기운에 반해서 그림 설명을 자세히 봤더니, 그림 속의 인물은 지역사회의 존경을 잔뜩 받고 있는 목사님이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로버트 워커 ‘경(The Reverend)’이 너무나도 작고 앙증맞은 발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은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은 채 ‘이게 뭐 대수라고’ 하는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스케이트를 타는 목사님의 모습에는 삶의 무거움과 온갖 골치 아픈 업무들을 이 순간만은 완전히 잊어버린 자의 여유와 내공이 묻어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마침 살을 에는 추위와 휘몰아치는 바람에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에, 이 작품은 더욱 따뜻한 ‘영혼의 난로’처럼 느껴졌다. 나는 온몸으로 이 그림이 전해주는 웃음에 치유의 힘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평소 근엄한 표정으로 신도들에게 설교하는 모습도, 무려 다섯 명의 아이를 둔 아버지라는 점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그림이 자아내는 유머의 본질은 바로 그 모순과 불균형에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단정하고 세련되게 정제된 그의 복장이 보인다. 여기저기 다이내믹한 소용돌이가 그려진 빙판은 그가 힘차게 질주한 스케이팅의 흔적을 보여준다.

근엄함과 경건함의 상징인 목사님이 애들이나 타는 스케이트를 이토록 우아하고 귀염성 있게 즐기고 있다는 ‘언밸런스’한 상황이 관객을 웃음짓게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감정의 해방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간. 나이와 성별마저 잊고 ‘순간의 산뜻한 희열’ 속으로 정직하게 몸을 던지는 건강한 오락의 시간 말이다. 



유머, 최고의 우울증 치료제

 


유머는 화폭을 벗어나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유머에 서툰 영국인들의 스트레스를 위로하는 듯한 문구를 내건 커플 매니지먼트 광고가 런던의 한 지하철 광고판에 걸려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나는 작은 웃음의 기회를 엿본다. 런던 지하철역에서 만난 ‘커플 매니지먼트’ 광고가 그랬다. ‘저는 정말 유머 없는 사람이 좋아요. 정말이라니까요’라고 속삭이며 웃는 저 여인은 지금 ‘짝’을 찾고 있다.

유머 없는 사람이 좋다는 여성의 고백이 커플매니지먼트사 광고가 될 수 있다니! 나는 이 광고를 보며 한참 웃었다. 영국 사람들도 유머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다. ‘유머 감각이 없다’는 콤플렉스를 나만 앓고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지었다.

특히 남자들은 ‘여자들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더 심한 경우가 많은데, ‘유머러스한 남자’가 각광받는 현시대의 풍토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머라는 것이 꼭 엄청난 화술과 우스꽝 스러운 행동으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소한 장난을 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미소지을 수 있다. 진정한 웃음의 비밀은 ‘유머 자체의 밀도’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웃을 수 있는가’라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닐까.

카프카를 떠올리면 우리는 왠지 무겁고 진지하고 심각한 그의 작품 분위기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카프카의 본질은 ‘유머’라는 글도 읽은 적이 있지만, 나는 그 글조차 너무도 심각하게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나 혼자 카프카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카프카의 작품이 너무 아프고 시리고 갑갑하기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심각하지만 매혹적인, 무겁지만 아름다운 카프카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는 프라하의 카프카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카프카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나보다도 먼저 웃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웃고 있는 것은 카프카 박물관 앞에 서 있는 오줌싸개 동상 때문이었다. 우리는 오줌싸개 '소년’의 동상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서로 마주 보며 그야말로 ‘엉덩이를 흔들흔들’ 춤을 추며 ‘오줌싸기의 축제’를 벌이는 장면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짜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주 가까운 길이 ‘거리의 예술’ 속에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오줌싸개 동상의 흥겨운 춤사위 덕분에 카프카의 슬픔도, 카프카의 분노도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예전에는 피터 브뤼헬의 그림이 ‘우습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은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의 유머 코드를 나는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나 보다. 결혼식이라는데 정작 신랑 신부는 주인공이 아니다. 신부는 취했는지 피곤한지 몽롱한 상태로 보이고, 결혼식을 진짜로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별 상관 없는 손님들’이다.

사람들은 각자 흥에 겨워 신나게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고, 춤추고, ‘작업’을 걸기도 한다.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흥에 겹다. 인생이란 원래 이렇지 않은가? 잔칫집에서 진짜 주인공은 신랑이나 신부가 아니라 가장 많이 퍼마신 객이라는 아이러니. 나도 왠지 저 잔칫집에 가본 느낌이 든다.

타고난 공감의 능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이 작품은 너무나 ‘토속적’이어서 각자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유럽의 잔칫집도 그랬구나, 우리네 잔칫집도 그렇던데. 그림 속 인물들과 술 한잔 기울이고 싶게 하는 그런 그림이다. 



찰나의 순간에서 포착한 풍자적 코드
 

결혼잔칫집 하객들의 흥겨운 모습이 피곤에 지친 듯한 신랑 신부와 대조적이다. 피터 브뤼헬 작 <농가의 결혼식>(1620년) / 사진제공·정여울

아르침볼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리즈를 보며 나는 ‘정물화’와 ‘초상화’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정물화는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물(still life)’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그가 그린 그림 속의 과일과 꽃과 채소들은 살아 움직이며 화폭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

그의 사계절 연작은 초상화이기도 했는데, 봄여름가을겨울은 단지 계절의 흐름이 아니라 인생의 은유이기도 하다는 점을 그의 작품은 열정적으로 보여준다. 봄의 싱그러움, 여름의 화창함, 가을의 풍성함, 겨울의 쓸쓸함은 인간의 생로병사의 알레고리처럼 다가온다.
 

체코 프라하의 카프카 박물관 마당에는 ‘오줌싸개’ 동상은 소년의 ‘그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한 웃음을 선사한다. / 사진제공·정여울

초상화이기도 하고, 정물화이기도 하며, 나아가 우리 인생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그림이기도 한 사계절 연작을 보면서 나는 ‘시간이 간다’는 것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왕의 지원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궁정화가였지만, 왕의 초상화조차 저 거침없는 ‘정물들의 콜라주’로 그려낼 정도로 상상력은 물론 열정과 용기가 넘치는 화가였다.

그의 그림 속에서 시간이 가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유머의 기원인 것 같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가을 낙엽과 겨울의 마른 가지조차도 왠지 따스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아르침볼도의 꽃잎, 이파리, 뿌리, 열매들은 시간이 간다는 것, 인생이 저물어간다는 것, 삶이 끝나간다는 사실 앞에서도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화가의 친밀한 시선이 녹아 있다.

궁정화가는 주로 왕가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가장 많이 의뢰받았지만,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그 지루한 ‘높으신 분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기발하고 창조적인 탈출구를 찾아냈다. 아르침볼도는 막시밀리안 2세의 공식 초상화 화가로 일하던 시절 역사학자 볼프강 라지우스(Wolfgang Lazius)의 초상화를 그렸다.

아르침볼도는 ‘책에 미친 역사학자’를 이렇게 코믹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책에 미친 사람들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자마자 금세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간서치(看書癡: 책만 읽은 바보)들은 정말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과일과 채소, 곡물 등 정물화 소재를 이용해 초상화를 그려낸 재치가 돋보인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작 <여름>(1563년) / 사진제공·정여울

나도 한때 이런 모습으로 비친 적이 있을 것이다. 가끔 지금도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책을 모으고 읽고 보관하는 일에는 모종의 광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서치들은 책을 모으고, 책을 아끼고, 책장을 넘기고, 책 속에 빠져 있느라 자신의 모습이 곧 아무렇게나 쌓인 책더미처럼 보인다는 사실도 모른다.

이것은 ‘책의 내용보다도 책이라는 사물 자체에 대한 소유욕’에 눈이 먼 사람을 풍자한 그림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내 눈에 비친 이 사람은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같다. 책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온몸이 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책에 비친 바보의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아름답다.

꽃과 열매와 야채들의 자유분방한 콜라주로 그림을 그렸던 아르침볼도는 이번에 ‘책’이라는 세포로 인물의 생김새를 완성한다. 이 그림을 향해 짓는 미소는 ‘나를 웃기는 사람들’을 향한 미소가 아니라 ‘나 자신이 웃음의 대상’이 되었을 때의 미소다.

나도 책에 미친 바보가 되고 싶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저 책에 대한 사랑만으로도 완전한 행복을 느끼는 ‘책바보’가 되고 싶다. 나는 이 그림에 무한한 친밀감을 느낀다.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 내가 꿈꾸던 삶,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압축한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상의 순간에서 포착한 웃음코드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불콰한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만연한 술꾼의 모습이 익살맞다. 프란스 할스 작 <행복한 술꾼>(1630년) / 사진제공·정여울

보자마자 폭소를 터뜨리게 되는 그림이 있다. 프란스 할스의 <행복한 술꾼>을 봤을 때다. 그림에서 술 냄새가 확 끼쳐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사람 때문에 화면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 분명히 정지된 그림인데 비틀비틀 동영상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핸드 헬드 카메라에서 초점이 흔들려버린 그 느낌이 좋았다. 가끔 그 술 취한 아저씨의 그림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곤 했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멀쩡했던 내가 점점 취기가 오르는 느낌이 좋았다. 프란스 할스의 다른 그림들도 이렇게 ‘취한 사람’이 많이 나오는데, 그는 가벼운 도취와 나른한 취기 속에서 인간의 숙명적인 본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사람을 슬픔에 잠기게 하는 그림이 80%라면 깔깔 웃게 하는 그림은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프란스 할스가 더욱 좋아졌다.

오른쪽 손으로는 손사래를 치면서 왼쪽으로는 화이트와인이 반쯤 담긴 잔을 들고 있는 그의 표정은 도취와 환희 그 자체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걱정도, 과거에 대한 어떤 미련도 없어 보이는 그의 해맑은 도취는 보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오르게 만든다.

앞에 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취중 대화를 하는 듯한 ‘행복한 주정뱅이’의 모습은 짧은 시간 안에 모델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연스런 모습을 단기간에 포착해야 했을 화가의 민첩함과 융통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술 취한 사람들의 그림이 유난히 많은 프란스 할스의 작품 세계는 특별한 스토리보다 ‘순간에 휘발되는 미소’에 온 힘을 집중한다.

프란스 할스는 우여곡절 많은 인생에서 ‘빛나는 시간’은 바로 이런 시간, ‘시시껄렁해 보이지만 아주 작은 미소로 세상이 잠시나마 환해지는’ 바로 그 시간 속에 있음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눈짓을 교환하고 숨겨둔 카드를 빼내는 이들 사이에서 순진무구하게 자신의 패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오른쪽)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조르주 라 투르 작 <음모를 꾸미는 사기꾼들>(1634년) / 사진제공·정여울

17세기 서유럽의 일상사를 그린 그림들에서 도박, 와인, 그리고 서로 희롱하는 남녀들은 마치 ‘욕망의 3종 세트’처럼 함께 나타나곤 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이 모두를 비웃는 희대의 사기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서로 속고 속이는 도박의 유희적 본질을 보여준다.

 화면 중앙에서 화려한 깃털 장식을 단 여인의 앙큼하면서도 살짝 겁먹은 듯한 표정은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이들을 구워삶을 수 있을까’하는 그녀의 속내를 비춰준다. ‘이 사람들한테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지’하는 의지, ‘이들 중 하나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빛도 함께 섞여 있는 그녀의 새하얀 얼굴은 자신도 모르게 환한 등불이 되어 화면 전체를 비추는 중심의 광원(光源)이 되고 있다.

숨겨뒀던 에이스 패 두 장 중 모양이 같은 클로버 에이스를 살짝 쥐고는 ‘이건 몰랐지롱!’ 하는 듯한 남자는 이 모든 상황을 위에서 바라보는 자처럼 보인다. 오른쪽에서 현란한 장식으로 치장한 옷을 입은 남자가 바로 ‘독박’을 쓰게 될 당사자처럼 보인다.

그는 속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패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은 그를 벗겨 먹기 위해 철저히 ‘공모’하고 있는데,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녀까지 이 사기극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관객에게 방백을 하는 듯한 왼쪽 남자의 장난기 어린 표정이 재미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한 차원 더 위에서 바라보는 것은 바로 ‘화가’다. 테이블 위에 자신의 돈을 걸지 않은 사람만이 이 ‘사기의 매트릭스’를 벗어나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뛰는 자 위의 나는 자들’을 보는 최후의 시선은 바로 관객에게 돌아간다. 누군가가 사기를 치는 동안, 서로 속고 속이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관찰자들. 그리고 그 관찰자들을 또 다른 시선으로 지켜보는 제 2, 제 3의 관찰자들. 이런 시선의 중첩은 단지 ‘도박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속고 속이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신이 속고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속고 있지 않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림을 바라보면서 반사적으로 흘러나오는 단순한 웃음은 이렇게 또 다른 성찰을 향한 사유의 등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삶을 아름답게 하는 웃음의 힘



보기에도 민망한 이 벽화는 옛 소련과 동독 지도자들의 정치적 제휴를 기념하는 동시에 풍자했다. 베를린장벽 보존 구간인 ‘이스트 사이드갤러리’에 있다. 드미트리 브루벨 작 <신이시여, 이 지독한 사랑을 도우소서>(1990년)



시선을 조금 옮겨보자. 점잖게 빗어 넘긴 머리에 말끔한 검정색 슈트 차림의 두 남성의 짙은 키스신이 보는 이를 민망하게 만든다. 그림 아래에 적힌 기도문 같은 제목이 애틋하기 그지없다. ‘신이시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계속하게 도와주소서’.

이 그림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은 사람들을 한 번 더 포복절도하게 한다. 이 그래피티 페인팅은 드미트리 브루벨이라는 아티스트의 작품이다. 원래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호네커 동독 수상의 정치적 제휴를 기념하는 동시에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사진을 그래피티 아트로 옮긴 것이었다.

이 작품의 별명은 ‘우정의 키스(fraternal kiss)’인데, ‘우정의 키스’치고는 너무도 격렬하고 간절한 두 사람의 포즈 때문에 이 그림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이 포즈를 동성끼리 흉내 내며 배꼽잡곤 한다.

사라진 두 국가(소련과 동독)의 지도자가 서로 치명적인 키스를 하는 이 그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 나라의 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면서 이제는 ‘유희의 대상’으로 대중이 사랑하는 일종의 팝아트로서 각광받게 되었다.

두 정치가의 심각한 만남과 역사적인 협상의 장면을 이처럼 우스꽝스런 풍자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사진작가 보쓰였고, 그 유머를 ‘거리의 미술’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작품으로 대중화시킨 것이 브루벨이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정치’라는 심각한 커뮤니케이션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풍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그림 속의 두 인물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그렇게 심각하게만 보려고 하지마, 우리 정치인들도 이렇게 때로는 열정적이라고.’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유머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다. 유머러스한 그림은 일단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킨다.

유머러스한 작품들은 그림 속의 피사체를 모방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웃음이 담뿍 담긴 그림을 통해 관객들은 슬픔의 한가운데서 피어나는 웃음의 따스함을 이해하게 된다. 나를 웃게 하는 모든 그림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삶은 아름다우니, 웃어라. 아니 자꾸 웃다 보니, 삶이 아름다워지네. 그러니 차라리 누군가 웃기기 전에 먼저 스스로 웃어버려라. 그러면 우리의 삶도 아름다워지리라.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2.17.





3.  키스, 닿을 수 없는 존재와의 만남 - 영혼을 향한 대화를 원한다면 키스하라! 

열정과 애절함, 잔잔한 평화… 사랑의 모든 형태를 담아낸 가장 순수한 상징 


카프카는 속삭인다. 어떤 사람이 비수처럼 느껴질 때, 날카로운 것으로 당신의 마음을 마구 휘젓고 가슴을 에이게 한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입 맞추는 연인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비탄에 잠겨 있을 때도 많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입맞춤의 표정은 하나같이 깊은 슬픔을 담고 있거나 미지의 존재를 향한 신비로운 호기심을 담고 있다. 키스는 그 몸짓의 주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한 감정의 메신저다. 귀가 아닌 입술에 전해지는 귓속말이 바로 키스이므로.

서로를 깊게 포옹하며 마치 이것이 마지막 키스인 듯 절절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 두 커플의 모습은 은밀한 격정을 품고 있다.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는 듯한 두 연인은 이제 막 안타까운 작별의 키스를 나누는 듯 보인다.

남자의 한쪽 다리는 계단 위에 다급한 듯 살짝 걸쳐져 있는데, 그는 급히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서 차마 그냥 갈 수 없어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건물 안을 온몸으로 환하게 밝히는 여인의 하늘빛 드레스는 남자의 어둡고 거칠어 보이는 의상에 대비되어 더욱 현란하게 빛난다.

화려한 비단 드레스를 단정하게 갖춰 입은 여인의 모습과 대비되는 남성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한 방랑자의 기운을 뿜어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신분의 격차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멀리 떠날 것만 같은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런 남자를 눈이 부신 듯 형형하게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은 꿈을 꾸는 듯 신비롭고 애절하다.

이루어지기 어렵기에 더욱 절절한 사랑의 징표는 이 안타깝고 아름다운 키스로 형상화된다. 왼쪽 화면 아래 미하게 보이는 인간의 형상은 이들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곧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암시하고 있다. 



호위무사와 공주의 애절한 작별의 키스
 

계단에서 마주친 여인의 팔에 입맞추는 호위무사와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여인의 표정에 슬픔이 묻어난다. 중세 덴마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랑 이야기를 그려 더 애틋하다. 프레드릭 윌리엄 버튼, <탑 계단에서의 밀회>(1864)

헬레릴과 힐데브란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그림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다. 두 연인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키스를 나누는 듯 안타까운 몸짓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그림은 중세 덴마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랑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신을 지켜주는 호위무사 힐데브란트와 사랑에 빠진 힐레릴 공주의 아버지는 딸의 러브스토리를 알아챈 후 분노하고, 아버지는 딸의 비밀스러운 연인을 죽이려 한다.

 이 장면은 이제 죽음을 앞둔 호위무사가 공주에게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직접 입맞춤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팔에 키스하는 호위무사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서로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하는 두 사람. 공주의 호위무사 힐데브란트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지만 비장함과 당당함이 함께 느껴진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공주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듯하다.

필사적으로 사랑했으므로 어떤 후회도 없어 보이는 남자와 달리, 공주의 모습은 슬픔으로 무너져 내린다. 이토록 사랑하는 이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공주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다. 이 안타까움 속에서도 두 사람의 몸짓은 지극히 아름답다.

공주의 푸른 드레스는 드넓은 바다가 지닌 가장 해맑고 눈부신 기운만을 모은 듯 완벽한 모습으로 물결친다. 그녀의 기다란 치맛자락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화면 전체를 생동감 있게 물들인다. 그들이 겪어온 그 모든 사랑의 역사를 압축하는 듯한 이 푸른 드레스는, 꺼져감에도 불구하고 빼앗길 수 없는 사랑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키스를 일컬어 소크라테스는 “마음을 빼앗는 가장 힘세고 위대한 도둑”이라 했다. 프레드릭 레이튼의 <신혼부부>는 그 위력적인 키스의 마력을 화사한 색감과 따스한 질감으로 담아냈다. 신부가 마음껏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한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신랑의 모습,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 표정으로 남편에게 한껏 기대고 있는 신부의 모습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 그림은 격정적인 키스를 그린 것이 아니기에 더욱 오래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는 필사적으로 사랑을 구하는 자의 격정이 아니라, 행복을 이미 품 안에 가득 넣은 자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 이마나 볼, 입술이 아닌 손등에 키스를 하는 자세는 여성을 ‘열정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순간의 열정을 넘어 영원한 존중의 대상으로 승화하는 여인의 표정은 나른하고도 우아하다. 열정적인 키스가 사랑의 클라이맥스를 표현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이렇듯 평화로운 키스는 느리고 잔잔하게 지속되는 사랑만이 간직할 수 있는 ‘영원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달콤하고, 눈부시고, 따뜻한 그 무엇의 소통 


1. 둥지를 받쳐든 여인이 아기 새에게 입을 맞추는 순간 자연이 이들을 축복하듯 나팔꽃으로 합창한다. 콩스탕 몽탈, <둥지>(1893) / 2. 비참한 결말을 예지하듯 기진맥진한 여인을 떠받친 채 키스하는 남성의 모습이 절박하고 아슬아슬하다. 까미유 클로델, <사쿤탈라>(1888)

스의 정서에는 달콤한 행복만이 깃들지는 않는다. 영원한 이별의 키스에는 그 어떤 미소나 행복도 끼어들 틈이 없다. 까미유 클로델의 <사쿤탈라>를 보고있으면, 버림받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느껴진다.

여인은 자신이 지닌 모든 열정을 불살라 사랑했지만 이제 기진맥진한 듯 쓰러져가고 있고, 남자는 쓰러지려는 그녀를 안타깝게 받아 안으면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자신들의 위태위태한 사랑을 지탱하려 한다.

인도문학을 각색한 작가 칼리다사의 희곡 작품인 <사쿤탈라>에서 여주인공은 왕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낸다. 희곡에서 사쿤탈라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잊은 왕에게 버림받지만 나중에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됨으로써 사랑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까미유 끌로델은 다시는 로댕에게 되돌아갈 수 없었다. 이 작품에서는 로댕의 아내에게 심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로댕을 향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의 끊임없는 불안이 감지된다. 언젠가는 비참하게 버려지게 될 것을 예감했던 그녀의 비극적인 사랑은 안타까운 키스의 몸짓으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에서 키스는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쓰러지려는 그녀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무게중심이다. 남자의 애틋한 키스가 바닥에 허물어지려는 그녀의 아슬아슬한 육체를 절박하게 떠받쳐주고 있다. 키스는 마치 놀이기구 시소의 중심처럼 여인의 무게와 남자의 무게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일구어낸다.

사랑의 절정에 다다른 순간,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는 여인의 뼈아픈 공포가 느껴진다. 사랑의 슬픔을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 키스는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몸으로 쓴 편지’가 되어 연인의 가슴을 도려낸다.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 사이에도 아름다운 입맞춤의 순간이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언제 보아도 가슴 뿌듯하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보이는 새끼 새들의 여린 부리를 향해 삐죽이 입술을 내미는 여인의 사랑스러운 옆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지는 작은 축제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여인의 알록달록한 옷 색깔은 마치 작은 꽃밭을 연상시키는데,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인간과 새들’의 키스이기도 하지만, 꽃들과 새들의 키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강아지에게 입맞춤하는 순간, 여인이 사랑의 증표로 받은 꽃다발에 키스하는 순간, 우산으로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비를 맞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은 인간과 자연의 내밀한 키스를 축복한다.

작가 랭스턴 휴즈는 빗방울이 인간에게 달콤한 키스를 선물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빗방울이 당신에게 키스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빗물이 은빛으로 방울지며 당신의 이마를 때리도록 내버려 두어라. 빗방울이 당신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도록 내버려 두어라.”

‘사람과 사람’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의 입맞춤은 이렇듯 사랑의 대상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대한 지극한 예찬과 축복의 정서를 머금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때로는 달콤한 키스가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치명적인 유혹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키스는 인생 전체를 무너뜨려버린다고. 뱀파이어의 키스야말로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매혹적인 키스일 것이다.

매혹적인 이성의 모습으로 나타난 뱀파이어가 인간에게 달콤한 키스를 하는 순간, 인간은 죽음도 삶도 아닌 저주의 시공간에 진입하게 된다. 뱀파이어의 키스로 인해 불멸의 존재가 되는 순간, 오히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을 질투하게 되는 역설. 흡혈귀의 비극은 곧 인간 존재의 욕망이 지닌 본질적 모순을 드러낸다.

필멸의 존재일 때는 불멸의 존재를 열망하지만, 막상 그토록 원하는 불멸의 존재가 되자 ‘죽을 수 있는 존재’의 찰나성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며 질투한다.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타인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잔혹성을 대가로 한다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불멸의 존재가 되려다가 오히려 명을 재촉한 진시황의 비극처럼, 너무 커다란 것을 욕망하는 인간은 분명 그 욕망에 비례하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브랑쿠시는 키스를 형상화한 수많은 조각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들은 점점 키스의 형상을 과감하게 기하학적으로 추상화시킨다. 인물의 생김새와 미세한 표정 등은 거의 생략된 채, ‘키스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그 무엇’만을 남겨놓은 느낌이다.

‘누가’ 키스하는지보다 ‘키스란 무엇인가’를 형상화한 것 같은 작품이다. 브랑쿠시에게 키스란 무엇보다도 ‘포옹’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토실토실한 두 팔로 서로를 부서질 듯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은 ‘둘’이긴 하나 이미 ‘하나’로 용해되고 있는 중이다.

브랑쿠시의 키스에는 ‘코’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에서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키스를 할 때 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나 궁금했다고 고백한다. ‘코의 위치’야 말로 키스의 장애물인 것이다.

그런데 브랑쿠시의 키스는 ‘코 따위는 없어져도 좋다’는 듯이, 두 남녀의 코의 흔적이 아예 사라지고 없다. 3차원의 공간에 두 사람의 코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면 저토록 혼연일체가 된, 3차원인데도 불구하고 2차원의 납작한 느낌을 주는 유머러스한 키스의 장면이 연출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황홀경의 순간 


1. 키스는 행복과 평화로운 일상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갓 결혼한 남녀의 평화로운 키스는 잔잔한 사랑과 행복을 일깨운다. 프레드릭 레이튼, <신혼부부>(1881) / 2. 키스할 때 필요한 건 상대를 응시할 눈과 상대를 꼭 휘감을 팔, 그리고 입술뿐이다. 완벽히 하나를 이루는 데 있어 코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키스2>(1908)

브랑코시는 코라는 장애물을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키스할 때는 코가 존재한다는 사실자체를 잊어버리는 두 연인의, 서로를 향한 완벽한 몰입을 형상화해냈다. 코가 없어도 좋다. 코가 어디로 도망갔는지도 모른 채로 서로의 존재에 완벽히 몰입하고 있는 두 사람으로 인해 ‘키스란 무엇인가’라는 대답은 완성된다.

‘코’로 상징되는 자존심이 사라진 공간에는 오직 사랑의 들숨과 날숨만이 남는다. 숨을 쉬는 장소로서의 생물학적 필요성마저 제거됨으로써 숨 막힐 듯한(breathless), 또는 숨소리마저 빼앗겨버릴 듯한 (breathtaking) 열정의 시간은 완성된다.

숨 쉴 틈도 없이 서로에게 완전히 몰입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코는 물론 서로의 입체적인 몸의 형상조차 납작하게 만들 만큼 강력하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키스하는 동안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 자체가 사라져버린 황홀경의 상태를 본다.

키스보다 더 좋은 유일한 순간은 키스를 나누기 직전이라는 말이 있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눈부시게 바라보며 그녀를 숨막히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 연인들의 감정은 절정에 달한다. 클림트의 <사랑>은 바로 이 순간 최고조로 달아오른 설렘과 열정의 온도와 빛깔을 그림 가득 담았다.

주변이 온통 어둠으로 휩싸이고 이 순간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한 행복한 착시효과. 사실 세상은 그들을 보고 있다. 천사 같은 미소를 띤 에로스도, 그들의 사랑을 질투하는 듯한 악마도 그들을 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들을 보고 있지만, 그들의 눈망울에는 오직 서로의 얼굴만이 그득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그 밖의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오직 그 사람만이 커다랗게 도드라져 보인다.

눈을 감고 키스를 기다리는 여인의 몸짓은 키스가 시작되기 전의 황홀경을 드러낸다. 그런 여인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는 망설임과 도취, 냉정한 관찰과 통제의 욕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여인은 투명하고 순정하게 키스를 갈망하지만, 남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얽혀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연인들, 사랑을 둘러싼 그 수천 년의 동상이몽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라고 증언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황금빛이지만 절제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프레임에 장식된 분홍색 장미 덩굴은 ‘영원히 간직해두고 싶은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소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분홍색 장미꽃은 언젠가는 시들 것이다. 이 순간은 아마 그들의 사랑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일 것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내리막길을 향해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 열정을 원동력으로 한 낭만적 사랑은 그렇게 ‘필멸의 운명’을 대가로 한다.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연기처럼 사라져갈 사랑은 연인들에게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

샤갈의 그림에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준 영원한 뮤즈, 아내 벨라를 향한 그의 사랑이 담뿍 담겨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 뿐 아니라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다가온다.

그녀와 함께 한다면 그는 무중력의 세계를 둥둥 떠다니는 천사의 영혼처럼 자유로워진다. 그녀와 함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뭉클한 자신감이 그림 전체에 그득하다. 그는 키스를 그리면서 그 몸짓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완전한 행복’의 이상향을 그렸다.

목을 활처럼 길게 뒤로 구부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키스를 하는 남자는 이미 피터팬처럼 자연스럽게 허공을 날고 있다. 방금 음식을 먹다 만 듯한 식탁, 화사한 꽃무늬 패브릭, 앙증맞은 의자, 새빨간 양탄자 하나하나가 그들이 나눠온 행복의 빛깔과 실루엣을 드러낸다. 이것은 결코 ‘헛된 환상’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낭만적 환상이 지극한 현실이다.



낭만적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
 

입 맞추기 직전의 연인에게 동경과 질투 어린 천사와 악마의 시선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감각과 의식은 오로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다. 구스타브 클림트, <사랑>(1895)


벨라가 십대 시절에 만나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은 30년이나 해로하며 사랑과 결혼의 완벽한 일치라는 꿈같은 이상을 실현했다. 벨라와 샤갈이 결혼하기 몇 주 전에 그려진 이 그림은 그들이 나눌 행복의 이상을 완벽하게 예언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지배적인 색감이 검은색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화면의 정중앙을 지배하고 있는 두 주인공이 모두 새까만 의상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전혀 어둡지 않다. 온갖 정열적인 빛깔들이 총출동한 이 그림의 주된 색깔은 그리하여 ‘검은색’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빛깔이다.

이 그림의 모든 디테일에서는 구석구석 사랑의 은총이 흘러넘치는 것만 같다.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둘만의 조촐한 식사만으로도 이미 지고의 행복에 다다른 두 사람의 표정은 주변환경과 완벽한 혼연일체를 이루며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행복의 빛깔로 물들인다.

세상살이의 피곤함, 먹고 살기의 힘겨움, 인간관계의 복잡함이 우리를 아래로 잡아끄는 ‘마음의 중력’이라면, 이 그림은 그런 아픔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의 나라로 떠오르는 두 사람의 환희와 희열로 가득하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키스신을 꼽는다면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힐 만한 이 숨막히는 걸작은 열정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연인들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다. 몽환적이면서도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이 경이로운 입맞춤의 광경은 그 압도적인 스케일로 인해 관람객을 더욱 강렬하게 흡입한다.

처음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정말로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기 때문이다. 사진도 찍을 수 없고 삼엄한 경호의 기운이 감도는 그림이었기에 이 작품 주변에는 긴장감이 가득했지만, 누구나 이 그림 앞에서는 될 수 있는 한 오래 서있고 싶어 했다.

이 그림 하나를 보기 위해 비엔나를 방문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클림트의 <키스>는 기대를 뛰어넘는 스펙터클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타인의 존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몸짓


 

1. 허공을 날아 아내에게 키스를 하는 남자와 알록달록한 집안의 풍경은 샤갈이 그의 아내 벨라와 함께 꿈꾸던 ‘완전한 행복’의 이상향이다. 마르크 샤갈, <생일>(1915) / 2. 황홀경에 도취된 여인의 표정은 보는 이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능한 키스하는 순간의 거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신 중 하나로 꼽힌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1908

지상에서의 마지막 키스의 희열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한 여인의 꿈꾸는 듯한 표정은 신비로운 슬픔을 자아낸다. 이 순간의 무한한 열광을 위해 아낌없이, 거의 광기에 가까운 낭비의 정신으로 금빛 물감이 흩뿌려진 화면을 오랫동안 응시하면, 황금의 도가니에 푹 빠져 익사할 것만 같은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이 더욱 실감나게 펼쳐진다.

벼랑 끝에 서 무릎을 꿇고 서 있는 듯한 아슬아슬한 포즈는 두 연인의 사랑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이 장면 뒤에는 더욱 비극적인 결과가 기다릴 것만 같은 슬픈 예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랑에 어떤 후회도 없어 보이는 그녀의 해맑은 환희의 표정은, 저절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신부의 머리장식처럼 화사한 꽃을 꽂고 있는 그녀의 머리 주변에는 마치 광배처럼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 순간이 생의 마지막일지라도 그 어떤 후회도 없는 듯한 두 사람의 몸짓에는 단호한 비장미마저 서려 있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는 첫 키스의 잊을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등장한다. “첫 키스를 하는 순간, 나는 내 안에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방황하던 주인공 골드문트를 녹아내리게 한 첫 키스는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그 무언가를 허물어뜨린다.

그의 모든 그리움, 모든 꿈, 그리고 감미로운 고통이 첫 키스로 인해 깨어난다. 첫 키스는 그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던 모든 비밀을 흔들어 깨웠다. 이렇듯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이 이전과는 달라 보이는 키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마법에 걸린 듯 환상적으로 보이는 그런 키스를 꿈꾼다.

키스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존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몸짓이다.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향한 첫 발자국일지라도. 그것이 달콤한 휴식이 아닌 끊임없는 고통을 향한 입장권일지라도.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키스에 깃든 불멸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감의 보물창고다. 누군가 당신에게 아무 말 없이 키스한다면, 그는 당신의 귀가 아니라 당신의 영혼에 말을 걸고 싶어하는 것이다. 

[출처] : 정여울 :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3.17.





4. 화폭에 담긴 모성애(母性愛) - 강인함과 자애로움의 상징을 찬미하다 

미켈란젤로에서 콜비츠까지 피에타 속에 깃든 어머니의 위대함 




위대한 화가들은 유독 ‘모성(母性)’에 천착하며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십자가를 쥐고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는 아기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자애롭게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완전한 평화를 전달한다. 라파엘 작 <초원의 성모>(1505)


우리의 모성 교육 중 가장 위험한 부분은 바로 ‘모성의 위대함’만 가르칠 뿐 ‘모성의 위험’에 대해 함구한다는 점이다.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일인지, 엄마의 책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를 가르치느라 정작 엄마가 되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가르치는 데는 소홀한 것이다.

모성의 빛만 강조한 채모성의 그림자를 숨기는 교육. 이 미심쩍은 교육방식 때문에 엄마들은 정작 아기가 태어났을 때 ‘왜 생각 만큼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은가’를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엄마들이 진정한 모성을 느끼는 순간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가 아니라 아기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또는 아기와 엄마 사이에 끊을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다.

‘엄마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성애 또한 다른 모든 관계처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모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성은 부딪히고, 아파하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싹튼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와 아기를 그린 그림은 언제나 내게 ‘모성의 다채로운 모순’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무조건 감동적이기보다는 아주 조금씩 오랫동안 말을 걸어오는 그림들이었다. ‘엄마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는 것은 곧 생명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나란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것과 맞먹는 무게로 다가왔다.

위대한 화가들은 저마다 모성의 테마에 천착하는 시기가 있다. 미켈란젤로는 평생 ‘죽은 예수를 안은 성모’를 그린 ‘피에타’라는 주제에 천착했으며, 르네상스의 정점을 보여주는 라파엘로의 걸작들은 대부분 성모 마리아를 그린 것이다.

피카소와 고흐 같은 위대한 화가들뿐 아니라 헨리 무어나 자코메티 같은 조각가도 하나같이 ‘어머니의 도상’을 깊게 연구했다. 내게 감동을 주는 작품들은 모성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것들이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슬픔을 그리다 


1. <론다니니의 피에타>(1564)는 미켈란젤로의 완성되지 않은 마지막 작품이다. 예수를 일으켜 떠받치는 듯한 성모의 모습은 그 어느 피에타보다 강인해 보인다. / 2. 온 힘을 쥐어짠 끝에 아기 예수를 낳고 지쳐서 널브러져 있는 성모와 정수리만 살짝 보이는 예수의 모습은 일상에서 흔히 있을 법한 모습이다. 이 그림은 백인우월주의에 갇혀 한동안 신성모독이란 비판을 받아야 했다. 폴 고갱 작 <신의 아들, 예수의 탄생>(1896)

라파엘, <초원의 성모>, 1505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이 완벽한 삼각형 구도는 가히 모성의 이상향이라 할 만한 여성의 자태를 선보인다. 이 비현실적 평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일단 주변의 자연 환경이 너무도 고요하다.

어떤 장애물도 험난한 기후도 감지되지 않는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아기예수는 아직 아기인 세례자 요한과 십자가를 두고 귀여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마리아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육아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아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 완벽한 평화에는 신성한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마리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금빛 아우라는 ‘현실의 잣대로 이 장면을 판단하지 말라’는 주의보 같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며 ‘어떤 현실의 장벽도 없다면, 우리의 모성도 이렇듯 평화롭고 완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우리 삶은 매일 좌충우돌과 우여곡절로 얼룩져 있지만 정말 아주 가끔씩 기적처럼 찾아오는 순간,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하는 순간이 있다. 아기와 엄마가 모두 무사하고 건강한 축복 가득한 날, 어느 멋진 날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그림 속에도 어김없이 ‘엄마이기 때문에, 게다가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성모 마리아는 금 빛테두리로 장식된 푸른 망토를 입고 있는데 그 안에는 선명한 붉은 빛 드레스를 받쳐 입고 있다.

푸른색은 교회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예수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모마리아가 예수의 희생과 교회의 존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양귀비꽃은 예수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암시한다. 앞으로 예수가 흘리게 될 붉은 피처럼 선연한 성모의 의상 빛깔과 양귀비꽃의 불길한 아름다움은 피할 수 없는 아픔을 통해 비로소 하나가 되는 엄마와 아들의 운명을 예감케 한다. 



미켈란젤로, <론다니니의 피에타>, 1564

<론다니니의 피에타>에는 어떤 신비로운 불확실성이 있다. 불세출의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롭고 극단적인 실험을 꿈꾸다가 육체의 한계로 인하여 그 끝을 미처 보지 못한 예술가의 강렬한 실험정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그림 속에서 성모는 예수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자세는 매우 불편하고도 불안정해 보인다. 예수는 앉거나 기대 있다기보다는 이제 막 일어서려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가 분노에 차서 떨쳐 일어나려 하자 성모 마리아가 그를 다급하게 뜯어말리는 것 같은 자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미완성 작품이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이었다는 사실도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는 이미 바티칸 박물관에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모성의 상징<피에타>라는 작품을 남겼지만, 그 ‘완벽한 성모상’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제 대략의 구상을 마치고 막 세부묘사로 들어가려는 찰나, 작가의 죽음으로 안타깝게 완성되지 못한 이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감동을 준다.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주저앉아 있거나 슬픔으로 쓰러져 있는 성모의 모습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예수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성모의 모습은 그 어느 성모상보다 강인해 보인다.

녀는 이미 ‘인간의 목숨’을 다한 아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가자, 아들아. 넘어지면 안 돼. 쓰러져도 안 돼. 일어나야 해. 부활해야 해. 온 힘을 다해, 내가 너의 곁에 있을게.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구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억울해할 겨를도 없구나. 너를 살려야 하니. 너와 함께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가져와야 하니. 



고정관념을 뒤엎은 구릿빛 얼굴의 성모
 



1. 고된 수난을 견뎌야 하는 예수에게 성모는 바람막이가 되어주듯 의연하고 당당하다. 반 고흐 작 <피에타>(1889) / 2. 그림의 모델이 된 게 못마땅한 듯한 표정의 이 여인은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어머니다.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을 두고 늘 충돌했던 모자(母子)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1871)

폴 고갱, <신의 아들, 예수의 탄생>, 1896

19세기 남양의 군도에서 태어난 이 그로테스크한 성모마리아상은 단번에 파란을 일으켰다. ‘신의 아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면, 이 그림이 ‘성모마리아와 예수는 당연히 백인일 것’이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뿌리째 뒤흔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은 모두 이 그림을 둘러싼 정보를 찾아본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뮌헨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노이에 피나코텍(현대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솔직히 첫눈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불경하다거나 불온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그림은 엄청난 신성모독으로 여겨져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된 그림이었다. 이 작품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청소년들의 반응이었다.

“이 그림을 우리 집에 걸어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피부가 검은 성모 마리아가 말이 되는가? 피부가 검은 성모 마리아는 말도 안 되고 전혀 아름답지도 않다.”

그토록 어린 아이들에게도 뿌리깊은 백인 우월주의가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 사뭇 놀랍고도 안타까웠다. ‘성모 마리아는 백인이어야 한다’는 도그마에 갇혀 그들은 이 그림이 지닌 모든 빛과 온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이 그림은 꾸밈없이 순수하고 따뜻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이 당돌하다거나 저돌적인 예술적 실험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이 그림에서 ‘드디어 성모마리아님이 신성의 베일을 벗고 저잣거리 삶의 현장으로 나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 여동생이 난산 끝에 첫 아이를 낳은 날이었기에 이 그림은 더욱 아련한 슬픔으로 다가왔다. 성모 마리아의 정면 얼굴은 관객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힘을 다 써버린 듯한 지친 모습으로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일찍이 이토록 흐트러진 모습의 성모 마리아를 본 적이 없다. 샛노란 시트의 선명하게 구겨진 자국들은 그녀가 견뎌낸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증언한다. 하지만 이 뼈아픈 고통의 흔적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은 눈부시도록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구간과 침상이 공존하는 이 알록달록한 공간의 색채를 지배하는 라임색 시트는 성모 마리아의 구릿빛 피부를 더욱 생기 넘치게 만들어준다. 황금색, 레몬색, 태양빛이 서로 다투며 어우러진 듯한 이 아름다운 시트는 마치 ‘신의 사랑’을 형상화한 것처럼 따뜻하고 눈부시다.

엄청난 산고의 시간이 막 지나간 자리에는 꿀맛 같은 평화, 그리고 갓 태어난 생명을 향한 경이가 자리하고 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편안한 자세로 아기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리아의 모습은 지쳐 보이기 보다는 왠지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나는 이 그림을 통해 신의 부성과 인간의 모성을 동시에 간직한 채 태어난 아기 예수의 경이로운 축복을 바라본다. 



반 고흐, <피에타>, 1889

내가 이 그림에 제목을 붙일 수 있다면, ‘길 위의 성모’로 하고 싶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성모상과 달리 이 그림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길 위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는 듯한 성모를 보여준다. 바람 부는 방향대로 정신없이 흩날리는 마리아의 옷자락은 그녀가 감당해야 할 세상의 온갖 풍랑을 가늠케 한다.

고흐의 자화상을 닮은 예수의 모습에는 모든 고통을 초탈한 듯한 초월의 기운이 서려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라기보다는 성모 마리아 쪽인 것 같다. 그녀는 온몸으로 수난을 견뎌내고 있는 예수의 바람막이가 되어준다.

그녀의 표정에는 신기하게도 고통보다는 신비로운 희열이 느껴진다. 예수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한껏 팔을 벌린 듯한 자세는 무언가를 웅변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엿보게 한다. 이 사람을 보라, 이 사람을 보라. 당신들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놓은 이 사람, 신의 아들을 보라. 이렇게 절규하는 듯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더욱 의연하고 당당하다.

그녀는 지켜낼 것이다. 한 여자의 모성을 넘어 자신의 아들을 이토록 참혹한 아픔으로 몰아넣은 세상까지 마침내 사랑하게 될 더 커다란 모성의 너른 품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복잡하고도 신비로운, 모성 콤플렉스
 


에곤 실레는 모성을 강인함의 상징이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고통스러운 존재’로 그렸다. 제 몸 가누기도 힘겨워 보이는 여인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에곤 실레 작 <눈먼 어머니>(1914)

제임스 맥닐 휘슬러,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 1871.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휘슬러의 실제 어머니를 향한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휘슬러의 어머니를 모델로 그린 이 그림이 어쩌면 이렇게 ‘냉정한 거리감각’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것처럼 보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어머니에 대한 미운 정 고운 정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그린 그림이라는 사전 지식이 없었더라면 이 작품이 ‘화가의 어머니를 그린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을 모델로 허락해준 어머니와 화가인 아들, 두 사람 사이에는 뭔가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다른 휘슬러의 모델들이 대부분 화려하게 주름진 드레스를 입고 늘씬한 자태로 서있는 반면, 이 그림의 모델은 굉장히 정적이고 답답한 자세로 앉아 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서있는 것이 힘들었던 나이드신 어머니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녀에게만은 발판을 깔아주고 앉아있게 했다고 한다.

휘슬러 자신도 이 그림은 ‘어머니를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회색과 검정의 조화’ 자체를 보여주는 시각적인 실험임을 못 박았으나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그 너머’를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이 그림은 ‘휘슬러의 어머니’로 더 많이 기억되며, 미국인들은 휘슬러 어머니의 검소한 옷차림과 금욕적인 표정을 ‘미국인의 이상적인 모성애’로 해석하기도 했다.

휘슬러가 진정으로 그리려 한 것은 ‘회색과 검정의 조화’라는 테마로 이루어지는 색채의 향연이었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오독은 화가의 의도를 뛰어넘어 어느 정도 ‘창조적인 해석’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가가 모델을 그릴 때 그가 그리는 것은 모델의 겉모습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그 그림 속에 담긴 또 다른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그 그림에 담긴 가장 깊은 진실을 끌어내기도 한다.

실제로 휘슬러의 어머니는 아들이 다른 여인들에게 지급하는 모델료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으며, 아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모델들을 입히고 먹이는 일을 자신이 도맡아 하느라 무척 힘겨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모델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던 휘슬러의 가치관과 늘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어머니의 가치관이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최고의 화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아들의 미학적 감수성을 지탱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근심을, 어쩌면 사람들은 ‘그림 너머의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직관과 호기심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들의 모델이 되어 주기 위해 오랫동안 고생했던 어머니를 위로하고 기념하는 제목이 아니라 굳이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를 고집했던 휘슬러의 태도에도 모종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고,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사사건건 대립했다고 한다.

대상이 지닌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빛을 끌어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휘슬러가 유독 어머니를 그린 그림에서는 철저하게 금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모성의 신화는 날조된 것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어머니와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이 자식의 숙명이고 현실임을 인정하는 나에게 이 그림은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를 넘어 ‘어머니와 아들의 흥미로운 부조화’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불화 덕분에 오히려 이 그림에는 이토록 팽팽한 긴장감과 미적 거리감이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그림을 위해서는 그 어떤 낭비도 주저하지 않았던 아들 대(對) 아름다움보다도 눈앞의 현실과 경제적 안정감이 중요했던 어머니. 두 사람 사이의 날카로운 긴장감이 오히려 이 그림을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의 보물창고로 만든다. 



에곤 실레, <눈 먼 어머니>, 1914

어머니에 대한 에곤 실레의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나빴다. 어머니는 실레가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아들에게 불평하기 일쑤였고, 아들의 예술적 성취를 지원하지도 응원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 아이는 생명과 창조성을 상징한다기보다는 고통과 걱정거리의 상징처럼 보인다. 제 몸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눈먼 어머니가 힘겹게 아이를 추스르고 있는 모습은 모성의 따스함이 아니라 모성의 고통을 환기시킨다.

실레의 그림들은 ‘모성의 치유’보다 ‘치유가 필요한 모성, 구원이 필요한 모성’을 일깨운다. 아이에겐 그래도 엄마가 있다. 지금 간신히 생명의 마지막 한 순간을 붙잡고 늘어질 정도의 작은 에너지밖에는 남지 않은 엄마가, 그래도 곁에 있어준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아무도 없다. 엄마에게는 이 힘겨운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엄마에게도 때로는 엄마가 기댈 만한 또 다른 모성이 필요하다.

모성은 단지 엄마에게서 아이로 흘러가는 일방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 존재가 또 다른 존재를 향해 보낼 수 있는 따뜻한 응원의 에너지, ‘아직은 괜찮다’고 위로해줄 만한 에너지가 아닐까. 



타인을 위해 자신의 온기 내어주는 모성
 


젖을 물려고 달려드는 아기에게 기겁하는 엄마의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단아함을 잃지 않는다. 헨리 무어 작 <엄마와 아이>(1953)

헨리 무어, <엄마와 아이>, 1953

헨리 무어의 작품에는 대부분 따스한 유머가 깃들어 있다. 특히 헨리 무어가 빚어낸 여인의 육신에는 항상 ‘없었던 공간이 만들어진 듯한 착시’를 느낄 수 있다. 분명히 조각이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인데, 그가 만든 거대한 여인의 육체들은 허공 위에 또 다른 제 2의 공간을 만드는 듯한 아름다운 착시를 선물한다.

특히 엄마와 아이를 묘사할 때 그는 엄마의 주위로 깃드는 보이지 않는 따스한 빛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무협소설에 나오는 결계처럼 주인공의 곁을 맴도는 영혼의 베일이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일 때나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자장가를 부를 때 그 주변에는 투명한 결계가 드리우는 것 같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도 전사처럼 주위를 경계하며 아이를 보호하고, 자장가를 부르는 순간에도 아이가 혹시나 잠을 깰까 전전긍긍하며 노심초사한다. 그런 엄마들을 바라볼 때 그 주변에 언뜻 비치는 따스한 아우라를 나는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다.

그건 단지 ‘분위기’가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에너지를 지닌 힘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정작 엄마들 스스로는 아기에게 몰두하느라 느끼지 못하는, 일상 속의 작은 기적이 아닐까. 이 작품은 유머마저 깃들어 있다. 엄마의 젖을 물기 위해 꼬마공룡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아이를 바라보며 기겁한 듯한 엄마의 유머러스한 표정이 느껴진다.

헨리 무어는 ‘엄마와 아이’ 테마에 오랫동안 천착했다.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인류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초적 테마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모든 의미 없는 낙서나 사소한 얼룩에서조차 ‘엄마와 아이’의 형상을 보았다고 한다.

나아가 그는 자연을 바라볼 때도, 도시를 바라볼 때도, 사물을 바라볼 때도, 그 안에 항상 ‘엄마와 아이’의 형상이 숨어 있음을 느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어쩌면 모성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성 콤플렉스야말로 위대한 창조의 원천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서 ‘엄마와 아이’의 형상이 숨어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한 테마에 완전히 집중하는 작가의 열정 때문이기도 하다. 커다란 것이 작은 것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 따뜻한 것이 가여운 것을 안고 있는 모든 것,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껴안고 있는 모든 것 속에 ‘어머니와 아이’의 형상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헨리 무어, <기대어 앉은 여인>, 1929

항상 헨리 무어의 작품을 볼 때마다 푸근한 느낌에 미소짓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헨리 무어가 엄마와 아이들, 모성을 지닌 여성들을 빚어내면서 느꼈던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타인을 위해 내 공간을 내어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헨리 무어의 작품은 사진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꼭 가서 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유도 바로 그 ‘공간을 창조하는 힘’ 때문이다. 그는 좁은 전시공간조차도 오히려 그의 작품으로 인해 훨씬 넓어 보이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가다.

작품이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공간이 그만큼 협소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으로 인해 좁은 공간조차도 넓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간을 단순히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공간에서도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의 힘’이 아닐까.

엄마가 된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일이 아닐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모든 면에서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 아닐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아무리 힘들 때조차도 “내 곁에 있어도 돼”, “언제든지 내게 안기라”고 말할 수 있는 초인적 힘을 필요로 한다.

나는 무어의 작품을 통해 ‘타인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는 존재의 온기’를 느낀다.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온기가 필요한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마음의 에너지. 그것이 엄마가 아닌 사람에게도, 심지어 남성에게도 필요한 연대와 공감의 모성일 것이다. 



완벽히 숭고하고 가슴 시린 모습
 


1. 시야를 가득 채우는 풍만한 여인의 조각이 마음 가득 푸근함을 주는 어머니의 그것과 닮았다. 헨리 무어 작 <기대어 앉은 여인>(1929) / 2. 슬픔에 힘겨워하는 여인을 가만히 안고 위로하는 앙상한 중년 여인의 모습은 이타적 모성의 숭고함을 전해준다. 로타 블러커 작 <케테 콜비츠에 대한 오마주>(2009) / 3.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에는 아들과 어머니 사이의 뼈아픈 사랑과 불멸을 향한 영원한 기도가 서려 있다.



케테 콜비츠, <피에타>, 1937~38 <케테 콜비츠를 향한 오마주>, 2009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처절한 슬픔을 표현한 케테콜비츠의 <피에타>는 언제 봐도 가슴 시리다. 원래 작은 브론즈상으로 제작되었지만 지금은 베를린의 노이에바헤에 거대한 조각상으로 확장되어 전시되어 있다. 실제로 전쟁 중에 아들의 죽음을 경험했던 그녀의 참혹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이 작품은 반전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노이에바헤는 지붕이 뚫려 있는 거대한 건축물인데 이 건축물 안에는 오직 콜비츠의 <피에타>만이 덩그러니 전시되어 있어 더 깊은 비애와 비장미를 전달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1년 365일 쉬지 않고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애도하는 여인의 모습은 관람객의 마음을 울린다.

<케테 콜비츠에 대한 오마주>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공감하는 또 다른 여인의 모성이 담겨 있다. 슬픔에 침잠하여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듯한 여인을 등 뒤에서 가만히 안아주는 또 다른 모성의 슬픔이 눈부시다.

이렇듯 모성은 자식을 향해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모두에게 작동할 수 있는 공감의 에너지가 아닐까. 다만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슬픔을 품어 안는 유일한 길일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을지라도. 



미켈란젤로, <론다니니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어떤 각도에서 보면 흔히 생각하는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구도가 아니라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있는 듯한 포즈’로 보인다. 죽은 아들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려는 어머니 대(對) 죽어서라도 어머니를 업어드리려는 아들 사이의 뼈아픈 사랑과 불멸을 향한 영원한 기도가 서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의 부활을 믿는 어머니에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이 미완성의 작품을 통해 나는 한때 ‘한 여인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이었던 예수가 이제 ‘신의 아들이자 세상 모두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듯한 아름다운 착시를 느낀다.

그들의 사랑은 영원했다. 닿을 수 없었던 두 마음, 죽은 아들을 어떻게든 다시 살려 일으키려는 어머니의 마음과 죽어서도 어머니를 힘차게 업어드리고 싶어 했던 아들의 마음은 이제 ‘하나’가 되었으므로. 그렇게 ‘자식의 입장에서는 어떤 효도로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아무리 모든것을 다 줘도 영원히 모자란 것만 같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제 영원한 하나가 되었다.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4.17.




5. 유디트, 메데아, 그리고 살로메 -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 여인의 당당함이여! 

조국애와 실연의 복수심, 집요한 사랑 위해

 … ‘보호받는 여성상’ 버리고 ‘화신’이 되어 운명에 맞서다


예리한 칼로 남자의 목을 자르는 여인의 표정에서 혐오감과 결연한 의지가 동시에 느껴진다. 카라바지오가 그린 유디트는 앳된 여인의 매력과 장수의 용맹함을 모두 지닌 여성성을 뛰어넘은 여성의 매력이 돋보인다.

여성의 패션을 말할 때 군복스타일의 ‘밀리터리룩(military look)’, 소년 같은 느낌의 ‘보이시룩(boyish look)’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었다. 여성들도 가끔 남성적인 느낌의 옷을 입어보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블리룩(lovely look)’이라는 것은 단번에 이해되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일까. 러블리룩의 이미지들을 찾아보니, 레이스가 달리거나 리본이 달린 옷들, 꽃무늬나 물방울무늬가 찍힌 원피스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좀 더 ‘여성스럽고, 보호해주고 싶고, 귀여워 보이는’ 옷들을 러블리룩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러블리(lovely)’라는 뜻은 무엇일까? 무엇이 여성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일단 남성의 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당당함은 ‘러블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일에만 푹 빠져 집안을 돌볼 시간도 여유도 없는 여자는 ‘러블리’할 수가 없다.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대명사인 미국드라마 <프렌즈>의 주인공 레이첼(제니퍼 애니스톤)은 끝없이 실수하고 그때마다 좌절하지만 여성에게조차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녀의 ‘귀여운 모자람’과 ‘눈감아주고 싶은 백치미’는 전 세계인에게 ‘러블리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녀처럼 사랑스러운 여성은 주변에 언제나 도와주려는 친구, 그 실수를 메워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프렌즈>를 보며 ‘레이첼처럼 러블리한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 일에 빠지면 주변을 둘러보기는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부칠 정도가 되어버린다.


나 또한 실수를 곧잘 하지만 남들이 도와주는 것은 극도로 싫어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움’이 여성의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어진 악조건과 싸우는 여인들에게서 매혹을 느낀다. 나는 ‘프렌들리(friendly)’한 것은 좋지만 ‘러블리(lovely)’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정한 것은 좋지만 애정을 갈구하는 눈빛은 고통스럽다. 나는 ‘러블리’함과 거리가 먼 사람들을 사랑한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조금은 ‘멋대가리 없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마음속에서는 ‘사랑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여인들이 항상 마음속 깊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남들이 싫어할까 봐, 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까 봐 되지 못했던,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또 하나의 자아가 내 안에는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나는 ‘러블리’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더욱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용감한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에 늘 매료되었다. 그 용감함은 배우고 싶지만, 그 분노와 고통만은 차마 닮고 싶지 않았던 여인들의 역사. 그 첫 번째 장면에 적장(敵將)을 유혹해 그의 목을 베는 놀라운 여인 유디트가 있다. 



여인의 매력과 전사의 용맹을 갖춘 유디트 


1. 젠틸레스키의 그림에 나타난 유디트의 표정은 공포에 질린 홀로페르네스의 표정과 극적으로 대비되며 강한 여인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성폭행을 당했던 아픈 경험이 있는 젠틸레스키의 분노가 투영된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2. 메데아는 조국마저 버리고 사랑을 갈구했던 자신을 버린 남편을 향한 복수의 화신이다. 목에 걸린 시뻘건 목걸이가 광기 어린 표정을 더욱 섬뜩하게 한다.


카라바지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598~99

카라바지오(1571~1601)가 그린 유디트(Judith)는 이제 갓 십대를 벗어난 듯한 연분홍빛 볼과 순진한 눈빛을 한 젊은 아가씨다. 과부였던 유디트는 처음에는 아시리아의 용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그녀의 유혹에 속아 넘어간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쳐낸다.

여인의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전사의 용맹으로 ‘장군’을 참수한 그녀의 용기는 수많은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의 몸에서 직접 칼을 빼내 목을 내리친다.

구약 외경 중의 하나인 <유딧서> 13장에는 그녀가 적진에 들어가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의 침대를 향해 다가간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카락을 틀어쥐고 말했다. 신이시여, 저를 강하게 만드소서! 이윽고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목을 두 번 내려치고, 그의 머리를 몸에서 떼어냈다.”

유디트의 모습을 그린 화가는 매우 많았다. 도나텔로, 보티첼리, 만테냐, 조르조네, 크라나흐, 젠틸레스키, 티치아노, 레브란트, 루벤스 등 수많은 화가가 유디트를 뮤즈로 삼았다. 카라바지오는 유디트의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장면, 즉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바로 그 순간을 그려낸다.

카라바지오 이전의 화가들이 유디트가 이미 적장의 목을 벤 후 그 목을 바라보는 승리와 도취의 순간을 그린 데 반해, 카라바지오는 가장 드라마틱한 폭력의 현장을 그려냄으로써 이후 화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유디트의 표정에는 ‘반드시 이 사람을 없애야 한다’는 결연함과 동시에 ‘이 일은 정말 끔찍하구나!’하는 혐오감이 동시에 서려 있다. 마치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한 섬뜩함이 유디트의 앳되고 여린 얼굴과 대비되어 더욱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낸다. 



구스타브 클림트, <유디트>, 1901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는 이미 ‘거사’를 마친 후 그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섬뜩한 신비의 정조로 그려낸다. 클림트는 ‘죽이려는 힘’과 ‘살려는 힘’이 부딪치는 유혈 낭자한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마친 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적장의 목을 치러 목숨을 걸고 떠난 유디트가 이렇게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을 가능성은 낮지만, 클림트의 유디트는 금빛 액세서리들에 둘러싸여 마치 거대한 금빛 회오리를 휘감고 있는 듯 장식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클림트가 그려낸 유디트는 마치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당당히 고개를 쳐든 모습이다.

그에 비해 홀로페르네스의 목은 이미 생명의 흔적이 사라져 차갑게 사물화된 모습이다. 당당히 고개를 수직으로 들어올리고 ‘나는 승리했다’는 표정으로 관객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유디트와 달리, 홀로페르네스는 눈을 감은 채 바닥을 향하고 있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섬뜩한 미소와 화려한 관능을 동시에 뿜어내며 신비의 오라에 휩싸여 있다.

“난 저 끔찍한 자의 발아래 엎드려서는 날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신음하듯 절규했거든. 그자가 나의 영혼의 두려움에서 나오는 절규를 들어주었더라면, 난 절대로, 절대로 그를… 하지만 그의 대답은 결국 내 가슴을 풀어헤치고 내 젖가슴을 칭찬해대는 거였지. 그자가 나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 난 그의 입술을 깨물었지. 그러자 그는 비웃듯이 “네 열정을 좀 누그러뜨려라. 너무 앞서가는군!”이라고 말하더군. (…) 결국 나의 존엄성이 상실되면서 존재의 권리를 잃어버렸지. 내가 그의 칼로 내 잃어버린 존재의 권리를 다시 쟁취해야겠어! 날 위해 기도해다오! 지금 그 일을 하겠어!” -프리드리히 헤벨, <유디트>, 김영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 110~111쪽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14~20

젠틸레스키(1593~1652)의 유디트는 카라바지오보다 한층 더 생생하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 다소 작위적인 각도로 그려져 있는 것에 비해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훨씬 섬세한 현장감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카라바지오의 유디트가 지닌 두려움이나 망설임, 혐오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반드시 처단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각오만이 올곧게 번득인다. 유디트의 사투를 돕는 시녀의 표정에는 숨죽인 공포가 서려 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홀로페르네스가 시녀의 목덜미를 그러쥐고 있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그림은 여성화가였던 젠틸레스키의 생애와 연관시켜볼 때 더욱 깊은 의미로 번져나간다. 젠틸레스키는 끔찍하게 성폭행을 당한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그림 속의 유디트가 바로 젠틸레스키의 모습이고 죽어가는 홀로페르네스가 바로 자신을 강간한 남자였다는 것이다.

젠틸레스키의 전기를 쓴 작가 매리 개러드는 이 그림을 일컬어 “예술가의 매우 사적인 카타르시스의 표현”이라고 묘사했다. 유디트는 어쩌면 화가의 억압된 분노를 표출하는 대리자였을지도 모른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여인 

남편의 복수를 위해 두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메데아의 분노는 자신을 이방인으로 홀대하는 코린토스 사회를 향한 저항이기도 하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이아손과 메데아>, 1907

유디트가 조국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으로 그려지는 반면, 메데아는 복수의 화신이자 질투에 눈이 먼 패륜아로 그려지곤 한다. 메데아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간 남편에게 복수를 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 죽인 비극의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아>에서 그녀는 한 남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그 남자가 자신을 버리자 복수의 정념에 불타 그의 새로운 아내는 물론 자신이 낳은 아이들까지 죽이는 인륜의 파괴자로 그려진다.

하지만 잠시 ‘행위의 결과’ 이전에 ‘행위의 동기’를 살펴보자. 남편 이아손이 메데아에게 한 행동을 돌이켜보면, 메데아의 분노와 좌절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은 물론 조국의 이익까지 다 버린 채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손에 넣어 아르고호의 눈부신 영광을 쟁취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메데아가 없었다면 이아손은 영웅의 칭호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아손은 그녀를 버리고 더 큰 권력과 재산을 얻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아내 글라우케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아이들까지 저버린 채 그녀를 코린토스에서 추방하려 한다.

메데아는 이미 친정을 저버리고 ‘사랑’만을 선택한 처지라, 머나먼 낯선 땅 코린토스에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워터하우스(1849~1917)의 <이아손과 메데아>는 아직 메데아 커플이 서로를 향해 증오의 칼날을 드리우기 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메데아는 자신의 주술과 마력을 이용해 사랑하는 이아손을 도우려고 하고 있다. 워터하우스는 메데아의 뛰어난 능력과 남다른 침착함을 서늘하게 포착해낸다. 사실 메데아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복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르는 짓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에서는 ‘자신이 저지르려는 행동’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메데아의 독백이 소름 끼치게 묘사된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려는 것인지. 그러나 아무리 알고 있다 하더라도 타오르는 분노가 그보다 더 강하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무서운 재앙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지만.”

레드릭 샌디스, <메데아>, 1868

프레드릭 샌디스(1829~1904)의 <메데아>는 분노를 넘어 광기에 사로잡힌 여인의 넋 잃은 표정을 묘사한다. 시뻘건 선지피의 색깔을 떠올리게 하는 섬뜩한 목걸이는 메데아가 감당해야 했을 고통과 분노의 온도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메데아는 자신의 신분과 조국, 가족과 친지의 기대마저 모두 저버리고 한 남자의 사랑을 선택했다. 주술사이기도 했던 메데아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이아손이 황금양털의 과업을 완수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이방인 아내’를 두게 된 이아손의 사랑은 서서히 식어간다.

메데아를 버리고, 그는 ‘왕실의 혈통과 막대한 재산’에 대한 탐욕을 숨기지 않은 채 글라우케 공주와 결혼을 해버렸다. ‘제발 코린토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 수만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메데아의 애절한 눈빛을 외면한 채, 글라우케의 아버지는 메데아와 아이들을 추방하려 한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마음 둘 곳이 없어진 메데아는 자기 아이들에게 글라우케의 결혼을 축하하는 드레스를 배달하게 하여, 독이 묻은 드레스를 입은 글라우케가 죽도록 만든다. 메데아는 왜 이아손을 직접 죽이지 않고, 새로운 아내와 아이들을 죽게 만들었을까. 



유진 들라크루아, <분노에 사로잡힌 메데아>, 1868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는 모성애마저 저버리는 분노와 질투의 가공할 위력을 그려낸다. 남편을 죽이는 직접적인 복수를 택하지 않고, 새로운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메데아의 결정은 ‘남편을 죽을 때까지 천천히 괴롭히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단번에 목숨을 빼앗아 짧은 고통을 주기보다 자신이 느낀 것처럼 끔찍한 고통을 너도 한번 겪어보라는 저주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에우리피데스의 해석일 것이다. 독일 작가 크리스타 볼프는 <메데아, 목소리들>에서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메데아의 사라진 목소리를 복원하려 한다.

크리스타 볼프는 메데아의 아이들도 그녀가 직접 죽인 것이 아니라 코린토스 사람들의 메데아를 향한 증오가 일으킨 비극이라고 본다. 이 작품에서 메데아는 자신을 ‘야만인’으로 대접하고, ‘이방인’으로 홀대하며, ‘주술사’라는 이유로 두려워하는 코린토스 사람들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투사로 등장한다.

 “코린토스 사람들은 내가 거칠다고 합니다. 저들은 여자가 자기주장을 하면 거칠다고 하지요.”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면 ‘드센 여자’, ‘매력 없는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며 온갖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이 사회에서 어쩌면 메데아는 ‘여전히 이해 받지 못하는 여성들, 여전히 사랑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원한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팜므 파탈, 여성의 덫이자 남성의 환상 


1. 세례자 요한의 머리 앞에서 반라로 춤을 추는 살로메의 동작과 표정 속에는 갑갑한 궁전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갈망이 배어 있다. / 2.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 요한의 머리 앞에서 마지막 춤사위를 벌이는 살로메의 광기 어린 격정은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남자를 향한 구애의 몸짓이다.

구스타브 모로, <살로메>, 1876

팜므 파탈의 대명사 살로메는 이 ‘분노하는 여인들’의 계보에서 가장 매력적인 자태를 뽐낸다. 유디트가 때로는 평범한 아낙네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메데아가 아이 둘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에 반해 살로메는 항상 최고의 아름다운 자랑하는 젊디젊은 팜므 파탈로 그려지곤 한다.

신약성경에서 잠깐 등장하는 살로메의 모습을 모티브로 전무후무한 치명적인 팜므 파탈을 완성해낸 오스카 와일드(1854~1900). 오스카 와일드는 성경 속에서 희미하게만 드러나 있던 살로메의 매혹을 치명적인 유혹의 언어로 변모시킨다.

작품 초반부터 살로메는 자신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향해 쏟아지는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부담스러워한다. 그중에서도 의붓아버지 헤로데왕의 시선이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다. 의붓아버지의 시선은 소름 끼치게 노골적이며, 그의 대사 또한 왕의 풍모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파렴치하다.

“살로메, 이리 와서 짐과 함께 과일이나 먹자꾸나. 과일에 난 너의 사랑스런 이빨자국을 보고 싶구나. 이 과일을 조금만 베어 먹어 보려무나, 그럼 나머지는 짐이 다 먹어 치우겠노라.”

그녀의 관심을 기대하는 남성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세례자 요한뿐이다. 요한은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와 남편 헤로데왕의 근친상간적 결혼을 비난한 죄로 갇혀있는 상태였다.

요한은 헤로데왕이 형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헤로데왕의 탐욕에 대한 신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당당하게 예언한다. 요한은 눈엣가시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국왕은 두려움을 느낀다.

살로메는 의붓아버지의 폭정과 탐욕에 대한 혐오감이 심한 만큼, 정의에 불타는 요한의 올곧은 모습에 깊이 매료된다. 하지만 오직 신의 사랑만을 꿈꾸는 요한에게 여인의 사랑은 짐이 될 뿐이다.

요한은 살로메의 격정적인 키스를 한사코 거부하고, 요한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던 살로메는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강렬한 감정에 가슴 졸인다. 요한은 살로메의 사랑을 거부하고, 그녀는 왕의 사랑을 거부하고, 왕비는 남편이 자신의 딸을 열망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 틈바구니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살로메다. 헤로데왕은 살로메에게 ‘춤을 춰보라’고 명령하고, 어머니는 ‘춤을 추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며, 세례자 요한은 그녀의 춤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녀는 누구에게서도 진실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왕은 자신의 생일에 춤을 추어만 준다면 살로메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호언장담한다. 살로메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 무엇이 스쳐 지나갔을까? 살로메는 절대로 추기 싫은 춤을 준비하면서, 그 어떤 자유도 누릴 수 없는 갑갑한 궁에서 무엇을 꿈꾸었던 것일까?

구스타브 모로의<살로메>는 춤을 추는 살로메의 아름다운 동작 속에 감춰진 냉정한 결단의 기운을 교교히 드러낸다. 



구스타브 모로, <환영(幻影)>, 1876

살로메는 마치 지상에서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듯 눈부신 춤을 추어 좌중을 사로잡는다. 살로메는 의붓아버지 헤로데왕이 원하는 춤을 추어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은쟁반에 담긴 요한의 목’이라고 선언한다.

차라리 ‘왕국의 절반을 달라고 하면 주겠다’고, 제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원일랑 거두라고 왕은 살로메를 달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어쩔 수 없이 요한의 목을 베어 은쟁반에 담아 대령하자, 살로메는 더욱 놀라운 행동을 저지른다.

이제 참혹한 시체가 되어버린 요한의 피투성이 입술에 키스를 하며 절절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구스타브 모로의 <환영>은 이제 유령이 되어버린 요한의 목을 향해 마지막 춤의 혼을 바치려는 듯한 살로메의 광기 어린 격정이 그려져 있다.

“요한, 그대는 나를 거부했어. 아주 심한 욕을 퍼부었지, 유대의 공주, 헤로디아 왕비의 딸, 이 살로메를 마치 창녀나 음탕한 여자처럼 취급했어! 이봐요 요한, 그런데 나는 아직 살아 있고 그대는 죽어 버렸지. 그래, 그대 머리는 내 거야. 이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 요한, 그대는 내가 사랑한 단 하나뿐인 남자였어.”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 동서문화사, 2012, 303쪽  



프란츠 폰 슈투크, <살로메>, 1906

프란츠 폰 슈투크(1863~1928)의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마치 화려한 전리품처럼 전시해놓고 광란의 춤을 추는 살로메의 격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오페라로 개작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 살로메의 광기 어린 열정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오페라 속 살로메는 오스카와일드의 소설보다 한층 더 격렬한 어조로 국왕과 왕비는 물론 수많은 사람이 모인 왕궁에서 죽은 요한의 시체를 향해 애정을 표현한다. “아! 넌 네 입술에 키스를 못하게 했지, 요한? 이제 키스할 거야! 과일을 깨물듯이 네 입술을 깨물어주지. 그래, 이제 키스할 거야, 당신 입술에 말이야, 요한.” 



여성성을 뛰어넘어 사랑을 갈구했던 여인들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주목할 때 오직 요한만은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깊이 절망했다.

“아아, 맞아. 내가 그를 볼 때도 그는 날 보지 못했어. 내가 그렇게 추한가? 아니야, 난 아름다워. 그런데도 그는 날 쳐다보지도 못했어. 그건 바로 날 두려워하는 거야. 내게 있는 에로스를 그는 두려워했던 거야.”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었던 요한의 초월적 계시였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정확히 소유하고 있었다. 살로메는 순수한 에로스 그 자체를, 요한은 세속을 뛰어넘는 신성한 초월의 경지를 지니고 있었다.

시몬느 드 보봐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을 ‘사랑 지상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사회의 남성중심주의를 고발했다. ‘사랑이야말로 여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라고 주장했던 남성들의 틈바구니에서 보봐르는 주고 또 주기만 하는 희생적인 사랑을 강요받는 여성들이 더 이상 ‘타자’가 아닌 ‘주체’의 자리에 설 때 변화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남자의 인생은 명성이며, 여자의 인생은 사랑”이라고 주장하며 “여자들은 끊임없이 희생하는 삶을 살 때에만 남자와 동등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발자크에 맞서, 보봐르는 이렇게 주장했다.

“여자들이 자신의 나약함이 아닌 강인함을 사랑하고, 스스로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지는 날, 그날 비로소 사랑은 남자들에게 그런 것처럼 여자들에게도 치명적인 위험이 아닌 삶의 근원이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을 내주어야 했던 시대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에게 사랑은 여전히 치명적인 위험이었다. 메데아는 사랑 때문에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잃었고, 유디트는 사랑을 가장해야 한 남자의 목을 벨 수 있었으며, 살로메는 사랑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한 위대한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분투했다.

이 그림들은 처음에는 자석처럼 훅 영혼을 빨아들였다가, 시간이 지나면 내 안의 깊은 슬픔을 끌어내 그녀들이 내게 감염시킨 분노와 슬픔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첫 느낌은 충격, 두 번째는 유혹, 세 번째는 슬픔이 된 그림들이다.

나는 이 무서운 여인들, ‘사랑스럽지 않은 여자들’에게 여전히 끌린다. 나는 ‘사랑스러운 외모와 말투’를 구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노력하고 꿈꾸고 쟁취하여, ‘사랑’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생을 바치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그 첫 번째 장면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스럽지 않은, 위대하지만 어쩐지 좀 무서운 여인, 유디트가 있다. 남성들마저 벌벌 떨게 만든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로부터 시작하여 아담을 사탄의 유혹에 빠뜨린 이브, 그리고 유디트, 메데아, 살로메에 이르기까지. 그녀들은 사랑스럽지 않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나아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메두사의 후예들은 오늘도 싸운다. 그녀들은 아직 이루지 못한 세상의 다른 이름이다. 여전히 이루지 못한 여성들의 뜨거운 꿈을 상징하는 욕망의 마그마다.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5.17.




6.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사람들

-영광의 면류관 쓰고 비운의 세마포를 입은 이들이여! 


람세스에서 엘리자베스 1세까지 백성의 땀과 눈물 밴 얼굴에 새겨진 역사의 주름 

위대한 제왕의 상징인 람세스2세의 조각상은 유럽인들을 열광시켰다.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왕의 위엄’이라고 말하는 듯 거대한 크기와 위용을 자랑한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소장.

왕과 왕비의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한 작품들에서는 왠지 ‘정해진 틀’이나 ‘권력의 입김’이 느껴지는 것 같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왕의 얼굴, 왕비의 얼굴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집트의 람세스와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둘 다 제왕의 권력을 과시하는 이미지와 제스처를 보여주지만 람세스의 아우라는 둔중하고 장엄하며, 루이 14세는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람세스가 원하는 것은 민중의 절대적인 숭배이지만 루이 14세가 원하는 것은 만인의 뜨거운 사랑이나 인기가 아니었을까? 말을 타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에서는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려는 영웅적 남성성의 전형이 보이지만,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그늘에 가린 루이 16세의 초상에서는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소심함이 느껴진다.

왕의 초상이나 기념비는 ‘왕의 권력’을 상징하지만,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은 ‘백성’이다. 그들이 그린 것은 단지 한 나라 왕의 얼굴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였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왕과 왕비의 얼굴이지만, 그 뒤에 가려진 숨은 얼굴은 바로 백성의 땀과 눈물과 미소가 아닐까. 



위대한 제왕의 상징이 된 람세스 2세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청동 두상은 마치 눈을 번뜩이며 살아 숨쉬는 듯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의 모습은 전성기의 젊음을 영원히 기리려는 권력의 욕망이 꿈틀대는 듯하다.

대영박물관에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며 매년 수십만 명의 관람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람세스 2세.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왕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믿었기에,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많은 거대 석상을 세우려고 했다.

그는 이집트 사회가 대대로 믿어왔던 전통적 신들에게 봉헌하는 신전을 건축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직접 드러낸 전승 기념비를 세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승리의 역사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람세스 재위 5년째에 일어난 카데시 전투는 본래 무승부로 끝났지만 람세스는 이 전쟁을 ‘람세스의 승리’로 기록해 놓는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이집트로 돌아와 무려 일곱 개의 신전에 카데시 전투의 ‘승리’를 기록한다. 그가 혼자의 힘으로 그 기세등등했던 히타이트를 정벌했다는 엄청난 승리의 서사는 그런 식으로 탄생했다.

그는 ‘허위의 기록’을 ‘왕권의 확장’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고 찬양했던 백성들은 과연 람세스 2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후의 역사는 정확히 ‘람세스 2세의 편’이었던 것 같다. 람세스 2세는 단지 한 나라의 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를 넘어 ‘위대한 제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럽인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서로 람세스 2세의 조각상을 가져가려고 경쟁했다.

중동 지역의 나라들뿐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이 서로 람세스 2세의 거대석상을 떼어가려고 아우성을 쳤다. 1798년 나폴레옹의 군대는 라에세움에서 람세스 2세의 석상을 떼어내려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야구공만한 드릴 자국은 그때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나폴레옹도 제2의 람세스를 꿈꿨던 것이다. 람세스는 알았을까? 후세에 길이 남는 제왕이 된다는 것은 그 영광만큼이나 크고 깊은 폐허와 절망, 후세의 비판과 나쁜 소문까지도 끌어안아야 하는 일임을. 나폴레옹은 알았을까? 그가 ‘지상의 최고’를 꿈꾸며 야망을 불태우던 순간, 처참한 몰락과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음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손꼽히곤 하는 아우구스투스는 권력의 최고봉을 넘어 초인적 존재로서 신성화되기까지 했던 로마의 황제다. 그의 얼굴을 모델로 한 청동조각상은 번득이는 안광과 살아 숨쉬는 듯한 표정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의 두상은 그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확고한 힘으로 무장했던 시기, 초인적 존재로 비상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저 유명한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역사적인 승리는 그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를 넘어 진정한 권력자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불멸의 영광을 꿈꾼 아우구스투스


카펫에 몸을 숨겨 시저의 침소에 나타난 클레오파트라의 고혹적인 자태를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시저의 표정은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을 예고한다.


놀라운 생동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이 청동 두상은 그가 ‘옥타비아누스’라는 본래 이름을 뛰어 넘어 ‘아우구스투스, 즉 만인의 존경을 받는 자’로 발돋움하던 시기의 로마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두상의 모습은 30대 안팎으로 매우 젊어 보이는데, 그는 7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로 이런 ‘전성기의 젊음’을 유지한 두상을 로마제국 곳곳에 세워놓았다고 한다.

카이사르나 다른 왕들이 세월의 흔적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두상을 남긴 것에 비해 아우구스투스의 두상에서는 노화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영원한 젊음, 영광, 권력의 상징이 바로 이 청동두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권력의 본질이 ‘가면을 쓰는 일’임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깨달은, 연기의 달인이기도 했다.

연극을 좋아했던 그는 늘 스스로를 연기자라고 여기고, 자신의 인생을 가면놀이쯤으로 생각해왔다. 실제로 로마의 팔라티누스 언덕 위에 있던 그의 저택에 가보면, 침실 벽에 극장의 배우들이 쓰는 희극이나 비극의 가면들이 프레스코 화법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머릿속에 그 가면들이 떠올랐다. 그는 침상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인생이라는 소극(笑劇)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잘한 걸까?” - 앤서니 애버렛 지음, 조윤정 옮김, <아우구스투스: 로마 최초의 황제>(다른 세상, 2008)

이어지는 장면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랑의 시작’이라 할 만한 멋진 이야기의 신호탄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클레오파트라와 시저이지만, 이 장면의 결정적인 소품은 바로 화면 아래 현란하게 물결치는 카펫이다. 줄리어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BC28년 어느 가을날, 그녀는 자신의 충실한 부하 아폴로도루스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간다. 그녀는 거대한 카펫으로 자신의 몸을 친친 감은 채 몸을 숨기고 야음을 틈타 시저가 머물고 있는 궁에 잠입한다.

당시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권력을 다투고 있었는데, 시저는 이집트 왕좌를 놓고 다투던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려 했다. 그녀는 시저에게 바치는 선물인 카펫으로 위장하여 시저의 침소로 몰래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카펫으로 포장된 이 은밀한 선물 꾸러미가 펼쳐지자, 스물한 살의 아름다운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눈부신 자태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장 레옹제롬의 그림은 바로 이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낸다. 



시저의 마음을 훔친 유혹의 여신

그녀는 이 ‘성공적인 첫 대면’으로 시저의 마음을 사로잡고, 남동생과 경쟁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이집트의 왕권을 확실히 독점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병사는 혹시나 시저가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 오히려 여왕 뒤로 숨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로마의 황제 시저 앞에 당당히 선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저는 멀리서 넋을 잃은 채 도저히 ‘로마의 왕’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작게 그려져 있고, 화면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당당한 전신상이다.

52세의 남자 줄리어스 시저는 그녀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매력뿐 아니라 지성과 전략을 총동원하며 로마의 황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극적인 만남은 시저에게는 ‘치명적 유혹’이었겠지만 클레오파트라에게는 ‘정치적 전략’이었을 것이다.

발트라우트 레빈의 소설 <밤이 가장 깊어질 때>는 클레오파트라가 남성을 유혹하여 자기 목적을 쟁취한 단순한 팜므파탈이 아니라 자기만의 거대한 창조적 비전을 지니고 있었던 뛰어난 정치가였음을 보여준다.

사실 인구 100만이 넘었던 번영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비하면 당시 로마의 경제와 문화수준은 보잘것없었다. 세상의 온갖 아름답고 화려한 것들, 문명의 이기, 지식의 핵심이 알렉산드리아로 결집되고 있었다. 무려 50만 권이나 되는 두루마리 책들이 소장된 고대의 가장 큰 도서관도 바로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창조한 문명에 대해 넘치는 자긍심을 지니고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야말로 클레오파트라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에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 당신은 그 춥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들을 곧 다시 떠나기 위해 발을 들여놓았어요. 그리고 그 땅을 당신네 공화국의 발치에 갖다 바쳤어요. 그런데 공화국은 당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음모를 꾸미고, 내전을 벌이고,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어요. 당신을 독재관으로 임명했지만 당신의 군대가 두려워서 그랬을 뿐이지요. 당신이 로마에서 무엇을 이루든 간에, 당신은 그것을 원로원과 고위관리들의 불신과 질투, 말없는 적대감에 맞서 관철시켜야 하지요. (…)

그럼 이제 알렉산드리아, 이집트로 돌아와 보기로 하죠. 당신은 알고 있어요. 여기서 통치자들은 신이기도 해요. 여기에서는 아무도 당신에게 훈계하지 않아요. 여기서 당신은 아무런 반대 없이 통치할 수 있어요. 당신네 로마인들이 정복한 동방의 속주들은 부유하고, 문화 수준도 높고, 번영한 곳이에요. 게다가 그곳 사람들은 상류층에게 헌신적으로 복종하고 봉사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당신의 위대한 본보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생각해봐요! 그는 인도에 이르기까지 동방의 세계를 굴복시켰어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을 신으로 선포했지만, 아무도 분노하지 않았어요. 오직 동방에서만 강력한 왕국을 세울 수 있어요. 동방에서는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발 트라우트 레빈, 두행숙 옮김, <밤이 가장 깊어질 때>(아일랜드, 2010) 



사랑을 좇아 권력 포기한 영웅의 비극 


1. 나일강에 띄운 배 위에 비스듬히 누운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은 시저와 첫 만남 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달라진 건 이를 지켜보는 남자가 시저에서 안토니우스로 바뀐 것뿐이다. / 2. 왕좌에 앉은 클레오파트라의 표정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결연하다. 그는 악티움 해전에서 패한 뒤 독사에게 물려 죽음으로써 스스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시저가 로마에서 정적들에게 암살당하고 나자, 클레오파트라에게는 새로운 시련이 닥쳐온다. 시저와 전략적 연합으로 유지되던 그녀의 통치권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때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시저의 암살범 부르투스를 추격하여 이집트에 온 안토니우스가 바로 그 새로운 로맨스의 주인공이다.

안토니우스는 매혹적인 클레오파트라는 물론 알렉산드리아 자체와 사랑에 빠진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만남> 역시 곧 사랑에 빠지게 될 두 남녀의 ‘첫 만남’을 다루고 있다.

깊은 사색에 빠진 듯한 클레오파트라는 마치 다가올 모든 날의 희로애락을 미리 경험해버린 듯 현실을 초월한 표정을 짓고 있고, 온갖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안토니우스는 운명적인 사랑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다.

여기 있는 난 안토니우스이다. 내가 전쟁을 한 것은 이집트 여왕을 위해서였다. 그녀의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녀도 나를 자기 자신이라 여겼다. 내 마음이 오로지 내 것이었던 시절에는 수백만 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이젠 모든 것을 잃었구나. -셰익스피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오스>(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2008)

워터하우스가 그린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죽음까지 각오한 듯 결연한 모습이다. 이미 로마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총명했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의 사랑 놀음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고 이성을 잃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악티움 해전은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에게는 모든 것을 얻게 해주었고,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에게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여왕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안토니우스의 죽음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또 다른 정치적 회생을 향한 모든 기대를 접어버리고, 마지막으로 안토니우스의 묘지를 참배한 후, 평생 곁을 지켜주었던 하녀 이라스와 샤르미온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목욕을 한다. 겨우 서른아홉 살이었던 클레오파트라는 이제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 죽음을 선택한다.

오, 낭군님 이제 저는 당신께로 갑니다. 나의 용기여, 그분의 아내로서 부끄럽지 않게 해다오. 난 이제 불과 공기뿐이다. 흑과 물은 천한 이승에 남겨두겠다. 자, 다 되었느냐. 그럼 이리 와서 아직 따뜻한 내 입술에 입을 맞춰라. 잘 있거라, 상냥한 카르미안, 이라스, 영원한 작별이다.

(그녀들에게 입을 맞추자 이라스, 쓰러져 죽는다) 내 입술에 독사의 독이라도 묻었단 말이냐! 쓰러지다니! 너의 목숨이 그렇게 조용히 떠난다면 죽음의 신에게 맞아 죽는 것은 애인에게 꼬집히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아프긴 해도 즐거운 법. 아직도 쓰러져 있느냐? 이렇게 고통 없이 네 영혼이 사라진다면 이 세상이란 작별 인사를 할 가치도 없다는 걸 가르쳐주는 것 같구나. -셰익스피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불행한 가족사 딛고 대영제국 꽃피워
 


1. 위엄보다 다소 과장된 몸짓을 한 헨리8세의 실제 삶은 그의 초상화처럼 허세로 가득했다. / 2. 창백하고 표정 없는 얼굴이 화려한 장신구와 대조되면서 유난히 쓸쓸함을 자아낸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통치자였지만 그의 삶은 부모의 이별로 순탄치 않았다.

역사상 최고의 트러블메이커 국왕으로 알려진 헨리 8세의 초상화는 얼굴 생김새는 물론 주름이나 모공까지 환히 보일 정도로 놀라운 디테일을 간직하고 있다. <대사들>로 잘 알려진 한스 홀바인은 인물의 표정과 옷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압축하는 듯한 섬세한 화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당시 유럽 군주의 초상화들이 긴 칼이나 지휘봉 같은 ‘제왕의 소품’으로 ‘내가 왕이로소이다!’라고 선포하는 듯한 클리셰에 갇혀 있었다면, 이 초상화는 그런 요란한 소품들 없이도 제왕의 ‘얼굴’ 그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과 위압감을 주는 포즈로,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관객을 직접 쏘아본다.

이 그림에서 가장 지배적으로 느껴지는 감성은 바로 ‘왕의 못 말리는 허세’가 아닐까. 앨리슨 위어의 <헨리 8세와 여인들>에 따르면 헨리 8세는 다혈질과 고집불통, 철딱서니가 없을 뿐만 아니라 허풍이 엄청나게 셌다고 한다.

1515년에 그는 베네치아 대사에게 대뜸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프랑스 왕이 자기만큼 몸이 좋으냐고 물었던 것이다. “프랑스 왕은 체격이 좋은가? 허벅지는 튼실한가?” “빈약합니다.” 이에 왕은 기세등등하여 소리를 쳤다고 한다. “여길 보게나! 이 정강이 멋지지 않나?” 헨리 8세는 베네치아 대사 앞에서 갑자기 스스럼없이 상의를 활짝 열어젖히고 근육질의 멋들어진 다리를 자랑했다고 한다.

왕은 특유의 매력과 대중을 감화시키는 능력을 이용해서 백성들의 호의를 이끌어냈다. 파괴된 수도원의 폐허 위에 새로운 국교회를 세우고 교회 안의 부패를 뿌리뽑았다. 이것은 잉글랜드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가톨릭 신자로서 이단자에게 박해를 가했지만 잉글랜드가 종교개혁을 통해 신교 국가로 재탄생할 거란 선견지명을 가졌다. 그는 사후에 왕국의 왕이자 황제이자 교황으로, 백성들의 아버지이자 보모로서 추앙받았다.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만인에게 사랑받는 왕으로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앨리슨 위어 지음, 박미영 옮김, <헨리8세와 여인들>(루비박스, 2007)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가톨릭의 계율을 인정할 수 없었던 헨리 8세는 자신의 새로운 결혼과 자유로운 인생을 위하여 국교를 바꿀 만큼 엄청난 자신감으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살았던 여인들은 하나같이 불행했다.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왕의 여인’이 되는 데 성공했고, 영국의 국교가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앤 불린은 물론, 왕의 침실을 사로잡았던 수많은 여인은 모두 ‘영광’과 ‘치욕’의 극단을 오르내리며 끔찍한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영국의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뀌게 만든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로맨스는 <뉴욕타임즈>에서 선정한 ‘지난 천 년간 최고의 스캔들’로 꼽혔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고 있다.

내 영예의 최고 정점을 찍었으니/

그 영광의 자오선에서/

나는 서둘러 석양을 향한다. 저녁 하늘 빛나는 유성처/

나는 추락하고/

더 이상 나를 바라볼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헨리 8세>

튜더 왕조의 마지막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역사상 가장 시끌벅적했던 스캔들의 주인공인 부모와는 다르게, 아니 어쩌면 부모의 수많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이성적인 왕이 되었다.

어머니는 끔찍하게 사형을 당하고, 아버지는 끝없이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그 어떤 여인에게도 안식을 찾지 못하였으니, 꺼지지 않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자라나 천신만고 끝에 영국의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지만 그녀는 ‘여왕’에 대한 온갖 편견을 뛰어넘어 아버지의 실패들을 넘어선 것은 물론 그녀를 위협하는 남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뚝심과 결단력으로 절대왕정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어갔다.

헨리 8세의 부탁으로 엘리자베스의 대부가 된 크랜머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영국의 유례없는 태평성대가 올 것이라 예언한다. 그는 진리가 그녀를 양육할 것이며, 그녀의 치세 기간뿐 아니라 다음 시대에도 그녀는 계속 군주의 귀감으로 남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언제나 위대한 선(善)이 그녀와 함께 할 것이다. 그녀의 치세 동안 만백성은 자신의 포도나무 아래서 자신이 가꾼 것을 안전하게 먹고, 온 사방으로 태평성대를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들의 반열에 올랐고, 그녀의 치세 시절 영국은 최고의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녀는 ‘여자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패한 결혼에 대한 부담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다.

 저 아름다운 액세서리들과 아름다운 레이스로 장식된 그녀의 초상화 속 표정이 유난히 슬프고 외로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연민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성과 제왕의 책임감 사이에서 방황 


젖가슴을 드러낸 여왕의 오똑한 콧날이 클레오파트라의 ‘ 팜므파탈’ 이미지와 이집트 여왕의 높은 자존심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기원 후 1세기경 제작된 부조.

클레오파트라는 엘리자베스 1세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여왕’의 자리를 지켜내야 했다. 언제나 자신의 진심마저 정치적 전략으로 이용당해야 했고, 끝까지 그 누구도 그녀의 진심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는 그녀를 그토록 사랑했던 안토니우스마저 그녀를 비난한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죽은 카이사르가 접시에 남긴 식은 요리였어. 아니, 폼페이우스가 갉아 먹던 부스러기였지. 그 외에도 사람들 입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음탕한 정욕에 몸을 내맡긴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안토니우스는 죽음의 순간에 임박해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다시 한번 ‘로마의 왕’에게 미래를 의탁할 것을 부탁한다.

“여왕이여, 로마의 왕(아우구스투스)에게 청해 당신의 안전과 명예를 되찾으시오. 아!” 클레오파트라는 이렇게 응수한다. “안타깝게도 두 가지가 양립할 수는 없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전’과 ‘명예’는 한꺼번에 되찾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도 다른 나라의 황제, 또 다른 남자를 통해서는 더더욱. 그녀는 ‘여성이 감당해야 할 현실’과 ‘한 나라의 왕’이라는 책임감 속에서 평생 방황했다. 다른 많은 왕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인간적인 고뇌와 숨기고 싶은 슬픔, 그리고 결코 숨길 수 없는 결핍과 고통 속에서 ‘세상 끝까지 올라가 본 사람’만이 알고 있는 허무와 절망을 가슴에 안은 채, 끝내 홀로 이 세상과 작별해야 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난 이제부터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 언젠가는 한 번 죽을 이 육체를 내 손으로 허물어뜨리겠다. 카이사르가 무슨 수를 쓰기 전에 말이다. 잘 들으시오. 난 결코 결박을 당하여 카이사르 궁전에 끌려가서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다. 결심은 굳었다. 이제 여자의 근성 따위도 없다.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대리석처럼 탄탄하다. 변하기 쉬운 달의 영향 같은 건 받지 않는다. (황금 의자에 앉는다) 사람을 물어 죽여도 고통을 주지 않는 나일강의 예쁜 뱀을 가지고 왔느냐? -셰익스피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6.17.




7. 세상 모든 사랑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서 


‘놀이’에서 비롯된 큐피드의 화살

… 쉽게 사랑하고 사랑에 인생을 던진 신화 속 신들의 이기적 사랑은 거부하기 힘든 판타지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여신의 태어남을 축복하는 만백성의 환대와 설렘이 가득 담겨있지만, 애잔하고 쓸쓸하며 안타까운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 양희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 김남주, ‘사랑은’ 중에서

작가 장 콕토(Jean Cocteau)는 사랑의 본질을 공포와 불안에서 찾았다. 그는 알았다. ‘사랑하는 것’은 바로 사랑받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떠는 일임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곧/

사랑을 받는다는 것,/

한 존재를 불안에 떨게 하는 것”,

 “언젠가는 연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번민”

(<사랑>)이라 노래한 장 콕토는, 사랑이란 곧 ‘사랑받지 못할까 봐 불안과 공포에 떠는 마음’임을 포착해냈다. 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모던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떠올리면 두려움이 먼저 연상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불안’을 주변의 수많은 사례와 타인의 시선을 통해 학습한 현대인의 전유물이 아닐까. 근대 이전의 수많은 사랑 이야기를 살펴보면 사랑의 본질은 일단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무턱대고 뛰어들고 보는 것이었다. 



사랑을 ‘놀이’로 여긴 큐피드 


잠이 든 큐피드의 모습은 간명하면서도 도발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랑이 없어져버린 세계를 상상하게 만듦으로써 잃어버린 사랑의 신비를 다시금 되찾게 만드는 그림이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찾아보면 사랑받지 못할까 봐 끙끙 앓는 신들은 거의 없다. 신들은 ‘수줍은 고백’따윈 하지 않는다. 앞뒤 재지 않고 대상을 향해 돌진한다. 두려움 없는 사랑의 대명사인 제우스가 대표적이다.

제우스는 상대를 향해 예의를 차리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해주는 일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기 앞에 놓인 ‘금지된 장벽’을 깨고 여인들과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제우스에게는 ‘로맨틱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나쁜 남자의 전형이기도 하다.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얻어내는 제우스에게는 그리하여 ‘안타까운 사랑의 감정’이나 ‘고백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감정’이 없다. 말하자면, 제우스에게는 내면이 없다. 액션이 전부인 것이다. 이것이 현대인과 가장 다른 점이다.

현대인은 액션보다도 ‘고백하지 못하는 내면의 말들’이 훨씬 많다. 그 말하지 못한 말들 때문에 우리는 우울증에 걸리고, 슬픔에 빠지며, 각종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에 짓눌려 살아간다.

현대인에게 사랑은 제우스의 끝나지 않는 변신놀이처럼 ‘신나는 모험’이 아니라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처럼 ‘우울한 열정’이다. 현대인에게 사랑은 너무도 어렵고 힘든 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과연 처음부터 이토록 힘든 것이었을까. 



카라바지오, <잠들어 있는 큐피드>, 1608

사랑의 대명사인 에로스, 혹은 큐피드에게 사랑의 본질은 ‘놀이’였다. 큐피드는 ‘맞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는 화살’과 ‘맞기만 하면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화살’을 둘 다 관장했다. 물론 그가 걸핏하면 쏘아대는 화살은 ‘사랑에 빠지는 화살’이었지만, 가끔 큐피드를 진노하게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사랑에 빠지지 않는 화살’을 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다프네다. 큐피드의 노여움을 단단히 산 아폴로에게는 ‘사랑에 빠지는 화살’을 쏘고, 그가 첫눈에 반하게 된 다프네에게는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화살’을 쏨으로써, 큐피드는 자신의 개구쟁이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작 나는 사랑을 놀이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의 이런 발랄한 사유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큐피드는 ‘올림푸스 12신’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신화 속의 인물’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랑에 빠진 당사자에게는 사랑이 심각한 화두이지만, 타인의 눈에 비친 사랑은 ‘결과도 원인도 예측 불가능한, 영원한 놀이’처럼 보일 수도 있을 터이니. 모든 사랑은 당사자에게는 비극이지만 바라보는 자에게는 희극일 수도 있으니.

에로스의 화살을 그린 그림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나는 카라바지오의 큐피드가 특히 사랑스럽다. 이 그림은 큐피드의 흔한 포즈, 즉 누군가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는 포즈가 아니라, 큐피드가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이 그림의 메시지는 간명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즉 큐피드가 잠들면 이 세상도 멈춘다. 큐피드가 잠들면, 이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일 것이다.

큐피드가 사랑의 화살을 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누구도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사랑이라는 마법’에 걸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답답해질까. 사랑마저 없다면,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삭막해질까.

큐피드의 활이 부러지고 화살은 멀찌감치 치워져 있는 이 그림은, 온갖 즐거움과 열망과 기쁨과 기대가 사라져버린 세계의 절망적인 은유가 아닐까. 사랑이 없어져버린 세계를 상상하게 만듦으로써 잃어버린 사랑의 신비를 다시금 되찾게 만드는 그림이다. 



비너스, 아름다움과 사랑을 노래하다 


파괴와 증오의 화신 마르스는 신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비너스 곁에서 잠들었을 때만은 모든 갈등과 고통을 잊었을 것이다. 사랑은 이렇듯 갈 곳 없는 영혼에 찰나의 휴식을 준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6

<비너스의 탄생>에는 여신의 태어남을 축복하는 만백성의 환대와 설렘이 가득 담겨있다.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자신의 연인 클로리스를 품에 안은 채 비너스가 어서 육지에 닿으라는 듯 입으로 바람을 만들어 불어넣고 있으며 계절의 여신 호라이는 비너스의 눈부신 나신을 누가 볼세라 황급히 망토를 들고 나와 여신의 몸을 감싸줄 채비를 하고 있다.

제피로스의 바람결에 나부끼는 여신의 망토자락조차 여신의 태어남을 호들갑스레 축복하는 것 같다. 정작 여신은 수줍다. 조신하게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고개를 살짝 외로 비튼 ‘비너스 푸블리케’라는 하나의 정형화된 자세라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지니는 몸짓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다.

비너스의 몸짓에는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아직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모르는 데서 나오는 한없는 겸손함이 있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 하나하나도 여신의 아름다움을 축복하는 듯 설렘으로 들썩인다.

그런데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왜 저토록 슬퍼 보일까? 가질 수 없는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비너스, 영원히 이상화된 비너스가 이 그림 속에 형상화되어 있는 듯하다.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비너스의 모습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비너스, 대상을 한눈에 사로잡는 카리스마로 가득한 비너스와는 거리가 멀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거침없고 제멋대로인 비너스와도 거리가 멀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애잔하고 쓸쓸하며 안타까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다. 실제로 피렌체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시모네타를 모델로 했다는 이 그림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하염없는 바라봄의 염원이 실려있는 듯하다.

보티첼리는 평생 시모네타를 짝사랑했고 그녀가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에 걸려 죽은 뒤에도 평생 그녀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누드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풀리지 않는 신비와 누구도 쉽게 깨뜨릴 수 없는 신성함을 되새기게 해준다.

은사시나무 껍질을 만지며 당신을 생각했죠/

아그배나무 껍질을 쓰다듬으면서도/

당신을 그렸죠 기다림도 지치면 노여움이 될까요/

(…)

그리움도 지치면 서러움이 될까요/

하늘이 우물 속 같이 어둡습니다 -조용미, <유적> 중에서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와 마르스>, 1483

이 그림 속의 비너스는 사뭇 여유롭고도 애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이야말로 사랑이 지닌 가장 따뜻한 표정일 것이다. 전쟁의 화신 마르스가 잠들어 있는 동안, 비너스는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마르스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마르스는 결코 환영받는 신이 아니었다. 또 다른 전쟁의 여신 아테네가 ‘지혜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반면, 마르스는 파괴와 증오의 화신으로 늘 배척받았다. 그는 분명 신이었지만 신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해준 여신은 공교롭게도 사랑의 화신 비너스였다.

신들 중에서도 가장 못생긴 헤파이스토스를 비너스의 짝으로 붙여준 제우스의 결정에 반기를 들며, 비너스는 보란 듯이 마르스와 밀회를 즐겼다. 파괴와 증오와 분노의 화신 마르스는 이렇게 사랑의 여신 곁에서 잠들었을 때만은, 그 모든 갈등과 고통을 잊었을 것이다.

사랑은 이렇듯 갈 곳 없는 영혼에 찰나의 휴식을 준다. 이 사랑의 그림 속에는 어떤 고뇌도 갈등도 번민도 없어 보인다. 오직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달콤한 숨소리, 격정 뒤의 휴식, 기쁨과 희열의 향기만이 살아 숨쉰다.

잠든 전쟁의 화신의 머리 위로 빙빙 맴도는 말벌들이 어쩌면 이 두 사람을 괴롭히게 될 이후의 끔찍한 갈등을 암시하는 복선일지도 모른다. 행복하게 곯아떨어진 마르스의 머리 위를 뱅뱅 도는 말벌은 어쩌면 이 달콤한 사랑의 희열 뒤편에 도사린 고통과 불안의 기미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수많은 얼굴을 품은 브론치노의 비너스


1. 비너스와 마르스의 사랑은 금지된 열정이었다. 비너스의 남편 불칸은 아내에 대한 증오와 분노, 마르스에 대한 질투로 삶의 참혹함을 겪었다. 이렇듯 사랑은 질투와 탐욕, 광기와 분노를 낳기도 한다. / 2.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큐피드와 함께 있는 비너스는 치명적이고 도발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친다. 동시에 금지된 쾌락, 사악한 욕망, 불길한 도발이 느껴지기도 한다.

야콥 틴토레토, <비너스와 마르스, 그리고 불칸>, 1551

비너스와 마르스의 사랑은 금지된 열정이었다. 불칸 혹은 헤파이스토스라고 불렸던 비너스의 남편은 뭐든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이자 위대한 발명가이기도 했다.

불칸은 아내의 불륜 현장을 잡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그물을 만들어 두 사람의 밀회 장소에 설치해놓고, 두 사람이 사랑의 행위를 시작하자 현장을 덮친다.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내에 대한 증오와 분노, 그리고 자신은 결코 안을 수 없는 아내를 독차지하고 있는 마르스에 대한 질투가 불칸을 이토록 참혹하게 괴롭힌 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질투와 탐욕, 광기와 분노를 낳기도 한다. 카프카는 <비수>라는 시에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비수처럼 느껴질 때/

날카로운 것으로/

당신의 마음을 마구 휘젓고/

가슴 에이게 한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

이라고. 불칸은 자신을 그토록 아프게 했던 아내 비너스를 분명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브론치노,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 1545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든 해답을 담고 있다면, 브론치노의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의 대한 모든 해답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사랑의 가장 추악한 면과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면이 모두 담겨 있다.

큐피드와 비너스가 장난스럽게, 그러나 도발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관람자의 눈길을 한눈에 빨아들인다. 브론치노의 비너스는 보티첼리의 진지하고 수줍은 비너스와는 정반대로, 치명적이고 도발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친다.

어머니 비너스와 함께 있을 때는 거의 아기 천사 푸토들처럼 어린 모습을 하고 있었던 큐피드는 웬일인지 이 그림에서는 거의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어 관람객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금지된 쾌락, 사악한 욕망, 불길한 도발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이 작품의 제목에 ‘알레고리’가 붙어 있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비너스는 한 손에는 큐피드의 화살을 들고 있고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있다. 큐피드의 화살은 ‘사랑의 향방’을 놀이로 결정하는 신들의 애꿎은 장난기가 느껴지고, 사과에는 이보다 훨씬 풍부한 상징이 따라붙는다.

이브의 선악과로서의 사과라면(물론 이브의 선악과는 사과가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이 사과는 ‘욕망’과 ‘지식’을 상징할 것이고, 트로이 전쟁에서 여신들끼리의 다툼의 도화선이 된 사과라면 ‘전쟁’과 ‘불화’를 상징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사과는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가 되었다.

꽃잎을 던지며 미소 짓는 어린 아이는 ‘희롱’이나 ‘농담’을 뜻하고, 가시를 밟고 있으면서도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 어린 아이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어여쁜 얼굴로 화사하게 미소 짓는 소녀는 ‘기만’을, 괴로운 표정으로 절규하는 듯한 노파는 ‘질시’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 미소 짓는 소녀의 모습이 독특하다. 꼬리는 뱀의 형상이고, 발은 사자의 형상이며, 한 손에는 심장을 들고 있고, 한 손에는 가면을 들고 있다. 상대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여인, 상대의 마음을 휘어잡기 위해 천변만화한 변장술을 활용하는 여인의 복잡한 내면이야말로 사랑이 지닌 또 하나의 본질, ‘기만’일 것이다.

모래시계를 등에 지고 있는 남성은 시간, 즉 크로노스를 상징한다고 한다. 사랑에는 이토록 많은 얼굴이 있지만 그 어떤 화려한 변장술도, 복잡한 심리전도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의미일까. 이 그림은 오래도록 그림 앞에 서성이며 ‘사랑의 수많은 얼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화해와 용서, 애도와 찬미: 사랑의 궁극 



외로운 예술가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비너스는 이제 자신의 사랑이 아닌 ‘타인의 사랑’에 축복의 기운을 내려주는 진짜 여신이 됐다.


에드워드 번 존스, <신이 빛을 비추다>, 1868

이 세상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지상의 여인들에게서는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 여인들은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모든 꿈과 이상을 담아 한 여인의 조각상을 빚어냈다.
 

그야말로 완벽한 여인, 어떤 결점도 없는 여인, 이상 속의 연인이었다. 이 외로운 예술가 피그말리온은 꿈꿨다. 이 조각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가 이 땅을 걷고, 나와 함께 밥을 먹고, 나와 함께 눈을 감고 뜬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피그말리온은 남몰래 기도했다.

나의 아름다운 조각상 갈라테이아가 진짜 사람이 되어 저와 사랑에 빠지게 해주세요. 피그말리온은 단지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조각상이 행여나 추울까 봐 포근한 담요도 덮어주고, 아무도 엿보지 않을 때 그녀를 살짝 안아주기도 했다.

그에게 조각상은 더 이상 ‘그것’이 아니라 ‘그녀’였고 ‘당신’이었다. 그에게 갈라테이아는 돌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빚어진 생명체였다. 비너스는 피그말리온의 은밀한 소원을 듣는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가여운 피그말리온이 어서 빨리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다.

아니 그는 이미 사랑에 빠졌다. 그러니 나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겠구나. 비너스는 이 이야기에서 철저한 조연이다. 하지만 피그말리온의 신화에서야말로 비너스는 ‘사랑의 여신’으로서의 본분을 톡톡히 해낸다.

비너스는 마침내 갈라테이아에게 사랑의 숨결을 불어넣어준다.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갈라테이아는 이제 딱딱한 대리석에 갇힌 죽은 영혼이 아니다. 그녀는 드디어 ‘한 사람의 여자’가 되어 피그말리온의 사랑에 화답할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인간의 염원을 절절하게 표현한 이 이야기를 사람들은 오늘도 사랑한다. 번 존스의 그림 속에서 비너스는 차가운 대리석상에 축복의 숨결을 불어넣어준다.

자, 이제 걸어가거라. 자, 이제 너의 심장이 뛰게 될 것이다. 달려가 그에게 입을 맞추어주렴.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이제 자신의 사랑이 아닌 ‘타인의 사랑’에 축복의 기운을 내려주는 진짜 여신이 되었다. 



윌리엄 블레이크 리치몬드, <비너스와 안키세스>, 1889
 
 


라임빛과 황금빛이 어우러진 의상을 입은 비너스와 안키세스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느껴진다. 비너스를 쳐다보는 안키세스의 시선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 같다.

이 그림에서는 어떤 거대한 장벽이 느껴진다. 라임빛과 황금빛이 어우러진 비너스의 의상은 눈부신 열망의 대상이자 그 자체가 견고한 장벽처럼 느껴진다. 여신의 사랑을 탐낸 인간 남자 안키세스의 고뇌 어린 시선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 같다.

내가 과연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불가능한 사랑이 용납될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사랑은 엄격하게 금지된 것이었다.

이 금지된 사랑의 장벽을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뛰어넘은 인간은 오직 에로스의 연인 프시케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는 신비롭고도 무정한 남편 에로스의 비밀주의와 싸웠고, 자신의 아들을 인간의 딸에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미래의 시어머니 비너스의 텃세와 심술을 뛰어넘었고, 인간과 신의 금지된 사랑을 주장하는 올림푸스 12신의 냉혹한 원칙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한 모든 장벽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안키세스에게는 프시케 같은 신중함과 인내심이 부족했다. 안키세스는 ‘나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비너스의 약속을 어긴다. 그는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여신과 사랑을 나눈 남자가 있겠느냐고. 그러니 나는 세상 최고의 남자가 아니겠느냐고. 그는 마음껏 자랑하며 뽐내고 싶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여신의 아름다움은 치명적 유혹이자 맹독성의 위험이기도 했다.

안키세스가 ‘나는 여신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뽐내고 다니자 이는 급기야 제우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진노한 제우스는 안키세스에게 불벼락을 떨어뜨린다. 가여운 안키세스는 그만 다리를 절게 되고 만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미학은 기묘한 양면성에 있다.

신은 징벌만 내리지 않는다. 나쁜 것 뒤에는 항상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 안키세스는 다리를 잃었지만, 늠름한 아들 아이네이스를 얻었다. 아이네이스는 트로이를 구한 영웅으로 자라난다.

도탄에 빠진 트로이를 부활의 왕국으로 이끈 아이네이스는 그 듬직한 어깨에는 절름발이 아비 안키세스를 둘러메고, 그 강건한 다리에는 아들을 매단 채, 당당히 트로이의 전사로 거듭난다. 안키세스의 금지된 사랑은 제우스의 불벼락을 맞았지만, 그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들 아이네이스는 역사에 길이 남는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윌리엄 위터하우스, <아도니스를 깨우다>, 1900 오귀스트 로댕, <아도니스의 죽음>, 1888

비너스가 가장 떠들썩하게 만났던 불륜의 상대가 마르스였다면, 비너스가 가장 절실하게 사랑했던 연인은 바로 아도니스였다. 아도니스에게는 제우스 같은 신통력도 없고, 마르스 같은 파괴적 매력도 없었으며, 헤르메스 같은 재치와 유머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아도니스에게는 필멸의 존재만이 가진, 찰나의 순수성, 찰나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도니스의 아름다움은 곧 사라져갈 것이기에 더욱 절절한 것이었다.

아도니스는 사냥에 미친 젊은이였고, 비너스는 여신의 예지력으로 아도니스가 사냥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비너스는 어떻게든 이 가혹한 운명을 바꿔보려 한다.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너스는 아도니스가 죽게 될 것을 염려해 어떻게든 그를 보호하려 한다.

비너스는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아도니스와 함께한다. ‘오늘은 제발 사냥을 나가지 말아달라’고 아도니스에게 매달려 아이처럼 조르기도 한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누구도 그의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비너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도니스는 기어이 사냥을 나간다. 비너스가 ‘공포를 모르는 동물은 죽이지 말라’고 당부를 해두었지만, 아도니스는 지금껏 자신이 본 동물 중 가장 커다랗고, 무섭고, 두려움을 모르는 동물인 야생 멧돼지를 사냥하려 한다.

얄궂게도 그 멧돼지는 이제 ‘가버린 시절의 옛 연인’이 되어버린 마르스가 변신한 것이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공공연한 애정행각을 보고 타오르는 질투심을 느낀 마르스가 아도니스를 죽이려 한 것이다. 마침내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 사나운 멧돼지의 공격으로 죽어버린 아도니스의 시체를 부여잡고 절규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아도니스를 깨우려는 비너스의 공포를 애절하게 그려낸다. 



연인 ‘아도니스’의 죽음을 막지 못한 비너스의 슬픔 



1. 비너스의 불륜 상대가 마르스였다면, 비너스가 가장 절실하게 사랑했던 연인은 아도니스였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아도니스를 깨우려는 비너스의 모습은 애절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 2. 구체적 얼굴 생김새는 물론 표정도 없이 그저 아도니스를 안고 있는 비너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든 힘을 다 동원해도 바꿀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절규하는 슬픔이 전해진다.

비너스의 슬픔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작품은 로댕의 작품이다. 로댕의 비너스와 아도니스에는 구체적 얼굴 생김새는 물론 표정도 없다. 그저 ‘안음’만이 있다. 그저 그 필사적인 포옹만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사랑, 자신의 모든 힘을 다 동원해도 바꿀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절규하는 비너스의 슬픔이 전해진다. 비너스는 깨닫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려도 끝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 또다시 시작되었음을.

일찍이 에로스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존재의 끔찍한 불안조차 놀이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신들 중 최고의 미남으로 알려졌던 아폴론은 요정 다프네를 사랑했지만, 에로스는 그가 사랑받고 싶어하는 바로 그 사랑의 대상 다프네에게 ‘납의 화살’(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화살)을 쏘아버린다.

에로스의 장난기 넘치는 화살로 사랑의 향방을 가늠했던 그리스인들은 현대인들에 비해 훨씬 낙천적인 애정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여전히 ‘에로스의 화살’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사람들은 평소에 그토록 열렬히 주장하던 이상형과 전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딱 내 스타일’이라며 열광했던 사람들에게 극도의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현대인보다 훨씬 더 쉽게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인생을 던졌던 그리스 신화의 신들에게는 사랑의 탐색전, 밀고 당기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태움 같은 안타까운 정서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든 한 번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 수 있었던 사랑의 여신 비너스마저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었다.

비너스는 자신의 아들 에로스와 사랑에 빠진 프시케에게는 ‘혹독한 시어머니’였고, 남편 헤파이스토스에게는 ‘바람난 아내’였고,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에게는 이루지 못할 소원을 들어주는 ‘사랑의 여신’이었다.

하지만 아도니스에게만은 그저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인’이었다. 비너스는 끝내 아도니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아도니스를 껴안은 비너스는 이제 사랑의 달콤함을 넘어 사랑의 비극성을 깨달은 여신이 되었다. 사랑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찾아오고, 우리가 결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떠나가버린다.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타인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사랑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훌쩍 성장한다. 그 사람의 그 어처구니없음을, 그 아무도 막을 수 없음을, 그 붙잡을 수 없음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므로.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7. 17.





8.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 그림들 - 역사 속 위대한 그림 ... 예술의 향기와 힘 


사진과 텔레비전이 없던 시대, 기억의 욕망을 실현한 도구

… 사건의 재현을 넘어 새로운 장면을 창조하기도



파올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는 위대한 승리의 순간을 완전하게 응축해 영원히 봉인하고 싶은 의지가 느껴진다


드라마와 영화가 없던 시절엔 사람들은 무엇으로 기억의 욕구를 해소했을까? 읽고 쓰는 소통의 기술이 일반화되기 이전, 극소수의 사람만이 문자해독의 축복을 누릴 수 있던 시절,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림으로 기억의 욕망을 실현하곤 했다.

물론 그림을 볼 수 있는 특권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화가를 후원하고 그림을 소유할 수 있는 재력은 귀족과 왕실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벽화나 조각 같은 다양한 형태의 민중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존재해왔다.

특히 서양인들에게 교회는 평범한 사람들도 예술의 축복을 느낄 수 있는 공인된 기억의 전시장이었다. 사람들은 교회 건축의 웅장함과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예술의 ‘무한’을 향한 비상(飛上)의 충동을 보았을 것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화가들의 화폭에 담기곤 했다. 화가들의 어깨에는 자신이 아니라면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고 묻혀버릴 숨은 이야기의 염원이 짐 지워져 있는 것이다.

아직 예술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기 이전, 화가들은 그림 그리기의 장인(匠人)이자 이야기꾼, 작가이자 영화감독의 역할까지 겸했던 것이다. 



기억의 욕망 속으로 들어가다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 전투>

이 그림은 당시 시에나를 상대로 기념비적 승리를 거둔 피렌체의 입장에서 그려진 전쟁 기록이다. 시에나 사람이라면 아마도 패배의 굴욕을 느꼈을 이 사건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첼로는 피렌체 사람의 입장에서 승리의 영광을 그리고자 했을 것이다.

이렇듯 어떤 사건을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한쪽의 ‘편’이 되기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를 보면 알 수 있다. 위대한 화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역사 속에서 지워질 수도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용맹스러운 전투 장면을 마치 영화감독처럼 생생히 복원해낸다.

그것은 사건의 재현이기를 넘어서 새로운 장면의 창조이기도 했다. 사실의 묘사를 넘어 화가의 상상력이 더해졌기에 이 그림은 ‘아름다움’이라는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사실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참혹한 전쟁 장면이 왜 이토록 장엄하고 화려하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것일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전쟁화가 이토록 아름다워도 되는 것일까. 내가 아는 전쟁은 잔인하고 무섭고 끔찍한 것뿐인데 말이다.

<산 로마노 전투>는 어떤 위대한 승리의 순간을 완전하게 응축해 영원히 봉인하고 싶은 불멸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 그림을 일컬어 ‘원근법의 교과서’ 혹은 ‘원근법의 승리’라고 설명하는 이도 많다. 이 그림에서는 단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기법의 승리 혹은 그림이라는 장르 자체의 승리를 자축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원래 세 개의 패널로 이루어져 더욱 강력한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있었던 이 그림을 처음 본 사람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숙적 시에나를 향해 위대한 승전고를 울린 피렌체의 영광이 자신의 눈앞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영화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세 개의 작품은 지금 각각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따로 떨어져 생이별을 한 상태이지만 각각의 그림 하나하나를 떨어뜨려놓고 보아도 이 그림의 현장성은 경이롭게 다가온다.

그날 그 자리,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마저도 그 역사적 현장에 자신을 대입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매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고동치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영원히 지속되는 기념비적 승리의 쾌감, 그것 아니었을까. 



역사의 수많은 비밀 담아내기도



폴 들라로슈는 <에인 그레이의 처형>에서 제인 그레이의 '결백'과 '순수를 강조한다



폴 들라로슈, <제인 그레이의 처형>, 1833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 그림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지곤 한다. 이 그림은 단지 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그 이상의 주제를 암시하는 듯하다.

자신이 정확히 왜 죽는지도 모르는 채 운명의 처형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수많은 인간의 숙명적 한계가 아닐까. 레이디 제인 그레이처럼, 강제적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아야 할 만한 어떤 뚜렷한 이유도 모르는 채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는 얼마나 많았던가.

화가는 사건의 세밀한 인과관계를 고려한 것이라기보다는 제인 그레이의 ‘결백’과 ‘순수’를 강조한다. 강제로 눈가리개를 한 상태의 그녀는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처형당할지 몰라 더듬거리고 있다.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올 자리를 찾느라 헤매는 여인의 안타까운 머뭇거림이 화면 전체를 비통한 분위기로 물들인다. 그녀에게 ‘여기가 바로 네가 죽을 곳이야’라고 알려주는 듯한 남자의 몸짓조차 이 잔인한 처형을 지연시키려는 듯 둔중하고 느릿느릿해 보인다.

그녀를 평생 곁에서 지켜보며 돌봤던 유모와 시녀가 통곡하며 괴로워하는 모습, 한때 그녀가 누렸을 영광과 번영을 상징하듯 시녀의 치마폭 위에서 그로테스크하게 빛나는 그녀의 목걸이, 하얗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빛나는 그녀의 눈부신 드레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결백함’과 ‘주변 상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거대하게 날 선 도끼를 들고 있는 망나니의 모습을 보면, 그 무시무시한 도끼가 저 가녀린 여인의 목을 자를 다음 장면을 상상하며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망나니의 붉은 타이츠는 그녀가 앞으로 흘릴 핏방울의 빛깔인 양 선연하게 붉다.

자신이 원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국교를 바꾸기도 했던 왕, 무려 여섯 명의 왕비를 거느렸던 헨리 8세에 이어 에드워드 6세의 바통을 이어받을 뻔했던 제인은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런던탑에 갇힌 뒤 메리1세의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거부한 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궁중의 권력다툼 속에서 겨우 9일 동안 허울뿐인 여왕의 자리에 머물렀던 제인 그레이는 감옥에 갇혀 몇 달 동안 인생 최악의 나락을 경험하고, 처형당하기 며칠 전에는 남편과 아버지를 모두 잃고 더욱더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제인 그레이의 당시 나이는 겨우 17세. 만약 그녀를 죽게 만든 영국의 권력자들이 이 그림을 보았다면, 그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어떤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는지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과연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를. 



화가, 사건 속으로 뛰어들다



흠집과 상처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1819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그림의 전체적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 일단 멀찌감치 떨어져서 한참 동안 그림을 관찰해야 했다. 뭔가 마음속에서 ‘쾅’ 하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는데, 그 격렬한 흔들림의 진원지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인간의 강인함, 운명의 광폭함에 맞서는 인간의 치열함에서 우러나오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이 그림은 무서울 만치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흠결이 없는 순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흠집투성이, 상처투성이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우울과 광기의 맨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강렬한 생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1816년 아프리카의 세네갈로 향하던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는 400여 명의 인원을 태운 채 대서양에서 암초를 만나 난파됐다. 선장 생보르 백작은 뇌물로 그 커다란 배의 선장 자리를 꿰찬 사람이었고, 뱃사람으로서의 직업윤리나 선장으로서의 리더십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배가 난파됐을 때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선장은 뗏목에 마치 짐짝을 싣듯 아무렇게나 100명이 넘는 사람을 태우고 자신은 약삭빠르게 구명보트에 올라탔다. 구명보트에는 소위 ‘힘있는 사람들’, 즉 선장과의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라든지 귀족들이 타고 있었고, 뗏목에는 ‘힘없는 사람들’, 즉 하급군인과 민간인들이 타고 있었다.

얼마 후 ‘힘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뗏목과 구명보트를 연결한 밧줄조차 끊고 달아나버렸다. 자그마치 12일 동안이나 뗏목에 남은 사람들은 먹을 물도, 식량도, 희망조차 없이 거친 파도 속을 표류했다.

뗏목에 남은 153명의 군인과 민간인들은 힘겨운 사투를 벌였지만 겨우 15명만이 살아남았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먹은 사람들도 있었다. 파도에 밀려,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서로의 힘에 떠밀려, 수많은 사람이 뗏목 가장자리로, 바다의 심연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갔다.

험한 파도와 미칠 듯한 굶주림, 타는 듯한 목마름, 시시각각 심장을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 이긴 사람들이 이제 모든 희망을 놓아갈 때쯤 저 멀리서 배 한 척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구조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누더기를 흔들어대는 사람들. 쓰러진 사람들의 시체를 밟고 간신히 서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머리가 하얗게 센 한 남자는 이제 살아야 한다는 열망조차 완전히 초월해버린 듯, 아무런 표정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가 껴안고 있는 시체는 그가 희망을 걸었던 마지막 타인인지도 모른다. 



독재자가 아닌 희생자로 묘사된 ‘시저’
 



장 레옹 제롬은 줄리어스 시저를 가장 아끼던 부하 부르투스의 손에 죽어간 위대한 정치가로 묘사하고 있다.

장 레옹 제롬, <시저의 죽음>, 1859∼1867년 경

줄리어스 시저는 “부르투스, 너마저!”, “주사위는 던져졌다!” 등의 숱한 명언을 남기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정치가다. 수많은 화가가 그를 ‘희생자’로 묘사한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암투 속에서, 가장 아끼던 부하 부르투스의 손에 죽어간 위대한 정치가로 기억되곤 한다.

장 레옹 제롬의 <시저의 죽음>도 그렇다. 그는 이미 시저 암살에 성공한 후, 한 무리로 뭉쳐 환호작약하는 로마 공화정의 정치인들을 그려내고 있다. 얼굴이 가려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저의 시체는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 강렬한 비장미를 뿜어낸다.

 한 사람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남겨진 사람들은 기뻐하며 축제를 벌이다니. 정치란 무릇 이토록 잔인한 이전투구의 반복일 뿐이라는 비극적 현실인식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는 시저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다루면서 오히려 ‘브루투스의 비극’에 집중한다. 그는 시저를 향한 영웅신화를 해체하고, ‘한 사람의 독재정치’가 아닌 ‘여러 사람의 합의와 논의를 토대로 한 공화정’을 지지한 부르투스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것 같다.

희곡의 첫 장면부터 셰익스피어는 로마인들의 시저를 향한 강한 증오를 표현한다. 호민관 플레이비어스는 점점 ‘한 사람’ 시저를 향해 집중되어가는 권력의 향방을 걱정한다.

“씨저를 드높이는 장식을 걸친 석상이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돼.” “씨저의 날개에서 자꾸 자라는 깃털을 뽑아버려야 그 비상이 적당한 선에서 멈출 걸세. 안 그러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까마득히 날아올라, 우리 모두를 두려움에 떠는 굴종으로 몰아갈 거야.” (셰익스피어 지음, 이성일 옮김, <줄리어스 씨저>, 나남, 2011)

우여곡절 끝에 시저를 살해한 부르투스는 로마 시민들 앞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연설을 시작한다.

“왜 내가 시저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대답은 이렇습니다. 시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시저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시저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가 행운을 타고 났기에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부르투스는 결국 또 다른 야망을 꿈꾸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손에 제거된다. 궁극적으로 브루투스가 꿈꾸던 로마의 공화정은 다시 복원되지 못했던 것이다.

화가가 묘사한 것은 집단의 모의에 의해 안타깝게 희생된 개인의 죽음이지만, 역사의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이 사건은 ‘한 사람의 독재’와 ‘여러 사람의 합의체’ 사이의 끝나지 않는 혈투이기도 하며, 나아가 냉혹한 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리자가 없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한다. 



자크 루이드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




<마라의 죽음>에는 정치와 예술의 이상적 만남이 존재한다


이 그림을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우연히 방문했던 이곳에서 나는 프랑스혁명을 묘사한 책에서 수없이 봐왔던 저 유명한 그림 <마라의 죽음>을 발견했다. 실물은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압도적인 색채와 형상으로 눈을 사로잡았다.

마라는 마치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았다. 또는 죽은 지 몇 분도 채 안 되는 것 같아 현대의 발달된 의술로 심폐소생술만 할 수 있다면 곧바로 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화려한 조명 없이도 그림 자체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는데, 그것은 마라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했던 화가의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듯했다.

마라는 이 그림에서 숭고한 순교자처럼 티 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그리고 모든 야망과 미련조차 다 놓아버린 듯한 천진무구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

장 폴 마라는 프랑스혁명의 지도자이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언론인이었다. 1793년 7월 13일 급진파였던 마라가 그의 욕조에서 반대파의 젊은 여성 샬롯 코르데이(Charlotte Corday)의 칼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고, 마라의 주검을 실제로 목격한 다비드는 몇 달 후에 이 사건을 그림으로 담아낸다.

마라는 당시 심각한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기에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집무를 보는 때가 잦았다. 코르데이는 마라의 가슴에 깊은 치명상을 남기고도 즉시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마라의 죽음과 그 이후의 과정을 낱낱이 영혼에 새겨두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는 이후에 재판을 받고 살인죄로 처형됐다.

다비드는 마라와 함께 자코뱅당의 일원이었고, 마라와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심한 피부병을 앓았던 마라의 실제 모습과 달리, 이 그림 속의 마라는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한 피부로 빛난다. 마라가 머리에 쓰고 있는 터번은 마치 성인(聖人)의 머리 위를 감도는 아우라처럼 환하게 빛난다.

다비드는 반대파의 앙심 때문에 잔혹하게 살해된 마라의 죽음을 계기로 혁명의 불꽃이 더욱 활활 타오르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 그림에는 정치와 예술의 이상적 만남이 존재하고 있다. 다비드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동지들이여, 이 사람을 보라. 그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죽지 않았다. 무엇을 주저하는가. 앞으로 나아가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혁명의 과업을 완수하자.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향하여 



유진 들라크루아는 ‘자유’와 ‘해방’, ‘이상’과 ‘평등’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잊을 수 없는 예술의 아이콘을 선물했다.

유진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 1830

중학생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처음 보았던 이 그림은 이후 ‘역사적 사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콘 같은 그림이 됐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이 그림의 에너지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이 그림에 어울리는 단어는 고취·흥분·숭고·열정 같은 뜨거운 단어다.

그 뜨거운 단어들은 차갑게 식어 있던 영혼에 불을 댕겨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아주 작은 혁명의 불씨라도 우리의 작은 손으로 피워 올려야 한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프랑스의 샤를 10세를 축출시켰던 기념비적 사건,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하는 그림이다.

혁명군을 이끄는 용감한 여전사로 묘사된 사람은 실제 인물이 아닌 ‘자유’라는 이상이다. 아직도 변함없이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국기로 남아 있는 삼색기에서 특히 박애는 ‘인류 모두를 사랑하자’는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본래 지극히 제한적인 형제애(fraternity)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엄격한 아카데미풍의 정확한 드로잉 기교를 벗어 던지고 들라크루아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야생의 사고를 반영하듯 거칠게 요동치는 붓질은 이 그림이 지향하는 ‘자유’의 정신에 더욱 잘 들어맞는다. 그가 그린 것은 단지 ‘자유’라는 이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핵심을 찌르는 상징, 즉 ‘바리케이드’ 그 자체이기도 했다. 바리케이트 저 너머로 끝없이 전진하기를 꿈꾸는 민중의 열정은 계급과 계급의 장벽,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장벽, 여자와 남자의 장벽까지 뛰어넘으려 하는 듯하다. 



프랑스 혁명의 불길 ‘자유’ 



반공주의 세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한국인들의 아픔을 그려낸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조국을 위해 싸우지는 못했지만,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릴 수는 있어.” 그는 혁명의 불길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죄책감을 이 그림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슴을 풀어헤치고 신발조차 벗어 던진 채 혁명의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자유’의 이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뜨거운 열정을 고취시킨다. 비참하게 쌓여 있는 시체 더미를 발판으로 삼아 끝없이 전진하는 여신의 이미지는 캔버스를 뚫고 나와 ‘그림 밖의 민중’까지 함께 이끌어갈 태세다.

혁명군은 사실 여러 계급의 복합체다. 부르주아에서부터 학생·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혁명군에 가세하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처지에 있었던 그들이 모두 하나같이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던 것은 바로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민중을 괴롭혀오던 왕실과 귀족이었다.

<메두사의 뗏목>에서처럼, 자신들의 배만 불리며, 자신들의 목숨만 챙기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굶기고 죽이기까지 했던 귀족과 왕족들을 향한 분노야말로 이 그림의 숨은 주인공이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에 서린 위정자들을 향한 분노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에 서린 혁명과 자유의 정신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자유’와 ‘해방’, ‘이상’과 ‘평등’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들라크루아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예술의 아이콘을 선물해줬던 것이다.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

피카소가 이 그림을 완성한 때는 1951년 1월 18일이니 아직 한참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때였다. 피카소는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해 상황을 격화시킨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이 그림을 통해 표출한다. 무방비 상태로 군인들의 총칼 앞에 나신으로 서 있는 여성들, 그들이 바로 한국의 여성들이었다.

아이들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채 엄마에게 매달리며 울부짖고, 여인들의 얼굴은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다. 임신한 여자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까지 무자비하게 총칼을 들이대는 군인들은 냉혹한 철가면을 덮어 쓰고 있다.

이 그림은 1950년 지금은 북한 땅인 황해도 지방의 신천에서 일어난 미군의 대량학살을 그려내고 있다. 신천에서 일어난 이 대학살의 뚜렷한 진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은 반공주의 세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한국인들의 아픔을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또한 프란치스코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에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의 군인들이 스페인을 침공해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한 고야처럼, 피카소는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민간인을 살상한 사건을 그려낸다. 이 참혹한 이미지는 한국전쟁을 묘사한 그 어떤 다큐멘터리들보다도 강렬한 트라우마가 되어 내 가슴에 각인됐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에 주목
 



케테 콜비츠는 ‘나처럼 아픈, 또는 나보다 더 아픈, 타인의 슬픔’에 귀를 기울였다.

케테 콜비츠, <부모>, 1922

내가 언제나 케테 콜비츠에게 이끌리는 것은 그녀가 전쟁과 죽음, 폭력과 광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쓸쓸히 남은 인간의 뒷모습을 쓰다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그녀의 아들이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판화에서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언제까지나 한없이 울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슬픔을 집단적 슬픔 속에 녹여내려 했다. ‘나만의 슬픔’을 ‘우리의 슬픔’으로 승화시켜 르포르타주를 넘어선 예술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녀는 자기만의 슬픔에 빠져 있던 것이 아니라, ‘나처럼 아픈, 또는 나보다 더 아픈, 타인의 슬픔’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들리지 않는 흐느낌을 들었고, 보이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잠 못 이루는 어머니들, 아들의 전사소식을 듣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하는 어머니들, 간신히 살아남은 아이들을 전쟁의 화염 속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온몸으로 방패를 만들어 총칼 앞에 맞서는 어머니들, 이미 죽어버린 아이들의 시체를 끌어안고 마치 영원히 시간이 멈춘 듯, 그렇게 하면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들을 품에 꼭 끌어안고 울고 또 우는 어머니들.

그녀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에 주목함으로써 마치 타오르는 용광로에서 거대한 종(鐘)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은 쇠붙이 덩어리들 녹여 넣는 것처럼 자신의 슬픔조차 하나의 예술의 질료로 녹여냈다.

시대의 아픔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아낌없이 내던졌다. 예술의 구원은 작품이 표현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조차 뛰어넘는, 감상자의 간절한 ‘교감’ 안에서 비로소 이뤄진다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8.17.




9. 풍경, 사물, 그리고 인간 - 인생의 진실은 자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과의 고군분투, 자연과의 조화로움…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고 소통할 수밖에 없는 운명.

일부 화가는 자연을 ‘배경’으로 전락시켜 인간의 위대함을 강조하기도



클로드 모네의 그림 속 인물들은 자신을 자연 속에 조용히 숨기고 있다. <양산을 든 여인>에서 여인의 양산과 치맛자락, 희미한 미소까지도 자연의 일부로 녹아 들어 스며드는 듯하다.

“색채는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며,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 클로드 모네

오래전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갔을 때, 그 거대한 미술관 안에 윌리엄 터너의 전시관이 무려 10개가 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터너의 그림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터라, ‘무엇이 영국인들로 하여금 이 단조로운 풍경화에 열광하게 만드는가’를 무척 궁금하게 여겼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나라에서 태어나 온갖 미디어가 전시하는 현란한 빛깔들의 향연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터너의 풍경화가 무척 단조로워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셔널 갤러리의 온갖 화려한 그림들을 보고 난 뒤라 테이트 브리튼의 터너 전시관은 유난히 ‘모노톤’으로 느껴졌다.

태풍 속에서 표류하는 선박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거대한 구름 속에서 간신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햇살. 그런 ‘당연해 보이는 풍경’을 별다른 꾸밈없이 차분하게 담아낸 터너의 그림은 내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이다. 



풍경 속에 녹아 드는 인간 


윌리엄 터너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렸다.

그런데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윌리엄 터너 특별전에서 영국인들은 한결같이 그림 하나하나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내 눈에는 서로 엇비슷해 보이는 터너의 풍경화가 영국인들의 눈엔 저마다 풍요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그 미술관에서 나는 ‘터너의 그림’에 감동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터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들의 눈에는 보인다는 것. 나에게는 단조로워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경이로워 보인다는 것. 타인의 눈에 비친 세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을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좋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영국의 가장 혹독한 계절, 겨울을 제대로 체험해보고 나서야, 나는 영국인들이 터너에 열광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윌리엄 터너, <바다 위의 어부>, 1796

터너는 단지 ‘자연’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의 인간’을 그린다. 그는 일찍이 깨달았다. 자연을 ‘당연한 조건’으로 인식하지 않고, ‘특별한 풍경’으로 인식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의 눈’임을. <바다 위의 어부> 같은 초기작에서 그는 거대한 폭풍우와 싸우는 인간을 그린다.

이 그림에서 인간의 얼굴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폭풍 속에서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있을 어부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의 인간’이라는 테마는 터너의 작품세계 전체를 통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비바람 속의 어부, 눈보라 속의 나그네, 혹한의 겨울 험준한 산맥을 넘는 군대 등을 수없이 그림으로써 ‘자연’을 통해서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의 운명을 그린 것이 아닐까.

초겨울부터 늦겨울까지, 영국의 가장 궂은 날씨를 경험해 보고 나서야 나는 터너의 그림이 얼마나 ‘영국적’인 것인가를 깨달았다. 오후 3시만 되면 벌써 해가 지는 혹독한 영국의 겨울, 일기예보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어구는 바로 “내일은 폭우와 함께 강풍(Heavy rain and gale)이 불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영국인들은 터너의 그림을 통해 자연과 싸우며 인생의 진실을 배우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닐까. 터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엄혹한 자연 환경 속에서 매번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때로는 자연과 싸우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는 것만 같다.

 터너는 그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렸던 것이다. 



색채로 자연과 인간을 표현하다

클로드 모네, <양산을 든 여인>, 1886

터너가 자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주로 그린다면, 모네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평화롭게 스며드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터너의 인물들이 ‘전투 중인 군인’ 같다면, 모네의 인물들은 ‘뱃놀이하는 나그네’같다. 터너는 ‘자연과 인간의 멈출 수 없는 투쟁’을 통해 인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모네는 꽃이나 나무처럼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긍정하는 인간의 겸허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나는 인간의 모습이 배제된 모네의 수련 연작도 좋지만, 아직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이 남아 있는 초기작들에 더 따스한 눈길이 가곤 한다. 수련 연작이 모네가 지베르니라는 아름다운 고장에서 자연 속으로 귀의한 후의 철학적 탐구를 담고 있다면, 모델의 모습들이 아직 살아있는 초기작에서는 ‘자연 속의 인간’의 모습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모네의 인물들은 자연 속에서 결코 튀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자연 속에 조용히 숨기는 인물들은 모네의 눈에 비친 세상의 일면을 나타낸다. <양산을 든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 여인의 양산과 치맛자락과 희미한 미소까지도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어 스며드는 듯하다.

모네는 명확한 경계선이 아니라 색채 그 자체로 존재의 테두리와 양감 모두를 표현하려 했다. 그는 사물에 깃든 색채만으로 자연과 인간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경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모네는 이렇게 말했다. “색은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 행복과 그 집착과 그 고통이 모여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들이 태어난 것이다. 



풍경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인간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치밀한 관찰로 미세한 풍경의 변화까지 화폭에 담았다. 베르메르가 남긴 유일한 풍경화인 <델프트의 풍경>.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화가를 두려워한다.”
-빈센트 반 고흐


니체는 <즐거운 지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자연을 충실하게. 그러나 어떠한 속임수로 자연의 여신을 예술의 제약 속에 굴복시킬 수 있으랴. 자연의 가장 조그마한 편린조차 여전히 무한한 것을!” 니체는 인간이 그리기엔 자연이 너무도 경이롭고, 숭고하며, 무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고도 했다. “따라서, 그가 그리는 것은 자연 속에서 그가 좋아하는 것일 뿐. 그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가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 그려낼 수 있는 것뿐이다.” 니체는 익숙한 것, 잘 아는 것,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한 것에만 눈을 돌리는 인간 의식의 게으른 관성을 질타한다.

그에게 즐거운 지식은 그 모든 인식의 관성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보이는 대로’만 그리는 예술은 진정한 창조성을 담아낼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우리가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들조차 더없이 낯설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마저 마음의 눈으로 그림으로써 ‘뻔히 보이는 것들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위대한 예술의 공통점일 것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델프트 풍경>, 1659∼60

베르메르가 남긴 유일한 풍경화는 바로 그가 오랫동안 살아온 델프트의 모습이다. 그는 빠른 시간 안에 자연의 특징을 포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관찰해야만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미세한 풍경의 변화까지 포착해내려 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치밀한 관찰이야말로 최고의 상상력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매일 보면서도 눈치 채지 못하는 일상의 풍경 속에서 그는 최고의 것들을 이끌어낸다. 베르메르를 통해 진주 귀걸이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며, 평범한 와인잔은 남녀 사이의 은밀한 감정의 교류를 매개하는 뜨거운 상징이 된다.

그리고 베르메르를 통해 평범한 항구도시 델프트는 기념비적 장소이자 어엿한 ‘예술의 대상’이 되었다. <베르메르의 모자>(추수밭, 2008)에서 역사학자 티모시 브룩은 이렇게 말한다.

“베르메르의 시대는 군대가 시민사회로, 군주제가 공화제로, 가톨릭이 칼뱅주의로, 상점이 회사로, 제국이 국가로, 전쟁이 교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티모시 브룩은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드러난 섬세한 소품들을 통해 17세기 유럽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유추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작품 속 평범한 도시가 기념비적 장소 되기도 



제임스 휘슬러의 풍경화는 찰나의 순간적 관찰을 통해 가능한 속도의 미학을 제시한다.


베르메르가 그린 델프트의 남동쪽 항구를 따라 쭉 내려가면 라인강에 도착할 수 있다. 화면 왼쪽의 빨간 벽돌 지붕은 바로 동인도회사의 사무실과 창고 지붕이다. 베르메르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델프트 항구의 모습을 통해 동양의 문물이 빠르게 서양으로 유입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동인도회사의 역사적 중요성을 포착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서양 문물교류의 첨단을 달리는 나라였고, 데카르트는 네덜란드를 일컬어 ‘가능성의 집합소’라 격찬하기도 했다. 델프트의 풍경에 포착된 동인도회사는 바로 네덜란드의 번영과 동서양의 활발한 문물교류를 상징하는 역사적 시공간이다.

이 밖에 베르메르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보여준 수많은 소품은 작품의 주요 모델들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의 중국산 도자기는 서양 사람들이 얼마나 동양의 문물에 매혹되었는지를 증언하는 미장센이고, <지리학자>에 묘사된 세계지도는 자신의 좁은 방 안에서 광활한 세계의 이모저모를 상상하는 인간의 꿈과 상상력을 되새기게 한다.

베르메르의 치밀한 묘사를 통해 드러난 ‘사물들의 진면목’은 ‘화가의 눈’이 익숙하고 평범한 세계를 얼마나 위대하고 경이로운 것으로 만드는지를 증명해준다. 화가 틀루즈 로트렉은 이렇게 말했다. “보는 능력을 부여받는 인간은 극히 적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부여 받은 인간은 더더욱 적다.” 베르메르는 바로 그 ‘보는 능력’과 ‘표현하는 능력’을 모두 부여받은 극소수의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제임스 휘슬러,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떨어지는 로켓>, 1875

베르메르의 풍경화가 느리고 섬세한 관찰의 미학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면, 제임스 휘슬러의 풍경화는 찰나의 순간적 관찰을 통해 가능한 속도의 미학을 제시한다.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을 비롯해 그때그때 변해가는 도시의 순간적인 풍경을 담아낸 휘슬러의 작품들은 특히나 그렇다.

인물화에서는 지극히 정적이고 섬세한 표현을 즐겼던 휘슬러는 풍경화에서는 빛과 온도와 바람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풍경의 찰나성에 주목하곤 했다. 이것은 어쩌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인간과 ‘의지’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델들을 오랫동안 서 있게 해야만 제대로 그릴 수 있었던 휘슬러의 인물화와 달리, 도시의 풍경, 게다가 밤거리의 풍경은 결코 통제나 계산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모델에게 자신이 엄격하게 선택한 의상과 장시간의 정적인 포즈를 요구했던 휘슬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풍광 앞에서는 속수무책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도시와 자연, 그 속의 인간을 묘사하면서 바로 그 ‘변화’의 속성 자체를 적극 활용한다. 풍경 속에서 매우 작지만 또렷하게 존재하는 베르메르의 인물들과 달리, 휘슬러의 인물들은 거의 경계선 자체가 모호하다.

도시의 밤풍경 속에서 빠르고도 희미하게 스쳐가는 인물들의 실루엣을 그려내는 휘슬러의 몸짓은 ‘나타남’과 ‘사라짐’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다. 인물들은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환영처럼 아련하게 존재한다.


인물들은 강한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아스라하게 흔들리며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이 그림에서 실체와 그림자는 분리되지 않는다. 실체 자체가 그림자인 듯, 인물들은 이 세상에 존재함과 동시에 곧 사라지려 하고 있다. 



‘장면’과 ‘순간’을 담은 시간의 예술

당시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평론가 러스킨은 이 그림을 향해 “대중의 얼굴에 물감을 마구 던졌다”는 식으로 맹비난을 퍼부었지만, 자존심 강한 휘슬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러스킨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티치아노와 보티첼로를 좋아했던 러스킨의 고전적 감각 속에서 휘슬러의 작품은 너무도 빠르게, 대충대충, 어떤 주제의식이나 윤리감각도 없이 그린 졸작으로 비쳤다. 사실주의를 신봉해온 러스킨은 예술의 사회적 의무,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술을 위한 예술’ 그 자체에 복무하는 휘슬러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림을 완성하는 데 하루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휘슬러의 의기양양한 진술에 러스킨의 변호단은 아연실색했다. 그들에게 예술이란 최소한 몇 달,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간신히 완성할 수 있는 무엇, 예술가의 최선의 정성을 쏟아부어야만 완성 가능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러스킨의 눈에 비친 휘슬러의 그림은 매우 불성실하고, 오만방자하며, 무책임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휘슬러는 작품을 빨리 끝냈다고 해서 그 ‘열정’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며, 예술가의 표현은 그 완성의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평생 갈고 닦아온 내공이 그림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재판은 휘슬러의 극적인 승리로 일단락되었지만, 정작 손해배상금은 기각되었기 때문에 휘슬러는 끔찍한 파산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휘슬러의 작품을 둘러싼 이 기념비적 논쟁은 ‘예술을 위한 예술’과 ‘사회참여를 위한 예술’의 대립을 확실히 대중의 마음에 각인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휘슬러는 자신의 작품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이며 ‘순간’을 담은 시간의 예술, 즉 음악적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싶어했다. 야상곡(nocturne)이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연작을 통해 그는 그림 자체가 음악이 되는 경지, 찰나의 변화와 순간의 움직임이 담겨 있는 그림의 ‘시간성’을 포착하고자 했던 것이다.

풍경이 인간을 압도하는 그림, 또는 풍경만 있는 그림은 많지만 인간이 풍경을 압도하는 그림은 드물다. 주변의 풍경마저 모두 ‘인물화’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압도적인 주인공들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속 그녀 자신의 모습이다.

 <모나리자>는 인물의 모공 하나하나까지 보일 듯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그토록 위대한 자연이 그야말로 ‘부수적인 배경’으로 축소되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예술 자체가 자연의 모방이라는 세계관을 오랫동안 고수해 온 서양화의 전통 속에서 자연을 ‘배경(background)’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인간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모나리자>는 단지 모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의 승리를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풍경을 압도하는 인물, 자연을 압도하는 인물은 화가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도전적인 테마가 된 것이다. 



풍경을 압도하는 인간 



뭉크의 <이별>은 그의 비관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뭉크, <이별>, 1896

뭉크의 <이별>은 주변의 모든 풍경을 무화(無化) 시켜버리는 한 인간의 압도적 슬픔을 그려낸다. 서로 헤어지는 두 사람이 주변의 풍경 전체를 삼켜버리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여인은 남자의 아픔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매정하게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남자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의 상처를 곱씹으며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남자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른다. 이별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어버린 듯하다. 남자는 흘러나오는 피를 막으려는 듯 애써 가슴을 손으로 가려보지만, 흐르는 피를 멈출 수 없다. 그는 어떻게든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피만큼이나 검붉은 색채를 띤 거대한 식물이 그의 앞을 꼿꼿이 가로막고 있다. 그는 이별의 상처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화면을 벗어나려 하는 여인은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그녀의 드레스는 마치 천사의 날개자락이라도 되는 듯이 가볍게 펄럭인다. 그녀에게는 이별이 해방이자 자유다. 이별의 칼날을 남자의 심장에 꽂아 넣자, 그녀는 행복해지고 평화로워진 것 같다. 고통스러운 사랑으로 인한 상처로 여성혐오증까지 앓았다는 뭉크의 비관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남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여자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는 듯 보인다. 한때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이 장소는 남자가 흘린 피로 곧 검붉게 물들어버릴 것만 같다. 때로는 인간의 고통이 자연을 삼켜버릴 듯 크고 깊고 치명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떤 슬픔은 주변의 환경마저 고통과 우울의 색채로 물들인다. 



윌리엄 워터하우스, <레이디 오브 샬롯>, 1888

오직 자신의 방에 걸린 거울을 통해서만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끔찍한 저주에 걸린 샬롯 섬의 아가씨. 어느 날 거울을 통해 기사 랜슬롯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 여인은 성주의 딸로 태어났지만, 안타까운 저주에 걸려 ‘진짜 세상’을 볼 수 없다.

그녀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방 안의 수정거울을 통해서다. 날것의 세상이 아닌 거울을 통해 반사된 간접적 이미지를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감옥에 갇힌 것보다 더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게 한다.

그녀가 만약 자신의 거처를 벗어나 ‘진짜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면, 그녀는 죽음이라는 또 다른 형벌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기사 랜슬롯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모르지만, 그녀는 그를 안다. 그가 그녀를 모를지라도, 그녀는 변함없이 그를 사랑할 것이다 



전설이 탄생시킨 명화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이 아더 왕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시 <레이디 오브 샬롯>은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일방적인 시선은 ‘그는 나를 모르고, 나만이 그를 알고, 느끼고, 사랑한다’는 비극적 상황을 낳는다. 결국 거울을 통해서만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녀는 용기를 내어 섬을 탈출한다. 하지만 결국 사공도 없이 불안하게 떠도는 나룻배 위에서 여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의 시신이 랜슬롯이 살고 있는 캐멀롯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녀는 죽은 상태였다. 랜슬롯은 그녀가 왜 이곳으로 떠내려 왔는지,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의 죽은 얼굴뿐이다.

랜슬롯은 체념하듯이 중얼거린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아가씨로군.” 그는 그렇게 홀로 중얼거려보지만, 이미 목숨을 잃은 그녀의 귓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1809~18)이 아더 왕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시 <레이디 오브 샬롯>은 문학작품을 즐겨 읽으며 작품의 소재를 찾았던 화가 윌리엄 워터하우스에게 또 한번 영감을 준다.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한참을 주저앉아 숨을 골라야 했다. 그때는 테니슨의 시도 모르고, 워터하우스가 어떤 화가인지도 몰랐지만, 무작정 이 그림이 좋았다.

나중에 테니슨의 시와 워터하우스의 그림, 그리고 아더 왕의 전설 사이의 연관관계를 알고 나자, 이 그림은 일종의 낭만적 수수께끼가 되어 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이 그림은 질문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죽음을 향하는 길이라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몹쓸 저주에 걸린 샬롯은 차라리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더 오래 목숨을 보전하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인의 표정은 단호하다. 그녀는 자기 앞에 닥칠 불운을 알고 있다. 그녀가 성을 뛰쳐나온 것은 ‘사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진짜 세상’을 맛보고 싶은, 멈출 수 없는 열망. 사랑은 그 살아 움직이는 진짜 세상의 일부였다. 그녀는 죽기 전에 저 모든 자연의 축복을 실컷 누렸을 것이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상쾌한 오후의 햇살, 아슴푸레 밝아오는 여명의 시간, 꽃들과 나무와 흙의 향기. 그 모두가 그녀가 처음 접해보는 진짜 세상의 빛깔과 향기였을 것이다.

그녀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진짜 세상’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누군가가 자기를 구해주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설사 그 끝이 죽음일지라도 스스로 떨쳐 일어나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녀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더없이 소중한 그 무엇을 지켜냈다. 자연과 인간의 대화, 자연과 인간의 소통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눈부신 축복이기에.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9.17.


10. 캔버스에 숨은 또 다른 언어  -빛과 여백이 존재와 진실을 말한다 


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한 사물과 사건을 포착

… 시각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캔버스의 허구 통해 상상력 키울 수 있어



빛은 스스로 형체를 갖지 않는다. 타자를 비춤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사물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래서 빛의 마법은 변화무쌍하다. 이런 빛의 매력은 수많은 화가를 매료시켰다. 조르주 라투르,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1630~1635)


1. 그림, 빛과 존재의 어우러짐 - 조르주 라투르, 모네

“나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붓으로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클로드 모네

빛은 특정한 형체가 없다. 하지만 형체를 지닌 모든 것에 ‘진정한 형체’를 부여한다. 스스로는 일정한 모양을 지니지 않으면서, 자신이 만나는 모든 것에 형태와 빛깔을 부여하는 빛의 힘은 끊임없이 화가들을 매혹시킨다. 빛은 스스로를 와해시키면서 대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한다.

빛이 흩어지고 무너지고 바스러지는 동안, 대상은 새로이 빚어지고 환해지며 도드라진다. 우리가 보는 것은 빛과 존재의 어우러짐이다. 존재는 때로는 빛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때로는 빛을 온몸으로 밀어내면서, 빛과 대화하고 춤추고 마침내 하나가 된다. ‘빛’ 따로 ‘존재’ 따로는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빛과 존재의 어우러짐은 볼 수 있다.

화가들은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빛과 존재의 어울림을 포착한다. 라투르의 그림은 오직 희미한 촛불 하나에 의지해 한 인간의 깊은 내면의 울림까지 담아낸다. 해골을 손에 쥐고 등불을 응시하는 막달레나의 모습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죽음을 성찰하며 구원과 깨달음의 빛을 향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라투르가 그린 것은 오직 한 여인이지만 그의 화폭에 드러난 영상은 깨달음의 빛을 향해 끝없이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의 꿈이다.

모네는 빛과 온도, 습도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는 루앙 대성당의 위용을 연작으로 표현하여 마치 붓으로 ‘움직이지 않는 동영상’을 그리듯 재빠르게 빛과 사물의 어울림을 화폭 위에 담아냈다.

오직 연작으로만 표현할 수 있었던 ‘빛과 사물의 대화’ 속에서 실제로 드러난 것은 ‘원래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가’가 아니라, 똑같은 사물이 빛의 변화에 따라 얼마나 천변만화한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 그 ‘무한한 변신의 가능성’이었다.

사람들은 모네가 생 라자르 기차역을 그릴 때, 루앙 대성당을 그릴 때, 마침내 수련 연작을 그릴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차역, 내가 알고 있는 대성당, 내가 알고 있는 수련’의 참모습을 재조정해야 했을 것이다.


때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괴물처럼 울부짖고, 때로는 봄 햇살의 싱그러운 꽃들처럼 빛나는 대성당이라니. 모네의 대성당 연작을 보고 있노라면 대성당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표정과 몸짓과 혈색을 지닌 존재로 성큼 다가온다. 



빛의 움직임으로 태어난 ‘동영상’ 



모네는 ‘빛의 마술사’라 할 만큼 빛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의 순간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사물을 ‘있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리기 때문이다. <생 라자르역 연작>(1877)

나는 모네의 생 라자르 기차역 연작을 무척 좋아한다. 실제로는 매우 평범했을 대도시의 기차역이 한 화가의 집요한 탐구정신으로 변화무쌍한 빛과 색채의 축제장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여행사진을 찍을 때 나는 ‘빛의 변화’가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 ‘이상적인 빛’을 상상하고 ‘왜 빛이 이거밖에 안되지?’ 혹은 ‘왜 이렇게 지나치게 밝지?’ 이런 식으로 ‘자연의 빛’에 불평을 해댔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자연의 빛을 재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네는 그 빛의 짜증스러운 변화무쌍함조차 위대한 예술의 재료로 삼았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아주 적당한 분량과 각도로 빛이 비춰주지 않지?’라고 생각했지만 모네는 자연의 빛을 그야말로 파도를 타는 윈드서퍼처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받아들였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는 때로는 빛의 뜨거움, 변덕스러움, 때로는 빛의 결핍까지도 속속들이 견뎌야 했을 것이다.

모네는 생 라자르 역 근처에 작업실을 얻음으로써 한 공간을 매일 관찰하며 변화하는 인상을 꾸준히 관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모네는 화가의 ‘관찰력’이야말로 ‘상상력’ 못지않은 재산임을, 아니 관찰력이야말로 상상력의 핵심임을 증언하는 화가다.

매일 거울로 보는 내 자신의 얼굴조차 하루에도 수없이 미세하게 바뀌는데,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 얼굴은 대부분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람의 인상’이라고 기억하는 이미지는 하나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과 온도는 물론 그날의 분위기, 말투, 사건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그 사람다움’의 이미지는 하나로 고정될 수 없을 것이다.

모네는 사물이 본래 지닌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빛과 주변환경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찰나의 인상’을 표현함으로써, 오직 하나뿐인 본질로 환원될 수 없는 사물의 생생한 차이를 복원해냈다. 사물들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사물 ‘안에’ 내재된 차이를 포착하여 생생한 이미지로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모네가 이뤄낸 미술의 신기원이었다. 



‘보이는 대로 그린’ 모네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1894)은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루앙 대성당의 위용을 화폭에 담았다. 고정된 사물의 변화하는 모습이 마치 동영상의 정지화면처럼 이채롭다.

네에게 ‘빛의 효과’는 묘사의 대상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루앙 대성당 시리즈는 같은 대상을 여러 가지 다른 빛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묘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빛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우리가 대상을 인식함에 있어 ‘빛’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나뭇잎은 초록색, 나뭇가지는 갈색, 하늘은 파란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빛깔의 이미지는 순간순간의 빛의 운동이 만들어낸 우연한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네는 온몸으로 증명한다.

똑같은 대성당 건물이 날씨에 따라 빛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실체로 ‘보이는’ 현상을 모네는 그려낸다. ‘있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림으로써 ‘주체가 대상을 본다’는 패러다임이 아니라 ‘대상이 주체에게 보인다 또는 나타난다’는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우리의 방식대로 본다’는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사물이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모네의 그림이 주는 충격의 본질 아닐까.

모네가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인상만을 그려내고 대상의 견고한 실체를 간과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현재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예시하며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사조로 자리매김했다. 인상주의라는 말 자체 속에 어떤 비하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대상의 본질’을 ‘주체’가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이야말로 합리적 이성의 오만 아닐까. 인간은 대상의 본질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근대적 합리주의의 불가능한 야망이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물의 인상, 언제 변해버릴지 모르는 대상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인상’을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마음의 화폭’에 담는 것. 그것이 예술의 아름다움이니까. 





2. 그림, 빛과 존재의 어우러짐 - 조르주 쇠라, 요하네스 베르메르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그림들이 있다. 쇠라의 그림이 내겐 그랬다. 점묘법을 본격적으로 실험한 이후에 그려진 쇠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눈에 초점이 흐려지면서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이나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림 속 색색의 점들 하나하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망막에 비친 색채들의 황홀경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 모두를 보고 있다’는 답이 맞을 수도 있고, ‘그중 어느 것도 보고 있지 않다’는 답이 맞을 수도 있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의 몸 전체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행동이나 말하는 법, 혹은 그의 영혼을 보고 있는 것일까? 답은 ‘너를’ 보고 있다고 할 때 ‘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우리는 결코 대상을 완전히 바라볼 수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것, 내가 포착할 수 있는 것,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만을 본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

“나무는 녹색으로 칠해야 해요. 하늘은 파란색으로 칠하고요. 자동차는 빨간색으로 칠하세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나뭇잎은 보라색이 아니잖아요!”

이런 방법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색채의 통일된 정보를 각인시킬 수는 있지만, 망막에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풍부한 색채의 움직임에 대한 감수성을 빼앗아 가고, 색채가 지닌 본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캐롤린 블루머, <시각적 지각의 원리 The Principles of Visual Perception>(1976)]
 



현미경이거나, 망원경이거나 



쇠라는 그림에 과학적 원리를 담았다. 작은 점(픽셀)들의 집합으로 근사한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오늘날의 디지털광학기기와 디스플레이 가전제품의 원리와 동일한 방식이다. <화장하는 여인> (1889~1890)

쇠라의 그림에는 ‘과학자로서 화가’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는 가까이서 보면 가장 기본적인 원색에 가까운 점들을 ‘눈’이라는 최고의 광학기계로 사후적으로 합성함으로써 ‘본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눈동자’라는 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재배치되는 이미지의 향연을 창조해냈다.


영국의 화가 컨스터블은 그림 또한 과학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림 자체가 “자연의 법칙에 대한 질문의 하나”로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풍경화 또한 자연철학의 한 갈래이고 “그림이란 자연철학의 실험”이라 생각했던 컨스터블의 말대로, 과연 쇠라는 그림을 통해 일반인도 ‘색채의 과학’, ‘빛의 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쇠라의 명작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언제 봐도 경이롭고, <아니에르 섬의 일요일>도 아름다우며, <서커스>도 멋지지만, 나는 <화장하는 여인>을 유난히 좋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장면 하나만으로도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듯한 경이로움이 이 그림에 서려 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여인의 손끝에 들린 분첩에는 오늘밤을 향한 설렘, 조금 있으면 더욱 아름다워질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 서려 있다. 지극히 단순한 원색의 점들만을 이용해 이토록 미묘하고 섬세한 파스텔톤의 색감을 화면 전체로 번져 가게 한 쇠라의 솜씨는 언제 봐도 경이롭다.

베르메르는 그림을 통해 증명한다. 창가에 스며드는 소량의 햇빛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는지. 베르메르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빛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나는 그 빛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주고 싶다.

‘존재의 비밀을 드러내는 빛’이라고.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마음먹은 행동’을 백주대낮에는 마음껏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베르메르의 <러브레터>(1669)에서 하녀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비밀스러운 연애편지를 읽는 주인마님의 상기된 얼굴은 얼마나 설렘으로 가득했던가.

이런 그림에서 ‘화가의 눈’은 마치 베르메르의 그림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진주 귀고리 소녀>는 모델이 누구인지, 그 모델이 정말 실재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베르메르의 빛이 비춰주는 존재의 비밀 자체가 수백 년 동안 아직 드러나지 않은 셈이다. 



과학으로 재해석된 은밀한 상징성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을 활용해 관람자가 마치 타인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여인들의 사생활은 관객에게 은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러브레터> (1669), <편지를 읽는 여인> (1666)

베르메르의 인물들은 모두 창가의 빛이나 키 작은 등불에 의지하여 자신의 모습을 신비로이 드러낸다. 면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리고 일부러 엿보지 않으면 포착하기 불가능한 장면들이다. 베르메르는 그들이 품고 있는 사생활과 욕망의 비밀을 모두 드러내지 않고 조금씩은 남겨둠으로써, ‘비밀의 여백’을 간직하게 하여 관객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만든다.

베르메르의 <편지를 읽는 여인>에서 내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피사체의 희미하게 붉어진 볼을 ‘감추는 듯, 드러내고 있는’ 수많은 미장센이다. 붉은색 커튼은 마치 집안에 갇혀 있기 싫다는 듯, 더 많은 빛을 조금이라도 더 집 안으로 빨아들이고 싶다는 듯이 창문 위쪽으로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고, 열정과 관능으로 설레는 그녀의 마음을 대신하듯 선연하게 붉은 카펫은 물결치듯 구겨져 있다.

그 위로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이루지 못한 열망’을 상징하듯 와글와글 모여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잘 익은 올리브색으로 싱그럽게 빛나는 커튼이다. 커튼은 마치 ‘편지를 읽는 평범한 여인’을 무대 위의 여주인공처럼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녀는 이 커튼에 의해 ‘어지러운 마음’을 발각당한 것 같다. 누군가 커튼을 와락 열어젖힌 것처럼 보인다. 커튼 뒤에 누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준다. 현대과학의 힘은 이 커튼 뒤에 숨어 있었던 ‘큐피드’를 밝혀냈다. <편지를 읽는 여인>을 엑스레이로 투시해본 결과, 놀랍게도 포동포동한 아기 천사가 큐피드의 화살을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는 것이다.


베르메르는 분명 큐피드를 그렸다가 지웠다. 그 귀여운 큐피드를 지워버렸기에 이 그림의 은밀한 상징성은 피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물은 그녀의 현존을 온 힘을 다해 드러내려 하는 듯 보인다.

살짝 열린 창문마저 그녀의 ‘붉어진 볼’을 비스듬히 비춘다. 편지 위의 글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모든 존재를 빨아들이고 있는 저 신비로운 편지에는 분명 금지된 사랑의 언어가 넘실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신을 집중해서 그림의 대상을 바라보고, 그 다음엔 팔레트를 주시하고, 세 번째로 캔버스를 주시한다. 그 캔버스는 보통 몇 초 전쯤에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발신되었던 메시지를 그때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도중에 한 우체국을 거쳐 전신약호로 송신되어, 빛으로부터 물감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메시지는 캔버스 위에 암호문으로 도달한다. (…) 그 빛은 이제 자연의 빛이 아니라 예술의 빛인 것이다. [윈스턴 처칠, <과거로서의 그림 Painting as a pastime>(1950) 중에서] 





3. 존재의 어둠을 비춰주는 빛 - 고흐, 에드워드 호퍼 


고흐의 빛은 강렬하다. 화폭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실 정도로 빛에 대한 고흐의 표현력은 극단적이다. 고흐의 작품은 ‘어둠’이 없을 정도로 온통 빛으로 가득하다. <씨 뿌리는 사람>(1888)

“나는 균형이 잡힌 천진무구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친 사람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싶다.” -앙리 마티스

존재가 본래부터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빛뿐 아니라 ‘존재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빛’을 응시하는 화가도 있다. 우리는 화가의 그림을 통해 ‘내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가’, ‘내가 무언가를 보면서도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하늘색, 갈색, 노란색, 주홍색 그 모든 빛이 섞여 미묘한 빛을 내는 고흐의 땅은 언뜻 보면 바다같기도 하고, 하늘같기도 하고, 하늘빛이 가득 비추어 새싹마저 하늘색으로 물든 상상의 빛같기도 하다. 고흐의 눈에는 이 씨 뿌리는 사람의 묵묵한 노동으로 인해 황갈색 땅 빛마저 마술 같은 하늘빛으로 비추인 것이 아닐까.

고흐가 그린 땅은 마침내 꿈을 심는 영혼의 밭, 세상의 빛을 받아들이는 마음밭, 이 세상 모든 어두운 곳을 비추고 싶은 염원을 담은 예술의 밀밭이 된다. 고흐는 우리가 더 편리한 문명을 택했기에 짓밟아버린 땅이 지닌 본래의 무지갯빛 희망을 되찾아준다.

걷기 대신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에 밟을 수 없는 땅의 온기, 땅 위가 아닌 아파트나 고층건물 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없는 땅의 향기, 더 이상 땅에서 나오는 먹을 것들을 직접 기르고 캐내어 먹고 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녹아 있는 야성의 열망을 되찾아준다.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은 짓밟고, 짓밟고, 짓밟아왔다./

모든 것은 상업으로 메말라 있고, 고역으로 더럽혀졌다./

인간의 때가 묻었으며, 인간의 냄새를 풍긴다./

이제 땅은 헐벗었지만 우리는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연은 결코 황폐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물의 깊은 곳에 가장 소중한 생기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빛이 서쪽 암흑으로 사라진다 해도/

오, 아침이 동쪽 갈색 가장자리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에

 -제라드 맨리 홉킨스, <신의 장엄> 



허구를 진실로 바꾸는 마술 



붉은 코르셋을 입고 고개를 떨군 채 편지를 읽는 여인의 얼굴은 짙은 그림자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럼에도 관객은 외로움과 절망의 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정갈하고 밝은 배경과 얼굴의 그림자를 대비시켜 고독감을 극대화했다. 에드워드 호퍼, <호텔 룸>(1931)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인간이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을 들추어낸다. 사무실에서, 호텔방에서, 고층건물의 후미진 방한가운데서, 한밤중 거리의 술집에서, 그 어디에 있어도 뼈아픈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스민 우울의 빛을 그는 쉼 없이 포착해냈다.

<호텔 룸>은 극도로 정보에 대한 설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바로 그 생략과 절제 때문에 더 깊은 고독의 정서를 이끌어낸다. 그림 속의 그녀는 아무래도 버려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주려고 했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 자신이 느끼고 있는 절망감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에게 버려진 것이 아닐까.

그녀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기다림마저 포기해버렸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그녀가 들고 있는 저 ‘종이조각’을 통해 이별을 통보 받았는지도 모른다.

눈도 코도 입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녀는 외로움과 절망과 기다림에 지쳐버린 것 같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던, 혹은 이미 만났으나 그녀를 버린 그 사람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호텔 방안은 화사하고 현란한 색채로 가득하지만, 그 화려함과 밝음 때문에 오히려 그녀의 어두운 얼굴은 도드라져 보인다.

그녀는 ‘비밀스러운 사랑’을 위해 예약된 듯한 이 호텔방에서 그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의 고독에 질식되어가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자연광이 느껴지지 않는다.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다.

이 그림에 밝은 색채를 부여하는 것은 인공조명일 것이다. 너무도 밝은 이 조명 아래 가차없이 내동댕이쳐진 그녀의 벗은 몸은 내일도 모레도 그가 오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하다.

장 에티엔느 리오타르는 <회화의 법칙과 원리>에서 그림만이 지닌 마법적 효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림은 가장 놀라운 무당이다. 이 무당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명백한 허위를 순수한 ‘진실’ 그 자체인 것처럼 믿도록 설득할 수가 있다.”

미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이로운 빛의 세계는 과학적이나 현실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가장 명백한 허위’일지도 모르지만 그 허위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마음은 ‘순수한 진실’을 창조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화폭 위의 암호들을 해독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그림에 필연적으로 깃드는 환영의 베일 뒤에 있는 모호함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는 세상’의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다.

화가가 설령 ‘빛의 부재’를 그린다 해도, 빛은 작품의 가장 소중한 주제가 된다. 빛의 생로병사가 곧 작품의 시작과 끝이 될 것이다. 화가에게 빛은 때로는 언어처럼 익숙하고, 때로는 장애물처럼 성가시고, 때로는 구원의 손길이 되어 화가를 우울의 늪에서 구원해준다.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 월간 중앙 . 2015. 10.17.

 



11.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예술 - 몸을 그리고, 다듬고, 빚어내다 


순간의 몸짓과 표정에 생명을 주어 불멸의 예술로 승화

… 자신의 절망적 상황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예술혼




찰나의 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말 평범한 장면에는 인체의 아름다운 순간이 포착돼 있다. 이 순간의 섬세함은 예술을 통해 영원한 생명력을 갖는다. 에드가 드가, <푸른 옷을 입은 무희들>(1895) / 사진제공·정여울



우리가 인체에서 찬미하는 것은 단순히 그 아름다운 물질적 형태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입니다. 내부로부터 빛을 뿜어내는 듯이 보이는, 내면의 불꽃입니다. -오귀스트 로댕, <예술의 숲> 중에서

#1. 인간의 몸, 끝없이 경이로운 오브제

멀리 여행갈 때마다 그 지역의 박물관을 꼭 방문하는 나는, 가끔은 틀에 박힌 풍경화나 초상화에 식상해질 때가 있었다. 성경의 익숙한 테마를 반복하는 종교화들도 워낙 모든 박물관에 빠짐없이 소장되어 있어 엄청난 새로움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인간의 몸’을 형상화한 그림이나 조각들은 아무리 많이 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완벽한 균형미를 추구한 작품들은 오히려 조금씩 세월의 흔적에 따라 부서지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인해 신비로운 감동을 준다.

 ‘완벽하지 못한 현재’의 모습으로 오히려 ‘한때 완벽했을 그 몸의 실루엣’을 상상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을 경험하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로댕이나 드가의 인체 조각상들은 인간의 움직임에 무한한 호기심을 느꼈던 작가들의 끝없는 열정을 환기시킨다.

때로는 일그러진 얼굴로 참혹한 고통을 표현하는 모습들, 때로는 찰나의 아름다운 춤사위로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나마 붙잡으려는 듯한 여인의 모습들은 언제 봐도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공간에 그릴 수 있는 여성의 몸의 무한한 형태를 지칠 줄 모르고 형상화한 수많은 드가의 작품들 중에서도 나는 <푸른 옷을 입은 무희들>을 가장 좋아한다. 무대 뒤의 무용수들은 아직 어떤 특별한 동작을 취하고 있지 않다.

<스타> <인사하는 무희> <공연의 끝> 등 아름다운 발레 동작을 취하고 있는 무희들을 그린 드가의 수많은 걸작이 있지만, 나는 이 그림을 통해 드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 그림은 어떤 신비로운 정중동을 포착하고 있다. 특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어딘가 움직이는 것 같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면 또 어떤 미묘한 움직임이 존재하고 있다.

무희들이 입은 푸른 드레스는 단지 의상이 아니라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부드러운 무게중심처럼 느껴진다. 관람객은 이 신비로운 푸른빛의 부름에 이끌려 무대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다.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주는 특정한 동작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어떤 동작을 취할지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그려보는 여인들의 설렘과 떨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동작’이 되지 못한 미묘한 움직임, 정지와 운동 사이에 있는 그 무엇, 움직임도 움직임이 아닌 것도 아닌 그 사이의 어떤 순간. 이 그림의 매력은 어떤 불철저함에 있다. 무대 뒤편의 배경은 마치 쇠라의 점묘법처럼 다양한 색채를 머금은 수많은 점으로 아스라하게 표현되었고, 무희들의 실루엣은 분명한 윤곽선이 아니라 희미하고 뭉툭한 붓터치로 ‘선’이라기보다는 ‘면’ 전체로 표현되었다. 



찰나의 표정과 몸짓에 영생을 불어넣다 




육체의 껍데기를 벗고 영원한 자유를 얻는 순간의 환희에 가득 찬 남자의 표정과 몸짓은 죽음의 냉기가 아닌 불멸의 뜨거운 생명력을 내뿜는다. 미켈란젤로, <죽어가는 노예> (1513~1516년경) / 사진제공·정여울

드가는 인간의 몸, 특히 여성의 몸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의 화실은 작업실이라기 보다는 실험실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다채로운 도구가 갖추어져 있었다. 유화재료는 물론 목탄, 파스텔 같은 드로잉 도구들, 에칭, 드라이포인트, 모노타이프 등의 판화 및 조각, 사진 작업에 이르기까지, 드가는 인간의 몸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상상하고 실험했다.


그는 평범한 도시 여성뿐 아니라 발레리나들,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 매춘부들까지 그려냈는데, 그는 여성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즐겼다.

누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나른한 표정을 짓는 여인, 목욕을 끝내고 수건으로 몸을 무심히 닦는 여인의 뒷모습, 공연이 시작되기 전 옷 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치고 있는 무희. 계산된 동작이 아니라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기에 더욱 자유롭고 무의식적인 찰나의 몸짓들을 엿보며 그는 그 짧은 순간에 스쳐가는 무엇을 그려내려 한다.

드가는 안타깝게도 36세의 젊은 나이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는데, 그런 심각한 악조건 속에서 그의 그림은 더욱 맹렬하게 ‘인간의 몸’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묘사하는 쪽으로 성숙해갔다.

말년에는 남은 한쪽 눈마저 극도로 나빠졌는데 그가 2차원의 그림보다는 3차원의 조각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런 시각적 결핍을 촉각이라는 또 하나의 감각으로 채워보려는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조각은 그에게 제2의 손이었고, 카메라는 그에게 제3의 눈이 아니었을까.

이 마지막은 왜 그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마지막이라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마지막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 무언가가 느껴지는 이 작품에는 ‘식어가는 온기’가 아니라 ‘꺼지지 않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죽어가는 노예’라는 제목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작품을 ‘환희에 찬 인간’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죽어가는’이라는 형용사와 ‘노예’라는 명사가 이 작품의 자유로운 이해를 제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 우리는 고통을 극복하여 영원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본다.

<죽어가는 노예>에는 덧없고 세속적인 지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영원과 이상이 살아 숨쉬는 세계를 향해 오직 한 발짝만을 남겨놓고 있는 인간의 찰나적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미켈란젤로에게 삶은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우며 벗어나야 할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로댕은 <예술의 숲>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다. “미켈란젤로는 고딕 예술의 최후이자 최고의 존재입니다. 마음의 반성과 고통, 혐오, 물질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이런 것이 그의 영감을 형성하는 요소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생명에 대한 환희와 삶에 대한 절망, 인간적인 삶으로부터의 초월 의지가 동시에 나타난다. 생명은 사랑했지만 삶의 추악함과 세속성은 경멸했던 미켈란젤로의 꼿꼿한 성품이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죽어가는 노예>는 이제 막 육체라는 겉껍질을 벗어 던지고 무한한 자유를 얻기 직전의 인간, 그 초월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가 벗어 던지려는 그 육체라는 겉껍질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진원지가 아닐까. 미켈란젤로는 직접 지은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아직도 생명과 환락을 바라는가. 지상의 기쁨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해친다.” 미켈란젤로의 우울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그는 지상의 쾌락을 적대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급기야 만년에는 직접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인간인 자신이 창조한 예술을 통해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을 통해 무한을 추구했지만, 예술은 ‘인간’이라는 지상의 밧줄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가 좀 더 지상의 삶을 사랑했다면, 지상을 탈출의 대상이 아닌 무구한 사랑의 대상으로 여겼다면, 그의 작품 세계는 또 다른 풍경으로 거듭났을지 모른다. 



#2. 고통받는 육체의 기묘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중에서

로댕의 조각을 보면 그가 인간의 육체를, 이 지상의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다. 로댕은 미켈란젤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인정했지만, 미켈란젤로가 지상의 삶을 혐오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미켈란젤로가 지상의 세속적인 삶을 초극하는 인간의 영혼을 그리면서 고통스러운 희열을 느꼈다면, 로댕은 초인적인 삶을 꿈꾸면서도 ‘지상의 삶’,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행복을 느꼈다.

로댕은 청동과 석고 같은 차가운 질료로 인간의 육체라는 뜨거운 대상을 빚어낸다는 것에서 숨가쁜 희열을 느꼈다. 그는 이상주의를 경계했고 천재적인 영감보다는 사실주의적인 엄격함을 중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댕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낭만과 열정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는 대상의 현재에 응축된 ‘이야기’를 포착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살아온 삶의 천변만화한 이야기들을 한순간에 담아내는 깊고 풍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극적 종말 앞둔 연인의 마지막 환희 


파멸이 예고된 연인의 몸짓과 표정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확인하려는 애틋함이 녹아 있다. 이들의 마지막 포옹은 예술이 되어 영원한 사랑으로 완성됐다. 오귀스트 로댕,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1904~1905) / 사진제공·정여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에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랫동안 원수지간으로 지냈던 폴렌타 집안과 말라테스카 가문은 극적인 화해를 하면서 폴렌타 집안의 딸 프란체스카를 말라테스타 가문의 장남인 지오반니와 결혼시키기로 한다.

하지만 지오반니의 못생긴 외모 때문에 딸 프란체스카가 결혼을 거부할 것으로 짐작한 아버지 귀도는 지오반니의 동생이자 소문난 미남이었던 파올로를 프란체스카에게 ‘남편감’으로 속여 소개를 시킨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식 다음날 아침에야 신랑이 지오반니로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된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결혼한 뒤에도 모두의 눈을 속이고 밀회를 나누다가 결국 지오반니에게 발각되어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된다.

지금 로댕이 포착하고 있는 것은 이 비극적인 연인들의 마지막 포옹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그들의 포옹도 끝나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안타까운 마지막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완성된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로댕의 작품 속에서 비로소 ‘영원’의 형상으로 굳어졌다.

 목숨을 바쳐 사랑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게 되는 두 사람의 참혹한 고통이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하지만 로댕이 강조하는 것은 ‘고통’보다는 ‘사랑’이다.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육신의 고통을 뛰어넘는 사랑의 영원성을. 사랑의 열정을 지상의 세속적인 삶과 바꾸지 않으려는 연인들의 굳은 약속을. 




중력을 거스른 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연인의 춤사위는 다급하고 아슬아슬하다. 춤이 끝나면 곧 헤어져 각자의 길로 가야 할 듯 애처롭다. 카미유 클로델, <왈츠>(1895) / 사진제공·정여울

<왈츠>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절묘한 포즈와 시간을 멈춘 듯한 표현력에 감탄하곤 한다. 두 사람은 어느 각도에서 보나 얼굴 표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얼굴이 아니라 온몸으로 연기하고 있는 듯하다.

 가눌 수 없는 슬픔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을. 바람에 휘날리는 여인의 치맛자락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랑의 비극적인 속성을 간직한 듯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랑은 아직 굳건하다. 만약 여인의 몸 저편에서 연인의 몸이 받쳐주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서 있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그녀는 사랑의 고통과 이별의 예감으로 곧 쓰러져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남성 또한 위태로워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여인의 몸을 지탱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비통함에 빠져 있는 듯하다. 여인의 가냘픈 어깨에 키스하는 남자의 얼굴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이미 깊이 슬퍼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 또한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그녀에게 기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기댐은 상호적이다. 두 사람 다 한 사람씩 따로따로 서 있었더라면 그 포즈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이 함께 이기에, 더구나 ‘멈출 수 없는 왈츠’의 순간 속에 있기에 중력을 거슬러 아슬아슬한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춤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 춤이 끝나면 이 사랑도 끝날 것만 같다. 이 춤이 끝나면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3. 몸이라는 최고의 캔버스

나는 나의 작품이 평화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내가 나의 그림에 아름답고 숭고한 이념을 불어넣을 수 없다면 그것은 내게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결코 예술이 이념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프리다 칼로 



화살이 박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쭉 펴고 금방이라도 뛰어 오를 듯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선 사슴인간은 비극으로 점철됐던 작가의 자화상과도 같다.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1946) / 사진제공·정여울


어떻게 자화상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그녀의 자화상을 볼 때마다 서늘한 충격을 받곤 하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그녀의 영혼을 가장 깊고 그윽한 자기 응시의 시선으로 담아낸 듯하다. 사슴의 몸과 인간의 얼굴을 한 이 ‘여인’은 프리다 칼로 자신이다.

이 사슴은 여기저기 화살을 맞아 저렇게 서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이 사슴여인은 꼿꼿하다. 고통에 지지 않았다. 프리다 칼로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버스 안의 철기둥이 온몸을 관통하는 끔찍한 부상을 입었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지만 그 생존의 기적을 더 큰 예술의 기적으로 승화시킨다. 그녀는 온몸에 깁스를 한 채 누워 있으면서 걸음마하는 아이처럼 천천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멕시코의 국민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은 그녀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지만, 정작 그녀의 예술작품이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사후였다. 늘 ‘디에고 리베라의 불행한 아내’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던 프리다 칼로는 화가로서의 삶도 사랑했지만 여성으로서의 삶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친동생과도 불륜에 빠진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했다. 의사는 물론 주변 사람 모두가 말렸지만 그녀는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때마다 아기는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육체를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고 말았다.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은 끊일 날이 없어 그녀는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렸고 무려 서른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세 번의 유산이 남긴 고통스러운 상처는 몸보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겼다. 그토록 갈망했던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그녀에게 가장 깊은 좌절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 속의 ‘상처 입은 사슴 여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불에 그을린 듯 온통 주변이 까맣게 타버린 숲이지만, 그 황폐한 환경 속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해맑게 빛난다.

 ‘당신들은 이런 나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나요?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롭지 않답니다. 난 아직 괜찮아요. 난 아직 혼자 살아낼 수 있어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사슴의 가느다란 다리는 고통으로 무너져야 정상일 것 같지만, 그녀는 꼿꼿이 대지를 딛고 일어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온 세상을 곧게 쏘아보며 그 어디로도 도망치지 않는다. 지상의 삶이 아닌 곳으로는 그 어디로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이미 몸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그림은 고통과 슬픔을 그릴 때조차도 어딘가 범접할 수 없는 미묘한 활기가 느껴진다. 교통사고로 인해 척추, 갈비뼈, 골반, 오른쪽 다리, 복강에 이르기까지, 거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평생을 살아야 했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 곳곳에 난 끔찍한 상처들조차 아름다운 그림의 재료로 삼았던 것이다. 



강철코르셋을 입은 채 예술로 승화한 극한의 고통 


 

인체의 군더더기를 빼버린 자코메티의 극단적인 간소화는 종종 작가들에게 실험적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의 병적인 예술성은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의 방법론이다. 파올로 자코메티, <추락하는 인간> (1950) / 사진제공·정여울

이 그림을 그린 후 그녀는 척추손상으로 인한 대수술 끝에 이후 거의 누워서 지내다시피 해야 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또 한 번의 커다란 모험을 했는데, 그것은 ‘강철코르셋’이었다. 그녀는 강철 코르셋을 입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고, 그 시절의 자화상들은 그녀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만든다.

사슴의 다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여 상처를 핥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쏘아본다. 그것은 원망이나 증오가 아니라 ‘나는 괜찮다’는 결연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슬픔이나 연민을 자아내는 눈빛이 아니라 초연함과 고결함이 서려 있는 눈빛이다.

‘카르마(karma)’라는 단어가 이 그림의 왼쪽 구석에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이제 그녀는 이 모든 참혹한 고통들을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피하고, 도망치고, 부정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온전히 ‘내 것’으로 인정해야 할 운명. 그 초연한 받아들임 속에서 그녀의 예술 세계는 더욱 단단하게 무르익어갔다. 멕시코의 전통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묘지에 올려두는 것은 망자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라고 한다.

사슴여인의 주변에 놓인 부러진 나뭇가지는 어쩌면 다가올 죽음에 대한 스스로의 예감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가올 죽음조차도, 죽음의 직전까지 끝나지 않을 고통조차도, 이제는 늠름히 받아들일 태세다.


아무것도 그녀의 영혼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도, 세상의 차가운 시선도, 엄마가 될 수 없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끝없는 절망도. 그녀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자코메티는 인체에서 모든 장식적인 부분을 배제함으로써 인간의 본질, 움직임의 본질을 향해 천착해 들어간다. 그는 누드에서도 무언가를 벗겨낸다. 보드라운 살결과 관능적인 육체는 그를 매혹하지 못한다.


그는 심지어 머리카락마저 싫어했다고 한다. 가끔은 “머리카락은 사기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보다 본질적인 것, 예컨대 얼굴의 표정이나 시선에 완전히 주목하지 못하도록 머리카락이 방해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모델이었던 여인 아네트에게 삭발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그는 사람들의 옷, 액세서리, 머리스타일, 사회적 지위 아래 감춰진 더 본질적인 것들, 아무런 덧칠도 되어있지 않는 인간, 앙상하게 형해(形骸)만 남은 육체를 원했다.

그는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은 무언가를 ‘줄이는 것’이라 믿었다. 더하고, 덧칠하고,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빼고, 벗기고, 울퉁불퉁한 채로 놓아두는 것이 본질과 접신하는 자코메티적 방법이었다.

우리들이 참되게 보는 것에 밀접하게 달라 붙으면 달라 붙을수록, 더욱 더 우리들의 작품은 놀라운 것이 될 거에요. 레알리떼는 비독창적인 것이 아녜요. 그것은 다만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예요. 무엇이고 보는 대로 충실하게 그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걸작들만큼 아름다운 것이 될 거예요. 그것이 참된 것이면 것일수록, 더욱 더 소위 위대한 스타일(樣式)이라고 하는 것에 가까워지게 되지요.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뜰리에> (윤정임 옮김, 열화당, 2007) 중에서

모델과 그림 사이, 대상과 표현 사이에 한 치의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 것, 기계적인 모방이 아니라 본질적인 형상화를 선택하는 것. 그것은 자코메티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근간이었고,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문학에도 영향을 끼쳐 많은 작가들이 그의 회화적 실험을 언어적 실험에 적용하기도 했다.

한국의 김수영 시인 또한 자코메티의 예술에 흠뻑 빠져 자신의 시가 점점 간명해지고 군더더기가 없어져가는 이유로 ‘자코메티적 변모를 이루었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자코메티가 거의 뼈만 남은 육체에서 환희를 발견하듯, 김수영은 언어의 장식적인 수사학을 철저히 배제해감으로써 언어에 단단하게 밀착하는 시인의 정신을 얻고자 전력투구했다. 김수영은 1966년에 쓴 <시작노트6>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만세! 만세! 나는 언어에 밀착했다. 언어와 나 사이에는 한치의 틈서리도 없다.” 거의 침묵에 가까운 극도의 생략만이 시를 언어의 장식적인 소용돌이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김수영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가장 진지한 시는 가장 큰 침묵으로 승화되는 시다.”

이 문장을 보았다면 자코메티조차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김수영의 문장을 자코메티적으로 바꾼다면, 아마 이런 문장이 되지 않을까. ‘가장 진지한 예술은 가장 커다란 여백으로 승화되는 예술이다.

’ 이렇게 말이다. 김수영이 말한 자코메티적 발견이란 지우고 또 지움으로써 실재와 가까워지는 것, 장식적 표현을 덜어내고 또 덜어냄으로써 언어와 시인이 극한에 이르기까지 밀착하는 것이었다. 대상과 예술이 마침내 하나가 될 때까지. 몸과 영혼이 마침내 하나가 될 때까지.

[출처] : 정여울 미술평론가,문학평론가 ; <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월간중앙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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