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의 세상사는 이야기

김제여행 # 3 - 벽골제와 현숙 효열비

작성일 작성자 늘봄


쌍룡


김제하면 드넓은 김제만경평야가 있는 고장이다.

농사를 지을수 있는 평야가 있다는 것은 물을 가두는 저수지가 있어야 한다.

그 젓줄이 백제시대 만들어진 벽골제碧骨提이다. 해마다 이곳에서 지평선 축제가 열리고 있다.

아내와 함께 증산법종교 본부를 여행하고 벽골제로 왔다.



 

벽골제 안에 있는 서당 "명인학당"

투호놀이


휴일이라 가족나들이를 많이 왔다.

투호놀이, 굴렁쇠 굴리기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짚풀공예관


짚풀로 만든 다양한 일상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덕석, 달걀꾸러미, 짚신, 망태기 등...추억의 물건들이다.



좌백용과 우 청룡 앞에선 아내


벽골제에 전해오는 쌍룡의 전설이 있다.

착한 백룡과 심술사난 청룡이 싸웠는데 청룡이 이겨 벽골제를 피괴할려고 하자  

김제 태수의 딸인 단야가 청룡의 제물로 바쳐지고 벽골제를 보존할수 있었다고 한다.

단야의 넋을 기리기 위해 벽골제 쌍룡놀이를 계속해 왔다. 쌍룡의 조형물이 거대하다. 

 




제방


벽골제와 수문 위치도


 

벽골제는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의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그중 벽골제 규모가 가장 컷다고 한다.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벽골제는 백제 11대 왕인 비류왕 27년(330)에 쌓고 신라 원성왕 6년(790)에 증축, 조선 태종15년(1415)에 개축되었다고 한다.

제방은 3km가 넘고 둑 높이는 4.3~3.3m. 5개의 수문(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을 통해 김제와 만경에 물을 공급했다. 일제강점기때 농진농지개량조합에서 수로개선과 둑을 파괴하여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벽골제 중수비

북쪽끝의 수문인 장생거

복원된 장생거

좌백룡 우청룡

단야루

슬픈 전설이 깃든 단야루


벽골제, 아라랑문학관, 현숙효열비, 청해진 유민이주기념비

조정래 아리랑문학관


벽골문 맞은편에 조정래 아리랑문학관이 있다. 시간이 늦어 문학관은 관람하지 못했다.

‘아리랑’은 식민지 시대를 깊은 역사 인식으로 탐구한 대하 소설로, 김제 출신의 인물들이 군산, 하와이, 동경, 만주,

블라디보스톡 등지로 옮겨서 40여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제 시대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일제의 폭압에

맞선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과 승리의 역사를 부각시키고 있어 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문학관을 지나면 효녀가수인 현숙효열비와 청해진 유민 벽골군 이주 기념비가 서 있다.



김제가 고향인 효녀가수 현숙, 그의 효와 사랑을 기린 비가 아리랑 문학관 뜰에 서있다.

중풍과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7년간 극진히 보살피고 지병을 앓아온 어머니를 14년간 정성으로 간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4년 부터 거동이 불편한 65세 노인을 위해 매년 이동목욕차 1대씩을 경상도, 전라도 등 전국에 13대를 기증했다고 한다.

불우학생들에게도 많은 장학금을 내놓아 1996년 국민포장을 받았다.

늘 명랑하게 웃으며 노래하는 현숙이 부모님 봉양은 물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많은 베품을 실천했다고 하니 존경스러웠다.

효열비(2010년)를 세울만한 공덕이 있다. 

 

배품을 나눈 기록들

완도 청해진 유민 벽골군 이주 기념탑


현숙효열비 옆으로 청해진 유민 벽골군 이주 기념비가 서있다.

장보고가 완도 청해진을 구축하여 해상교역을 장악하고 국제무역에 나서 큰 부를 쌓게 된다.

신라조정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커지자 신라조정이 염장을 시켜 그를 암살한다.

신라조정이 그의 추종 세력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청해진 등 인근 주민 10만 여명을 김제 벽골군으로 강제 이주 시키게 된다.

이주시킨 유민들은 벽골제 보수공사, 동진강 유역 간척, 방수 공사 등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김제시와 인근 도시에 완도 청해진 사람들의 DNA가 천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음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 여행 : 2016. 2. 20 -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