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의 세상사는 이야기

경주여행 # 2 - 태종 무열왕능과 김유신 묘 그리고 계림, 신라 왕궁 월성과 첨성대

작성일 작성자 늘봄


첨성대


포석정을 나서 태종무열왕릉(김춘추)과 태대각간 김유신묘로 향했다.

두 사람은 진골출신으로 정치적 동지이자 처남 매제사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출신의 신흥세력으로 그 여동생이 무열왕의 왕비가 된다. 

정략적으로 김춘추는 김유신 군대의 지원이 필요했고 김유신은 김춘추의 권력이 필요했다. 

서로 이해 타산이 맞은 것이다.  이러한 두 세력이 후에 당과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키게 된다. 



왕능은 포석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왕능 위쪽으로 서악동 고분군이 있고 길 건너 맞은 편에는 그의 아들 김인문 묘 등이 있다. 




건무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비각이 서 있다.

태종무열왕 비각이다. 비신碑身은 없고 비신을 받친 거북 좌대와 비신에 엊는 이수螭首만 있다.

귀부와 이수의 규모로 볼때 비신도 상당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둘의 돌 재질이 다른 듯 보였다.

태종은 묘호廟號이고 무열은 시호諡號다. 


태종무열왕능비(국보 제25호)


웅장하고 화려할 것 같은 태종무열왕능은  둘레석 등 장식이 거의 없고 평범했다.

다만 능 하단에 점점이 돌들이 박혀 있다. 능 앞에는 제단석이 놓여 있다.

한바퀴 돌아보고 고분으로 향했다.




왕능과 고분군이 마을 근처에 있어 주민들이 산책을 한다.

잘 정비되어 있고 숲이 있어 산책코스로 좋아 보였다.



무열왕능 뒷면

김양의 묘비...그 뒤쪽이 김인문 묘


왕능을 나와 길 아래에 있는 김인문, 김양 묘로 왔다.

김인문의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삼국전쟁시 당을 오가며 지원을 이끌어 내는 활약을 했다.

첫째 아들이 제30대 문무왕이다. 문무왕이 고구려를 멸망시킬때 김인문이 신라군의 선봉장이었다. 

김양은 김인문의 후손으로 제45대 신무왕을 옹립하는데 공헌한 공신이다.


김인문 비각


태종 무열왕능을 나와 신라 태대각간 김유신 묘로 향했다.

김유신 묘는 경주국립공원 화랑지구내 숲속에 있었다.

김춘추 태종무열왕능과 직선거리로 6km정도다.


김유신 묘 매표소

김유신 비각


매표소 옆에 비각이 있는데 비석에는 신라 태대각간이라 새겨져 있다. 김유신의 벼슬이다.

신라 관등은 17관등으로 최고직이 대각간 大角干이다. 그 위에 특별관직인 태대각간을 김유신이 받은 것이다.

삼국통일에 기여한 바가 커서 받은 특별한 벼슬인 듯 하다.



흥무문


흥무문을 지나 솔숲 길을 조금 걷다보면 그의 묘가 보인다.

한눈에 봐도 묘가 웅장하다. 양쪽에 비가 2개 서 있고 묘 주위로 난간석과 둘레석이 처 있다.

왕능에 버금가는 모습이다. 태종무열왕능보다  더 웅장하게 느껴졌다.

 


김유신 묘



한편으로 김유신 묘가 문무왕능 이라는 설도 있다.

왕능을 능가하는 김유신의 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김유신 묘를 나서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왔다.

늦은 점심을 근처 식당에서 먹고 첨성대, 월성 등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참 오랫만에 찾았다. 20년은 넘은 것 같다.  





경주일대 큰 지진이 있었기에 온전할지 걱정했는데 첨성대는 끄덕없다.

그만큼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석조물을 쌓아 올린 건축술 때문일게다. 

추억이 깃든 첨성대를 보니 반갑다. 아내와 옛 애기를 하며 탑돌이 하듯 첨성대를 돌았다.   



입구



첨성대를 나서 계림鷄林으로 향했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 하였다고 한다.
김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 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계림은 신성스러운 숲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참고:문화채널 일부 인용)



계림속 향가비


내물왕능


계림숲 옆으로 오릉五陵이 있는데 제17대 내물왕능이 있다.

경주 김씨의 두번째 왕으로 미추왕능 처럼 오능五陵 형식을 취했다.

왕능 옆으로 멋드러진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있다,




계림을 산책하고 월성月城으로 향했다.

월성은 궁성이 있던 곳으로 반월성, 재성 등으로 불린다. 

왕궁의 흔적은 찾아볼수 없고 안팎 곳곳에서 문화재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토성의 흔적을 따라 가니 석빙고石氷庫가 나왔다. . 



석빙고 (보물 제66호)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신라의 천연 냉장고로 배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석빙고는 신라시대의 냉장고가 아닌 조선 영조때 축조되었고 4년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입구는 막혀입고 철망속으로 내부를 볼수 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이 있어 공기를 통하게 하였다.


석빙고

내부

석빙고 앞 문화재 발굴터




석빙고 뒷모습


월성을 나와 첨성대 쪽으로 향하는데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동쪽 하늘엔 보름달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 여행 : 2018. 1.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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