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의 세상사는 이야기

마음 내키는 데로 길 따라 물따라 여행(인제) # 3 - 순백의 자작나무 숲, 만해마을, 백담사

작성일 작성자 늘봄


원대리 자작나무 숲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꿈 하나, 자작나무 숲을 가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활동들은 늘 뜨거운 에너지로 작용했다.

벼르고 별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가는 길이 쉽지 않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달리고 달렸다...

 



영동에서 쉼없이 달려 오후 5시경 원대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행장을 꾸려 원정도로를 따라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시간이 늦은 탓에 산 입구 통제소에서 산에 올라갈수 없다고 한다. 야생동물 출몰과 길을 잃을 수 있어 위험하다며...

그 먼길을 달려 왔는데....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내일 일찍 찾기로 했다. 




 

자작나무 숲 근처에서 숙소를 찾았는데 펜션 등은 생각 외로 비쌌다.

몇군데 팬션을 알아보았지만 비슷했다. 팬션숙박을 포기하고 계곡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나무아래에 자동텐트를 치고 누릉지와 라면, 과일로 간단한 저녁을 해 먹었다. 

날이 어두워져 시원한 계곡물에 목욕을 하니 피로가 풀리고 더위도 덜했다. 

저녁엔 계곡에서 음이온을 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꿀잠을 잤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삶은 계란과 과일로 아침을 먹고 원대리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날이 더워지기 전 원정도로 2.7km(1시간 30분)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서둘렀다.

아침 6시경 통제소에 도착했는데 근무자가 나오지 않았다. 아내와 천천히 산을 오르는데 게이트를 열고 차량한대가 올라왔다.

차를 멈춰세우고 자작나무 숲까지만 태워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 분은 이곳에서 산일을 하는 영림소 직원이었다.

그 분 덕에 허리가 안 좋은 아내와 나는 10여분만에 편안하게 자작나무 숲 입구에 내렸다. 감사의 인사를 여러번 했다.  


자작나무코스(1코스) 입구


하얀 껍질의 자작나무 숲, 오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보자마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분은 최고다. 엔돌핀이 요동치며 뿜어져 나오는게 느껴졌다. 

흥분을 가라 앉히고 아내와 나는 숲을 천천히 음미하며 걸었다. 남녁에선 보기드문 자작나무 숲,

그 이색적인 풍경이 우리들 마음을 그 숲에 꽁꽁 묶어버렸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산린청 인제국유림관리소가 관리한다.

원래 소나무 숲이었으나 솔잎혹파리 피해를 입어 베어내고 1989~1996년 까지 자작나무 70만그루를 심었다.

2008년 부터 숲 유치원으로 개방하면서 알려지게 되고 2012년 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여 오늘에 이른다.

잘 가꾼 자작나무 명품 숲이 국내.외 관광객이나 산객,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은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순백의 자작나무 숲에서 나를 만났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했살, 상큼한 공기, 서늘한 기운에 목욕하며 이 순간을 맘껏 즐겼다.



동자꽃


1코스만 음미하며 산책했는데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났다.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내려가야 간다. 다음 일정을 고려해서 숲을 빠져 나왔다.


하산길



원정도르를 따라 아내와 1시간 30분 걸려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햇빛도 점점 따가와졌다. 9시 30분이 조금 넘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려오는 길에 사람들이 자작나무 숲을 이제야 오르고 있었다. 


원정도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백담사로 가는 길, 설악산과 동해가 지척에 있는 만해마을을 찾았다.

채움을 비우고 비움을 채우는 만해마을은 동국대학교 만해마을 캠퍼스다.

게스트하우스, 만해 청소년 캠프, 북카페, 님의 침묵 광장, 만해 문학박물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평화의 시벽



문인의 집(게스트하우스)과 서원보전을 지나 만해문학박물관으로 곧장 갔다. 1층 상설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 만해의 흉상이 있다. 1층 전시실에는 만해연대기, 각종 집필서적, 친필 풍상세월 유수인생이 걸려 있다.

"풍상세월風霜世月 유수인생流水人生 : 온갖 난관이 있지만 삶은 물처럼 흘러간다" 힘 있는 글씨다.

 

박물관 입구



만해의 친필 풍상세월 유수인생

만해의 연대기, 님의 침묵 등 저서 전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님의 침묵,  이별의 슬픔을 아름답게 승화한 ...언제 읽어도 좋다.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았다.....


전시관 밖 만해동상


 

 

만해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사나이 이르는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인데

그 얼마나 많은 사람 늘 나그네 설움에 잠겼는가.

한소리가 삼천대천세계를 올리니

눈 속에서 복숭아꽃이 한잎 한잎 날리더라"


 

징에 쓴 시


만해 대상자들

 

2층에는 역대 만해대상을 받은 수상자들이 걸려 있다.

국내외 내노라 하는 인사들이 망라되어 있다. 

만해대상을 받은 수상자 8명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만해대상의 위상이 만만치 않음를 보여준다.


 



만해대상자 중 노벨평화상 수상자


만해대상 부분별 증서


 

 

만해문학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씀이다.

곰곰히 되씹어 볼수록 심오하다. 평범한것 같지만....


 


만해마을 게스트하우스


백담사 입구 황태구이 정식

 

만해마을을 나와 백담사로 가는 입구,

점심때가 되었다. 황태구이정식집이 밥길을 잡아끈다.

맛있고 푸짐하다. 순두부도 일품이다.


 

마을버스

 

백담사는 승용차가 올라갈수 없다. 마을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길이 위험하니 오히려 이런 수단이 더 나은것 같다. 구례 사성암 과 비슷한 여건이다.

굽이 굽이 마을버스는 계곡을 돌아 백담사 입구에 우리를 토해냈다.

백담사를 찾은 이유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전두환이 머물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백담사의 첫 느낌은 정갈함이었다.

오래된 절집의 깊은 맛 보다 깨끗하고 정리 정돈된 잘된 그런 느낌..

백담사 앞을 흐르는 계곡에 쌓은 수만개의 돌탑들이 인상적이다.

 

백담사 앞 계곡 돌탑들


금강문 4천왕




 

주 불전인 극락보전, 예불시간은 아닌듯 한데 한 스님이 들어와 기도를 한다.

등에 땀이 흥건히 베었다. 경건하게 절을 하는 스님의 모습이 엄숙하다.

신자가 아니어도 어느새 내 마음도 그 경건함속으로 빠져들었다.


 


전두환이 2년 1개월(1988. 11. 23 ~ 1990. 12. 30) 동안 머물렀던 방이다.

대국민 사과와 뇌물로 받은 재산의 사회환원을 약속하고 백담사로 떠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참회와 반성은 커녕 불량한 마음을 조금도 털어내지 못했다.

정부에서 추징금을 납부하라고 하자 전 재산이 26만원 밖에 없다고 인터뷰 하던 뻔뻔함....

그를 기리는 방을 이곳에 만들어 놓았다. 허허로움이 드는 공간이다.  

 



 

백담사에도 만해기념관이 있다. 그 앞에 그이의 동상이 있다.

동상 아래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이 화두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야광나무와 만해동상

만해기념관 내부





만해기념관에서 본 백담사


 

 

백담사 찻집에서 차 한잔 마시며 숨을 골랐다.

마음내키는 고성으로 가야 한다. 더 지체할수 없어 마을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 여행 : 2018. 7. 24 ~ 7.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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