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의 세상사는 이야기

천안여행 # 1 -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

작성일 작성자 늘봄


유관순 열사 동상


자료를 검색해 보니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유관순 열사의 유적지가 있다.

짬을 내 열사와 관련된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유관순 열사 유적지, 그녀가 만세운동을 했던 아우내 장터, 열사의 생가까지...





열사의 유적지는 매봉산 자락에 있었다.

생전 그녀가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던 아누내 장터를 바라볼수 있는 곳이다.

열사의 거리를 지나 유적지에 들어서면 초혼묘 봉안비, 열사의 동상, 기념관, 추모각, 초혼묘, 순국자 추모각 등이 있다. 


열사의 초혼묘 봉안비


기념관


영정을 모신 추모각 입구



유적지 광장 오른편에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르짖는 열사의 동상이 서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숙여 열사의 뜨거운 애국심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19살 소녀의 당찬 기개, 그녀를 보며 프랑스의 잔다르크를 떠올렸다.

잉글랜드와 백년전쟁에서 패배직전의 프랑스를 구해낸 흰 갑옷을 입은 여전사 잔다르크.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하얀 치마 저고리를 입은 유관순.

두 소녀는 나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나이 19세, 하얀색 갑옷과 치마저고리를 입은 점 등.. 닮은 점이 많았다.

나는 유관순 열사를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불렀다. 





열사의 동상을 지나 영정을 모신 추모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추모각에는 그녀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 향로에 향을 피우고 또 한번 존경의 예를 올렸다.

돌아서니 아우내 장터가 있는 병천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추모각 앞 깃발에 태극기가 펼럭였다. 펄럭이는 태극기보며 잠시 생각에 젖었다.

도대체 그녀에게 조국, 태극기는 무었이었을까? 

일본헌병의 무자비함에도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수 있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19살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은 대범하고 당찬 기개.....그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열사의 영정


추모각에서 바라본 아누내(병천면 소재지)







기념관은 그녀의 일대기가 정리되어 있다.

열사의 생애, 태극기를 만들었던 목각판, 만세운동 당시 입었던 하얀 한복, 훈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우내장터 만세시위 재현


용수를 쓴 유관순


몇해전 서대문형무소 여성감옥 답사(http://blog.daum.net/yyc5932/823, http://blog.daum.net/yyc5932/825)시

감옥에 걸려 있는 유관순 열사의 유서 일부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 손과 발이 다 부러져도 그 고통은 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국을 잃은 그 슬픔만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적지 추모각 앞에서 갖었던 상념들이 열사의 유서를 보면서 다 풀렸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으로 격상된 훈장


열사의 만세운동이 문재인 정부들어 재평가되 다행이다.

그의 공적은 3등인 건국훈장 독립장이었는데 올해 1등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추서되어 훈장이 전시되어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잘했다고 본다. 역사는 올바르게 평가되고 정의롭게 구현되어야 한다.

민족반역자 일부 후손이 신분을 세탁해 독립유공자 처럼 행세하는 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독일처럼 나치 부역자들을 끝가지 찾아내 처벌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빌때  죄를 용서 받을수 있다.

그리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나라가 바로 설수 있는 것이다.


열사가 입었던 한복 등(재현품)




열사의 거리


유적지 초혼묘, 순국자 추모각 등은 시간이 없어 답사하지 못했다.

유적지 앞 열사의 거리를 거쳐 아우내 장터로 향했다.

열사의 거리는 독립운동 열사들의 사진, 활동 등을 기록해 놓은 곳이다.




독립운동 기록들




병천면 소재지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 기념공원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전경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 공원내 조형물이다.

열사가 햇불을 높이 들고 앞장서 행군하는 모습이 프랑스기를 들고 앞장서 진군하는 잔다르크와 같았다.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 현장에서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부모..열사는 굴하지 않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을 외쳤다.

울컥, 내 가슴에 뜨거움이 올라왔다.








기념공원 옆 아우내 장터는 마침 장날이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옷, 주전부리, 과자, 곡물류 등 종류도 많다. 면단위 장터치고 규모가 큰 편이다.

병천竝川은 산방천 등 두개의 하천이 만나는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장 복판에 있는 커다란 장독

여기에 담긴 장을 덜어 작은 병에 부어 판다.

전통시장에서 보기드문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다.







아누내 장터의 자매순대 집에서 병천순대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3대를 이어 병천순대집을 운영하는데 근방에서 꽤나 유명하다도 한다.

전국에 병천순대·국밥 상호의 체인점이 있다, 이곳이 변천순대의 원류源流라고 한다. 

다음날 오후 짬을 내 유관순 열사의 생가를 찾았다. 유적지 반대쪽 매봉산 자락에 있다.

유적지에서 멀지 않다


유관순 생가마을 용두리


생가 전경


생가는 매봉산을 뒤로 하고 남향에 자리잡았다.

주차장이 있고 열사가 만든 태극기가 그려진 포토죤도 있다.

생가 옆으로 열사가 다녔다는 매봉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포토죤




생가






열사의 집에서 만세운동을 논의하는 밀랍모형 


생가에 있는 조형물들이다.

자세한 설명이 없다. 대충 짐작으로 상상한다.

조형물이 있는 방은 통유리로 막아 놓았다.

개방해 놓았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뭐 관리, 파손 등의 문제가 있을수 있어 이리 했겠지만...


조형물 설명사진


부엌방에는 열사가 태극기를 만드는 밀랍 조형물










유관순 열사가 태어나고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역사의 현장들, 이리 답사를 하니 보람있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을 재평가해 1등 훈장으로 추서한 것 등을 보면 잘한것 같다.

천안에 역사문화둘레길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짬짬이 애국지사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 여행 : 2019. 4. 16~ 4,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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