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불행은 도덕성 결여 때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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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한국인의 불행은 도덕성 결여 때문”(스크랩)

단계와 넓은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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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개월여 내 블로그가 영 신통치 않다.

요추협착증으로 다리가 불편하여 걷기가 힘들어진 이후로 산행도 못하고 숲 현장 답사도 못하고

있으니 내 블로그에 숲 사진도 없고 매우 단순해져 버렸다.

그나마 블로그를 채우고 있는게 손주녀석 일상과 그동안 소홀했던 책 읽고, 

TV와 인터넷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이 쓰여지다 보니 시사거리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한국인의 도덕성 결여는 이명박정권부터 더 이상 어찌 해 볼 수 없도록 악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대 대통령중 당선되기전부터 가장 도덕성이 결여되었었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기준 자체가 비도덕적인 곳으로 치우쳐 있다보니, 그런 연유로 행정수장들도 모두 그런 부류들이

내정되어 YS, DJ, 노무현정권때의 인사청문회는 자질문제가 많았으나 그 후의 인사청문회를 보면

분야별로 매우 지저분하고 도덕성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도덕성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10년을 이리 살고 있으니 도덕불감증이 자연스런 모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후세들의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큰 일이다.

지금은 그 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다.

임명하는 사람이나 하려는 사람이나 국민은 안중에 없고 참 뻔뻔하고 철면피같은 사람들이다.

참으로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http://www.sciencetimes.co.kr/?news=%ED%95%9C%EA%B5%AD%EC%9D%B8%EC%9D%98-%EB%B6%88%ED%96%89%EC%9D%80-%EB%8F%84%EB%8D%95%EC%84%B1-%EA%B2%B0%EC%97%AC-%EB%95%8C%EB%AC%B8&s=%EB%8F%84%EB%8D%95%EC%84%B1

 

 

“한국인의 불행은 도덕성 결여 때문”

한국연구재단 석학인문강좌

세계에서 그나마 경제가 괜찮다는 나라들이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행복지수 순위는 27위다(2013년 통계). 겨우 꼴찌 수준을 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몇 단계 상승해서 그렇다. 그러면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덕성의 결여에 있다. 인간의 삶이 자연이 아니라 사회에 의하여 결정되는 현대사회에서 도덕과 윤리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크다. 현대인의 행복과 불행은 자신이라기보다 타자와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

▲ 손봉호 교수 ⓒScience Times



우리의 관심 속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인문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한국연구재단이 ‘사람과 삶, 세상을 잇는 인문학’이라는 표제로 기획한 석학인문강좌가 7일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강연을 맡은 손봉호 고신대학 석좌교수(철학)는 ‘타자 중심의 윤리-정의 확립을 위한 한 이론적 시도’라는 주제로 첫 강의 ‘인간의 행복과 윤리’를 시작했다. 손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정의확립을 위해 도덕성 회복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한국철학회 회장(2001~2002), 서울대학 명예교수(2003~), 제6대 동덕여자대학 총장(2004~2010)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고신대학 석좌교수(2011~),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2011~)로 활동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고통 받는 인간(1995)’, ‘고상한 이기주의(1998)’, ‘나는 누구인가(2006)’, ‘잠깐 쉬었다가(2011)’ 등이 있다. 다음은 송 교수의 강의 내용을 요약한 내용이다.

“윤리학은 이론적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 학문”

도덕적 행위의 당위성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근거한다는 것과 도덕적 행위의 목적은 행위자 자신의 정당화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 특히 약한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리란 “직접 혹은 간접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그 정의가 왜 옳으며 왜 필요한가를 논증해 보려 한다.

나는 윤리학은 수학이나 이론 물리학과 같은 이론적 학문이 아니라 의학이나 경영학처럼 실천적인 학문임에 주목한다. 이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이다. 어떤 의학 이론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새로운 것이라도 그것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의학적 이론이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논리적이고 심오하더라도 직접 혹은 간접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동하거나 사회를 좀 더 정의롭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면 윤리 이론이라 할 수 없다.

학자들 가운데는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를 도덕 이론이라 하고 윤리는 확대해서 실천과 무관한 부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이 강의에서는 윤리를 실천적 이론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입장은 윤리에서 한 가지 이론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는 독단에 빠지지 않게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더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사회를 더 정의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론적으로 다소 약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약점이 결과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동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당연히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사람들이 행동하는 이유와 동기도 여러 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동기나 이론이라도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불행은 도덕성 결여 때문”

한국은 경제, 정치, 예술, 학문, 기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한 발전을 이룩했다. 불과 60년에 세계 어느 다른 나라도 이룩하지 못한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탈출과 민주화를 이룩했고,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그런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과거에 비해,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들에 비해 더 행복하지 않다. 영국의 레가툼 연구소 (Legatum Institute)가 2011년 발표한 번영지수 (Prosperity Index)에 의하면 한국의 번영 지수는 세계 27위인 반면에 평균 생활만족도 (Average Life Satisfaction)는 110 조사대상국 가운데 104위였다.

그리고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가운데서도 32위로 매우 불행한 국민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는 사실을 보면 그들 조사가 과장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인들이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도덕적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다. 국제투명성기구는 2012년 한국의 투명성이 세계에서 45위라 발표하여 경제, 교육, 민주주의, 문화 등 다른 분야의 수준에 비해서 매우 뒤떨어져 있다.

탈세율은 26.8%에 달해서 그리스나 스페인과 비슷하고 사기 보험금지불액이 전체의 13.9%로 1%인 일본의 14배나 된다. 교통사고 입원율은 일본의 9.5배나 된다. 정치계와 공직사회의 부패도 심각하다.

최근 불거진 원전비리는 지금 살아 있는 한국인들뿐 아니라 주변국 국민들과 먼 후손들의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어 과연 한국이 원전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의심케 할 정도다. OECD에서 갈등지수가 두 번째로 높고 이 때문에 근 250조 원이 낭비된다 한다.

도덕적 수준이 낮으면 사람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정도가 그만큼 커진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많으면 속는 사람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고 거짓말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속아서 보는 손해도 그만큼 커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는 반드시 누구에게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처럼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해를 끼치는 행위다. 한국인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들 가운데 가장 주된 이유가 바로 이런 행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있다.

“인간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사회적 세계’ 속에서 살아”

과거에는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은 주로 자연의 힘과 변덕이었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사람들의 삶이 주로 자연과 더불어 이뤄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과 더불어 보냈고 생존을 위한 자원을 자연에서 직접 획득하였다.

하루 종일 논밭이나 목장에서 지냈고 샘물이나 우물물을 마셨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시간도 많지 않았거니와 다른 사람의 도움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삶의 행복과 불행도 주로 자연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풍년이 지면 행복하고 흉년이 지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비참해졌다.

그러나 현대인은 인공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한다. 자연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다니엘 벨(Daniel Bell)의 지적처럼 “지금의 현실이란 오직 사회적 세계일 뿐이다.”

따라서 개인의 행복과 불행도 자연이 아니라 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결정된다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육체의 병은 개인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 나의 병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건강보험 때문에 모든 사람의 병은 모든 다른 사람의 짐이 된다. 흡연과 금연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자연환경이 좋아도 사회가 혼란하고 인간관계가 비정상적이면 사람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문학교수 루이스(C. S. Lewis)는 “인간이 당하는 고통의 5분의 4는 다른 사람에 의하여 가해진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조금 적게 누리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인간이 당하는 고통은 자연보다는 인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자연 재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 일례로 최근의 역사에서 가장 큰 자연재난으로 알려진 1931년의 중국 홍수에 희생된 사람이 400만인데 비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군인만 수 천만 명이 전사했다.

자연과 인간이 모두 인류에게 고통과 이익을 줄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오직 인간에게만 요구할 수 있다. 자연에는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만약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고 따라서 존엄성도 없다면 지금 우리의 가치관, 생활방식, 정치제도 등 모든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히틀러를 비판할 이유가 없고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를 존경할 이유도 없다.

결론을 내리겠다. 우리가 가난했을 때는 먹을 것만 있어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몸무게를 걱정해야 할 만큼 풍요롭지만 과거보다 더 불행하다.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서 서로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조금 적게 누리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김형근 객원기자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3.12.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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