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3) 수2:1-14 2016.1.24(일)오직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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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3) 수2:1-14 2016.1.24(일)오직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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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3) 2:1-14 2016.1.24()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갈 때 가장 중요한 준비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새해에 함께 가겠습니까? 지난 주 우리는 여호수아가 양떼와 소떼 때문에 요단강 못 건너가고 그 땅에 남겠다고 고집하는 르우벤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를 설득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혼자 가면 편하겠지만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가족과 함께 가고 교회와 함께 가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가겠습니까? 함께 가기로 다짐한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관문은 여리고였습니다.

 

. 이곳이 현대 도시 여리고입니다. 여리고는 참 아름답습니다(그림). 여기 저기 서 있는 울창한 종려나무 때문에 성경은 이 도시를 종려의 성읍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도시, 언제나 종려나무가 우거지고 과일이 풍성한 도시입니다(그림). 여리고가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광야인데 여기만 나무와 숲이 있습니다. 이유는 엘리사의 샘때문입니다(그림). 엘리사의 샘에서 나오는 물이 온 여리고를 적서 이 땅이 비옥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리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것입니다. 보통 주전 6천년을 기준으로 신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로 나눕니다만, 여리고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여리고성과 함께 주전 7천년에 세워진 가나안시대의 제단이 있습니다(그림).

 

문제는 이 도시가 가나안 원주민들이 사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여리고는 철옹성같은 성과 강력한 군대로 물샐틈 없이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 성을 정복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번도 전쟁해본 적이 없는 민간인들입니다. 군인도 아니고 무장하지도 않았는 데 어떻게 이 성을 정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이 때 사용한 사람이 기생 라합이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에 살면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고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에게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스라엘은 라합을 이스라엘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기생 라합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라합은 어떤 믿음으로 그렇게 했는지. 여리고같은 세상에 사는 우리도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세상을 이길 믿음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평범함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발견하는 첫 번째는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을 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라합을 보시죠. 어떻습니까?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그는 여성이었습니다. 옛날로 갈수록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했지 않습니까? 심지어 성경에는 인구조사할 때 여성의 수도 세지 않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의 수가 60만이라고 할 때 거기 여성들은 없습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 먹었다고 할 때 남자만 5천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중대한 시점에서 하나님을 여성을 씁니다. 그나마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직업만 문제가 아니라 겁과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여리고 군대가 들이닥치자 정탐꾼들을 허둥지둥 지붕위에 숨깁니다. 6절에 보면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다고 했습니다. “삼대는 물속에 자라는 아마포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베어서 물에 담가놓았다가 말려 옷을 만듭니다. 그런데 거기다 정탐꾼들을 숨겼습니다. 여리고 군병이 지붕에 올라갔다면 꼼짝없이 붙잡혔을 것입니다. 숨길 데는 없고 급하기 때문에 경황중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라합은 보통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아히도벨처럼 지략가도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여성입니다. 하나님이 보통 사람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왜 이 사실이 중요합니까? 우리는 대부분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삼손, 얼마나 영웅같은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만 쓰신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뭔가 달라. 그런데 나는 아무리 봐도 특별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쓰임받기 틀렸어”.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특별한 사람만 사용하신다는 오해, 성공이란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특별한 사람만 성공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삽니다. 우리 사회의 경쟁적 구조가 그것을 부추킵니다. 남들처럼 똑같이 사는 것, 평범한 일상,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래서 something special, 특별한 일, 특별한 사람, 특별한 비전만 꿈꿉니다. 그리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함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독일에 가면 쾰른 대성당이 있습니다(사진). 세계 3대 고딕 성당중 하나입니다. 이 성당의 역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성당은 1248, 프레데릭 2세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사는 16세기, 마틴 루터 시대에도 건축되었다가 1880년에 드디어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632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 긴 역사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건축에 해당하는 쾰른 성당의 탁월함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하루 하루 일상이 632년이나 계속된 후에 생긴 것이다. 하늘 높히 치솟은 대성당의 자태는 수많은 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수고와 노력으로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쾰른 성당의 탁월함은 평범한 일상이 만든 것이다”. 그렇습니다. 비범은 갑자기 생긴 무엇이 아니라 평범의 연속의 결과입니다. 632년이나 건축이 계속되면서 누구도 그 건물이 자기 한 사람의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설계하고 내가 짓고 내 이름으로 봉헌한다면 누구나 기분 좋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건물을 매일 나와서 돌깍고, 사다리타고 천장으로 올라가고, 걸레로 닦고, 그러다가 떨어지고 다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632년의 길고 지루한 일상이 어느날 탁월한 역사적 건축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 하루 하루의 평범한 일상보다 우뚝 선 쾰른성당만 꿈꿉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큰 용기는 특별한 일을 벌이는 용기가 아니라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는 용기입니다. 매일의 일상은 특별하지도 않고 기가 막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루하고 단조로운 시간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끔 목회자로서 그런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언제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슈바이처처럼, 리빙스톤처럼 선교할 수 없을까? 그러다가 꿈을 깨면 분당입니다. “, 여기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분당이지”. 미지의 아프리카보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분당입니다. 가끔 우리는 하루 하루 단조로운 일상은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늘 화려한 미래를 꿈꿉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시시한 예배는 안드리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주일 특별한 예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호주의 힐송쳐치는 세계적으로 찬양예배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 유명한 찬양예배는 목회자와 찬양사역자가 일주일에 매일 나와 연습하고 기도합니다. 매일의 꾸준한 일상이 그런 좋은 예배를 만든 것입니다. 매주 꼬박 꼬박 교회나와 평범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성가대 하시는 분, 비인 소녀소년 합창단을 꿈꾸지 마십시오. 오늘 당신이 하는 테너, 베이스에 충실하십시오. 금중에서 최고로 비싼 금이 무엇이겠습니까? 황금입니까? 적금입니까? 지금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최고의 일입니다.

 

작가 로드 드레허(Rod Dreher)가 말했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곧 일상의 문제이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사람들이 본래 특별한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을 불러 하나님이 특별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 하나님이 비범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40년이나 호렙산에서 양을 쳤습니다. 그나마 자기 양도 아니고 처갓집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탈무드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모세가 보니 양 한 마리가 없습니다. 어디 있나 찾아보니 숲속에 묶여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내서 가슴에 안고 어루만졌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양 한 마리를 소중히 여겼으니 이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맡기리라”. 일상에 충실한 모세에게 특별한 은총이 임한 것입니다.

 

갈멜산의 엘리야가 영웅입니까?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미디안과 싸운 기드온이 영웅입니까? 전쟁이 났는 데 뒷켠에서 밀타작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고 일상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평범한 그들을 특별하신 하나님이 특별하게 쓰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말했습니다. 평범한 것은 이류가 아니다”.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은 꿈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루 하루의 평범한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하게 되고 비범하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수아 시대, 여리고에 살던 한 여성 라합을 사랑하신 하나님, 그가 일상에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이 그를 특별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큰 은혜가 큰 믿음을 낳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평범한 사람을 사용하실 때는 반드시 믿음을 먼저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오고 어떻게 생기는 것입니까? 1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2:1,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놀랍게도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기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기생여관 주인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간 곳은 여리고 여관이었고 라합은 그 여관의 주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충실한 유대인이었던 요세푸스가 자기의 선조가 창기였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이 여관집 주인이 아니라 창기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왜냐하면 기생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조나인데 이 말은 매춘하다라는 뜻을 가진 자나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어원적으로 볼 때 기생창기를 가르킵니다. 공동번역성경에도 "기생창녀로 번역했습니다.

 

라합이 창기였을 가능성의 또 하나는 여리고의 지리적 상황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리고는 지리적으로 국경에 해당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이지만 역사적으로도 여리고는 계속 국경이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이스라엘과 모압과 암몬의 국경이었습니다. 헬라시대, 로마시대, 헤롯시대에도 여리고는 국경이었습니다. 국경에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관이 있고 군대가 있습니다. 요즘도 국경을 통과할 때 세관이 있어서 여권을 보여주고 세금을 냅니다. 18장에 나오눈 삭개오도 이 여리고 세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군대가 있다면 따라오는 것이 직업여성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이 도시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직업 여성의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직업여성은 남자를 상대하는 일을 합니다. 따라서 그는 여리고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찾는 사람중에 여리고 군대 장교나 행정관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라합에게 보낸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만일 라합이 창기였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커녕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저주를 받아야 할 이유는 그가 이방인이요 가나안족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나안족속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합니다. 더구나 그가 창기였다면 도무지 살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신접한 자, 우상숭배자, 점하는 자, 그리고 창기는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라합은 어느모로 보나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나안정복에 크게 사용됩니다. 이것을 성경은 은혜라고 말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헤세트구부리다, 굽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왕이 행차할 때 왕이 많은 백성사이를 지나갑니다. 백성들은 왕의 얼굴을 보려고 거리에 서서 왕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지릅니다. 그때 갑자기 왕이 가마에서 내리더니 백성의 손을 잡아줍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성이 왕에게 절하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왕이 가마에서 내려 백성의 손을 잡아준 것이 은혜입니다. 왕은 굳이 그 복잡한 길에서 내려 백성의 손을 잡아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수고스럽고 허리를 굽혀야 하고 위험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만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호의가 은혜입니다. 굽히는 것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학자 반하우스가 말했습니다. “위를 향해 허리를 굽히는 것은 예배요, 밖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것이 자비요, 자격없는 자에게 허리를 굽힌 것이 은혜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하나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지 않았습니까? 받을만하지도 않은 데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고 주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한 부인이 파리를 여행하는 중에 쇼핑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아주 멋진 목걸이를 보았습니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목걸이라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여보, 제가 찾던 목걸이를 찾았어요. 너무나 예뻐요. 가격이 7,500불 밖에 되지 않아요. 사게 해주세요”. 그랫더니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No, price is too high”. “안돼, 너무 비싸. 사지마”. 그런데 아내는 No 다음에 컴마를 보지 못하고 이렇게 읽었습니다. “No price is too high”. “어떤 가격도 비싸지 않아”. 그래서 샀답니다. 때로는 못 보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너무 비싼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싸다고 안 준 일이 없습니다. 은혜는 본래 비싼 것입니다. 비싼 것을 조건없이 주니까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비싼 은혜가 무엇입니까?

 

이번 주에도 어떤 교우가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하는 날 기도했더니 말합니다. “목사님, 병원에 와서야 제가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평소에 항상 옆에만 있다고 느낀 가족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고 평소에 고만 고만하게 지냈던 교인들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건강하다는 것,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다 은혜네요”. 아멘.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라합이 받은 은혜가 이런 은혜였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이방인에 창기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 그러면 라합이 받은 은혜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믿음을 받았는지 도표를 보겠습니다.

 

은혜(1)

 

믿음(2)

 

말씀을 들음 마음으로 믿음 입술로 선포함 삶으로 행함

(3) (4) (5) (6)

 

(1) 첫 번째 은혜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모든 믿음이 은혜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기생 라합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은혜가 임하자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은혜와 믿음의 관계를 아십니까?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 합니다. “은혜가 임하면 믿음이 시작된다”. 옛날에 제가 자랄 때는 시골에 나무꾼이 많았습니다. 모두 산에 가서 나무해다 불을 땟습니다. 저도 가끔 산에 가서 도끼로 나무를 찍을 때가 있었습니다. , 나무꾼과 도끼와의 관계를 봅시다. 도끼가 나무를 찍습니다. 그렇다고 도끼가 나무하는 것입니까? 나뭇꾼이 도끼로 나무하는 것입니다. 나무꾼은 주인이고 도끼는 수단입니다. 이것은 은혜와 믿음과의 관계의 좋은 비유입니다. , 나뭇꾼이 은혜라면 도끼는 믿음입니다. 은혜가 믿음을 사용할 뿐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은혜는 믿음을 통해 일합니다. , 하나님이 라합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라합에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그래서 도표 (1)을 보면 은혜에서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2) 2번은 믿음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믿음은 무엇입니까? 11절 중간을 보십시오. 2:11, “너희의 하나님 여호아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 하나님이 나옵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에대한 신뢰가 믿음입니다. 믿음과 신념은 다릅니다. 신념은 나를 믿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신념은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9, 10절에 계속 하나님이 반복됩니다. 9, 여호아께서 이 땅을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10, “여호아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마칩니다. “여호아께서”. “여호아께서”,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정말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이 이긴다. 믿음이 승리한다할 때 믿음 자체가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대단한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믿음안에 계신 분을 제쳐놓고 우리 믿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그 믿음은 우리의 우상이 되고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3) 3번은 믿음을 얻는 방법의 문제입니다. 라합이 어떻게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10절입니다.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아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슴이라”. 다같이 들었슴이라”. 들었습니다. 무엇을 들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소식입니다. 여호아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10:17을 아십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4)-(6) 그러면 믿음이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여기서 부터는 빨라집니다. 들으면 믿어집니다. 11절 보십시오.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듣는 것은 귀로 듣습니다. 믿는 것은 마음으로 믿습니다. “듣자 마음이 녹았고”. “마음이 녹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성이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자의식의 세계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동의했다는 말이고 굴복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로 (5), 믿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11절 마지막입니다. 2;11, “너희 하나님 여호아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믿음의 주님을 선포하게 됩니다. 10:9,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믿음의 고백이 나타납니다. 행동입니다.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된 라합이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정탐꾼을 숨겨준 것입니다. 이 일이 쉬운 일입니까? 잡히면 죽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 저편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 여리고는 온통 긴급계엄상태입니다. 적과 내통하다 걸리면 바로 죽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정탐꾼을 숨겨 주었습니다. 이 부분을 히11:3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하는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담대한 믿음이 담대한 행동을 가져온 것입니다.

 

, 이제 라합이 가진 믿음의 내용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것은 결국 은혜와 믿음과 행함의 관계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를 탁월하게 정리한 사람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은혜의 자녀요 믿음은 선행의 어머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믿음을 낳고 믿음이 선행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위에 은혜있고 믿음 밑에 행함이 있습니다. 큰 은혜가 큰 믿음을 낳고 큰 믿음이 큰 행함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새해를 맞으면서 기도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주여, 올 한 해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옵소서. 큰 은혜로 큰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 같이 합시다, “주여, 올 한 해 큰 은혜를 주옵소서. 큰 은혜로 큰 믿음을 받아 큰 승리를 이루게 하옵소서”.

 

믿음이 최후 승리하게 합니다

결국 라합을 승리하게 한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평범하던 한 여성을 비범한 여성으로 만든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보통 여자 라합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 것도 믿음이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교수 케롤 드웩이란 사람이 책을 한 권 썻습니다.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이란 책입니다(사진). 심리학자인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를 연구했습니다. 역사를 빛내고 인류에게 유익을 남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일까? 먼저 환경을 살펴 보았습니다. 옛날로 갈수록 가난한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부유한 환경에서 잘된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가난과 부요가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닙니다. 교육상태를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사람은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인물중에는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두 개골의 크기와 모양에 차이가 있나 살폈습니다.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딱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을 그는 마인드세트라 불렀습니다. 마음의 구조입니다. 마음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이 사람을 성공하게도 하고 실패하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캐롤 드웩, "나는 이 세상을 약자와 강자, 아니면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나누지 않는다. 또 많이 배웠느냐 적게 배웠느냐로 나누지 않는다. 그 마음이 강하냐 약하냐. 그 마음에 그를 지탱하는 변치않고 일관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눈다. 그것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여러분, 심리학자의 이야기를 들으십니까? 이 사람의 말을 성경으로 말하면 무엇일까요?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그 마음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 마음에 있는 변하지 않은 일관된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 하늘에도 땅에도 살아 계신다. 하나님이 뜻과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여기에 보내셨다. 여리고같은 세상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이 무너뜨린다.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나도 승리한다“. 이 믿음입니다. 결국 라합은 이 믿음으로 살다가 성경 마1:5절에 보면 살몬과 결혼하고 보아스를 낳습니다. 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나으니라”. 그리고 그 보아스가 룻과 결혼해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결국 라합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으니 여리고의 평범한 여자 라합, 한때 기생으로 불행하게 살았던 라합이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그 뿌리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으니 그는 결국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여호수아(3) 2:1-14 2016.1.24()

오직 믿음으로

여리고(그림1. Israel, 117). (그림2. 박준서 78).

 

엘리사의 샘(그림3. Tree 95).

 

가나안시대의 제단(그림4. 박준서 80).

 

 

하나님은 평범함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쾰른 대성당(사진).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큰 용기는 특별한 일을 벌이는 용기가 아니라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는 용기입니다.

 

로드 드레허, "인간의 문제는 곧 일상의 문제이다“.

 

큰 은혜가 큰 믿음을 낳습니다.

2:1,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은혜”=헤세드=“구부리다, 굽히다

 

“No, price is too high”. (안돼, 너무 비싸. 사지마)

“No price is too high”. (어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은혜(1)

 

믿음(2)

말씀을 들음 마음으로 믿음 입술로 선포함 삶으로 행함

(3) (4) (5) (6)

 

2:11, “너희의 하나님 여호아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아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슴이라”.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2;11, “너희 하나님 여호아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이다”.

10:9,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하는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마틴 루터 믿음은 은혜의 자녀요 믿음은 선행의 어머니다”.

 

믿음이 최후 승리하게 합니다

케롤 드웩,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사진).

 

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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