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마음 같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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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19 마음 같아선~

전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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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마음 같아선~~ 전옥희.

비오는 오후 교정에서

 

비움과 고마움에서 생각이 머문다.

느린 워드로 정리 할 시간을 가진 게 무척 고맙다.

 

요즘 들어 무얼 하기 보다는 자꾸 미루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질려고 애쓴다.

그냥 TV앞에 앉아, 두 손 꼭 모으고 한 곳을 바라보며~~수다를 본다.

 

지나간 시간들이 자꾸 뜰채를 뜨듯 고운 것만 남는다.

철든 후에 밉던 생각도 없어지고,

나를 달래고 곱게 키우신 부모님과 따뜻한 유년기를 보내게 한 형제자매가 짠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것을 갖춰 주신, 아버지 덕분에 늘 부유한 내 중심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특히 부모님의 문화 재력과 염려 덕분으로 최고의 선생님과의 만남은 지금의 나에게 최고의 유산이자 선물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에 하나밖에 없었던 구 경북고등 앞 대봉동 국제미술학원에서 박종갑 선생님을 만나 데생이라는 걸 배우고, 정화여중 시절 신석필 선생님 작업실에서 정물화를 배웠다.

 

정화여중과 남산여고 재학시절, 홍대를 졸업하고 대륜고에 계시던 김기동 선생님과 정화여중 김종호 선생님의 개인 작업실에서 유화와 비구상, 현대미술이라는 작업과 멋을 어깨 너머 배웠다.

 

서울로 가기위해 공부도 작업도 열심히 했다. 그 작업실에서 같이 공부한 한 살 위 정임언니는 강원대 교수로써 미학박사가 되었고, 집이 어려웠던 외향언니는 화가의 길을 접고, 교육행정 박사를 받아 경상북도 교육행정의 달인이 되어있다. 두 언니는 내게 존경과 자랑의 대상이다.

 

계명대 회화과에 입학하여 정점식 은사님, 이영륭 교수님을 만나면서 그림을 공기같이 접하고 살게 되었고, 사회에 나와 박남희라는 경북대 교수의 러브콜로 나는 최고의 행운을 가진 여류화가로 살아가고 있다.

 

미대 입시학원은 초등학교시절 국제미술학원이 끝이었다.

79년 고3 시절, 10.26사태 후 세상 물정 모르고 11월에 예비고사를 치고 상경하여, 홍대를 가기 위해 서울의 

한만영 선생님에게 서초동에서 돈암동까지 레슨을 받으러 다니던 중, 단국대 로터리에서 12.12사태의 현장에 묶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접한 후, 나와는 상의도 없이 고3담임과 부모님의 합의하에 대한민국 최초의 특차 제도에 힘을 실어, 계대 미대 80학번으로 입적?을 하게 됐다. 80년 격동기를 핑계로 서울을 접고, 막내로 자란 나는 부모님 곁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졸업 후 모교인 대구남산고에 자리가 있어 지금껏, 학교, 부엌, 작업실로 동분서주 하루도 놀아 본 적이 없다.

단언컨대, 죽을힘을 다해 살은 우리네 평범한 아줌마다. 뭐든 성실히 지독하게 틀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작품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한 치 양보 없이 철저히 내 중심에 그림을 그렸다. 하루도 그림을 생각지 않은 날이 없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로 사인을 하지 않는다. 좋은 선생님과 많은걸 주신 우리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가르쳤고,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요즘은 날마다 비우려고 애쓴다. 아들 녀석이 숙제를 줬다. 엄마 한 달에 한 번씩은 갈비탕 먹으러 나갈 친구를 만들라고...!

 

작업실 한가득 그림이 내 친구고, 화단의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공부하던 추억들이 내겐 가장 큰 선물이고 보물이다.

 

버리고 싶던 시간들이 현재의 나를 담금질하고, 미래의 시간들이 선물이 되어 돌아온다.

 

2019 마음 같아선~

 

새로움으로 나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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