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310봉) 전남 화순 백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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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310봉) 전남 화순 백아산

아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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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7일 일요일

 

  전남도당 빨치산의 숨결이 어린 마당바위 흔적을 찾아  

 

 

등산코스 : 원리 - 상여바위 - 절터바위 - 하늘다리 - 마당바위 - 천불봉 - 백아산 - 문바위삼거리 - 전망대 - 자연휴양림 13호 산막 - 택시타고 원리

 

조정래의 '태백산맥 4부 전쟁과 분단, 9권 21장 빼앗겨가는 해방구'는 마당바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정래작가님의 마당바위에 대한 묘사에 그 위에 있는 무덤 한 기, 그리고 백아산을 뺏기고 백운산으로 떠나는 전남도당 빨치산들의 심정을 확인하고 느끼고 싶은 열망이 훅 달아 바로 화순으로 향했다.

 

산행은  원리에서 시작한다. 편안한 시골, 원리마을 입구에서 작은 동산을 오르니 바로 등산로와 연결된다. 편안한 솔밭길. 머릿속은 온통 빨치산 생각뿐이다. '어디 쯤에 숨어 있었을까? 원리도 보급투쟁지역이었겠다. 숨을 곳도 마땅치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숨어 지냈을까?'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는 빨치산의 끔찍한 생활이 걷는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만난 큰 바위. 한 바퀴 휘돌아 보니 빨치산을 보호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주변에 없는 것 같다. 이 곳에 숨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잠깐 비나 눈을 피할 수는 있겠구나. 혼자서 그려보는 빨치산의 흔적.

 

관광 목장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지나면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큰 바위 사이로 작은 돌덩이들이 흩어져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빨치산들은 길이 없는 저 사이 어딘가로 다녔을 터,,, 주위를 둘러보며 조그만 구멍같은 것만 나와도 괜히 한 번 더 들여다 봐 진다. 지금에사 각종 시설물이 놓여져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지만 과거엔 자연 그대로의 바위였을 터, 변변한 신발하나 없었을텐데 어떻게 저 바위를 오르내리며 다녔을까? 여기쯤 상여바위, 절터바위라는데 능선따라 걸어서 전체 바위 모습은 조망할 수 없다. 

 

바위 사이로 파아란 하늘색 다리가 보인다. 하늘로 돌아간 빨치산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하늘다리'로 이름붙였다는데 파란 하늘색은 그들의 영혼마냥 순수하다.

다리를 건너며 찌릿한 전율이 다가온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협곡의 깊이가 아득한 것도 있지만 손을 잡을 수 있는 난간이 바깥쪽으로 나 있어 난간을 잡으면 그 사이에 공간이 생겨 몸이 허공에 뜬 느낌이다. 네팔 산행하며 구멍 뿡뿡 뚫린 엄청난 길이의 다리도 아무렇지 않게 건넜는데,,,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다리도 흔들리는 듯 하다. 모양 빠지지만 일단 빠르게 건넌다.

 

석회암의 바위 능선은 온통 나무 데크다. 어딜 가나 과한 시설물에 눈쌀이 찌푸려지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시설로 최대한 자연경관을 해치지 말아야 되는데....

바위 능선의 장쾌한 풍경은 젼혀 느낄 수가 없고 데크를 받히는 바위덩이로 전락한 것 같아 입맛이 쓰다.

 

정상부 데크가 끝나는 곳에 오늘의 주인공 '마당바위'가 있다. 마당바위 윗부분만 볼 수 있는 상황. 조정래작가의 표현처럼 넓직한 흙마당이다. 누군가가 쓴 예의 그 무덤도 봉긋히 자리잡았다. 편편한 가장자리엔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한쪽으로 비스듬한 병풍모양의 바위가 눈을 끌지만 위에선 바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냥 흙마당이다.

그러나 사방팔방이 조망되는 곳. 최고의 요새다. 토벌대와 마당바위를 차지하기 위해 두 번의 격전으로 마당바위를 차지했으나 결국 마당바위를 내어 주고 떠날 수밖에 없는 백아산지구 빨치산들의 최후. 저기 어디쯤 해방구 주민들도 보호할 수가 없었을 터,,,,죽음을 향해 내몰리며 백운산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조원제, 천점바구, 외서댁의 무리들. 그들의 축 처진 어깨가 저 길 어딘가를 걷고 있는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아린다.  

 

마당바위를 내려와 안부에 내려선다. 뒤돌아보는 마당바위쪽 바위군이 눈에 들어 온다. 위에서 봤을 때와는 다른 큰 바위군이다. 땅에 뿌리박고 있다던 작가의 표현을 눈으로 확인하며 정상쪽으로 향한다. 

눈앞 바위 능선을 옆으로 하고 걷는 길도 바위 능선이다. 천불봉이란 안내판은 보이지 않지만 울퉁불퉁 바위 능선이 천불봉인가 보다. 데크가 없는 것이 자연적이고 걷는 맛도 좋다. 회색빛 석회암이 희끗희끗 흰거위모양을 닮아 '백아산'이란 이름을 얻었다는데 걷는 내내 비슷한 성질의 바위를 오르내린다.  

 

산죽 사이를 지난다. 토벌대는 산죽은 무조건 총을 난사해 산죽 속엔 절대 숨지 말라는 빨치산 행동요령이 떠오른다. 그냥 하루 잠깐 눈으로 훑고 가는 산에선 어디가 '트'가 될 수 있을지 짐작을 할 수가 없다. 하기사 나같은 사람이 짐작할 곳이면 그냥 죽은 목숨이겠지,,,,

 

정상부엔 마지막 바위군이 자리잡았다. 마당바위처럼 땅 속에 뿌리박은 바위군이라기 보다 흙 위에 올라앉은 바위들이다. 제각각의 모양이 어우러져 또 다시 풍경을 이룬다.

한때는 해방구였을 아래 동네를 내려다보며 다시 돌아서 관광목장으로 갈까? 능선따라 종주할까?  고민하다 눈 앞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르기로 한다. 자연휴양림이 있는 길이다.

13호 산막으로 내려가는 짧은 길은 전형적 육산으로 편안히 걷는 길이다. 전망대에서 택시를 부른다. 화순택시를 부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내려가면 거의 맞을 것 같아 휴양림으로 오라고 하고 마지막 경사진 데크길을 내려간다.

 

사람 그림자 하나없는 휴양림은 적적하기 그지없다. 생각보다 빨리 내려온 터라 택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기다리기도 애매해 그냥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10여분쯤 내려가다 길에서 만난 택시. 화순에서 온다고 멀었다고. 동복택시를 부르면 되는데,,,,갈 요금까지 하면 비싼데,,,4만원이면 나도 손해다. 맘씨 좋게 생긴 기사님이 미안한지 계속 요금 얘기를 하신다. 그리고 혼자 다니지 말라는 말까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원리에 도착해서 택시 기사님의 황망함이 이해가 된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마당바위가 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전체 모습을 올려다 본다. 주작, 덕룡, 달마산의 남도 산처럼 바위산. 그 위용이 남달리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다. 그러나 무등산, 백운산, 지리산 등 빨치산들의 근거지와 연결된 주요 근거지로서의 백아산이다 보니 그 중요도가 컸을 것이다.

백아산에서 산화한 동네 오빠, 언니였던 빨치산의 명복을 빈다. 다음 산행때부턴 우리 산 곳곳에서 이름모르게 죽어간 그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려 술 한 잔은 올려 드려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뿅', 기사님의 문자다. 조심해서 가라는 인사와 비싼 요금, 혼자 다니지 말라는 말까지,,, 다음에 혹시 화순가서 택시 이용하면 연락하겠단 인사로 마무리.

남한 어느 산인들 빨치산의 활동이 있었을 테지만 남도는 조정래작가의 '태백산맥'을 통해 그 활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작가의 존재 이유, 그래서 조정래작가는 영원하다.   

 

4부 전쟁과 분단

9권 21장 빼앗겨가는 해방구

마당바위는 사방 어느 쪽에서 보나 빼어나게 생긴 봉우리였다. 산줄기 위에 우뚝 치솟은 그 모습은 바위의 무게감으로 장중했으며, 위로 뻗치는 기상으로 장쾌했고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으로 수려했다. 그 바위 봉우리는 여러 개의 바윗덩어리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봉우리 자체가 하나의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였다. 그 바위는 20미터 이상의 높이로 직립상태를 이루며 치솟아 있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바위가 산 위에 그냥 덩그렇게 놓인 형상이 아니고 그 뿌리를 그 산속 깊이 박아 아랫부분과 유연하게 연결을 이루어 자연스러운 조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 벼랑바위 사이를 어렵사리 타서 위에 오르면, 거기에 또 하나의 경이가 펼쳐져 있었다. 300여 평을 헤아리는 그야말로 넓은 '마당'이 질편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무슨 조화인지 바위가 평평해서 된 '바위마당'이 아니고 흙으로 된 '흙마당'이었다. 그리고 바위는 담을 치듯이 가장자리를 따라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까 넓은 바위가 흙을 담고 있는 격이었다. 물이 있는 곳에 고기 있는 것이 자연의 철칙이듯이 그 흙에도 갈대·소나무·잔디·풀 같은 것들이 뿌릿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당바위'는 살벌하지 않고 그지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흙이 또한 인간의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그곳이 명당으로 소문나 오래 세월 그 언제부턴가 묘 하나가 통명산을 건너다보는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두 개도 아니고 꼭 하나인 그 묘는 인근 마을사람들의 손으로 무수히 파헤쳐져왔었다. 그런데도 다시 보면 또 그 자리에 봉분이 솟아 있고는 했다. 그 누구도 상여가 산으로 올라간 것을 본 일이 없었고, 시체를 넣은 관이 그 드높은 벼랑바위를 타고 오르는 것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괭이며 삽을 가지고 마당바위로 치달아오르는 것은 가뭄이 심하게 들어 논바닥이 짝짝 갈라지고, 개울이 말라 붕어들이 배를 하얗게 까뒤집는 해였다. 비를 기다리다 못해 나락이 타들고, 굶어죽게 될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문득 마당바위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곧 누군가가 또 마당바위에 묘를 썼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마당바위를 치달아오른 사람들은 으레 봉분 큼직한 묘를 발견하게 되었고, 분노한 그들은 인정사정없이 그 묘를 파헤쳐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경건하게 기우제를 지냈다. 그 자리는 명당인 것이 분명했지만, 사람의 묘를 써서는 안 되는 명당이었다. 그 자리에 묘를 써버리면 하늘에서 내리는 혈을 끊는 것으로서, 그 피해는 백아산 언저리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되어 있었다. 묘를 그렇게 파헤쳐버려도 어느 때 한 번 주인이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또, 그 묘에서는 뼈들이 나오기는 해도, 썩어가고 있는 시체가 나온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상스러운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남몰래 도둑묘를 쓴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낼 리가 없는 일이었고 그 깎아지른 바위 위를 관을 옮길 수 없는 일이니까 집안의 오래된 묘를 이장시키는 방법을 썼던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밤중을 틈타 이장시키는 방법을 썼던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밤중을 틈타 묘를 쓰는 사람들을 꼭 어느 한 집안의 소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전혀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명당에 묘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았던 것이다.


마당바위는 묘를 쓰는 데만 명당이 아니었다. 빨치산에게나 토벌대에게나 그것은 천연적인 망루고 초소였다. 백아산지구에서 그것을 빼앗기자 토벌대는 그곳에다 곧바로 병력을 배치시켰다. 그 마당의 흙은 텐트치기에도 적격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빼앗겼다는 것은 백아산지구로서는 실질적으로 안방문을 다 열어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감시를 받았고, 심리적으로 심장을 빼먹혀버린 것 같았고, 상징적으로 백아산 지구가 없어져버린 것 같았던 것이다. 실질적 피해를 없애고 심리적 불안감을 없애고 상징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마당바위를 다시 뺏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차례나 공격을 감행해 마당바위를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토벌대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 번째 싸움에서 다시 밀려나고 말았다. 거기에 맞서 빨치산들은 네 번째 공격을 준비했으나 실행에 옮길 수가 없게 되었다. 토벌대들은 남아 있는 해방구 반을 마저 없애고 말겠다는 듯 지나번 장마 때의 공격처럼 막강한 병력과 화력을 동원해 밀어닥쳤던 것이다. 

 

<백아산 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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