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 4개의 여성 합창곡 Op.17 (4 Gesänge O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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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 4개의 여성 합창곡 Op.17 (4 Gesänge Op.17)

멀뚱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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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 4개의 여성 합창곡 Op.17

Vier Gesänge, Op. 17 for Female Choir, Horns and Harp (1860)

     


4 Gesänge Op.17-1 / 1곡 Es tönt ein voller Harfenklang

 

브람스 : 4개의 여성 합창곡 Op.17

Vier Gesänge, Op. 17 for Female Choir, Horns and Harp (1860)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독일

 

1833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출생했다. 브람스의 아버지인 요한 야콥 브람스는 호른과 더블베이스 연주자였다. 브람스는 5살부터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우면서 음악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7살부터는 오토 프리드리히 빌트발트 코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어린 브람스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브람스의 부모는 브람스를 앞세워서 미합중국으로 건너가 천재 신동 음악가로서 돈을 벌려 했으나 코셀이 극렬히 반대하여 결국 성사되지 못한다. 코셀은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 에두아르트 마르크센에게 브람스를 보내 가르침을 받게 했고 브람스는 마르크센에게서 작곡법과 음악론을 배우면서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한다. 브람스는 11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고 전해지나 젊은 시절에 작곡된 브람스의 여러 곡은 대부분 파기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브람스는 학교를 결국 중퇴하고 집안 살림을 돕고자 연회장, 술집, 식당을 전전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때로는 개인으로서 피아노를 다른 사람에게 교습하기도 하는 동안 틈틈이, 합창단을 지휘하고 합창 음악을 편곡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은 브람스의 음악계에 후일 훌륭한 합창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그러던 중 1853년, 브람스는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을 하노버에서 만나면서 생활이 전환된 후 요아힘과 연주 여행하면서 바이마르에서 프란츠 리스트를 만났고 요아힘은 편지를 써서 로베르트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했다. 브람스와 슈만 부부는 뒤셀도르프에서 만났다. 로베르트 슈만은 젊은 브람스의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이 젊은 음악가를 세상에 소개하고자 (자신의 생애 마지막 평론이 된) 평론 「새로운 길」을 발표하여 브람스를 전 유럽에 알렸으나 이듬해인 1854년, 로베르트 슈만은 정신이 발작해 라인강에 투신한 일로 본 근교에 소재한 정신병원 엔데니히에 입원하게 된다. 브람스는 작곡에 몰두하면서 곤경에 처한 슈만 부부를 돕는 일에도 진력했다. 로베르트 슈만은 1856년에 결국 죽고 브람스는 과부가 된 클라라 슈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여자와 로베르트 슈만 가족을 평생 돕는 일변으로는 1857년에서 1859년, 브람스는 공식 직위를 처음으로 얻어 데트몰트 궁정에서 피아니스트로서 근무하면서 작곡에도 몰두할 수 있었다.


1.Es tönt ein voller Harfenklang (하프가 울리네)  2.Lied von Shakespeare(죽음이여 오라)

    

3.Der Gärtner(정원사)                                      4.Gesang aus Fingal(핑갈의 노래) 

   

Jan Schroeder. Horn / Hans-Ulrich Winkler. Horn / Julia Raines Hahn. Harp / Chor des Norddeutschen Rundfunks. Choir / Gunter Jena. Chorus Conductor


그 후 1859년부터 1862년 가을까지 고향인 함부르크로 옮겨 합창단을 지휘하고 합창곡을 작곡하다가 1862년 9월 빈으로 이주해 1863년 징아카데미합창단의 지휘자로 초빙 된 브람스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많은 뛰어난 작품을 작곡하였다. 1865년 2월부터 어머니의 사망을 추도하는 작품에 착수해 1868년에 대작 "독일레퀴엠"을 완성하고 같은 해 칸타타 "리날도"를 작곡한다. 1869년에는 로베르트 슈만의 셋째 딸 유리에를 향한 자신의 실연을 노래한 "알토랩소디"를, 1871년에는 프로이센의 對프랑스전 승리를 기념하는 "승리의 노래"를 작곡하는 등, 관현악부 성악곡을 많이 만들었다. 1872년 가을부터 1875년까지는 빈 음악인 협회장으로서 있으면서 그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지휘하였다. 1876년, 20여 년에 걸쳐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이 초연된 후 브람스는 자신의 여러 대표작으로 남은 여러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게 된다. 1877년에는 "교향곡 제2번"이 완성되었다. 1878년에는 "바이올린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표했고 이듬해인 1879년에는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에 감사의 표시로 작곡한 곡이 바로 "대학 축전 서곡"이다. 1883년에는 "교향곡 제3번"이, 1885년에는 "교향곡 제4번"이 완성되었다. 1890년까지 브람스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비극적 서곡", "현악 5중주곡"을 작곡했다. (▲ 함부르크 여성 사중창단 - 브람스는 여성합창단으로 구성된 이 여성 중창단의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이 사진은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소중하게 간직했다.)


1. Es tont ein voller Harfenklang                     2. Lied von Shakespeare

   

 3. Der Gartner                                              4. Gesang aus Fingal  

    

Choir: Leipzig Radio Chorus / Conductor: Wolf-Dieter Hauschild


1890년에 이르러 브람스는 체력 한계와 창작력 쇠퇴로 결국 작곡을 접게 되었으나 이듬해인 1891년, 클라리넷 연주자 리하르트 뮐펠트의 연주를 듣고 다시 창작력과 영감을 회복한 후 말년까지 클라리넷을 목적한 독주곡과 클라리넷이 중심이 되는 여러 실내악 곡을 작곡하게 된다. 1896년, 오랜 친구로 지내던 클라라 슈만이 병으로 쓰러지자 브람스는 사망을 대상으로 해 생각하면서 기독교 성서에 토대한 "4개의 엄숙한 노래"를 작곡했다. 특히, '4개의 여성 합창곡 Op.17'은 데트몰트의 공작집에서 귀부인들로 조직되어 있는 여성합창단을 위해 작곡된 두 개의 호른과 하프에 의해 반주되는 여성합창곡으로서 브람스의 능력과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 하겠다. 결국 1896년 5월 20일, 클라라 슈만이 죽었고 브람스의 건강도 악화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오르간을 목적한 "11개의 코랄"을 작곡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897년 4월 3일, 브람스는 간암이 매우 악화되어 결국 사망하였다.


l'Ensemble Vocal d'Enfants du Conservatoire de Re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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