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장인 이야기 EIDF ‘울림의 탄생’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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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인 이야기 EIDF ‘울림의 탄생’을 보고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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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인 이야기 EIDF ‘울림의 탄생’을 보고

 

 

장인은 큰북을 바라보고 있다. 트럭에 실려 떠나 보내는 장인의 마음은 어떠할까? 장인의 주름진 얼굴에는 자신의 작품을 떠나 보내는 착잡함이 배어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뿌듯함이 있을 것이다. 어제 늦은 밤 EBS 다큐영화제 EIDF에서 본 것이다.

 

 

또다시 EIDF철이 되었다. 매년 한차례 여러 편의 다큐영화제를 방영하는데 어제 늦은 밤 걸렸다. 북을 만드는 장인 임선빈 악기장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영화 제목은 울림의 탄생이다. 영화를 마칠 때 새벽 1시가 넘었다.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커다란 북을 보았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큰북이 등장했다. 큰 절에 가면 큰북을 볼 수 있다. 누가 만들었을까? 놀랍게도 귀가 거의 먹은 장인이 만들었다.

 

장인은 귀가 먹어 보청기를 끼고 작업을 한다. 장인은 다리를 절룩거린다. 선천적인 것인지 직업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장인은 신체적 악조건과 무관하게 북 만드는 일에 올인한다.

 

 

북장인은 혼자 하지 않는다. 아들과 함께 일한다. 아들이 자원해서 하는 것이다. 다큐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장인은 묵묵히 일만 한다. 한평생 작업실을 떠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아버지는 쇠가죽을 가위질을 하고 나무를 다듬고 못을 박는 등 힘든 일을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보조한다.

 

 

장인은 심지어 큰북에 그림까지 그려 넣는다. 마치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 같다. 요즘말로 말하면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말할 수 있다. 한가지를 잘 하면 다른 것도 잘 하는 것 같다.

 

장인은 왜 한평생 허름한 작업실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하는 것일까? 일하는 것이 고된 노동이라면 오래 전에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일을 해도 힘든 줄 모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을 것이다. 직장일이 힘든 것은 시켜서 하기 때문이다. 일이 힘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트레스일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스트레스가 있을 수 없다. 일을 하면 할수록 신나서 일한다. 몸이 아파도 일만 손에 잡으면 아픔은 잊어 버린다. 일에 몰입했을 때 일종의 선정삼매와 같은 상태가 된다. 삼매에 들면 기쁨과 행복, 평온이 찾아 온다.

 

장인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물건만 잘 만든다고 될까? 외형만 예술품처럼 보이면 잘 만드는 것일까? 물건에는 용도가 있다. 겉모습을 아무리 예술품처럼 멋지게 잘 만들었어도 쓰임새가 없다면 아름다운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은 어떠할까?

 

북은 소리를 특징으로 한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 견해의 청정에서는 북과 소리에 대하여 정신과 물질을 설명하는 예로 들었다. 그래서 큰북을 조건으로 소리가 일어나듯, 색을 조건으로 명이 일어난다.”(Vism.16.33)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색과 명은 서로 다른 것이고 섞이지 않는 것임을 말한다.

 

종종 법사가 깨달음을 설명할 때 손바닥을 친다든가 종을 치는 등 소리로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소리를 예로 들어서 정신과 물질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래서일체의 명색현상은 전에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고, 생겨난 것은 소멸하는 것이다.”(Vism.20.96)라고 말했다.

 

북을 치면 소리가 난다. 이런 소리는 전에 없던 것이다. 없던 것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생겨난 소리는 즉각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생겨나는 그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S56.11)라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오온은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생멸함을 말한다. 이와 같이 소리 하나 듣고서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통찰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리는 조건 발생하는 것이다. 북을 조건으로 해서 소리가 난다. 장인이 북을 만드는 것은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큐를 보면 제자이자 아들에게 소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래서 두드려 보고 못을 박는 행위를 반복한다. 장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장인의 노우하우(Know how)라고 할 수 있다.

 

장인이 북을 만들지만 하드웨어인 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장인은 소프트웨어라고 볼 수 있는 소리를 만들고자 했다. 이는 정신영역인 울림을 만들고자함이다. 대체 어떤 울림을 말하는 것일까?

 

장인은 집을 떠나 12세 정도 되었을 때 어느 날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쇠북을 처음 두드렸을 때 울림에 매료되었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났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가 그리워 애태웠다고 한다. 장인에게 울림은 어머니의 소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소리를 쫓아서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말했다.

 

 

 

북소리가 한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어렸을 때 들었던 심오한 북소리가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렸을 적 가슴을 울리게 만든 북울림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화두처럼 된 것이다.

 

장인은 무엇이든지 다 한다. 쇠가죽을 재단하는 일부터 채색하는 일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모두 장인의 망가진 몸에서 나온다. 장인의 모습은 허름하기 그지없지만 완성된 작품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다큐를 보면 고양이가 등장한다. 작업장에는 열 마리가량의 고양이가 있다. 새끼를 낳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작업장에서 낮잠만 자는 것 같다. 아무 하는 일없이 먹기만 먹기만 하는 것 같다. 온몸을 다하여 힘겹게 일하는 장인과 장인 아들의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

 

 

장인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 안락하고 편하게 살고자 한다. 그리고 먹는 것을 즐긴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을 기피한다. 일을 하지 않고 불로소득으로 살고자 한다. 말간 얼굴과 희고 고운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나태할 뿐만 아니라 많이 먹고

또한 잠자며 빈둥거리니

곡식먹고 자란 커다란 수퇘지처럼,

그 어리석은 자는 자꾸만 모태에 든다.”(Thag.17)

 

재가의 삶을 버리고 완성하지 못한 채

입을 쟁기로 삼아 게걸스럽게 먹으며 나태하니,

곡식먹고 자란 커다란 수퇘지처럼,

그 어리석은 자는 자꾸만 모태에 든다.”(Thag.101)

 

목숨은 짧아져 가는데

몸이 뚱뚱하고 무거워지니

육신의 안락만을 탐한다면,

어찌 수행자의 훌륭함이 있겠는가?”(Thag.101)

 

 

테라가타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테라가타는 부처님 직제자들이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경전이다. 때로 출가수행자들을 경책하는 게송도 있다. 게송에서는 정진을 게을리하고 먹는 것에만 관심 있는 자들에 대하여 돼지로 비유했다.

 

수행자는 목적이 있다. 특히 출가수행자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적을 향해 가야 한다. 그럼에도 감각적 쾌락에 빠져 있다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먹는 것을 즐기는 수행자에 대하여 입을 쟁기로 삼아 게걸스럽게 먹는 수퇘지로 묘사했다.

 

먹는 것이 낙인 사람이 있다. 인생을 먹는 재미로 보내는 사람이 있다. 식사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면 먹는 것을 낙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다가 식사하러 갑시다.”라든가, “먹고 합시다.”라고 말한다면 식사하는 것이 하루일과 중에 가장 큰 일이 되는 사람이다.

 

인생의 목적이 있는 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평생 그 길을 간다. 수행자도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평생 그 길로 간다. 해탈과 열반을 맛본 자들은 그 맛을 못 잊어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내가 오늘 맛본 것은

백 가지 맛의 청정한 음식으로 생각지 못한 것이니,

앎과 봄이 한량없으신,

고따마 부처님께서 설한 가르침이다.”(Thag.91)

 

좋은 용품이 내게 필요가 없다.

안락하여 가르침의 맛에 만족한다.

위없는 최상의 맛을 맛보았으니,

독과는 알고 지내지 않으리.”(Thag.103)

 

가르침의 보시는 일체의 보시를 이기고

가르침의 맛은 일체의 맛을 이긴다.

가르침의 즐거움은 일체의 즐거움을 이기고

갈애의 부숨은 일체의 괴로움을 이긴다.”(Dhp.354)

 

 

맛중의 맛은 법의 맛’(法味: dhammarasa)일 것이다. 그래서 가르침의 맛은 모든 맛을 이긴다고 했다. 한번 가르침의 맛을 보면 다른 것은 시시해 보일 것이다. 선정에 들어 기쁨과 희열, 평온을 맛보았다면 감각적 쾌락에 따른 거친 맛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청정한 삶을 살아서 한번 열반을 맛보면 오로지 그 길로 가게 되어 있다. 이를 가르침의 맛이라고 했다. 또한 최상의 맛(rasaggamuttama)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법의 맛은 백 가지 맛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부페에 가면 먹을 것이 많다. 마치 백 가지 음식을 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먹고자 하면 그다지 먹을 것이 없다. 아무리 맛 있는 음식도 먹고 나면 포만감 때문에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가르침의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선정삼매에서 기쁨과 행복, 평온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선정에 든 자에 대하여 기쁨을 음식으로 먹고 사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랜만에 EIDF를 보았다. 이제 EIDF철이 되었으니 EBS를 즐겨 찾게 될 것 같다. 지난 것이라면 사이트에 들어가서 유료시청도 가능하다. 이번에 본 북장인을 보니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무엇을 한 것인가?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있다. 15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쓰다시피 하고 있다. 요즘 같이 일감이 없는 날이면 두 개도 좋고 세 개도 좋다. 장인이 돈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하듯이, 블로거도 돈이 되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서 글을 쓴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다.

 

북장인은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북장인은 소리를 만든다. 소리가 본질이고 북은 소리를 내기 위한 하드웨어에 지나지 않는다. 어렸을 적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찾아서 머리가 희게 될 때까지, 귀가 멀게 될 때까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장인에게 있어서 북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다. 장인에게 북은 자신의 모든 것이다. 자신이 북이 되고 북이 자신이 된다. 그래서 아파도 북만 잡으면 힘이 난다. 어쩌면 나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글쓰기에도 장인이 있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장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글만 쓰면 힘이 솟는다면 어느 정도 장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십년 이상 매일 쓰고 있다면 프로페셔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나는 글쓰기 장인이 된다.

 

 

악기장 임선빈 장인은 어렸을 적 신비한 북소리의 울림에 매료되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북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라면 장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내가 글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면 나도 글쓰기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을 만드는 장인은 한평생 몸이 망가지도록 북을 만들었다. 장인은 북이라는 하드웨어만 만든 것이 아니다. 북은 소리가 나야 북이다. 북울림이 있어야 북이다. 글도 울림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 글이 되어야 한다. 나도 세상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다.

 

 

2021-08-2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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