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울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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蔚山 素識/蔚山의 발자취

옛 울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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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언양지도, 靑丘要覽 1863~1907)

 

(울산읍 지도(1930년), 울산읍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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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교동 중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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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울산읍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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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울산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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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무렵

울산시장

 

 

 


울산 장날

울산향교

울상 우체국

울산극장

울산객사 남문루(태화루)

울산 비행장(현, 삼산동 신시가지)

울산읍내 중심가

성남시장


성남동 상업은행 사거리

 

 



방어진 어항

울산초등학교

복산초등학교

병영초등학교

양사초등학교

1963년 집중호우로 침수된 울산 시가지

태화강 십리대밭

1930년대 울산읍 전경

 


태화루

촬영시기 논란 ‘5일장’ 1910년 전후 확실시
서울대박물관측 수정 필요성 인정…한삼건 교수 정황 유추 태화루 사진 공개
2010년 07월 11일 (일) 23:04:57 홍영진 기자 thinpizza@ksilbo.co.kr

 

 

   
 
  ▲ 가마가 보이고 조선인 관리로 보이는 인물이 서 있어서 1907~1909년 사이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5일장’속 태화루의 모습은 이 사진과 비슷하다.  
 
촬영시기에 대한 논란을 빚고 있는 <사진으로 본 울산 100년> 화보속 ‘5일장’ 사진이 학계 통설인 1930년대가 아니라, 1910년 전후의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본보의 보도(7월5일자 13면, 7월7일자 12면) 이후 학계의 제보가 잇따르는 가운데 촬영자 역시 애초 알려진 아키바 다카시(秋葉 隆)가 아닌 제3의 인물로 추정되는 등 일제 및 근대화 전후 시기의 울산관련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논란의 사진 속 내용은 태화루 현판이 붙은 울산객사 남문을 기점으로 한 장터 풍경으로, 유리건판 원본을 소장한 서울대학교박물관의 선일 학예사는 촬영시기 수정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는 “1917년 출간된 <울산안내> 등 고문서 화보집들을 비교 검토한 결과 문제의 사진은 기존에 알려진 촬영 연대보다 최소 20여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진은 1926년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아키바 다카시(1888~1954)가 남긴 유리건판 무더기에 함께 보관됐던 것으로, 공개되는 과정에서 다카시의 주요활동 연대인 1930~40년대 자료로 굳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 1910년대 후반의 것으로 보이는 공립울산보통학교 정문. 조건고적도보에 실린 것으로 객사 중문 건물이 남아 있으며, 과거 돌계단이 있던 곳이 견치석 축대와 경사로로 바뀌었다. 태화루에 유리외벽이 설치됐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는 합방전후~일제~해방 및 근대화 과정에서 객사 남문 및 주변 정황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를 본보에 제공했다. 그는 “1910년 합방 전후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 등 대학원 강의에 활용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자료”라며 “1930년대가 확실한 또다른 사진 및 엽서에 따르면 장터거리는 일본식 주택 일색이며, 남문 앞 계단 및 울타리 모습도 문제의 사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어 “일본국회도서관에 소장된 1930년판 울산약지도에 따르면 객사 남문은 이미 알려진 도서관
   
▲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보통학교 정문. 객사 중문 건물이 없어지고 교문에 일본식 문주가 생김. 문루 동편의 행랑채가 사라졌고 입구 경사로가 다시 계단으로 바뀌었다. 사진제공=한삼건 교수
이외에도 ‘전사(戰史)보존회’가 상주한 것으로 돼 있다”면서 “<울산안내>를 비롯한 다양한 사진으로 비추어 연대 판정의 근거가 된 ‘유리외벽’은 적어도 20년대 이전에 설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오는 15일 울산연구회(대표 서상용)가 주관하는 연구회에서 이와 관련된 강연을 할 예정이다.

신형석 울산시 학예사는 “관련기사를 접한 뒤부터 <조선고적도보(1931년판)>에 실린 ‘울산객사 태화루’(1·2층이 모두 유리외벽으로 둘러싸여 있음) 등 다양한 자료를 다시 살피는 중”이라며 “사진 한 장에 대한 연대를 판정한다는 의미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일제 및 근대화 과정에서의 울산 자료들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건너편에 보이는 태화루는 신정동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울산국민학교가

          지어졌고 태화루 그자리가 울산초등학교 정문자리 앞쪽 외쪽이 구상업은행

          자리로 생각됨 구상업은행앞 사거리 남쪽에서 촬영한것으로 생각됨

          뒷편 소나무는 지금 기상대와 북정동 꼭대기마을로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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