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산책 / 손신부의 루가복음/ 대림~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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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이종한신부

성화산책 / 손신부의 루가복음/ 대림~연중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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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naver.com/sm991109/220026198065 기전발이 시몬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10월 18일)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티모테오 2서 4,10-17; 루카복음 10,1-9



아름다운 재능


루가복음 서문, 루가에 대한 소개- 화가, 의사

성모자상을 그린 장면이다. 








루카복음 1장


대림 제3주간(12월 22일)

 

마리아의 노래

루카복음 1,46-56

 



머리말



대림 제3주간(12월 19일)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루카복음 1,5-25









루카2장


성탄

성탄

성전봉헌


한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다해)

 

예수님의 소년 시절

집회서 3,2-6.12-14; 콜로새서 3,12-21; 루카복음 2,41-52


성전에서 소년 예수를 찾다







루카복음3장


마에스타 (Maesta)

두초14세기화가



중앙 패널 아래쪽에는 그리스도의 유년 시절의 장면들과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예언자들이 그려진 프레델라(Predella)가 있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예언자들이 여섯 명이 있는데

그들은 이사야 예언자에제키엘 예언자솔로몬 왕,

말라키 예언자예레미야 예언자호세아 예언자이다




 대림 제3주일(다해)

세례자 요한의 설교

루카복음 3,10-18

 




연중 제4주간 금요일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

집회서의 47,2-11마르코복음 6,14-29 




님 세례 축일(다해)

 

그리스도의 세례

이사야서 40,1-7; 사도행전 10,34-38; 루카복음 3,15-16.21-22

 



이사야 예언자는 시인의 마음으로 노래한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이사야 40,1)

 

하느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하느님께서 선택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다.

그는 성령의 뜻에 따라 살고,

사람들에게 정의를 실천한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이사야 40,2-4)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이사야 40,6-7)



그리스도의 세례

요아킴 파티니르 



루카복음 3,1-18.21-22을 배경으로 <그리스도의 세례>





미켈란젤로(1475~1564, 이탈리아)는 시스티나 성당의 유리창 위에 반달 모양의 공간을 마태오복음 1장 1-16절까지 있는 예수님의 족보로 채운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손용환



예수님의 족보이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려 온 그리스도인가를 족보를 통해 말하려 했다























루카복음 4장




사순 제1주일(다해)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루카복음 4,1-13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열왕기 하권 5,1-15; 루카복음 4,24-30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

루카복음 4,31-37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코린토 1서 3,1-9; 루카복음 4,38-44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루가복음5장



연중 제5주일(다해)

 

고기잡이 기적

루카복음 5,1-11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요한1서 5,5-13; 루카복음 5,12-16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

이사야서 35,1-10; 루카복음 5,17-26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루카복음 5,27-32

[출처]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신자가 신자답게 사는 방법|주님 

공현 후 금요일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요한1서 5,5-13; 루카복음 5,12-16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요한1서 5,5-13; 루카복음 5,12-16 

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이사야서 58,9-14; 루카복음 5,27-32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단식 논쟁

콜로새서 1,15-20; 루카복음 5,33-39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단식 논쟁 

코린토 1서 4,1-5 ; 루카복음 5,33-39 

 










루카복음 6,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

콜로새서 1,21-23; 루카복음 6,1-5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다

코린토 1서 5,1-8; 루카복음 6,6-11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10월 28일)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

에페소서 2,19-22; 루카복음 6,12-19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

루카복음 6,20-26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

루카복음 6,20-26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루카복음 6,27-38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루카복음 6,39-42 

 

  




중 제23주간 토요일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티모테오 1서 1,15-17; 루카복음 6,43-49 

 









루카복음 7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다

코린토 1서 11,17-26.33; 루카복음 7,1-10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다

루카복음 7,11-17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답변하시다.

루카복음 7,18-23 

 

 

역방향으로 가는 사람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루카복음 7,24-30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루카복음 7,36-50

 


용서받은 자와 용서받지 못한 자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 시몬의 집 뜰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유다인의 부잣집은 정방형의 마당을 한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마당에는 정원과 우물이 있었고,

따뜻한 날에는 그 마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곳에 손님이 초대되었을 경우에는 세 가지 풍습을 지켰다.

먼저 주인이 현관으로 나와 손님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했고,

이어 먼지로 더러워진 손님의 발에 물을 부어 씻어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약간의 향료를 분향하거가

장미향 한 방울을 손님 머리 위에 부었다.

그런데 바리사이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해 놓고도

그런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그러나 죄 많은 여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고,

머리카락으로 그분 발을 닦았으며,

발에 입맞춤을 하였고,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발라 드렸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시몬의 마음은 편할 리 없었다.

그래서 시몬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루카 7,39)


우리도 시몬처럼 사람들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는 않는가?

또 사람의 과거에 집착해서 현재의 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는 않는가?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신다.

되돌아온 아들을 대하실 때에도 그분은 따지지 않으셨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고 아들을 용서하신 것도 아니셨다.

오직 아버지께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그분은 기뻐하셨을 뿐이셨다.

 

예수님께서도 죄 많은 여인의 과거를 보지 않으셨다.

오직 그 여인이 눈물로 통회하는 것만을 보시고

그녀의 죄를 모두 용서하셨다.

그런데 바리사이 시몬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죄의 용서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용서를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남에게 용서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용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용서가 무엇인지 모르니

자신도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을 진실로 용서해봐야 하느님의 사랑도 느끼고,

또 용서하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을 드러낼 수 있다.

 

하느님과 자신을 갈라놓고 단절시키는 것이 무엇일까?

자기만족이다.

사람들에게 아쉬운 것이 없고,

하느님께도 아쉬운 것이 없는 자기만족은

자신과 하느님을 갈라놓고 갈라서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자기만족을 하는 사람은 죄의 용서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

그러면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이고,

하느님 앞에서 의인처럼 행동하는 것은 죄악이다.

하느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살펴보고

하느님께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해야겠다.

하느님께 용서를 받아 본 사람이 다른 사람도 용서하는 법이다.

또 자신과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법이다.

죄 많은 여인은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바리사이 시몬은 예수님께 용서를 받지 못했다.

용서를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기만족을 하는 사람인가?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티모테오 1서 4,12-16; 루카복음 7,36-50

  

도덕성의 위기와 권위의 회복









루카복음 8,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여인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돕다

루카복음 8,1-3

 


예루살렘 여인들과 하루살이


예수님의 곁에는 어떤 여인들이 있었을까?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과 함께 몇몇 여자도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루카 8,2-3)

 

우리는 이들을 예루살렘 여인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예루살렘 여인들의 이름을 알려준 복음은 루카복음서 뿐이다.

그래서 루카복음서를 가리켜 여인들의 복음서라고도 부른다.

예수님께서는 힘없고 소외받은 여인들의 구원자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에서도

예루살렘 딸들을 위로하셨다.(루카 23,27-33 참조)

 

그렇다면 그 여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3)

성경은 아주 간단히 말한다.

그러나 자기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을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산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돕기 위해서는 구원을 갈망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런 일을 결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또 예수님의 일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구원을 희망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현재의 삶을 위해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는 것뿐이다.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코린토 1서 15,35-37.42-49; 루카복음 8,4-15

 


흙으로 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오는가?”(1코린토 15,35)

 

죽은 이들의 부활은 씨와 같습니다.

씨는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사람도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1코린토 15,42-44)

영적 인간으로 부활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토 15,47-49)

 

그렇다면 우리는 육적 인간입니까?

아니면 영적 인간입니까?

흙으로 된 사람입니까?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속한 모습대로 부활할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흙으로 된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말씀의 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습니다.

 

어떤 씨는 길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씨는 바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갑니다.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합니다.

 

이들은 모두 육적 인간이며,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이들은 모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영적 인간은 다릅니다.

 

말씀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지면

그들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백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십시오.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마태오복음 13,10-17

 

 



떠난 다음에야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오 13,11-12)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하늘나라의 신비를 외면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외면하고,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몸을 형식적으로 모시기 때문이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우리,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야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을 빼앗긴 다음에야 후회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티모테오 1서 6,13-16; 루카복음 8,4-15 

 

말씀의 씨와 열매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의 비유

잠언 3,27-34; 루카복음 8,16-18



 

선행 가리기


선행을 가린다는 것은 등불을 가리는 행위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 8,16-18)

 

그런데 우리는 선행을 가려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축복은 세상을 밝히는 도구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정녕 베풀면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모우기만 하면 모운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

그래서 요즘 세상이 무섭게 된 것도

베풀지 못한 우리에게 약간의 책임은 있다.

우리가 등불을 그릇으로 덮어 놓았고,

우리가 선행을 다음으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예수님의 참 가족

히브리서 10,1-10; 마르코복음 3,31-35

 



그리스도의 형제

법은 무엇인가?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는 하느님께 완전하게 나아갈 수 없다.

만일 율법을 통해 하느님께 완전하게 나아갈 수 있다면

해마다 계속해서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당신의 몸을 단 한 번 바침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분이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의 어머니고 형제인가?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반문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코 3,32-35)

 

예수님의 형제가 되려면 혈연관계가 중요하지 않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그분의 형제가 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

세상의 구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율법을 지키는 것도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의 완전한 방법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을 위한 완전한 방법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사랑을 통해 그분의 구원사업에 동참한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분의 어머니고 형제가 되는 것이다.











루카복음 9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열두 제자의 파견

잠언 30,5-9; 루카복음 9,1-6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

루카복음 9,7-9 






빵과 물고기의 기적

페드로 오렌테

 

 



  

페드로 오렌테(Pedro Orrente, 1580-1645)는 스페인 출신 바로크 화가다.

그가 그린 <빵과 물고기의 기적>은 요한복음 6장 1-15절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  빵을 주는 사람이 임금이요, 밥이 하느님이니까.그런데 화가는 우리의 시선을 또 다른 곳으로 모은다.

예수님의 반대편에는 한 여인이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고,

사람들은 그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다.

이것이 또 다른 기적이다.

한 사람이 오천 명을 먹인 것도 기적이지만

한 사람이 오천 끼의 식사를 먹이는 것도 기적이다.

그분이 바로 내 어머니다.

오천 끼의 몇 갑절을 정성스럽게 먹인 분이 내 어머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젖을 주셨다.

당신의 몸을 주셨다.

당신의 살과 피를 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어머니를 임금으로 모셔야 하지 않을까?

억지로라도.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예수님을 따르려면 

욥기 9,1-12.14-16 루카복음 9,57-62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가장 큰 사람

즈카르야 8,1-8; 루카복음 9,46-50 








              루카복음 10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루카복음 10,13-16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루카복음 10,13-16

 

 




중 제26주간 토요일

 

일흔두 제자가 돌아오다

욥기 42,1-3.5-6.12-17; 루카복음 10,17-24 

 

 

그렇습니다아버지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루카 10,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중 제24주간 목요일 - 용서받은 자와 용서받지 못한 자|작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읽어주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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