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추상미술의 아버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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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추상미술의 아버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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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Wassily Kandinsky, 1906. by Gabriele Münter. 채색 목판화. 25.9 × 19 cm. 

바실리 바실리예비치 칸딘스키(Wassily Vasilievich Kandinsky, 1866 ~ 1944)는 
러시아의 화가, 판화제작자, 예술이론가이다. 
피카소와 마티스와 비교되며 20세기의 중요한 예술가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그는 
초기 추상미술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일반적으로 그는 최초의 현대 추상작품을 그린 작가로 평가된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출생해 오데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배웠고, 전문가로서 인정받아 대학교수가 되었다. 
거기에서 30세 때에 그림 공부를 시작하여, 모델 데생, 스케치, 해부학을 배웠다.

1896년에 뮌헨에 정착하여 사립학교와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다. 
러시아 혁명이 끝난 1918년에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나, 모스크바의 예술 이론에 
동의하지 않아 모스크바 미술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버리고 1921년에 독일로 돌아왔다.

1922년에서 1933년까지 예술과 건축을 위한 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담당한 것은 벽화 공방이었는데, 이후 바우하우스가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나아가서 사학으로 격하되어 베를린으로 이전하고 1933년 정치적 압력으로, 
나치로 인해 폐쇄당하는 날까지 계속 그 자리에 있었으며, 
바우하우스의 말기에는 부교장의 자격으로서 널리 신망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는 프랑스로 옮겨 여생을 살았으며, 1939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고 
1944년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프랑스어: Neuilly-sur-Seine)에서 사망하였다.

칸딘스키의 초상화를 그린 가브리엘 뮌터 (Gabriele Münter 1877~1962)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그림 공부를 착실히 한 표현주의 화가였다.
당시 여성화가에 대한 위상이 좋지 않았던 시절,
둘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안고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칸딘스키 36세, 뮌터 나이 25세 의 뮌헨의 작은 마을

무르나우(Murnau)에서 만나 사랑하며 함께 그림과 여행을 즐기게 된다.

두 사람은 바이에른 지방의 무르나우에서 동거를 하며 활발한 예술 활동을 했다.
1911년에 창립된 '청기사'와 교류하며 활동을 하였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청기사파는 자연적으로 해산이 되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떠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고, 
꾸준한 서신 교환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1915년 스톡홀름에서 둘은 잠시의 만남이 있었지만, 
이는 이후의 오랜 동안 이별하게 되었다.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고, 뮌터는 그를 기다렸지만, 
칸딘스키는 1917년 러시아에서 장군의 딸과 결혼한다.

충격에 빠진 그녀는 실연의 상처를 안고 무르나우의 집에서
고독하게 지내다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 뮌터의 작품에는 
그녀 삶의 모든 정서와 풍경이 담겨져 있다.
맑고 상징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단순한 형태
그리고 검고 뚜렷한 윤곽선으로 내면의 정서를 담아 형상화하였다.

 

Wassily Kandinsky. 1913.

20세기 초,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장미빛 미래를 꿈꾸며 도약을 준비한다.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꿈을 무참히 깨뜨리고 말았다. 
이 시기에 즈음하여 미술계에는 추상적인 패턴의 작품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바실리 칸딘스키는 추상화를 통한 회화의 혁명을 주도하며 
20세기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거목으로 서 있었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의 프랑스의 화가로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모스크바의 명석한 법률가이자 러시아 민속 문화를 공부하던 

칸딘스키는 법학 교수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돌연 30세에 법학을 포기하고 뮌헨으로 옮겨와 미술을 공부하면서 
동료 학생이자 자신보다 13살 어린 파울 클레(Paul Klee)와 오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칸딘스키는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초기 회화는 러시아에서 내려오던 전설을 시적이고 마술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1908년 42세 되던 해 뮌헨을 떠나 무르나우의 산촌 마을에 머물며 
풍경을 그리면서부터 그의 미술에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온다.

자연의 이미지는 곧 격렬하게 상충하는 색채와 형태의 조각과 선들로 분해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추상화되어 갔다. 
칸딘스키는 시각적인 표현과 아울러 이론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칸딘스키는 많은 전위파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1911년에는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아우그스트 마케(August Macke) 등의 
동료들과 함께 '청기사파'를 결성했다. 
이들은 <청기사>라는 잡지를 통해 추상표현주의를 

유럽에서 가장 흥미로운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돌아가 혁명에 열렬히 참여했고 
모스크바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마르크와 마케 둘 다 목숨을 잃었다. 

칸딘스키의 화풍은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과 
알렉산드르 로트첸코(Alexandre Rodchenko:1891~1956)의 

구성주의 (구축주의 Constructivism)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아 

다시 한번 극적으로 변모했다. 

1922년 칸딘스키는 독일로 돌아와 클레의 초청으로 바이마르(Weimar)와  
독일에 있었던 조형예술학교로 기능적이고 합목적적인 새로운 미를 추구했던 
데사우(Dessau)의 바우하우스(Bauhaus:1919~1923년)에서 연구하게 된다. 
그는 색채에 대한 실험을 계속했고 이즈음부터 기하학적인 양식을 보여주었다. 

1926년 바우하우스와의 관계가 끝난 후 그는 

<점, 선, 면>이라는 미술이론과 미학에서 중요한 논문을 발행했다. 
만년에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 (Neuilly-sur-Seine)으로

이주한 뒤 1944년 그곳에서 사망했다.

1896년 교수직을 포기하고 뮌헨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그림 그리기에 몰입했던 어느날,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온 칸딘스키는 

선명함과 강렬함으로 격정적인 감동의 순간을 접했다. 
바로 거꾸로 세워진 자신의 그림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무슨 그림인지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었지만 칸딘스키는 

이를 통해 추상화를 탄생시키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회화에 음악성을 부여했다. 
20세기 초의 현대시와 미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한 바그너의 

오페라 이론으로부터 총체 예술에 대한 생각을 받아들여 공감각의 원리로 발전시켰다. 

공감각이란 이미지와 음 또는 냄새와 맛과 같이 

서로 다른 영역의 감각을 함께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색상은 건반이고 정신은 피아노, 화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영혼을 울리는 손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음악이 화음만으로 청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처럼 회화에서도 
색채나 선만으로 대상을 표현해 내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색조와 형태의 배치는 

음악적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영혼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는 색의 상호작용과 기하학적인 경향을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색채에 음악적 감정을 부여하고자 했다. 
작품에 명시되어 있는 <즉흥>, <음향>과 같은 

음악적 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191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4년까지 

칸딘스키의 작품 세계는 절정을 이루게 된다. 
구상적인 작품에서 비구상으로의 전환을 꾀하면서 

그는 당대의 신미술가협회와 결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칸딘스키는 음악가 친구들과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회화를 크게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누어 볼 때 구상은 구체적인 사물이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릴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인 반면에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지 않거나, 혹은 대상이 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화가의 주관적인 감정에 의지해서 완성되는 회화를 추상화라고 한다. 
추상화는 화가의 주관적인 예술 활동이므로 
결국 그림을 이해하기보다 화가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에 나름대로 원칙을 두고 즉흥(Improvisation)이나 

구성(Composition), 인상(Impression) 등으로 회화를 구분하기도 했다.
특정 대상이나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서 완전히 제거한 화가였다. 
이같은 실물 주제의 포기를 정당화하며 회화의 자율성을 부르짖었다. 

그는 무형의 주제로부터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립하며 공감각의 원리로 발전시켜 나갔다.
1933년 그의 작품을 퇴폐 예술이라고 낙인찍은 나치주의로 인해 
독일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후 칸딘스키는 유럽의 추상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만년의 칸딘스키는 자유롭고 조용한 작품 제작의 시간에 또다시 몰입한다. 
기하학적인 구성을 포기하고 부드러운 곡선과 유기체의 형태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인식의 사물을 대신해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화폭 위에 펼쳤다.


무의식으로 느껴지는 내면의 상황, 비록 형태는 없지만 그는 캔버스 위에 
피인지 물감인지 구분조차 안되는 불길한 얼룩을 그려 넣기도 하고, 
선의 움직임을 통해 격정적이고 흥분된 느낌을 살리기도 했다.

이제 그의 작품에는 더 이상 어떤 형상이나 사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보는 이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상징적인 물음표를 하나씩 더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Wassily Kandinsky Russian Painter, photo by Hugo Erfurth, 1933.

바우하우스에서 칸딘스키의 강의록을 기초로 하여 1926년에 
그는 제2 이론적 저작인 <점 · 선 · 면>을 출판했다. 
회화의 기초적인 평면에 대한 기본적인 조형요소의 관계에 대하여 기술한 것인데, 
제1의 저작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칫 잘못하면 무미건조하게 되기 쉬운 
조형의 기본적인 사고에 직관과 상상의 비합리적인 내용을 기술한 독특한 저작이다.

당시 합리주의적 경향으로 나아가려던 바우하우스에 있어서 그와 같은 존재는 매우 귀중했다. 
바우하우스에서 배운 조각가 막스 빌은 ‘칸딘스키는 청년들의 의혹을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확실한 판단력을 길러 주어, 
끊임없는 비판과 자기 비판을 환기시킨 인물이었다’ 라고 회상하고 있다.

그의 제작에 있어서 1910년~1920년의 기간에는 색채와 형태의 격렬한 다이너미즘이 
1920년~1924년의 시기에는 자취가 없어지고, 대신 명확한 형식에 의한 
구축적인 콤퍼지션(구성)이 현저해 진다. 
이는 모국에서 구성주의와 절대주의(쉬프레마티슴)를 체험한 성과이다.

1925년~1928년까지는 이 경향이 더욱 순화되어 이른바 원(圓)의 시대에 들어간다. 
1931년 그는 이집트 · 그리스 · 터키로 여행하여 동양의 풍물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으며, 
이 여행에서 얻은 인상이 익어서 다채로운 형태 가운데에 
동양의 여정(旅情)과 향수를 표현한 것은 1933년 파리에 이주한 뒤의 일이었다. 

이 만년의 제작으로 그는 원의 시대의 기하학적인 추상을 탈피하고 
형식과 색채에 의한 서정적 내지는 환상이 넘치는 음악적 해조(諧調)를 만드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내면의 표출을 주안점으로 하는 추상의 이념은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인 제작에서도 그에 의하여 기초가 닦여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Gabriele Munter. 1905. by Wassily Kandinsky. oil on canvas. 45 x 45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칸딘스키가 한때 연인이자 동료였던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ünter, 1877-1962)를 그린 작품이다. 
칸딘스키는 가브리엘 뮌터의 섬세하고 지적인 모습을 사랑하여 여러번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칸딘스키와 뮌터는 칸딘스키가 설립한 팔랑스 미술학교(Phalanx School)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당시 칸딘스키의 나이는 뮌터보다 11살 위였고, 칸딘스키에겐 러시아에 두고 온 아내도 있었다. 
그러나 칸딘스키와 뮌터는 서로 추구하는 회화적 방향에 끌리게 되고 
점차 연인으로 발전해 1903년부터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칸딘스키와 뮌터는 그 후 10 년간 예술로서의 조력자이자 연인으로 지낸다. 
칸딘스는 뮌터와 함께한 시절 청기사파를 탄생시켰으며,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 등 추상이론도 발표하는 등 가장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14년 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러시아인인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야 했다. 
결혼까지 약속했었지만, 칸딘스키의 마음은 끝까지 뮌터의 곁에 머물지 못했다.

​칸딘스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17년 러시아에서 다른 여성과 결혼한다. 
칸딘스키를 기다리던 뮌터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뮌터는 한동안 그림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후에도 칸딘스키와 함께했던 무르나우에서 홀로 고독하게 지냈다. 
무르나우에 남겨진 칸딘스키의 작품을 나치로부터 지켜낸 뮌터는 
후에 자신의 작품과 함께 뮌헨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1962년 85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Air clair, 맑은 하늘. 1901. oil painting and tempera on canvas. 34 x 52,3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칸딘스키는 '추상 화가'로서 유명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추상화 색을 띄고 있지 않다.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칸딘스키의 초기작은 인상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이 작품을 보고 어느 누가 칸딘스키를 떠올릴 수 있을까?

그는 처음부터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나갔다. 
사실 그는 1896년 법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다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30세였다. 칸딘스키는 이 무렵 유겐트슈틸, 아르누보, 상징주의 등과 같은 
19세기 말의 미술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이에 동참하는 이들과 교류했으며, 
40세에 이르러 추상화를 그의 캔버스에 처음 등장시킬 때까지 다양한 표현의 실험을 거쳤다.

<맑은 하늘>은 바로 이 시기에 그려진 인상화풍의 작품이다. 
칸딘스키의 이 시기를 흔히 뮌헨 시대라고 부르며 
1896년에서 1914년까지 그의 작품에서 추상성의 전조를 드러낸다. 
바로 이 시기에 그린 이러한 풍경화나 러시아 민속 미술은 구상의 형태를 취하였으나 
이후 칸딘스키는 추상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쾌청한 날씨에 산책 나온 여인들의 표현은 인상주의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그림의 예에서 보듯 칸딘스키가 초기에 구상적 요소를 캔버스에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업이 제작된 1901년을 포함, 뮌헨 시대(1896-1914)라 일컬어진 이 시기에 
칸딘스키는 형태는 물론 다양한 색채에 대한 가능성을 연구했다. 
그는 강렬한 원색을 이용해 야수주의를 연상시키는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미 실제 세계를 그대로 묘사하는 구상 회화보다 이를 달리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는 결국 추상화로 접어드는 다음 시기를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Old town II. 오래된 도시. 1902. oil on canvas. 78.5 x 52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맑은 하늘> 일 년 이후의 작품으로써 이 작품 또한 칸딘스키의 초기작이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확실히 인상주의 색채가 뚜렷하게 보인다.

칸딘스키의 초기작 <오래된 도시>는 우선 그 강렬한 색채가 눈에 들어온다. 
인상주의의 붓터치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형태는 더욱 견고하다. 
칸딘스키가 러시아에서 선보인 모네의 <건초더미>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후 칸딘스키는 이를 통해 추상성에 눈떴다고 회고했다. 
<오래된 도시>는 바로 이 점을 암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사용한 색채가 실제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칸딘스키의 인상에 남은 색채는 바로 그의 시각이 해석한 색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강렬한 색채의 사용은 그가 러시아 민속 미술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래된 도시>는 기본적으로 노랑, 빨강, 파랑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에 파생된 녹색과 브라운 계열의 색채가 사용되었다. 
또한 원형과 사각형, 삼각형이 나무와 후면의 가옥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이후 칸딘스키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추상적 요소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사용된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삼각형, 사각형, 원형은 
칸딘스키가 지속적으로 견지한 형태와 구성의 요소로 작동했다.

 

Rapallo Grauer day. 1905. oil on canvas. 33 X 24 cm. Private Collection

그림은 화가의 감정과 기분을 표현한다. 
위 그림은 다소 엄숙하고 우울한 느낌을 주고 있다. 
칸딘스키가 이탈리아 제노아(Genoa) 아래쪽에 있는 해변 도시 라팔로(Rapallo)에서 
지내던 시절에 그린 것으로 라팔로는 바다 전망이 있는 도시이자 성지로 알려져 있다. 

칸딘스키는 독일 출신의 가브리엘레 뮌터와 함께 
그림처럼 항구가 보이는 곳에 아파트를 얻어 5개월을 그곳에서 지냈다. 
이 시기에 해안선을 따라 있는 항구와 아름다운 보트들을 소재로 하여 18점의 그림을 그렸다. 
1905년에 그린 위 그림 '흐린 날'은 이 시리즈 중의 하나다. 

 

Couple riding, 말을 탄 연인. 1906. oil on canvas. 50.5 x 55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말을 탄 연인>은 칸딘스키가 현대추상미술의 창시자로 평가되기 전에 발표한 초기작이다.
모스크바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신비롭게 빛나는 사원, 도시의 밤을 온통 

축제 분위기로 물들인 오색전구들, 말을 탄 채 그 사이를 거니는 연인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이 그림은 원색의 화려한 색채와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으로 구상화와 추상화를 아우르는 칸딘스키 회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마치 러시아의 전래동화를 그려 놓은 것 같은 분위기로 아직까지 후기인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칸딘스키 특유의 색채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Colorful life. 1907. tempera on canvas. 162.5 x 130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로마네스크 시대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러시아의 민속예술에 영향을 받은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들은 
위와 같은 단순하고도 현란한 색채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 
크고 작은 점들의 장식성과 강렬한 원색의 대비는 

작가의 대담하고 특이한 실험 정신을 엿보이게 한다.

 

Blue mountain, 푸른 산. 1908. oil on canvas. 129.3 x 194.3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정신성을 상징하는 색깔인 청색의 산을 오르고 있는 기사들은 

분명히 우의적 내용을 담고 있는 이미지이다.
청색, 붉은색, 노란색의 삼각형은 앞으로 곧 다가올 칸딘스키 그림에 나타나는 
고전적 색깔들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담하게 설정한 구도는 중량감 마저 느끼게 한다.
좌우의 균형을 맞춘 큰 나무는 하늘을 덮듯 큰 면적으로 처리하고,
그 사이 중앙에 피라미드 형의 푸른 산이 원형으로 그려져 있는 독특한 구도이다.
아래쪽에는 원경으로 그려져 있는 푸른 산을 앞에 두고 
하늘을 향하여 질주하는 군마의 역동적인 형태가 인상적이다.


크고 작은 수많은 점들로 그려진 이른바 색점묘법의 기법은 화면을 장식적인 세계로 

이끌어가는 한편, 강렬한 원생의 대비는 포비즘의 영향을 받은 듯하나, 
러시아의 민속 예술의 연상과 실현으로 보아야 할 듯 하다.
아무튼 끝없는 실험의 연속으로 보아야 할 작가의 태도는 
대담하고 특이한 구도에서 충분히 읽을 수가 있다.

 

Landscape with Tower, 탑이 있는 풍경. 1908. oil on Karton, 74 × 98.5cm. 

조르주 퐁피두 센터 벽돌로 된 탑과 지붕들, 

그리고 좌측 아랫부분 모서리에 보이는 들판의 붉은색과 노란색의 지속성은 

화면 속의 밤 분위기와 어울려 소름끼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칸딘스키는 겹쳐진 수많은 직선으로 원색의 

활발한 작품과 대상의 윤곽을 묘사하고 있다.
경계선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황금빛에서 청색으로 옮겨가고 
다시 검은 색으로 뒤덮이는 색채 운동 아래에 깔려 있는 언덕,
나무, 구름 등의 대항은 평면이라는 이차원적 시각의 등장을 말한다.


이제 대상은 더 이상 삼차원의 공간 안에서 설명되는 물체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은 회화 표면에 용해되어 표출되는 감정 표현의 하나로서 설명되는 대상을 말하며,
모든 회화 요소가 자치권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Grungasse in Murnau. 1909. oil on cardboard. 44.6 x 33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작가들이 생활 환경의 대상물이나 일상 생활에서 얻어진 체험들을 
작품 모티브로 사용하는 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르나우는 뮌헨의 남쪽, 알프스의 산들로 둘러 싸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무르나우에서 제작된 작품들은 자연의 외관이 눈에 띄게 주관적으로 처리되어 
표현주의적인 화풍으로 대담한 전환을 시도했다.

형태의 단순화, 선명한 색상의 대비, 폭넓고 개성 있는 터치, 이미 칸딘스키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주관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주관적인 '안으로의 응시'는 억제하기 어려운 욕구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 필연성' 때문에 생긴 것으로써 늘 검증되고 있다.

 

Interior (My dining room). 1909. oil on cardboard. 65 x 50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화려한 분홍색의 축제 같다. 
당시 칸딘스키는 그의 예술적 동반자였던 가브리엘 뮌터와 
독일 뮌헨 근처의 무르나우에 집 한채를 장만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그는 당시 행복하고 화려했던 자신의 감정을 과감한 색채로 표현하였다.

 

Church in Murnau, 교회가 있는 무르나우, 1910. Rapeseed on chipboard, 
64.7×50.2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교회가 있는 무르나우>는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 무르나우를 배경으로 한 풍경화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교회라고 전혀 연상되지 않을 만큼 지극히 단순화 되고 추상화된 그림이다. 
칸딘스키가 살고 있던 지방 무르나우에 있던 교회를 그린 것이다.

화려한 색채와 형태를 무시한 구성이 이채롭다. 
이 작품을 그린 때는 풍경화에서 추상화로 그의 작품 경향이 옮겨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렇게 추상화로 옮겨지는 그의 예술로 인해 
그는 동맹 관계에 있던 많은 친구들을 잃게 되기도 했다.

비사실적 색채가 강렬한 작품으로, 칸딘스키는 마을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흰 뾰족탑과 왼편의 주택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형태 대신 색채의 조화로 마을의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표현했다. 
특히 둘 이상의 색채를 병렬하거나 겹칠 때 나타나는 생생한 음향과 리듬에 주목하며 
색을 소리처럼 울리고 꿈틀거리게 사용했다.

 

Improvisation of Mahogany, 1910.

1905년 해변 도시 라팔로에서 항구의 풍경을 그린 후 불과 5년이 지났으나, 
그의 그림 스타일에는 현저한 변화가 일고 있었음을 위 그림은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이 무렵 칸딘스키는 영감을 위하여 야수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이 그림에서 사용한 비범한 색채는 자연스러운 세계와는 한 걸음 떨어져 있으나, 
추상주의로 몇 걸음 더 나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색채는 야수적이다. '야수적(fauve)'이란, 야생의 맹수처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것을 말한다. 
야수주의(野獸, Fauvism)는 1904년경 앙드레 드랭, 앙리 마티스가 주도했다.

한편으로는 칸딘스키가 전통적인 러시아 민속 미술을 사랑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풍부한 자주색과 푸른색,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은 즐겁고 희망찬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위의 그림 'Improvisation of Mahogany'는 매우 의미 있는 그림으로서 
칸딘스키가 추상주의로 이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들의 이러한 사조 변화는 대체로 그림을 그리며 실험하는 단계에서 발생한다. 

칸딘스키는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즉석畵(Improvisations) 작업을 
시리즈로 진행하면서 혁신의 자유를 가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방법과 결별하게 되었다.  

 

First abstract watercolor, 첫 번째 추상 수채화. 1910. ink, watercolor on paper. 
64.8 x 49.6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1910년경 어느 저녁 무렵 칸딘스키는 자신의 화실에 들어서면서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놀라운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불타는 듯 아름다운 색채로 빛나는 그림이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대상의 묘사가 없는 그 그림은 

단지 밝은 색면으로 가득 채워진 캔버스였다. 
그림을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간 그 순간 칸딘스키는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그림이 거꾸로 놓여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이 특별한 경험으로 그림의 내용과 상관없이 
오직 색채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20세기의 미술을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에서 추상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다.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칸딘스키의 예술세계에서 음악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는 ‘색채로 표현된 음악’을 그리고 싶었다. 
음악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현하지 않고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저마다의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음악의 체계성과 함께하는 추상적 요소를 회화에 반영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칸딘스키는 최초의 현대 추상작품을 그린 작가로 평가된다.
그 작품은 1910년에 그려진 수채화로 무제이나 그 그림 뒤에 추상수채화라는 문구가 있다. 
몇몇의 역사가나 예술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1913년에 제작한 
<구성 VII>의 스케치와 비슷하다는 구실로 칸딘스키가 추상화의 작자로서의 자격을 
손에 넣기 위해 이 수채화의 날짜를 앞당겨 쓴 것이라고 추측했다.

수채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으로 표현의 재료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캔버스에 유화로는 가능하지 않은 표현이 수채화 종이에서는 훌륭한 표현이 되는 예가 많기 때문에
화가들은 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화면에서 구체성을 띄는 대상물은 그 상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감상자에게 이미지 전달로써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칸딘스키는 화면에서 이러한 대상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유화에서는 좀처럼 대항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내부에서 솟아 나오는 감동, 즉 내적 필연성을 형성화하는 실험으로서 종이 위에
자유로운 붓의 놀림과 수채의 부드러운 침투로 표현의 영역을 확대시키는 위대한 발견을 이루었다.
그런 의미에서 칸딘스키는 이 작품에서 자신도 예견하지 못했던 현대 회화의 큰 수확을 얻은 것이다.

 

Impression III (Concert), 인상 3 - 콘서트. 1911, oil on canvas. 77.5 × 100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인상 - 콘서트>는 당시 세간을 시끄럽게 하던 오스트리아 빈 출신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의 무조음악(無調音樂)을 듣고 
깊이 감동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음악을 들을 때의 청각적인 인상을 시각화한 그림으로, 검은색 면은 무대 위의 
그랜드피아노를 연상시키고, 왼쪽의 작고 검은 곡선들은 환호하는 청중들을 떠올리게 한다. 
대상의 재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형태와 색으로 

콘서트홀의 분위기와 소리를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칸딘스키에게 노란색은 소리를 상징하는 색으로, 

홀을 가득 메운 쇤베르크의 음악을 의미한다. 
회화와 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는 공감각적인 표현이 아름답다.
단순화된 형태에서 구상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완전한 추상으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칸딘스키는 쇤베르크를 예술적 동지로 생각하고 서신을 보내어 자신의 회화론을 설명하며 
음악과 같은 열정을 회화에서도 펼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쇤베르크도 동감하는 답장을 보내오면서 둘의 우정을 이어나갔다.

칸딘스키는 추상회화를 성립하는 영감의 원천으로 ‘인상(improvisation)’, 
‘즉흥(impression)’, ‘구성(composition)’을 꼽았다. 
그리고 이를 연작으로 제작하며 추상화의 진경에 도달한다.

‘인상’ 연작은 외부 자연으로부터 받는 즉각적인 느낌을 표현한 작품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제목으로, 
이는 시각적인 인상뿐 아니라 비재현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모든 종류의 감각적인 인상을 의미한다. 
모두 36점에 달하는 ‘인상’ 연작은 대부분 1911년에 제작했다.

 

Composition Ⅶ, 구성 7 (대홍수), 1913년, Series : Compositions. 
oil on canvas. 200 × 300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부제목이 노아의 홍수, 대홍수, 최후의 심판 등으로 묵시록적 성격이 강해졌다.
당시 20세기 초반 1차 세계대전으로 팽배해 있던 묵시록적 세계관, 
전쟁의 두려움, 전 유럽의 상황 등을 회화로 나타내었다.
새로운 세계가 멸명하고 유토피아적 세상을 갈망하였다.
전쟁 홍수 등 재난이 닥침으로서 대단한 파괴력을 가지고 낡고 병든 

물직적인 세계를 쓸어버리고 나면 인간의 의지를 가진 

순수한 이성의 세계가 탄생할 것이라는 걸 보이고자 했다.

<구성 Ⅶ>은 <구성>연작은 물론 그의 그림 인생을 통틀어 

정점에 달했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가로 2미터, 세로 3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작품은 

칸딘스키의 모든 그림 중에서도 가장 크다. 
이 작품을 위해 칸딘스키는 두 달 동안 스케치, 수채화로 그린 예비작업 등 
상당히 공을 들인 준비 과정을 거쳤다.

​칸딘스키는 색은 영혼에 떨림을 주는,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불타는 주홍빛은 화염과도 같은, 빨강색은 트럼펫 소리를, 

어두운 노란색은 음악을, 그리고 어두운 선홍색은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구성 Ⅶ>은 세심하고 철저하게 고심한 구성 위에 
칸딘스키가 추구하던 회화의 정신적인 측면을 반영한 색채가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캔버스를 채운 활기찬 형태의 모양들과 빛나는 색채들은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한다. 
중심부의 검은 눈모양은 자유분방한 형태들을 통제하며 

주변의 혼란을 정리해 그림의 집중과 힘을 더한다. 
전반적으로 구성이 없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부를 향해 점점 강하게 움직이는 방향성을 느낄 수 있다. 
왼편에 보이는 사다리의 형태는 칸딘스키의 조국 러시아의 

종교적 배경과 연관되는데, 동방정교의 종교적 상징 이미지 중 하나인 사다리는 

독실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통로로 묘사되고 있다.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 칸딘스키는 대상의 재현과 

모방이라는 굴레로부터 미술을 해방시켰다. 
그는 의식적인 요소가 배제된 형태와 색채로써 

음악적이고 다이나믹한 추상적 표현을 이루어냈다. 
칸딘스키의 작품은 예술이란 작가의 감정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후의 현대미술의 전개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칸딘스키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은 위에서 본 것과 같은 
대상이 없는 자유분방한 형태와 색채로 가득한 캔버스이겠지만, 
사실 칸딘스키가 처음부터 추상미술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청기사파를 결성하기 전 칸딘스키의 작품은 대부분이 구상회화 중심이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가장 야심 찬 대작이랄 수 있는 이 작품은 1913년 11월 완성되었다. 
그는 뮌헨 작업실에서 3일 하고도 반나절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이 그림을 그렸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은 지난 5년간의 결실이 집적되어 있는 작품이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구성>을 형태나 구성면에서 교향곡에 비견될 만한 '내적 시각'으로 묘사했다.

<구성 7>을 위해 그는 여느 때보다 많은, 30개 이상의 습작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칸딘스키는 화면 중앙의 왼쪽 부분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두껍게 바른 물감과 옅은 물감을 번갈아 사용하는 한편, 중심부로부터 솟아나는 
대조적인 색채와 모양, 절단선 등의 소용돌이를 형성시켰다. 


특정 모티프인 왼쪽 바닥 코너 부분의 보트는 

칸딘스키의 초기 회화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요소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비재현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이곳의 모티프는 주어진 기본의미 외에도, 
완전 추상에 이르는 회화언어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데 가치가 있다.

‘구성’ 연작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상태의 

‘인상’과 ‘즉흥’ 연작을 보다 이성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1910년 처음 발표한 이래 1914년까지 총 7점을 제작했다. 
이 연작은 칸딘스키 예술의 핵심에 해당한다. 
비정형 추상화인 ‘구성 5’(1923)에 잘 나타나 있듯이, ‘구성’ 연작은 
보는 이가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 대신 도형과 색채로 조형되어 있다. 

추상적인 이미지의 화합과 조화를 꾀한 ‘구성’ 연작은 곧 추상화의 실질적인 창조였다. 
1922년부터 기능적이고 합목적적인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한 독일의 조형예술학교인 
바우하우스(1919~1933)에 초빙되어 교편을 잡으면서 그의 작품은 
초기의 서정적인 추상에서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적 추상으로 바뀌고, 
최종적으로는 정교하게 세공한 몇 가닥의 주요 선만 남는다. 

칸딘스키는 ‘신지학(Theosophy)’이라는 신비주의 사상에 심취한 화가답게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며, 추상화를 통해 영성이 없는 타락하고 물질적인 
구시대가 가고 위대한 정신적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란 듯이 실천했다. 
당시 대상 세계와 단절한 추상화는 유토피아의 회화적 실현을 의미했다.

 

Impression V, 인상 5 (Park 공원), 1911. 

칸딘스키와 미래파
미래파는 대상의 활동에 부여되는 본래의 구실을 해방시키면서, 대상을 삭제해 나간다.
미래파는 선이나 변형된 프리즘의 색채 또는 집단을 이루는 선의 반복 효과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흔들리는 공간과 찰나라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칸딘스키는 감정의 동요를 이야기하면서, 영혼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재현하기를 원했다.
형태나 색채의 동요되는 표현이 나열되면서 점진적으로 영혼에 전달되고,
이것이 곧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입장이었다.

<인상 5>에서 습작처럼 보이는 직선적인 성격을 가진 몇 개의 선이 묘사되는 데,
이 선은 산의 형상에 의해 잘려진 수평선과 함께 하나의 풍경을 마련한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져 있는 장식을 가로지르고 있는 두 명의 기사는
불가사의한 곳을 향한 인간의 도역을 상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상 연작을 통해서 칸딘스키는 최고의 지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칸딘스키가 바라는 것은 깊은 인상을 통해서 생성되는 감정의 표현과 
상징적인 요소의 축출 그리고 재해석이다.

 

Improvisation 19, 즉흥 19. 1911. oil on canvas. 120 × 141.5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칸틴스키는 바그너 신봉자이기도 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음악을 들으면서 색을 보는 공감각을 경험했다. 
그 후 칸딘스키는 음악이 그림이 될 수 있고, 또 그림이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그림들은 대상에 연연하지 않는 추상화로 바뀌게 된다. 
칸딘스키는 '로엔그린'을 듣고 이렇게 고백했다.

'바그너의 음악에서 바이올린, 베이스, 관악기의 울림, 나의 마음 속에서 나의 모든 빛깔을 보았다. 
야성적이며 미친 것 같은 선들이 내 앞에 그려졌다. 
바그너가 나의 시간을 음악적으로 그렸다고 하는 표현을 나는 감히 사용하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일은 예술이란 것은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힘찬 것이며,
회화는 음악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칸딘스키는 예술의 이론이나, 제명에 

음악과 관련이 있는 말을 잘 사용했는데 <즉흥>도 그 중의 하나이다.
<즉흥> 시리즈에서 칸딘스키는 내부에서 솟아나오는 감흥을 자유롭게 화면에 정착시키려 했다.

‘인상’ 연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즉흥’ 연작은 1909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칸딘스키에 따르면 “‘즉흥’은 무의식적이며 자연 발생적이고 
내재적이며 비물질적인 전체의 특성을 지닌 표현”이다. 

의식의 통제를 최소화하여 자유자재로, 1913년까지 모두 34점을 그렸다. 
그는 이 연작을 통해서도 인물, 건물, 산 등 대상의 형태가 불분명하지만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예컨대 ‘즉흥 19’(1911)는 내면세계의 무의식적인 흐름을 표현한 것으로, 
양쪽에 두 무리의 사람을 배치한 반추상 형태이다.

 

Romantic landscape, 로맨틱한 풍경. 1911. oil on canvas. 129 x 94.3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칸딘스키가 질주하는 기마를 작품의 모티브로 하여 제작한 것을 많이 볼 수가 있다.
말을 좋아해서 그렸다기보다는 화면에 속도와 힘을 주기 위해서 말이라는 대상물을 차용한 듯하다.
화면에는 사선으로 비탈길 같은 것을 설정하여 한층 속도감을 고취시키면서
터치 또한 온통 사선으로 경사지게 표현하고 있다.

붉은 점으로 나타낸 태양과 주위의 점들은 분위기를 짙게 감돌게 하며,
여러 방향에 걸쳐 실험적인 시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칸딘스키는 내면에서 솟아 나오는 감흥을 되도록 강렬하게 표현하려 했으며
그것은 내적 필연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Composition V, 구성 5. 1911. oil on canvas. 275 x 190 cm. Private Collection

<즉흥 Improvisation> 시리즈, <인상 Impression> 시리즈와 아울러 
<구성 Composition> 시리즈도 칸딘스키에겐 중요한 계통적 작품군(作品群) 이다.
<즉흥 Improvisation>은 내적 필연성이 무의식적 · 우발적 · 음악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상태이며, 
<인상 Impression>은 대상을 평면적으로 용해하여 새로운 표현의 전개를,
<구성>은 1910년 최초로 발표한 이래 죽음에 이를 때까지 10점이 제작된 연작은 
칸딘스키 예술의 중핵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군이다.

이 작품은 칸딘스키의 추상적 표현주의가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작품이다.
무엇인가를 연상케 하며 여러 가지의 자유롭고 유기적인 형태가 떠돌아 다니기도 하고,
어떤 운동성을 나타내기도 하는 형태시(形態詩) 또는 드라마를 전개하고 있다.
칸딘스키의 조형 언어가 유감없이 표현된 역작이라고 하겠다.

 

Black spot. 1912. oil on canvas. 130 x 100 cm. 

적극적으로 추상표현주의를 전개해 나간 칸딘스키는 
이 시기에 매우 중요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다. 
불규칙한 선과 형태, 색채가 서로 응집하기도 하고 교감하기도 한다.
작가의 내적인 감흥이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다. 
그림을 보는 관객에게도 작가만큼 자유롭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칸딘스키는 제공하고 있다.

 

Improvisation 27, 즉흥 27. (Garden of Love II), 1912,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칸딘스키의 시리즈 작품으로는 위에서 본 구성 시리즈와 더불어 인상 시리즈, 

즉흥 시리즈가 유명한데 이 작품은 즉흥 시리즈 중에 27번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품이다.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를 대표하는 구성 시리즈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는 작품이다.

 

Composition VI, 구성 6. 1913. Series : Compositions. oil on canvas. 
300 x 19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Petersburg, Russia

칸딘스키는 실제 장면에 기초해서 추상화를 그리곤 했다.
그림을 보면 폭발하는 듯한 색채와 절제된 폭력, 오른쪽에 충돌하고 있는 두 척의 배,
크게 흔들리고 있는 노, 가운데 배처럼 생긴 형체는 거대한 파도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다.
밝은색의 사선은 대포를 암시하고 오른쪽 위에는 로마군기가 보인다.
이 그림은 어느 해전을 그린 것으로 보이며 어느 시대의 그것과 같이 이 작품도 거칠고 혼란스럽다.


이 장면은 다분히 폭력적이고 칸딘스키는 이 그림을 통해 

배나 폭풍우를 표현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런 느낌을 전해주려 했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색채와 형상만을 이용했다.
이 그림을 언뜻 보면 어두운 그림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절제되어 있는 여러 부분으로 인해 경쾌한 작품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 칸딘스키의 이러한 그림들은 

민중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당국의 미움을 받았다.

 

Improvisation 30 (Cannons), 1913. 

<즉흥 Improvisation> 시리즈는 1909년에 시작하여 

13년 말까지의 사이에 34점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대단한 열성에 의한 작업량이다. 
선과 면의 유기적이고 유동적인 교차에 있어서 전체가 가장 생생하게 잘 짜여져 있다. 
색채가 다양하며 미세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화면 여러 군데에 자유로운 곡선들은 주위의 형태들을 용해시켜 응결된 응집력을 구축하면서, 
그 사이에 강하고 다양한 색으로 메워 가는 비교적 섬세한 작업의 하나이다. 
'대포'라는 부제가 붙어 오른쪽 아래편에 대포의 형상이 보이기는 하나, 
화면 전체의 구성상 빌려온 것인지 제 1차 세계 대전의 시대적 상황, 
긴장과 불안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 것인지 보는 사람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Improvisation 31(Sea Battle), 1913. 

이 시기에 칸딘스키는 음악적 제목을 즉흥, 인상, 구성 등 자신의 작품에 붙였다.
이 시기에는 즉흥 시리즈를 제작하였는데, 작품에 즉흥이라는 제목과 함께 번호를 주었다.
칸딘스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재료로 하는 음악이 가장 순수한 추상이라고 생각했고, 
미술에서도 음악과 같은 순수한 표현성이 성취되길 바랐다.

 

On the Theme of the Last Judgement, 마지막 심판의 주제. 1913.

칸딘스키가 1913년말에 그린 <마지막 심판의 주제>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때가 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그는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주는 계시적인 주제를 탐구하고 있었다. 
어둡게 튀긴 것 같은 원들은 마지막 심판의 긴장감을 전하고 있다. 
반면 부드러운 유체(流體)의 형태들은 심판 후 다가올 평온함을 표현하고 있다.

주요 색과 부드러운 붓질이 조화를 이룬 그림이다. 
칸딘스키는 추상화에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된 조형의 형태를 그린 바와 같이 
추상주의와 상징주의 사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칸딘스키는 '마지막 심판의 주제'를 그리면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크리스천이 말하는 '마지막 심판'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칸딘스키는 1913년에 31점의 그림을 그렸다. 
하나는 파괴되었고, 27점은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있으며, 
위의 그림을 포함하여 나머지 3점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Composition VII, 1913, Tretyakov Gallery.
칸딘스키는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서 이 그림이 가장 복잡하다고 했다.

Fuga, 푸가. 1914. oil on canvas. 129.5 × 129.5 cm. 

'청기사'시대 말기의 대작이다. 
조형 요소 중에서 가장 감각적인 것은 색채라고 할 수 있다.
보는 순간에 마음을 움직이고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조형이 주는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색채이다.
색채는 다른 조형 요소보다 생명적, 본능적인 것이며 
천부, 체질 또는 생활 감정에 더욱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듯 칸딘스키는 무대상의 추상에서도 색채 화가라고 불릴 만큼 
색채의 구사에 노력하고 있음을 엿볼 수 가 있다.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곡선들이 색조와 복합적으로 뒤섞여 공간 속에 한데 어울려
음악적인 리듬과 멜로디를 울리게 하는 장대한 심포니를 듣는 듯하다.
중앙에는 흰색의 도심적인 선과 조그마한 여러 형태를 가지면서 노란 색조의 운동은 
화면을 긴장과 리듬으로 이끌고 있다.

 

Red Oval, ​빨간 달걀 모양. 1920. oil on canvas. 71.5 x 71.5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꺼질 줄 모르는 전쟁과 미래에의 불확실한 전망은 칸딘스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식히고 있었다. 
1915년과 1921년 사이에는 다른 창작기와 비교해서 극소수의 작품만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후, 소련 정부는 예술 부문에도 변혁을 하려고
혁신적인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1918년에 소련 정부의 미술 행정위원이 된 칸딘스키는 그 전부터 열망하고 있던 

종합 예술의 실현을 기대하여, 창립 주창자로서 교육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중앙 또는 지방 미술관을 정비하는 일에 힘쓰는 한편,
모스크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등 크게 노력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점차 도식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훗날 독자적인 상징적 기호성이 하나 둘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Small Worlds II, 1922

그가 붙인 제목처럼 강인함과 연약함으로 표현되는 큰 원과 작은 원, 
적은 수의 선과 색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유난히 적은 수를 사용하고 무채색과 흐릿한 터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매우 단순하고 정적이다. 
작은 세계라 명명한대로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야 하는 
작가의 서글픔과 우울한 정신 세계가 보여진다.

 

On White II, 흰색 위에 II. 1923. oil on canvas. 98 x 105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러시아 태생의 전위 예술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생애를 통틀어 
쉽게 공존할 것 같지 않은 다양한 실험적 예술들을 단행했다. 
인상주의, 청기사파로 대표되는 표현주의, 추상 미술, 바우하우스의 교직, 
그리고 색채 이론의 전개까지 그가 이룩한 예술사적 공로는 다채롭고 거대하다. 

<흰색 위에 II>는 바우하우스 교수 시절에 완성한 기하학적 추상 회화다. 
반면 <흰색 위에 II>는 거의 완벽하게 차가운 추상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1922년부터 재직한 바우하우스가 그 무렵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두 흐름인 절대주의와 구성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던 탓도 크다. 
구성주의와 절대주의가 비재현적 예술의 물질성에 집중하고, 
사회 변혁의 도구 역할에 치중한 반면, 칸딘스키가 구사한 기호들은 
상징적이고 신비주의적 요소를 깊이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칸딘스키의 예술론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내적 필연성’의 결과다. 
즉 그림에서 교차하거나 중첩되어 나타나는 삼각형과 사각형 
그리고 도형들의 색채는 최적의 조화를 전제로 선택된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객관적일 수는 없다. 


도형들을 관통하는 뾰족한 검정 막대는 칸딘스키가 평생에 걸쳐 집착한 
동방 교회의 오랜 도상인 ‘성 조지와 용’의 싸움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제목을 <흰색 위에 II>라고 정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색채 이론에서 
흰색을 명확성과 절대적 고요의 색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명료하고 객관적으로 정리된 바탕 위에 
자신의 조형 이론을 이제 막 시도하려는 초기 작품이다.

밤색의 마름모와 다양한 형태들이 평면 위에 중첩됨으로써 
두 개의 거대한 검은 선이 표현한 공간적 비틀림이 보인다.
다른 삼각형과 마름모들이 상호 교차하면서 자르는 형태는 
긴장을 촉진시키고 색깔의 상호 작용에 효과를 준다.

구성주의나 신조형주의 작품들과 이 그림과의 표면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칸딘스키는 그림의 표면적 성격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원과 삼각형 꼭지점의 만남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아담의 손가락이 
성스러운 신의 손가락과 접촉할 때 만큼이나 
강한 효과를 유발시킨다고 칸딘스키는 쓰고 있다.

 

Composition Ⅷ, 구성 8, 1923. oil on canvas. 140 × 201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구성 8>에서 나타난 원은 발산되는 에너지와 힘의 안정감을 제시한다.
검은 태양은 붉은 영역에 둘러싸여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세력을 확장해 간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조형적인 방법인데, 전체 구조의 과학적인 시각과 순간적인 직감,
전체를 지배하는 법칙, 자유로움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뛰어난 조형성을 발휘하고 있다.

칸딘스키가 가장 강조한 요소는 색채였다.
그는 색채란 물리적이면서 심리적 효과를 주며, 시각뿐만 아니라 
음향과 같은 청각의 감각마저도 일깨워 준다고 하였다.

그는 색채에 대해 구체적으로 피력하는 가운데 
파랑색은 천국적인 색이며 순수함을 동경하는 색이라 하였고,
노란색은 이에 비해 지상적인 색이며 심오함이 결여되어 있다고 했다.
초록색은 수동적이고 중산층적인 자기 만족을 나타내고 
흰색은 시작이고 검은색은 끝이라고 했다.

한편 그는 색채와 악기를 비유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연한 파랑색은 플루트, 짙은 파랑은 첼로와 흡사하며,
초록은 바이올린의 중간 음색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구성 8>에서, 다양한 형태와 색채의 기하학적 요소들은 
차가운 배경 위에 쌍방향으로 혹은 역동적으로 흩뿌려져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모양은 캔버스 왼쪽 상단 코너에 그려진 커다랗고 검은 동그라미다. 
그것은 작은 동그라미들을 위한 기준점의 역할뿐 아니라, 
날카로운 직선 및 삼각형과의 강력한 대조를 유발한다. 
맹렬한 활기와 고요가 공존하는 <구성 8>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칸딘스키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1922-1926년 바우하우스 재직 당시, 칸딘스키는 자신의 형태 이론을 널리 보급시켰다. 
<구성 8>은 색채와 형태의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 나아가 색채와 형태의 
영적 · 심리적 효과에 대한 그의 견해를 조직적인 방식으로 적용시킨 첫 번째 작품이다. 
또 이 그림은 칸딘스키가 오랫동안 즐겨 쓴 동그라미 도입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기본형태가 4차원을 가장 분명하게 지시해 줄 수 있으며, 
그 속에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대립물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구성 시리즈는 몇 년마다 한 번씩 그려진 것으로 

칸딘스키의 화풍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서서히 형성되는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작품 위에 하나의 원이나 선을 올려놓은 것이나 색채를 결정하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칸딘스키의 감각에 따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작곡이라고 표현하였다.

 

Still Tension, 조용한 긴장. 1924. Oil Painting on Canvas. 80 x 54 cm. 

중첩되고 복잡한 놀이는 대각선 축 위에 배치된 
하나는 작고 또 다른 하나는 큰 두 원 사이의 통과 지점에서 차츰 사라져 간다.
강한 지향성을 가진 긴장은 축 중간에 있는 화살 모양의 표현으로 인해 강화되며
차가운 하늘색, 검정색, 따스한 붉은색의 나열로 더욱 진행된다.

이렇게 하여 두 원 중 하나는 차가운 정점이 되고 다른 하나는 따뜻한 정점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형식의 그림에 있어서 구성의 명확성은 칸딘스키 회화 작품의 독특한 지화에 부응하며
이 시기에 그가 실천한 교육적 목표와도 부응한다.

 

Heavy Red, 무거운 빨강. 1924. 바젤 미술관

칸딘스키는 형태와 색채를 조합해 그림에서 자율적으로 구성했을 뿐만 아니라 
덧붙여 내적 가치와 분위기, 긴장을 부여했다. 
그리고 모든 형태와 색채에 구체적인 성격을 지정했다. 
원은 완전을 상징하며, 노랑은 지상의 것으로 단결을 표현한다고 했다.

 

In Blue, 푸른색 안에서. 1925. oil. canvas. 110 x 80 cm.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Germany

<푸른색 안에서>는 바우하우스가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이전했던 1925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칸딘스키는 1922년부터 바우하우스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1926년에 발표한 논문 <점, 선, 면 Point and Line to Plane>을 통해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서 주장했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중간 크기인 <푸른색 안에서>는 1910년대 초 작품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 작품에서는 자유로운 붓질을 포기하고 대신 엄격한 기하학 형태가 등장하며, 
요동치는 색채 대신 물감을 평평하게 발랐다. 
기수 riders, 건축물, 풍경을 암시하는 형상 대신 원,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본 형태를 그렸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요소 대신 상징적인 디자인이 나타났다.

칸딘스키의 1920년대 작품 다수에서 그렇듯이 

<푸른색 안에서>에도 화면 가운데에 원이 나타난다. 
하지만 여기서는 원이 지배적인 요소가 아니다. 
푸른색을 배경으로 기하학적 형태들이 배열된다. 


원반, 원의 조각, 삼각형, 사각형들이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여러 요소들이 섬세하게 추가됐다.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 유리 공방에서 투명한 유리를 접하고는 
클레와 마찬가지로 자기 그림에 투명성을 끌어들였다. 


화폭 위 형태들은 두 그룹으로 구성된다. 
화면 가운데를 차지하는 커다란 구조물은 

어두운 삼각형에 모든 요소들이 부착된 것처럼 보인다. 
화면 하단 왼쪽 귀퉁이에는 중앙의 구조물보다 작은 형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형태 주위는 녹색 빛을 띠다가 배경의 푸른색으로 잦아든다. 
덕분에 두 형태는 뒤에서 빛이 비치거나 빛나는 색채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들여다 볼수록 우주의 질서와 작품을 되풀이해서 비교하게 된다.

1930년에 칸딘스키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주, 열심히 원을 그렸지. 
원의 ‘기하학적’ 형태나 특징 때문이 아니라 
수없이 변화시킨 원에서 내적인 힘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라네. 
나는 예전에 말을 사랑했던 것처럼 지금은 원을 사랑하네.” 
칸딘스키는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서도 
형태와 색의 모든 조합에 매우 구체적인 특징을 부여했다.

 

Jaune-rouge-bleu, 노랑 빨강 파랑. 1925. 127 x 200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이 작품은 불균형한 두 개의 무게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푸른색은 대기, 즉 푸른 하늘의 가벼움을 표현한 것이고 
보라와 밝은 초록은 기호화된 형상의 발광체로 묘사된다.
오른편을 구성하고 있는 상승중의 선은 거의 의무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여기에는 어두운 무게감이 공존하는 데, 말을 타고 가는 형태는 
굵은 선으로 강조되어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노랑을 주조로 한 바탕 위에 빨강과 파랑이 간결하게 자리 잡은 위에 
직선, 곡선, 원 등이 여러 가지 형태로서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면서 
기하학적인 요소가 강한 왼쪽 부분과 오른쪽의 유기적이고 불규칙한 현장의 연출로
화면은 성격이 다른 형태들로 양분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대립되고 있는 것들과 총제적인 통합으로서의 노력이 가조되고 있다.

칸딘스키는 푸른색을 원, 붉은 색을 사각형, 노란 색을 

삼각형에 대입시켜 주제와 색의 일치를 시도하였다.
칸딘스키는 삼원색의 생성을 과학적인 시각으로 정리하여
“노랑과 파랑은 빨강과 비교되는 색이다. 
불가사의한 빨강의 탄생은 파랑과 노랑의 상승작용과 

파랑과 노랑에서 멀어지는 기질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삼원색에 대한 칸딘스키의 관심은 신조형주의의 시각이 
그의 작업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디.
회화란 삼원색과, 무채색인 흰색과 검정색과 회색으로 한정지어야 한다는
신조형주의의 색채 의식이 은연 중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 재직 시절에 그린 <노랑 빨강 파랑>은 
색채에 대한 그의 연구 결과라는 평가를 듣는 작품이다. 
이른바 3원색으로 불리는 노랑, 빨강, 파랑을 기본으로 이 색채에서 파생되는 
녹색, 분홍, 초록, 보라 등을 캔버스에 등장시키고 있다. 
또한 형태는 점과 선, 그리고 원형을 그려 넣었다. 

화면 중앙을 중심으로 왼쪽은 엄격한 직선을 바탕으로 한 건축적 형상을, 
오른쪽은 면을 바탕으로 유기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색채는 왼쪽에는 노랑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파랑, 
그리고 화면의 중심에는 빨강을 배치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칸딘스키가 단순한 선과 면, 그리고 색채를 배열한 것이 아니라 
긴장과 조화를 통해 화면을 체계적으로 구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원형, 삼각형, 사각형이라는 기본 형태를 중심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칸딘스키는 분석 드로잉과 색채와 형태의 이론적 고찰로 구성된 기초 코스를 가르쳤다. 
색채와 형태, 선에 대한 집요한 분석으로 칸딘스키는 의미 분석이 쉽지 않은 
추상화의 내적 이론을 체계화하려 시도했고 바우하우스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또한 칸딘스키는 이곳에서의 강의 내용을 모아 1926년 저서 『점. 선. 면』을 펴내기도 했다.

"대립과 모순-이것이 우리들의 하모니인 것이다. 
이러한 하모니에 바탕을 둔 콤포지션이 색채와 뎃생의 결합임은 말할 나위도없다. 
다만 그때 이들 색채와 데생은 각각 독립하면서 게다가 내적 필연성에 따라 꺼내어지며, 
그리하여 그곳에 탄생하는 공통의 생명 속에 하나의 전체를 형성한다. 
즉 회화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라고 칸딘스키는 썼다.

 

Several circles. 몇 개의 원들, 1926. oil on canvas. 140 X 140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구형과 원들은 1922년 칸딘스키의 <작은 세상> 연작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바우하우스의 분석적 규범과 
그의 낭만주의적이고 정신주의적 열정을 화해시키는 길을 찾게 한다.

칸딘스키는 '그 많은 기하학적 형태 중에서도 유독 원을 선택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원은 첫째, 가장 겸양하는 형태이면서 어디까지나 자기 주장도 하고 
둘째, 간결한 반면 무한히 변화하며 
셋째, 안정되어 있음과 동시에 불안정하기도 하고 
넷째, 무수한 긴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은 최대한으로 대립하는 것의 종합이며, 이는 구심성과 원심성을 하나의 형태로, 
더욱이 균형을 유지하며, 통일되고 있다.
세 가지의 기본적인 형태 (삼각형, 정방형, 원) 중에서 

원은 4차원에의 가장 명료한 지표이 기도 하다." 

이렇게 원에 대한 조형 연구의 연속으로서 큰 원 안에 

다수의 대(大) · 소(小) 원을 그리는 시도이다. 
원이 우주적 요소를 띠고 마치 위성처럼 무한 공간을 떠오르고 있다.

"원은 낭만적인 관점이 아니고서는 평가받을 수 없다... 
그것은 화염 속에서 이글거리는 얼음의 한 조각이다.
만약 사람들이 얼음만 느낄 수 있고 화염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에게는 한결 더 나쁜 일이다. "

 

Softened Construction, 딱딱함과 부드러움, 1927.

구성에 있어서의 엄격성은 다시 한번 

구성주의적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연상시킨다.
선적이고 그물 모양의 구조는 색깔의 상호 관계를 

결정짓는 삼각형과 원의 이론을 낳고 있다.
진동하는 듯한 밝은 배경의 부드러움은 

기하학적 단단함을 기본으로 전개되는 구조와 대조를 이루고있다.

 

Softened Construction, 1927.

1926년에 <점, 선, 면>을 출판하여 60세를 맞이한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에 부교장 으로서 그로피우스를 보좌하였다. 
이 작품은 마치 우리 나라 민화(民話)를 보는 듯한 도식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한참 의욕적인 제작에 몰입할 때 종이와 수채와 잉크에 의해 

이 시기의 특색인 원을 화면에 구성시켜 가면서 곡선적인 형태와 

예각적인 직선으로써 대조적인 형태를 공간에 떠 올려 
조형적인 음악을 생각케 하는 심리적인 조화의 세계를 생성시키고 있다. 
간결하고 정리된 화면은 추상을 초탈하고 생명적 형태만이 그려져 있다. 
또한 화면 가득히 운무법 (뿌리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방법이나, 
이것은 끝없는 조형 언어의 실험적 연구로 받아 들여진다.

 

On the points. 점에 대하여, 1928. oil on canvas. 140 x 140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세 쌍의 막대, 세쌍의 수평선이 높여져 있다.
모두 회색으로 처리되어 색은 획일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선은 굵은 것에서 얇은 것으로 차츰 감소되는 두께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수평선의 두께감은 화면의 아래 쪽으로 내려가면서 

저항과 만남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수평면의 반대편에 있는 

여러 개의 삼각형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삼각형의 뾰족한 각은 마치 수평선에 의하여 떠받들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자세는 자의적이기 보다는 의무적이다.

왼편의 가장 큰 원은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힘의 분배를 지배한다.
이는 삼각형에서 유발되는 날아오르는 상승감과 

이를 저지하는 저항 작용의 조절을 의미한다.
또 이 원은 팽창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주변에 산재해 있는 여러 형태가 일으키는 감정이다.

칸딘스키는 이 작품에서 삼원색의 하나인 노란 색을 사용하지만,
이차원의 색인 주황과 보라, 자주, 무채색인 회색, 검정 등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색채는 컴퍼스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밑그림의 윤곽을 그대로 뒤좇고 있다.

이것은 모든 주제를 투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다 수용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것은 바닥에 깔려 있는 복합적인 선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고, 
드러나는 것을 허용하여 공간, 구조, 지면 위에 정박한 동그란 구의 부동성과 
한 순간에 모두 상승할 수 있다는 운동감을 동시에 표출한다.

이 효과는 고스란히 드러난 밑그림의 선작용 때문에 일어난다.
즉 작품의 표면 밑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힘의 발견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회화 안에 내포되어 있는 또 다른 일면을 노출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Succession, 연속. 1935. oil. 81 x 100 cm. Phi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USA

칸딘스키는 음악을 회화에 이입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이 작품은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를 보는 듯하다. 
형태와 색이 만들어 내는 도형적인 형상이 수평선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져 
자유롭고 명확한 윤곽으로 그려져 있어 자유 분방하고 태평스러우며,
생생한 생명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전체는 어떤 질서 속에 멋지게 통일되어 있다.

 

Composition IX, 구성 9. 1936. Series : Compositions. oil on canvas. 195 x 113.5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칸딘스키의 마지막 구성 작품인 <구성 9>는 기호화된 선과 곡선이 축을 이룬다.
이것은 과거의 즉흥에 자주 등장하던 요소이기도 하다.
색채는 청년기에 사용했던 부자연스러운 색이 다시 사용되었고, 

템페라의 불투명한 분위기도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색 칸막이는 예외적인 요소다.
여기에 테칼코마니가 정면에 날아가듯 자리 잡고 있어 구성에 대담성을 안겨주고 있다.

칸딘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에 고정시켜 놓았던 

구성이라는 세계를 해방시키고 있다.
즉 섬세한 기호들은 작가의 세련된 모습으로 독립된 세계를 통하여 과거의 구성에서 

보여 주었던 영상의 투시와 관계하는 계산된 유기체의 구성에서 빠져 나온다.
이 작품에는 서로 다른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선과 색은 투명하게 비춰지면서 서로 겹쳐지는 부분까지 표현되는데, 
양감이나 영상에 대한 투시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1933년 12월 파리에 도착한 칸딘스키는 

1944년 사망하기까지 11년 동안 파리에 머물렀다. 
칸딘스키의 그림은 이 시기에 음악적 분위기 외에 
생물 형태를 모티프로 한 유기체적 형상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때 작품들은 생성과 성장 그리고 소멸이라는 
생명 현상의 근원적 모티프에서 영감을 얻어 생명감을 드러낸다.

칸딘스키가 1936년 그린 이 그림은 생명감과 공간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아메바, 세포, 태아와 같은 원형질의 생물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각기 다른 형태의 불협화음은 색채의 조화와 역동적인 공간감으로 보완되었다. 
대각선으로 넓게 구분된 바탕 위에 마치 흩뿌려진 듯 

중첩된 작은 형태는 생명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또한 원근법을 뛰어넘은 화면 구성과 구체적 이미지를 유추할 수 없는 기호는 
추상성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앞선 시대에 그의 작품에서 주로 언급되던 

음악적 분위기를 뛰어넘는 무중력의 공간감이 표출된 듯하다.

 

Composition X. 1939. Series: Compositions.195 x 130 cm.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Germany

칸딘스키의 미술 형태에서 마지막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완전히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의 시대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칸딘스키는 독일에서의 정치적 상황이 점점 불안정하고 
위험하게 되기 몇 년 전 파리로 이민을 갔다. 

독일에서 활동한 러시아인으로서 칸딘스키는 특별히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Gestapo)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1944년 7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파리에 머물렀다. 

파리에서 칸딘스키는 색을 풍부하고 인상 깊게 사용하였고 
그를 한층 연마시킨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위 그림은 전체적으로 힘찬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한 효과는 생물학적 형태에 영감을 받아 
강하고 예리한 기하학적 모양을 사용함으로써 증폭되었다. 
심오한 감정적인 화가였던 칸딘스키는 자신의 주위에서 
그가 목격한 세계를 보며 비통한 느낌을 이 그림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칸딘스키는 그가 그린 대상 및 외부세계에 대하여 
어떠한 언급 없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표현의 형태를 계속하여 그린 화가였다. 

 

Bleu de ciel, 푸른 하늘, 1940. oil on canvas. 100 × 73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작은 형태가 가득히 메워져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은 형태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공중에 붕 떠 있다.
상승도 하강도 없는, 그렇다고 고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형태는 
완벽하게 공중에 떠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공간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나타내고자 했다.
첫눈에 민족적인 요소가 대단히 진한 형태이며, 
추상을 벗어난 생명의 원초적 형태 같은 것에 가까워지고 있다.

젊은 시절에 민족학 조사단에 참가하여 북쪽 지방을 여행하였을 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흥미를 가진 민예품이나, 장식무늬, 공예품에서 영향을 받아, 
오랜 시간 형태 연구를 통하여 칸딘스키의 내부에서 자라난 형태일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인 기호로써 배열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칸딘스키는 하나의 코스모폴리탄이었지만 이국에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러한 동화적 세계에 탐닉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칸딘스키의 이러한 공간 개념은 1950년대의 회화에 영향을 미치는데,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나타난 회화 세계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전까지 자연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미시세계의 발견은 
근원적 형태에 대한 접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시세계에서 보이는 대상은 그것의 성체(成體)와 형태상 큰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를테면 생명체의 배아나 세포 등은 그것이 성장했을 때, 
그리고 집합체가 되었을 때와 형태적 차이가 컸던 것이다. 

칸딘스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미시세계에는 추상적 형태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칸딘스키의 파리 시기는 바로 이런 형태를 자신의 화폭에 적용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캔버스에 등장하는 형태는 더욱 단순해지고 칸딘스키의 추상성도 더욱 심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1940년 작 <푸른 하늘>은 앞선 설명의 적절한 예가 된다. 
이 작품에서는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 재직 시기(1922-1933)에 그린 
작품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지만 추상적 형태는 더욱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현미경으로 유리 플레이트의 미생물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형태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인다. 

추상적 형태들은 하늘을 암시하는 파란색 바탕 위에서 마치 부유하는 듯하다. 
그리고 파란색 바탕은 각각의 요소가 자유롭게 위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성 형태는 칸딘스키가 자연의 순수한 형태를 찾으려 애쓴 
파리 시기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대두된다. 
유기적인 형태가 강화되고, 기하학적이면서 
마치 고대 상형 문자를 연상시키는 형태도 등장하게 된다.

푸른색의 공간에 여러 가지 유기적인 형태가 난무하고 있다. 
첫 눈에 민족적인 요소가 대단히 진한 형태이며, 
추상을 벗어나 생명의 원초적 형태 같은 것에 가까워지고 있다.
젊은 시절에 민족학 조사단에 참가하여 북쪽 지방을 여행하였을 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흥미를 가진 민예품이나 이콘, 장식무늬 공예품에서 영향을 받아, 
오랜 시간 형태 연구를 통하여 칸딘스키의 내부에서 자라난 형태일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인 기호로써 배열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칸딘스키는 하나의 코스모폴리탄 이었지만 이국에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독한 노년을 보내며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러한 동화적 세계에 탐닉 되었을 것이다.

 

Reciprocal Accords, 상호 동의. 1942. mixed technique on canvas. 146 x 114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이 작품은 칸딘스키의 거의 최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 강하고, 

굉장히 추상적인 측면이 강렬하게 와 닿는다.
몬드리안과는 달리 칸딘스키는 말년으로 갈 수록 추상은 논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칸딘스키가 죽기 불과 2년 전에 그려진 <상호동의>는 1944년 
그가 사망했을 때 미망인인 니나 칸딘스키(Nina Kandinsky)가 칸딘스키의 
관 주위에 놓기로 결정했던 세 작품들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은 제목만으로는 그 의미가 불분명하다. 
단순히 대칭적이고 조화로운 형태를 묘사하고자 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회화적 실험과 관련된 작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우아한 복잡함 속에 담긴 충분함과 과도함 사이의 절묘한 균형감각은 
칸딘스키 말년의 성숙함 속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 볼 점은 바로 구성의 명료함이다. 
캔버스 중간의 중심축인 흰 공간을 양 측의 

삼각형 무리들이 부드럽게 회전하듯 감싸고 있다. 
미묘하게 조직된 색과 선의 상호작용 속에서 작품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칸딘스키가 회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회화의 궁극적인 목표인 ‘완전한 형태’를 지향하는 것이다. 

색채와 형태, 그리고 균형감각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화면의 모든 부분들은 이전 시기에 나타났던 긴장의 강약이 사라지고 
모두 같은 비중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칸딘스키 회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이 작품에서도 보이듯, 
색채가 밝아짐과 동시에 이전 시기에 보이던 원색들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혼합된 색조를 사용함으로써 차분하면서도 선명한 색채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Gentle accent, 완만한 상승. 1934. oil on canvas. 89.4 X 80.7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Poster for the Abrikosov Company. 1898.

이제 칸딘스키의 작품을 초기부터 년대 순으로 살펴 본다.

 

Comet. 1900. 

 

Kochel : Waterfall I. 1900. 

 

Okhtyrka, autumn. 1901. 

 

Poster for the Abrikosov Company. 1901. lithography. paper. 

 

Kochel – Gabriele Munter. 1902. 

 

Walled City in Autumn Landscape. 1902.

 

Blue rider. 1903. oil on cardboard.  65 x 55 cm. Private collection, Zurich, Switzerland

 

Farewell. 1903. woodcut. 31.2 x 31.2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Forest edge. 1903. oil on canvas. 32.8 x 23.8 cm. Private Collection

 

Gabriele Munter painting. 1903. oil on canvas. 58.5 x 58.5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The golden sail. 1903. woodcut.  29.7 x 12.7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The singer. 1903. woodcut. 14.5 x 19.5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Rising of the moon. 1903. 

 

Ancient Russia. 1904. oil on canvas. 

 

Beach Baskets In Holland. 1904. oil on cardboard. 32.6 x 24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In The Forest. 1904. mixed technique. panel. 19.8 x 26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Arab Town. 1905.  tempera on cardboard .99.5 x 67.3 cm .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Rapallo boats. 190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Russian beauty in a landscape. 1905. woodcut.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Park of St. Cloud. 1906. 

 

Park of St. Cloud with horseman. 1906. oil on canvas. 

 

Rotterdam sun 1906. oil on canvas.

 

Santa Marguerite. 1906. oil on canvas. Gabrielle Munter Foundation

 

Volga song. 1906. tempera on cardboard. 66 x 49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Moonlight night. 1907. linocut.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Night. 1907. tmpera on cardboard. 49.8 x 29.8 cm. Gabrielle Munter Foundation

 

Two birds. 1907. woodcut. 14.4 X 13.6 cm. 

 

Autumn in Murnau. 1908. oil on panel. 40.9 x 32.3 cm. Private Collection 

 

Autumn in Bavaria. 1908. oil on cardboard. 45 x 33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Munich-Schwabing with the church of St. Ursula. 1908. 49 x 68.8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The elephant. 1908. 

 

White sound. 1908. oil on panel. 70 x 70 cm. Private Collection 

 

The Ludwigskirche in Munich. 1908. oil on cardboard. 96 x 637 cm. 
Thyssen-Bornemisza Museum, Madrid, Spain

 

Okhtyrka. Red Church.1908. 

 

Encounter. 1908. oil on wood. 425 x 365 cm

 

Murnau am Staffelsee. 1908. oil. paper mounted on panel. 
Ashmolean Museum, Oxford, UK

 

A mountain, 1909. oil on canvas. 109 x 109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Arabs I (Cemetery). 1909. oil on cardboard. 98 x 71.5 cm.
Kunsthalle Hamburg, Germany

 

Bedroom in Aintmillerstrasse. 1909. 69.5 x  48.5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Cemetery and vicarage in Kochel. 1909. 

 

Crinolines. 1909. oil on canvas. 128.5 x 96.3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Group in Crinolines. 1909. oil on canva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Horses. 1909. 

 

Houses at Murnau, 1909. oil on canvas.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Improvisation 3, 즉흥 3. oil on canvas. 94 x 130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Improvisation 6 (African), 즉흥 6. 1909. oil on canvas. 99.5 x 107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Murnau view with railway and castle. 1909. oil on cardboard. 
49 x 36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Murnau with rainbow. 1909. Gabrielle Munter Foundation

 

Picture with archer. 1909. oil on canvas. 147 x 177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Red Wall destiny. 1909. oil on canvas. 

 

Study for autumn. 1909. Gabrielle Munter Foundation

 

Winter Landscape. 1909. oil on cardboard. 97.5 x 75.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Landscape with a steam locomotive. 1909. oil on canva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Study for Improvisation 8. 1909. Private Collection 

 

Murnau Garden. 1909. oil on wood. 51 x 67 cm. 
Merzbacher Kunststiftung, Switzerland

 

Boat Trip. 1910. oil on canvas. 105 x 98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Glass Painting with the Sun (Small Pleasures). 1910, 40.3 x 30.6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Improvisation 11, 즉흥 11. 1910. oil on canvas. 106.5 X 97.5 cm.

 

Improvisation 12 (Rider), 즉흥 12. 1910. oil on anvas. 16.5 x 97.5 cm. 
Staatsgalerie Moderner Kunst, Munich, Germany

 

Improvisation 7, 즉흥 7. 1910, oil on canvas. 97 x 131 cm. 
The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Improvisation 14, 즉흥 14. 1910. oil oln canvas.74 x 125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Landscape with factory chimney.  1910. oil on canva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Mountain landscape with church. 1910. oil on cardboard. 
44.8 x 32.7 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

 

[영상] 추상화의 아버지 - 바실리 칸딘스키

 

[영상] 점.선.면으로 칸딘스키처럼 그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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