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로프스키(Mikhailovsky) 궁전 Hall 13, 베네치아노프, 페도토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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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로프스키(Mikhailovsky) 궁전 Hall 13, 베네치아노프, 페도토프 등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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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Venetsianov and his School. Pavel Fedotov.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A Girl in a Headscarf, End of 1820-s.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38 х 27,5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 (Alexey Gavrilovich Venetsianov 1780~1847)는 러시아의 장르 화가, 
초상화 화가였으며 농민 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했다.
베네치아노프는 모스크바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기 초에 공무원에 들어갔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노프는 먼저 에르미타주(Hermitage) 그림과 친구들의 초상화로 연습했다. 
그는 나중에 블라디미르 보로비코프스키 (Vladimir Borovikovsky 1751~1825)를 

알게 되었고 그의 집에서 견습생으로 살았다. 
베네치아노프는 프리랜서 초상화가로 일하려고 했지만 수수료를 거의 받지 못했다. 

1819년 순수 예술에 전념한 베네치아노프는 서비스를 그만두고 
트베리(Tver) 지방의 사폰코보(Safonkovo) ​​영지에 정착해서 살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주변에서 관찰한 자연의 장면을 그렸다. 
그는 농민의 초상화와 시골 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을 그렸다. 
베네치아노프는 러시아 미술에서 농민의 삶을 처음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1824년 전시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베네치아노프는 제국 예술아카데미 (Imperial Academy of Arts)의 교수가 되기를 원했지만 
학자들은 그가 학업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에 승락하지 않았다. 
1820년 이전 몇년 동안 그는 가난한 배경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820년대 중반에 그는 추종자 그룹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그림 학교를 설립했다. 
'국가적 트렌드'를 알리는 것을 좋아했던 차르 니콜라스 1세는 그를 궁정 화가로 임명했다. 
이 직함은 그에게 수업료가 거의 무료인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다. 
베네치아노프는 1847년, 마차가 가파른 경사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사고로 사망했다.

이 그림은 원래 베네치아노프의 오랜 지인이자 트베리(Tver) 지방 
비쉬네볼로츠크(Vyshnevolotsk) 지역의 지주인 밀류코프(V. I. Milyukov 1816~1864)의 소유였다. 

 

Free art print of View of the Dam in the Estate of Spasskoye, 1847. by Grigoriy V. Soroka. oil on canvas. 
68 x 88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그리고리 소로카(Grigoriy Vasilievich Soroka 1823~1864)는 베네치아노프 학교의 
가장 유명한 멤버 중 한 명인 러시아 화가였다.
소로카는 밀류코프(N. P. Milyukov) 가족이 소유한 트베리(Tver) 지방 
포크로프스코이(Pokrovskoye) 마을에서 농노로 태어났다. 
소로카는 1842~1847년에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Alexey Venetsianov)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주인에게 돌아왔다. 

1850~1860 년대에 소로카는 고향에서 거주했고 그곳에서 정원사로 일했다. 
그는 주인의 딸 리디아와 사랑에 빠졌지만 이루지 못하고 강제로 농노 여자와 결혼해야만 했다. 
소로카는 정식으로 불만을 제기하지만 거부되었다. 
얼마 후 소로카는 제과실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 
그의 사랑하는 리디아 역시 곧 뒤따라 음독 자살했다. 

이 작품은 레페킨(Lepekhin) 귀족에 속한 탐보프(Tambov) 지방의 
스패스코이(Spasskoye) 저택과 부동산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러시아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농민의 복장과 휴식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A Study in the House at Nikolai Milyukov's Ostrovki Estate, 1844. by Grigoriy V. Soroka. oil on canvas. 
54 x 65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이 그림은 농노 화가 소로카의 소유자였던 지주 
페트로비치 밀류코프 (Nikolai Petrovich Milyukov)의 사무실을 묘사한다. 
방 뒤쪽에 두 개의 창문이 있다. 
트베리(Tver)의 열린 공간이 보이는 개구부를 통해 빛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우리는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의 위치에서 전체 그림을 본다. 
테이블에는 다양한 물건이 있다. 
시계, 주판, 가위, 지문 및 서류. 나폴레옹의 모습이 담긴 액자 등등. 
집 주인 밀류코프는 성격이 깔끔하고 현명할 것으로 추측된다. 
작품의 공간은 부동산 소유자의 아들인 코논 밀류코프(Nikolaevich Konon Milyukov 1835-1871)가 
손에 책을 들고 소파에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으로 인상깊게 표현된다.

코논 밀류코프는 페트로비치 밀류코프의 셋째 아들로 자랐다. 
1853년에 그는 사역 장교로 복무했고 1860년에 중위 계급의 포병포대로 옮겨졌다. 
1863년 그는 주포 총국으로 임명되었다. 
1866년에 그는 소령으로 7대 벨로루시후사르 연대에 함장으로 이적한 후 얼마 뒤 해고되었다.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Reapers, Late 1820s.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66,7 x 52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화가이자 판화가인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 (Alexei Venetsianov 1780~1847)는 
러시아 농민을 주제로 한 장르화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러시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사립기숙학교에서 공부한 뒤 디자이너로 일했다.

1802년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 측량기사로 일하며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다. 
1820년대 초 공무원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생활 속의 장르화를 그렸다. 
미술 아카데미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그의 많은 제자들은 '베네치아노프 파'를 형성, 
러시아 미술사의 주요한 풍속화가 그룹으로 성장했다. 
 베네치아노프는 사고로 길에서 비명횡사했다.

19세기 들어 농노 출신 화가가 늘어나자 마침내 화단에서도 
신분에 대한 차별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선 사람은 미술아카데미 원장 올레닌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아카데미에서 농노 출신 학생들을 추방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고 외국 유학을 앞둔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앞길을 막는가 하면, 
과정 중인 학생들은 지주에게 돌려보내 그들의 '신분에 걸맞은' 하인이나 요리사 등으로 일하게 했다.

이런 억압에 분노한 자유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였다. 
그는 하층 계급 출신들을 위한 작은 미술학교를 여는 것으로 나름의 대안을 모색했다. 
특히 1818년 아버지의 유산으로 트베리 현 사폰코보 마을의 땅을 사게 되자 
그곳에 학생들을 불러 모아 안정적인 교육을 행할 수 있었다.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것이 화가로서 베네치아노프에게는 큰 축복이었는데, 
바로 여기서 러시아 농민의 일상과 노동을 주제로 한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러시아 미술사는 베네치아노프를 러시아 미술사상 최초로 

농촌 세계를 본격적으로 형상화한 화가로 평가한다. 

베네치아노프는 농노들을 위한 미술학교를 세웠고, 소로카는 그곳에서 그림을 배웠다. 
농노에 대한 지배계층의 '평균적' 휴머니티는 매우 낮았지만, 

당시에도 'a few good men' 들은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 착한 화가 베네치아노프. 
측량기사 출신으로 화가가 된 그는 당시 러시아 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데카브리스트들과 교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데카브리스트의 영향으로 민중에게 봉사하는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베네치아노프는 
러시아 회화사에서 처음으로 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흡사 밀레의 농촌 풍경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사회적 모순에 대한 치열한 번민과 문제제기를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사후인 1860년대에 “미술을 인민에게”라는 구호 아래 
러시아 화단을 뒤집어 놓았던 <이동파>의 정신이 그에게 닿아 있으며, 
바실리 페로프(1834~1882) 등이 꽃피운 러시아 풍속화의 원류도 

베네치아노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베네치아노프가 농노들을 위한 미술학교를 설립한 것은, 

1817년 A. 올레닌이란 냉혈한이 미술아카데미의 새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농노출신 학생들을 깡그리 추방한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아카데미에는 농노 신분의 학생들이 상당수 재학하고 있었다. 
그때 러시아 인구의 60% 이상이 농노였던 점을 생각하면 이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농노 화가들이  잠시 신분을 잊고 

자유와 예술을 만끽하던 행복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올레닌에 의해 추방된 농노들은 다시 장원으로 돌아가서 

숙명처럼 고된 노동에 종사해야 했다. 
베네치아노프는 그들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을 가르치던 아카데미와는 달리 주변의 꽃과 가구, 실내장식을 스케치하며 

실제의 생활에서 부딪치는 대상들에 주목하도록 지도하였다. 

19세기 후반을 장식한 크람스코이와 레핀, 수리코프, 세로프, 브루벨에 이르면 
러시아의 그림들은 미학적 기준으로도 서구의 걸작에 뒤지지 않을 만큼 수려하다.
그러나 그 이전의 작품들은 주류로부터 때로 ‘키치 (Kitsch, 대중적 싸구려 문화)’로 
폄하될 만큼 세련되지 못한 점들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나 네덜란드의 회화와 러시아의 회화는 즐기는 방법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19세기 전반까지의 러시아 그림은 비록 고급스럽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 배경과 내용에서 독보적인 역사성을 갖고 있다. 
모네나 고흐의 그림에서 거친 터치와 빛나는 색채를 몰역사적으로 즐기듯이,
19세기 러시아의 그림들로부터는 세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그 사회에서 어떻게 무르익어갔는지를 되새겨보는 것이 제 맛을 느끼는 방법이 아닐까.


미술 아카데미에서 쫓겨난 농노 화가들을 위해 트베르 지방의 시골에 학교를 세워 
그림을 가르쳤던 베네치아노프의 독특한 이력은, 당시 대부분의 동료화가들과는 달리 
그가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러시아 사회의 비주류로서 귀족들을 조롱하는 풍자화를 남기기도 한 사람이다. 
그러나 평화롭기만 한 그림 속 풍경이 시사하는 바처럼, 베네치아노프는 
사회적 모순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투철한 의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 
그는 무엇보다 불행한 농노 화가들에게 어버이와 같은 사람이었으며, 
러시아 회화사에서 최초로 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사람이고, 
파벨 페도도프(1815~52)를 거쳐 바실리 페로프(1834~82)에서 만개한 장르화(풍속화)를 
균형 있고 완전한 예술적 체계로 처음 정립한 사람이다. 
그것만 해도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는 우리가 주목할만한 화가인 것이다.

1820년대 말에 베네치아노프는 캐릭터가 삶의 스케치와 비슷한 작은 작품을 
계속 제작하면서 점차 일반화된 캐릭터의 비유적 특성을 지닌 대형 캔버스로 전환했다. 
그림은 본질적으로 베네치아노프의 창조적 유산에 많은 장르의 초상화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강렬하고 그림같은 질감이 드러나며 번짐이 커지고 끈적거리게 된다. 
감상과는 거리가 먼 진지함과 성실함을 지닌 작가는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인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아름다움과 힘을 구현하고 있다.

작품 '리퍼(Reapers)'에서 어머니 손등에 있는 

나비를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은 그의 기쁨을 말한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와 피로가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일이 끝난 후의 피로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화가는 색상 대비와 이미지 정확도로 다시 재생되지만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은 여전히 ​​눈에 띈다.

 

Morning of a Landowner’s Wife (Landowner’s Wife Engaged in Housekeeping: 
Landowner's Wife Giving Flax to Peasant Women), 1823.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41,5 x 32,5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베네치아노프의 이 작품은 평범하고 소박한 가구를 갖춘 집 주인과 집안의 일부를 묘사한다. 
이른 아침의 빛은 열린 창문의 좁은 가장자리를 통해 방으로 들어온다. 
테이블에는 실내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주인이 앉아 
위엄 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농민 여성들에게 지침을 시달한다. 

그들 중 한 명은 무릎을 꿇고 붉은 천으로 싸인 양털꾸러미를 손에 들고, 
다른 한 명은 대화를 중단하고 시청자를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농부 여성의 이미지에서 예술가는 차분한 존엄성을 전달한다. 
그림의 두 소녀는 젊은 지주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 

전체 무대는 "고귀한 둥지"의 느긋하고 측정된 삶의 평화로운 평온함과 안락함으로 숨을 쉰다. 
말 그대로 삽화가 아니라 시적인 분위기를 지닌 “지주의 아침 (Morning of the Landowner)”은 
라린스(Larins)의 삶의 방식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불러일으킨다. 
오랜 전통에 따르면 이 그림은 사폰코보(Safonkovo)의 한 집에 있는 방에서 
베네치아노프의 아내 마르타 아파나시예브나(Martha Afanasyevna)를 묘사한다고 믿어졌다.

 

Studio of Artist Alexey Venetsianov in Saint-Petersburg, 1827. 
by Alekseyev Alexander Alekseevich. oil on canvas. 77 х 96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베네치아노프는 예술 아카데미와는 다른 자신의 방법으로 
농부의 삶을 묘사하기 시작한 러시아 최초의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농민 아이들을 가르쳤다. 
베네치아노프 학교의 예술 교육은 "매너의 혼합 없이" 자연을 쓰는 규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의 학생 알렉산더 알렉세예프(Alexander Alexeev)가 그린 이 작품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술가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Alexei Venetsianov)의 작업장"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젊은 화가들이 왼쪽에

러시아 민족 의상을 입은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묘사한다.

 

Winter Landscape (Russian Winter), 1827. by Krylov N. S. oil on canvas. 54 x 63,5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러시아 예술의 첫 번째 겨울 풍경.
풍경은 작가 자신의 주도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근교 토스노(Tosno) 인근 
니콜스코이(Nikolskoye) 마을의 삶에서 그 내용을 정리하고 작가가 선택한 장소에 
후원자의 도움으로 겨울에 작업할 수 있도록 오두막을 짓고 그렸다. 

크라이로브(Krylov)는 러시아의 겨울을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묘사한 최초의 러시아 예술가이다. 
예술가가 지정한 장소에서 상인 체르냐틴스키(Chernyatinsky, Chernyagins)는 
그를 위해 따뜻한 워크샵을 만들고 그림을 작업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 제공했다. 
그 후 체르냐틴스키는 "미래 재능의 성공"에 기여한 예술가 장려협회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그림은 일상적인 세부 사항에 대한 관심과 풍경, 

자연에 대한 인식의 무결성이 결합되어 매력을 느낀다. 
자연에 대한 충실함, 색상과 빛의 밝기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는 
작품에 특별한 국가적 풍미를 부여하여 창작 당시부터 현재까지 

모든 전시회에서 끊임없는 성공을 보장한다.

 

The Major Makes a Proposal (Inspecting a Bride in a Merchant’s House), About 1851. by Pavel A. Fedotov. 
oil on canvas. 56 x 76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파벨 페도토프 (Pavel Andreyevich Fedotov 1815~1852)는 러시아 화가였다. 
그는 정신 병원에서 사망했을 때 겨우 37 세였다.
페도토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제국 경비대 장교였다. 
당시 그의 동료들처럼 그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미술 아카데미의 저녁 수업에 참석하여 회화에 집중했다. 
학생 시절 그는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육군에서는 장교와 
연대 장면의 초상화를 통해 연대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메이저의 결혼"에서 중매인은 신랑을 신부의 집으로 데려온다. 
당황한 딸은 달아나고 싶어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드레스를 잡고 있다. 
요리사는 쿨비야카(kulebyaka)를 가져오고 도우미는 와인을 가져온다. 
한 노파가 다른 방에 다가가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참견한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오는 중매인을 가리킨다. 

그림 속의 모든 캐릭터들 중에서 문 밖에서 서성이는 신랑 자신은 화가에게 가장 관심이 없다. 
구성의 중심에는 달아나는 신부와 그녀를 제지하려는 어머니가 있다. 
샴페인은 이미 의자 위의 쟁반에 있다. 
전면 앞에는 고양이가 손님을 씻어낸다. 

화가는 상인의 집에서 소란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인물로 배경을 그리고 있다. 
페도토프는 시청자가 무의식적인 느낌을 가지도록 방과 캐릭터를 배치하고, 
마치 창문 너머로 상인의 집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듯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크기는 작지만 마무리는 매우 세심하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페도토프는 유명한 "Racea"라는 시적 작품을 썼다. 

사진은 말한다 : 
"세상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
그들은 스스로 일하기에는 너무 게으르고
그래서 그들은 부자와 결혼합니다. "

 

Portrait of N.P. Zhdanovich at the piano, 1849. by Pavel A. Fedotov. oil on canvas. 24.5 x 19.2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지다노비치 페트로브나 (Zhdanovich Nadezhda Petrovna )1836~1915)는 
1854년에 스몰리(Smolny)의 귀족 처녀를 위한 제국 교육협회에서 자랐다. 
그녀는 나중에 보병 장군이었던 핀란드 연대의  베르너(A. I. Werner)장교와 결혼했다. 

페트로브나는 스몰리 인스티튜드(Smolny Institute)의 학생 유니폼인 
흰색 앞치마가 있는 파란색 드레스로 묘사된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하얀 앞치마를 입은 소녀가 피아노 작품에 그려져 있다. 
페트로브나의 눈썹은 놀랍게도 살짝 들리고, 
그녀의 진지한 표정은 입술에 살짝 미소를 지어 흐릿하게 보인다. 
특정 구성 기술의 도움으로 아티스트는 시청자가 모델의 성격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립적인 배경이 인물 주위에 약간 밝아져 
가벼운 공기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캔버스에서 중앙 위치를 강조한다.

초상화는 자발성과 실행의 숙달로 구별된다. 
작지만 그림은 대담하고 활력이 넘친다. 
머리와 팔은 특히 명확하게 조각되어 있다. 
얼굴의 특징은 힘, 열정, 생동감과 동시에 모델 캐릭터의 부드러움을 나타낸다.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Threshing Barn, 1822~23.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66,5 x 80,5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베네치아노프(Alexey G. Venetsianov)의 이 작은 프로그램 캔버스를 고려할 때, 
우리는 농민들이 일상 업무로 바쁘게 지내는 오래된 탈곡장의 
낮게 돌출된 어두운 서까래 아래로 침투하는 것 같다.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원근감이 그림을 지배한다. 
통나무와 광선으로 형성된 선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작가는 또한 원근감 "이정표"로 수치가 필요하다. 
규모가 감소하면 공간의 깊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건물에 있는 진짜 헛간 앞 벽을 잘라내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삶에서 그것을 칠하고 더 정확하게 조명을 전달한다. 

자연을 필요로 하는 "헛간" 작업은 아마도 1822년 여름에 시작되어 
1823년 여름에 사폰코보(Safonkovo)에서 계속되었다. 
1824년 4월 베네치아노프는 이 그림을 알렉산더 1세 황제에게 선물했고, 
4월 29일에 에르미타주 목록에 포함되었다. 
베네치아노프는 이 작품으로 3000 루블을 받았다.

 

Reaper, Mid-1820s.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30 x 24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베네치아노프(Venetsianov)의 많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림은 장르 초상화이다. 
젊은 농민 여성의 매력과 색다른 복장, 모습의 역동적인 반전, 그림에 감정적으로 
경쾌하고 축제적인 이미지를 주며 러시아 농민의 이상적인 정신적 상태를 상징한다.

 

A Peasant Boy Donning Bast Shoes, 1823~1826.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37 х 28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이 작품은 베네치아노프의 장르와 초상화의 다소 전형적인 조합이다. 
1826~1827년 예술가 장려회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농민 구두"라는 그림이 전시되었다. 
그것은 19세기의 알려지지 않은 석판가에 의해 석판화되었다. 
젤렌트소프(K. A. Zelentsov)가 그린 그림의 사본은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State Tretyakov Gallery)에 있다. 

 

Sleeping shepherd, 1823~1826. by Alexey G. Venetsianov. Wood, oil. 27.5 x 36.5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풍경 배경은 사폰코보(Safonkovo) ​​마을에 있는 베네치아노프의 집 창문에서 
보로지바(Vorozhba) 강의 전망을 나타낸다. 
이 그림은 예술가 장려협회에서 1826~1827 년에 처음 전시되었다.  
풍경 배경에서 전경을 "분리"하는 기술을 사용하면 풍경의 무한한 폭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미묘하게 밝은 색상의 전환은 여름 더위에 의해 느려졌지만 깨지지 않고 
끝없이 다양한 삶의 흐름으로 인해 눈에 띄는 느낌을 준다. 

 

"Peasant children in the field" 1810s.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38.5 x 30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베네치아노프의 농민 주제 그림 중 하나인 "현장의 농민들". 
줄거리는 단순하고 소박하며 평범한 일상 상황을 나타낸다. 
두 소녀가 현장에서 일하는 목자에게 점심을 가져온다. 
캔버스에는 고전적인 시골 풍경이 눈앞에 떠 오르고 여름날이 나타난다. 
들판의 무성한 녹색, 멀리 멀어져가는 들판, 나무로 자란 수평선, 창백하고 거의 투명한 하늘.

어린이 그림은 큰 크기로 작성되며 캔버스의 앞쪽 프레임에 가깝다. 
아이들은 옷이 좋지 않지만 깔끔하고 깨끗하다. 
밝은 회색 옷에는 얇은 벨트가 있고 소녀의 머리에는 파란색과 밝은 파란색의 숄이 있다. 
아이들은 단순한 인피부 신발을 신고 있다. 
분명하게 보이는 부드러움과 사랑인 아이들의 관계는 시청자를 매료시킨다. 
나이 많은 소녀는 소심하게 부끄러워 하며 양치기에게 빵을 건네준다. 
뒤에 서 있는 소녀는 앞에 소녀 어깨로 손을 부드럽게 안고 머리를 얹는다. 
소녀들은 손에 바구니를 들고 지칠 줄 모르는 일에 대해 말하고 부모를 돕는다. 
그들의 표정은 고요하다.

주변 풍경도 고요하고 평온함을 불어 넣는 것 같다. 
양 떼에서 몇 마리의 양만이 이 침묵을 깨뜨린다. 
캔버스에 묘사된 사건의 평범함과 그 규칙성에도 불구하고 전체 그림은 
서정적으로 영혼에 직접 침투하여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인상을 남긴다. 

 

Cleaning the Sugar-beet, 1820, by Alexey G. Venetsianov. pastel on paper. 58 x 68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노동의 중요성, 일상적인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준다. 
사실 우리 앞에는 농민의 그룹 초상화가 있다. 
작업은 양피지에 파스텔로 이루어진다. 
이 기술은 캔버스에 필요한 부부드러움을 제공한다. 
베네치아노프의 이 작품은 러시아 미술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림의 중앙에는 젊은 농부 소녀가 있는데, 맨발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약간 지쳐 있다. 
그녀는 잠시 일을 중단했다. 
아마도 그녀를 향해 기대는 남자가 불쾌한 소식을 전했는가 보다. 
오른쪽 구석에는 두 명의 소녀와 십대가 더 있고 배경에는 음식 한 그릇을 든 아이가 있다. 
양피지의 거의 전체 공간은 인간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사이의 틈새에만 조건부 풍경 배경이 있다. 
황제는 예술가에게 "비트의 청소"를 위해 그 시간동안 기록적인 금액 천 루블을 지불했다. 
그림은 즉시 겨울 궁전의 다이아몬드 룸에 배치되었다.

 

A Peasant Woman with Scythe and Rake, 1824. by Alexey G. Venetsianov. oil on canvas. 
50 x 65 cm. The Mikhailovsky Palace, Hall 13, The State Russian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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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Hall 13 in Stat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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