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의 그림을 가장 많이 구입했던 마거릿 밀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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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야기)

박수근의 그림을 가장 많이 구입했던 마거릿 밀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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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그림을 가장 많이 구입했던 마거릿 밀러 부인



죽어서는 최고 경매가 기록을 갈아치우는 비싼 그림, 하지만 살아 있을 때는 가난한 화가


2007년 3월,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로 낙찰을 기록한 그림 한 점이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고 가장 현대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수근(1914~1965)의 작품 '시장의 사람들'. 당시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25억 원에 낙찰됐다. 이전의 한국현대미술품의 최고 경매가는 2006년 12월, 10억4000만원에 팔린 작품도 역시 박수근의 1962년도 작품인 '노상'이었다.


'시장의 사람들'은 하드보드지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다지 크지 않은 작품으로 시장에서 서있거나 앉아 있는 여인 12명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박수근의 작품 중 인물이 가장 많이 등장한 것으로 유명하며, 박수근 유화 특유의 화강암과 같은 화면 질감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대단히 평범한 예술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박수근


박수근의 작품에는 항상 평화롭고 온유한 작가의 마음이 배어 있다. 1930-1960년대 어려운 시대 서민들의 고달픈 생활상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인상적으로 담겨진 그의 작품들은 지극히 한국적이며 향토적이다. 12명의 여인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작품은 박수근 을 무척이나 존경하던 외국인이 40년간 소장하다 한국인 소장가에게 되팔았다고 알려져 있다. 박수근의 작품들 중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회백색의 화강암과 같은 독특한 마티에르와 단순한 검은 선의 기법으로 장터에 나선 여인들의 모습을 정적으로 표현하였다. 섬세하게 떠오르는 윤관선과 잔잔하게 번져가는 톤의 여운이 소재가 지니는 정감에 한껏 어울리면서 작가의 소재에 대한 애착을 진하게 보여주고 있는 절정기의 작품이다.


 

▲ 박수근- 시장의 사람들, 하드보드지에 유채, 24.9×62.4㎝, 1961, 개인 소장

 

하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했던가? 2개월 후인 2007년 5월 경매에서 박수근의 또 다른 작품 '빨래터'가 45억2000만원에 낙찰되면서 기록을 갱신했다. 미술계에서는 이른바 '박수근 불패신화'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미술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박수근은 1950~1960년대 전형적인 한국의 서민 생활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 가장 사랑 받는 화가로 그의 그림 값은 앞으로 더 올라 50억 원은 훌쩍 뛰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수근은 살아서는 한국전쟁의 혼란기 속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의 좁은 집은 팔리지 않은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친애하는 밀러 부인. 보내드린 소품 두 점의 값은 '노인'이 40달러, '두 여인의 대화'가 50달러입니다."


이것은 박수근이 196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마거릿 밀러에게 보낸 편지다. 밀러 부인은 한국은행에서 근무한 남편을 따라 서울에 왔다가 박수근의 작품을 보고는 그의 단골 컬렉터가 되었다. 박수근은 한국전쟁 후 미군 첩보부대에서 몽타주를 그려주거나 미8군 피엑스(PX)에서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집이 가난해 중학교에도 진학을 못하고 미술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한국의 무명 화가 박수근을 후원해준 이는 미국 여성들이었다. 반도호텔에 생긴 첫 상설화랑인 반도화랑의 주인 실리아 짐머맨과 밀러 여사, 미대사관 직원 부인들이 그들이다. 이 후원자들을 거쳐 미국으로 팔려간 박수근의 그림은 약 200여 점을 가량이라고 한다.


그 중 가장 많이 구입했던 밀러 부인(60여 점 정도 매입)에게 보낸 박수근의 편지를 보면 당시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박수근의 그림은 40~100달러 정도에 팔렸는데 40달러면 당시 쌀 세 가마니가 좀 안 되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밀러 부인에게 돈보다는 오히려 물감으로 그림 값을 치러주길 간절히 원했는데 특히 그가 잘 사용한 흰색이나 초록색 물감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박수근의 작품 크기가 작은 것도 당시 크고 비싼 캔버스를 구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화가의 삶이 비참할수록 비싸지는 그림 값?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미술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생이별을 했다. 병원에 갈 수 없어 아들 2명이 죽었고 그 자신도 돈이 없어 백내장 수술을 미루다 한쪽 눈을 실명한 후 간경화가 악화돼 죽었다. 만약 오늘날 자신의 그림들이 25억, 45억 원을 호가하는 것을 안다면 박수근은 뭐라고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의 삶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림 값은 더 비싸진다. 생전에 그림을 단 2점 밖에 팔지 못하고(그것도 동생이 사갔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역시 그랬다.


또 한 명의 대한민국 대표화가 이중섭(1916~1956)도 그림을 그릴 종이를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서 담배갑 속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 일본인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에 건너갔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숨진 뒤 무연고자로 처리돼 사흘이나 시체실에 방치됐다.

이들은 모두 살아서는 불행했다. 그림이 잘 팔리는 인기 작가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들의 불행에 예술적 낭만과 미화가 더해져 미술 경매에서 연일 최고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십 억, 수백 억 원이라는 최고로 비싼 그림 값은 지금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많은 돈은 야속하게도 이들의 고통스러웠던 생애와는 무관하게 엉뚱한 사람들의 지갑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ㆍ건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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