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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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그곳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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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서귀포


금란지교 (金蘭之交)  지란지교 (芝蘭之交)

추사 김정희(1786-1856) 초의 의순(1786-1866)

 

*아래동영상에서 기념관, 적려유허비, 청동상을 제외한 위리안치된 초가 등은 이전부터 있었던 건물임. 기년관엔 소장품, 복사본 등 전시중.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

https://www.youtube.com/watch?v=wrqxTgzFtRQ


위 사진의 기념관, 적려유허비, 나가는 곳 앞의 동상 등은 새로 추가한 것임. 바문의 ‘적려’란 귀양살이하던 오두막집이란 뜻이고, ‘유허비’는 기념할 만한 옛 자취에 세운 비석을 의미한다.


세한도 발문 - 추사 김정희  


자기 신상의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위안치된 죄인인 자신을 찾아주는 동갑의 초의선사에 대한 유불을 초월한 금란지교를 조각으로 시각화한 것은 뛰어난 착상으로 보였다. 세한도 발문은 제자이며 역관인 이상적에게 준 글인데 세한연후에도 변함없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언급하신 공자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그린 그림이 세한도임을 밝혔다. 진리에 준거하여 살아야 가치있는 삶이라 예찬할 수 있다. 그림 속의 세 그루 소나무는 초의선사와 이상적 외에 자기자신을 표상화한 것은 아닐까?

유적지에서도 그들을 생각하면 살 맛나는 세상이었음에 틀림없다. 참고로 당시의 제주행이란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정치적 위협은 차치하더라도 풍랑 등 자연의 재해로 인하여 목숨까지 걸어야  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뱃길이었다. 서도를 통하여 9년간의 말년 유배생활의 시련을 극복한 선생의 올곧은 삶은 한국인들에게 두고두고 사표가 되리라 확신하며 삼가 추사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 세한도 발문의 중심문장의 원문과 추사선생의 해설을 좀 더 자세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공자가 『논어』 「자한」편에 에 이르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오랜 세월) 후에 시드는 것을 안다고 하였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은 것이라서,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한 결 같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요,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한 결 같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이지만 성인은 특별히 날씨가 추워진 뒤에 이를 일컬었네.



 

탱자나무를 심은 위리안치 뒤가 서당. 아래 좌측건물


위는 주인집 거처. 앞의 물레방아, 돼지우리, 대문간 등은 주인의 소유물.

나가는출입문을 나서면 추사 선생의 청동상은 기념관, 유허비 등과 함께 신설함.


뒤가 거처,사진 왼족이 서당, 우측이 주인의 살림집.




<출처;egloos.com by cool &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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