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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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문학/문학의 이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금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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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고전 문화의 재생이라는 의미를 가진 르네상스는 중세 이래 망각된 '인간'을 다시 강조한 세속주의 문화 운동이다. 어떠한 이유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먼저 나타났으며, 그 특징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탈리아가 르네상스를 선도한 이유는 우선 이탈리아에서는 13세기 이전에 봉건 제도가 쇠퇴하고, 도시 상인들이 세력을 장악한 사회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리적 위치 때문에 십자군 운동기에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같은 항구 도시들이 발전하였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였다.

무역으로 세력을 키운 도시들과 그 지배층인 상인들이 바로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이 밖에도 이탈리아가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옛 유물을 많이 간직하였고, 알프스 이북 지역에 비하여 비잔틴·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가깝게 받았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의 정신이 강하고 봉건적 굴레가 비교적 약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정신이 먼저 자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특징은 문예지향적이다. 페트라르카(Petrarca), 보카치오(Boccacio) 등은 시인과 소설가로서 각각 인문주의 및 근대 소설의 장을 열었다. 또한 미술과 건축, 그리고 조각 분야에서 천재들을 배출하였다. 원근법을 새로 부각시킨 조토,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심판〉과 〈다비드상〉을 남긴 미켈란젤로 등은 모두 예술 작품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가 사회 비판적 성격을 지닌 것과 현저히 구별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인문주의가 손꼽힌다. 인문주의란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Studia Humanitatis)'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중세 스콜라 학문 중에서 일반 교양과목인 문법, 수사학, 역사, 시 등을 연구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과목들은 그리스와 라틴 고전을 연구했지 신(神)을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인간' 연구에 중점을 두게 되어 세속주의 정신이 발전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세속 정신을 보여주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저술이다. 일반 대중을 독자로 삼아 내용이 완전히 세속적인데다 이탈리아어로 쓰였다. 《데카메론》의 내용은 당시 유행하던 흑사병을 피해 모인 부유한 피렌체 남녀들이 10일 동안 함께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눈 설화를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강도, 창녀, 부랑자의 이야기와 함께 수도사들을 다룬 《데카메론》은 매우 풍자적이고 세속적이어서 당대의 해이한 성(性)관념과 사회윤리를 꼬집었다. 《데카메론》은 그 후 이탈리아 문학은 물론 유럽 각 지역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영국 초서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정치 사상 분야에서도 근대적이고 세속적 성격을 나타냈다. 즉 중세의 사상과는 매우 다르게 오늘날의 정치 감각과 상통하는 새로운 정치 사상이 나타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주론》이다.

《군주론》의 저자는 피렌체 사람인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였다. 그는 1494년 이래 이탈리아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압제 속에서 신음한 원인으로 이탈리아 군주들의 통치방식을 꼽았다. 그들의 통치방식은 이상적일 뿐 실현될 수 없었던 헛된 정치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군주들에게 충고하기 위하여 오늘날 정치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군주론》을 쓴 것이다.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

이 책은 현실적인 유용성에 중점을 뒀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먼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는 사물을 이상적 형태보다 있는 그대로 나타냄이 중요하고 올바르다고 믿는다. 모두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공화국과 제후국 체제를 꿈꿀 뿐이다. 인간이 이상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와 현실적으로 어떻게 사는가와의 차이는 매우 크다. 따라서 이상적인 삶을 위하여 현실적 삶을 등한시한다면 파멸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또한 군주의 권력을 중시하였고 군주의 권력 강화를 위하여 돈을 주고 고용하는 용병을 대신하여 프랑스처럼 '시민군'을 국력의 바탕으로 삼자고 역설하였다. 또한 군주가 강력한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모든 점에서 도덕적인 사람은 비도덕적인 사람에 의하여 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군주가 외적인 간섭을 받지 않고 계속하여 지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도덕적인 것을 배워야만 하며 필요에 따라서 비도덕적인 교활함을 이용해야 한다. 군주는 덕이 있다는 평판을 얻기 위하여 애쓸 필요는 있으나 실제로 덕을 행하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마키아벨리는 스콜라 사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정치 사상을 내세웠다. 즉 종교는 정치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아닌 군주의 성공을 돕기 위해 유용한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군주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종교적인 신앙과 경건한 마음이 필요하다면 진실함의 여부는 제쳐놓고 외양만은 어떻게든 갖추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즉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도 된다고 가르치기 위해 《군주론》을 저술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세속성은 예술에서 나타난다. 특히 건축, 조각, 미술에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졌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통하여 이 점을 살펴보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만능 천재였다. 음악가, 건축가, 기계공학자, 해부학자, 발명가, 화학자인 동시에 물리 실험가였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유복한 공증인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농가 출신의 처녀였다. 이는 자고로 결혼은 비슷한 신분끼리 이루어지는 상례를 벗어나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어려운 이런 결합이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가능하였다. 또 이혼도 쉽게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였다. 즉 관례가 무시되고 무엇인가 새로운 힘에 의하여 사회가 변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매뉴스크립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매뉴스크립트
매뉴스크립트는 다 빈치가 자신의 연구 내용을 손으로 기록해 엮은 노트이다. 다 빈치의 관심은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러한 사회풍조에 따라서 일생을 자신의 능력으로 개척하였다. 그는 집에서 법률공부를 강요받았지만, 화가로서 재능이 있다고 믿으며 처음부터 그림공부를 고집하였다. 그리하여 자기 재능을 인정하는 유력자를 밀라노, 피렌체, 프랑스로 찾아다녔고 그들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당시 유력자들은 화가에게 초상화, 벽화, 때로는 성화(聖畵) 등을 주문하였고, 화가들은 불평을 듣지 않기 위하여 수요자들의 기호에 알맞게 그림을 그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제약을 승화시켜 위대한 예술을 창조했으니 그 대표적 작품이 〈모나리자〉이다.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피렌체의 관리 프란체스코 조콘다가 어느 날 그의 부인인 리자와 함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찾아와 리자의 초상화를 부탁하였다. 그때 리자의 나이는 24살로 그 아름다움이 화가를 감동시켰다. 흔쾌히 그림을 그리기로 약속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리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일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리자의 모습에서 살짝 스치는 미소,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리자의 미소를 어떻게 표현할까 하고 그는 고심하였다.

 

 

 

모나리자

그런 가운데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리자의 초상화는 거의 완성될 단계에 이르렀다. 리자 부인은 날마다 약속한 시간에 찾아와서 그림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리자는 서운한 듯 말하였다.

"선생님, 제가 남편을 따라 칼라브리아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얼마나 시간이 걸립니까?"

"석 달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한사코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가시지요. 그림은 다녀오신 뒤에 마무리하지요. 언제 떠나십니까?"

"바쁜 일이 생겨서 오늘 떠납니다."

리자는 거의 완성된 초상화를 들여다보았다.

"선생님, 이 그림의 제목을 무엇으로 붙이실 겁니까?"

"모나리자라고 할까 합니다."

리자 부인은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모나'란 '마돈나', 즉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로 여자를 높이는 말이다. 아쉽게도 리자 부인은 그날 떠났다. 그리고 이것이 〈모나리자〉 작업의 마지막이었다. 리자 부인이 여행 도중 뜻하지 않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그녀의 신비한 미소와 함께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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