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謙齋 鄭敾 - 금강산을 사랑한 화가

댓글수0 다음블로그 이동

그림이야기/동양화.수묵화

겸재 정선 謙齋 鄭敾 - 금강산을 사랑한 화가

금동이
댓글수0

지금부터 볼 그림은 우리나라 국보로 매우 널리 알려진 〈금강전도〉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바위로 만들어 놓은 듯한 만물을 품은 경관과 기기묘묘한 바위 봉우리들이 늘어선 천하의 명승지,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다. '전도(全圖)'라는 말은 전체를 그렸다는 의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정선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300년쯤 전에 활동했던 화가인데, 84세까지 장수를 누리면서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오늘날 전해지는 옛 그림 가운데 정선의 그림이 가장 많을 정도다.

〈금강전도〉 정선, 1734년, 종이에 수묵, 94.5x130.8cm, 삼성미술관 리움

ⓒ 탐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수 없습니다.

그의 호는 겸재(謙齋)다. 예전에는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크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선 같으면 '겸재' 하고 호를 이름 대신 불렀다. '겸재'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금강산 그림이다. 그만큼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많이 그렸다. 왜 그렇게 금강산 그림을 많이 그렸는지 먼저 그 이유의 하나는 정선이 살던 당시에 금강산 여행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는 그전부터 무척 유명했는데 고려 시대에 이미 중국까지 소문이 났다. 당시 중국 사람들은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난다면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구경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정선이 살던 18세기는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넉넉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름나 있던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강산에 다녀온 사람은 그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금강산 그림을 찾곤 했다. 마치 우리가 해외 여행지에 가서 엽서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이 특히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솜씨도 솜씨려니와 무엇보다도 정선이 금강산을 그리는 새로운 기법을 찾아냈다는 게 중요하다. 그가 그린 금강산 그림을 보면 마치 실제 산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단발령망금강산〉 정선, 1711년, 비단에 수묵, 36.1x37.6cm, 국립중앙박물관

ⓒ 탐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수 없습니다.

〈단발령망금강산〉이란 제목의 그림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금강산을 찾아갈 때 거쳐야 하는 단발령이라는 고개와 그 너머에 펼쳐져 있는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다. 정선이 새로운 기법을 발휘해 그린 것으로 금강산을 그린 그림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금강산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수많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그래서 아래쪽은 숲이 넓고 울창한데다 위로는 만 2,000봉의 바위로 된 봉우리들이 연속으로 솟아 있다. 정선은 금강산의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바위산을 그리는 기법과 나무가 많은 흙산을 그리는 기법을 함께 썼다. 그 사이에는 구름과 안개를 깔아 자연스럽게 두 세계를 연결시켰다. 이러한 독특한 기법이 정선 그림이 가지는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선 그림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을 교묘하게 섞어 놓아서 보는 사람이 그림 세계로 빠져 들어가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다. 이 그림을 봐도 그렇다. 나무가 많은 흙산의 고개 위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 있다. 자세히 보면 힘든 언덕길을 오른 뒤에 숨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휴~" 하는 숨소리와 함께 "정말 근사 하구나!"라는 감탄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고갯길 중턱으로 시선을 돌리면 짐을 잔뜩 진 노새를 끌고 뒤처져서 올라가는 사람이 보인다. 이것을 보면 누구나 저절로 '아, 가파른 고개인가 보다'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힘든 고개를 다 올라온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또 갓을 쓴 사람의 손짓을 따라가 보면 구름 속의 금강산을 가리키고 있다. 이 손짓 하나로 그림을 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림 속의 금강산 구경에 따라 나서게 된다.

이처럼 정선은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내고, 또 그림 속에 여러 아이디어를 심어 놓으면서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그가 금강산 그림을 처음 그린 사람은 아니었다. 그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기록을 보면 조선 시대 초기부터 금강산 그림이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이전의 어떤 화가보다 훨씬 더 잘 그렸고, 또 새롭게 그렸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정말 금강산 그림의 대가라고 할 만하다.

대가는 다른 말로 거장이라고도 하는데, 그림에서 거장이란 강물에 비유하자면 흘러가는 물줄기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선이 금강산 그림을 그리는 화풍을 만들어 놓자 물줄기의 방향이 바뀌듯이 이후의 화가들은 대부분 그를 따라 했다.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던 심사정, 김홍도, 김희겸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에 많은 화가들이 금강산 그림을 그릴 때면 겸재식 화풍을 따랐다. 거기에는 직업 화가나 문인 화가의 구분이 없었을 정도다. 금강산의 만 2,000봉을 그릴 때면 정선처럼 으레 희고 뾰족뾰족한 바위를 그렸고, 바위를 감싸고 있는 산기슭을 표현하기 위해 먹점을 무수히 많이 찍어 숲의 무성함을 나타냈다.

이름난 화가들만 그렇게 그린 게 아니었다. 지방에 있는 무명 화가들도 정선을 따랐다. 금강산 그림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금강산 여행 열풍이 일면서 크게 유행했다. 그래서 지방에서도 금강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았고, 이들 역시 금강산 그림을 원했다. 서울의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은 값이 비싸니까 지방에서는 이름나진 않았지만 손재주가 있는 화가들에게 금강산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방의 무명 화가들은 이런 요청이 들어오면 당연한 듯이 정선의 그림을 놓고 베껴 그려 주었다고 한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맨위로

https://blog.daum.net/gold9055/15020882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