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토마토 9) 수난 당하고 있는 근대건축유산 - 뾰족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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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토마토 9) 수난 당하고 있는 근대건축유산 - 뾰족집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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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토마토>에 2013년 1월호부터 '대전의 근대건축' 연재

<월간 토마토>는 '사람, 공간, 그리고 기록...'이라는 테마로 대전에서 발간되고 있는 문화예술잡지이다.

 

 

 

수난 당하고 있는 근대건축유산 - 뾰족집

 

- 2013년 9월호

 

 

몇 해 전,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주거건축물 중 하나인, 일명 '뾰족집이라 불리는 주택이 무단철거가 진행된 사건이 있었다. 대전, 아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으로, 지금은 우리나라 근대문화재 무단훼손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버렸다.

   

무단철거 중 중단되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뾰족집’(2010년 촬영)

 

지붕이 박공형태와 원추형으로 높이 솟아 있어 '뾰족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이 주택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대전 철도국장의 관사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 시기에 지어졌던 고위층 관료의 관사건물들은 대부분 일본식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현관에서 가까운 한쪽 편에 서양식 구조로 만든 응접실을 두는 것이 하나의 양식(樣式)으로 되어 있었다.

'뾰족집'도 당시의 유행에 맞춰, 1층 현관을 들어서서 홀의 왼쪽 편에 서양식 구조의 응접실이 위치하였다. 다른 방들은 좌식(坐式)구조의 일본식 다다미방이었으나, 응접실은 서양식 입식(立式)구조였다. 이 응접실에는 쇼파와 테이블이 놓이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쪽 벽에 서양식 벽난로가 설치되기도 하였고, 천장에는 근대식 샹들리에도 달려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다른 서구식 주거문화를 받아들인 결과이다. 이러한 주거형태는 우리나라의 근대주거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뾰족집'의 응접실은 남쪽벽면이 둥그런 반원형태의 평면으로 되어있는데, 이 거실의 위에 배치된 2층의 방도 똑같은 반원형태이다. 이 반원형태의 평면으로 인해 지붕이 뾰족한 원추형의 솟아오르는 형태로 마감되면서, 높게 올려진 박공형태의 다른 지붕과 함께 이 집의 상징물이 되어 뾰족집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원추형의 거실지붕과 박공지붕이 높이 솟아 있는 '뾰족집’(2004년 촬영)

 

'뾰족집’ 1층 평면도(2004년 필자 스케치)

 

정원 사이로 보이는 현관 전경(2004)

 

정원에 우거진 나무사이로 보이는 거실측 외벽 전경(2004)

 

정원이 보이는 반원형 응접실 창문(2004)

 

응접실 천장에 설치되어 있던 샹들리에(2004)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2004)

 

건립연도(昭和四年)를 알려주는 정초석(2004)

 

'뾰족집', 일본식과 서양식의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당시의 시대성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건축구조도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비록 일본인의 주택으로 지어졌지만, 우리나라 주거문화의 변천과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건축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 제377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철거의 위험이 있어 대전시 문화재자료로 가지정되었다.

 

단어의 의미 그대로 '뾰족집은 우리의 문화재(文化財)”이다.

 

문화재, 그 나라의 역사 예술 생활양식 등에서 기념이 되거나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문화활동의 소산(所産)을 말한다. 말 그대로 우리의 선조들이 걸어온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文化遺産)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후손인 우리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이러한 문화유산들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또다시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재의 보존 모습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의식과 문화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문화재, 우리 민족의 긍지와 정통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우리역사의 시대적 아픔을 간직한 것들 역시 우리는 문화재로 포함시키고 있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당시에 지어지거나 형성된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이유는, 우리 선조들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잔재물들을 그냥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잘 보존하여 역사적 교훈을 줄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유산들은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착취되어 형성된 것으로서 그 시대적 아픔과 잔혹성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사실대로 알리고, 다시는 그러한 수치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삼기 위한 시대적 증거물로서 보존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러한 문화재들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09'뾰족집무단철거가 진행되었으며, 이로부터 1년이 겨우 지난 201112월에는 '뾰족집'과 함께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주택 중 하나였던 선화동 구 사범부속학교 교장 사택이 화재로 인해 전소된 사건이 있었다. 이 교장 사택건물은 화재로 인해 주요구조부가 소실되어 복구가 어려워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었다고 판단되어 결국 문화재 지정이 해제된 대표적인 사례가 돼버렸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으로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우리 대전에서만 2건의 근대문화재 수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건축물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많다. 대사동별당(김갑순의 별장. 한국전쟁 때 이시영부통령의 숙소로 사용), 중앙극장(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 우남도서관(이승만대통령 기념) 등 건립 당시의 시대성을 담고 있던 근대문화유산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화재로 폐허가 되어버린 선화동 구 사범부속학교 교장 사택

 

대사동 별당(근대문화유산조사보고서)

 

중앙극장(근대문화유산조사보고서)

 

우남도서관(근대문화유산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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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010월 무단철거가 진행되던 '뾰족집, 근대문화유산을 아끼는 많은 연구자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대전시에 의해 철거가 중단되었으며, 보존계획 수립을 위해 실측조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뾰족집이 위치한 지역은 아파트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보존을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수차례의 문화재위원 회의를 거쳐 인근의 적정한 대지가 결정되었고, 이전 복원계획이 수립되었다. 목조부재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체해가면서 위치를 표기하였고, 그 해체한 부재들을 가지고 다시 복원공사를 진행하였다.

현재는 전체적인 외부형태가 완성된 상태이다. 앞으로 외부마감과 내부공사가 완성되면 다시 대전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몇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점은, 이전 복원되는 부지가 원 대지에 비해 좁다보니 원래의 뾰족집에서 정원과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여유로움을 느낄 수가 없고, 건축물의 향()도 대지의 한계 상 변경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건축유산을 해체 및 이전 복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으며,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비슷한 상황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복원되고 있는 ‘'뾰족집'’ - 원경

 

복원되고 있는 ‘'뾰족집'’ - 근경

 

뾰족집은 문화재이다. 비록 우리의 역사에서 자랑스럽지 못한 아픈 시대에 지어졌으나, 근대시기에 만들어져 과거현재를 이어주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당 시대의 문화와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때문에 뾰족집은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보존하고 지켜야 할 문화유산인 것이다.

 

 

 

이희준   건축학 박사 / 대전대 강의교수

 

※ 글쓴이는 현재 '대전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중이며, ‘대전의 근대’를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모임인 ‘대전근대아카이브즈포럼’을 조직하여 감추어져 있는 대전의 근대건축물을 발굴하고 그 활용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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