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유람록 <가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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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선인들의 유람록 <가야산>

茶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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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산 상봉 일원

 

 

 

 

정구鄭逑,  「가야산 유람록遊伽倻山錄」

 

 

 

13일, 날이 맑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근사록近思錄》 서너 판坂과 「남악창수서南嶽唱酬序」를 읽고 있는데,

김 박사가 부르기에 학사대學士臺에 나가 잠시 만나보고는 뜰을 산책하였다. 사찰(해인사)은 신라 애장왕 때

창건하였는데, 여러 번 개축하여 규모가 웅장하고 수려하다. 그러느라 백성들의 공력이 꽤 많이 소모되었다.

편지를 덕원德遠에게 보내어 같이 유람하자고 청하니, 부친이 편찮으셔서 보름날 김지해金志海(김면金沔)를

맞아서 이 사찰에 모이자고 답해왔다.

 

일찍 서둘러 산에 올랐다. 산비탈이 가팔라서 말을 타고 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내원사에 이르렀다.

문밖에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석 앞에는 사람 입 크기만한 우물이 있는데, 승려는 이 못이 득검지得劍池의

고적이라고 한다. 비석 옆에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 탁영濁纓 김일손金馹孫

선생 등 여러분의 시가 새겨져 있으나, 마멸되어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화재를 겪은 내원사는 새로 지어

산뜻하고 뒤로 보이는 구름 낀 산은 아름답고, 골짜기는 깊숙하여 기운이 서리고 눈앞이 탁 트인 게

해인사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일찍이 한훤당 선생께서 이 절에서 공부하여 덕과 도를 닦으셨으니, 아마 이렇게 좋은 곳에서는 성취된 바가

많으리라 여겨진다. 우리는 하루도 이런 깊숙한 곳에서 글을 읽지 못하였으니 안타까운 뿐이다.

멀리 하늘 저 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있기에 물었더니 두류산이라고 한다.

 

밤에 뜰을 산책하였다. 달빛이 대낮처럼 환히 비추고 산은 고요한데 밤바람이 상쾌하고 개울물은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문득 나도 모르게 이 몸이 벌써 물외物外(세상 밖)에 있는 듯하였다.

 

 

14일, 날씨가 맑다. 새벽에 일어나 앞 당에 앉아, 《근사록近思錄》 서너 판을 보았다.

눈을 들자 구름 낀 산이 나의 온갖 생각을 텅 비게 하였다. 선현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완미하다가,

나도 모르게 전일專一(정신 집중)하게 되어 맛을 느끼게 되었다.

 

밥을 먹은 후 지팡이를 끌고 서너 리를 가니, 이른바 정각암淨覺庵이란 것이 있다. 처한 땅이 더욱 높아서,

내원사보다 한층 더 낫다고 느끼게 된다. 어제 곽양정郭養靜(곽준郭竣, 호는 존재存齋로 곽재우의 종숙)은

내원사에서 그윽하고 고요함을 사랑하여서 마침내 언젠가 거기서 책을 읽으리라고 맹서를 하였는데,

여기를 보게 되니 더욱 기뻐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이공숙李恭塾(이인제李仁悌)이 말하였다.

"양정(곽준)은 의당 여기에서도 맹서를 해야 하겠소이다."

 

조그마한 동자 하나가 작은 방에서 나와 절을 하는데, 그 모습은 촌스럽기는 하되 아주 거칠지는 않았고,

그 말은 어눌하기는 하되 고을의 문벌이며 가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자세히 따져보았더니, 곧 바로

나의 중표제中表弟(외종사촌 동생) 송씨 집안 아이다. 어머니를 여읜 데다가 배운 것도 없어서, 와서 석자釋子

(불제자, 승려)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책을 펼쳐서 시험 삼아 읽어 보게 했더니, 글 뜻을 알지 못하고, 구두

句讀와 향배向背(문장구조)도 엉터리이다. 이렇게 배운다면 설령 10년 동안 스승을 따른다 하더라도 끝내

글 아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 우리 한훤 선생(김굉필)의 후예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나니!

 

한탄하기를 오래하다가, 조금 쉬어서 고달픔을 멈추려고 했는데, 홀연 스님이

날도 저물고 앞길은 아직 멀다고 알린다. 마침내 화들짝 놀라서 지팡이를 떨쳐 걸음을 옮겼다.

우리들의  '날이 저물고 여정이 멂' 이 어찌 유독 이 산을 오르는 경우에만 그럴 뿐이겠는가?

 

1리쯤 가서 성불암에 이르렀다. 이백유李伯楡가 먼저 앞의 대臺에 오르고, 나는 바로 암자의 내부를 차지

하였다. 위치한 것은 정각암과 같다고 하겠으나, 역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스님이 없어서인가 보다.

티끌이 마루와 방을 묻어버릴 정도여서 잠시도 머물 수 없었다.

 

어제 심원사에서도 승려가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제 또 이를 보니,

어찌 농사의 흉년과 부역의 번거로움 때문이 아니랴?

산승도 지탱하지 못하여 그들로 하여금 곳곳마다 그 거처를 비우게 하는구나!

산승이 이와 같으니 촌백성들의 상황은 가히 알 만하다.

궁벽한 시골 곳곳마다 집은 있어도 거처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또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원명사에 이르렀다. 두루 에워싼 봉우리에 걸터앉아 단벽丹碧(단청)을 새로 칠해서 개창한 것은

또한 내원사가 미칠 바가 아니므로, 곽양정의 맹서가 의당 또한 없을 수가 없다.

사랑스러워 떠날 수가 없다. 다시 중소리中蘇利 · 총지叢持 등의 사찰이 있는데, 모두 벼랑 끝부분에 있다.

그 절들에는 승려들이 거처하지 않는다. 상소리사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

 

이른바 봉천대라는 것은 위치가 더욱 말고 높아서, 안목이 더욱 쾌활하다. 

만학천봉이 작은 언덕들처럼 빙 둘러 있고, 인간세계는 아득하여 마치 개미나 누에의 무리 같다.

곳곳의 촌락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듯하다. 옥을 다듬어 놓은 듯한 산과 소나무숲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삼삼하게 눈에 들어와, 산 번 몸을 굽혀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듯하다. 그 가운데서

폭건幅巾을 쓰고 느긋하게 지내면서 자기 스스로 본 바를 스스로 지키고 자기 스스로 얻은 바를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을 것을 상상해 보니, 나의 오늘의 대관大觀(큰 구경)이란 관점에서 그것을 비교한다면

그 기상이다시 또 어떠하겠는가?  아아, 내가 손으로 끌어당겨서 이렇게 함께 목도하지를 못하다니!

 

김지해의 경우에는 비록 근실하게 불러 맞이했으나, 그래도 믿음이 이에 미치지는 못하였고,

또 각각 분수가 있으니, 붕우의 힘으로 능히 억지로 해서 얻을 수 있는 바가 결코 아니다. 

정말로 그러니 《논어》에 '인仁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남을 말미암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오늘 제군들은 각자 노력하여 게으르지 말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미래의 어느 날 안계(시계)의 넓음은 다만 지금 봉천대에서의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곽양정이 말하기를 "이곳이 위치가 제일 높구나!" 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 상봉이 있으니, 어찌 소위 '여慮 글자' 의 지위가 아니겠는가?

다시 서로 더불어서 여기에서 그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법도를 정하였다. 

또 주자의 「운곡기雲谷記」를 읽으니 속마음이 더욱 활연해짐을 깨닫게 되니,

이 몸이 노봉蘆峰과 회암晦菴의 사이에 있는 것이나 아닌지 생각하였다.

백죽을 끓여 간단히 목고 마침내 떠났다.

 

이로부터서 산길이 더욱 험준해져서 걸음걸이가 더욱 어려워졌다.

기슭을 부여잡고 험한 곳을 올라가는데, 꿰진 물고기들처럼 열 지어 나아가자니,

앞사람은 뒷사람의 정수리에 있고, 뒷사람은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올려 보게 된다. 이와 같이 하기를

6, 7리나 하고서야 마침내 소위 제일봉이란 곳에 비로소 올랐다. 사방은 아무 끝이나 기슭이 없으며,

다만 하늘과 구름이 먼 산굴의 아지랑이 아득한 끝에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앞서 말한 원명사나 봉천대의 장관을 모두 일컬을 만도 못하다.

 

산의 안팎은 파란색 · 보라색 · 노란색 · 흰색이 흩어지고 얽혀서 무늬를 이루니,

각각 물건을 낸 하늘의 법칙을 따라서 생성의 이치를 붙였다.

누가 그것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였는지 전혀 알지 못하겠으나, 흐드러진 운취와 색상은 뒤섞이고 아득하여

서로 어우러져 있으니, 노니는 사람의 완상에 이바지 할 수 있을 정도요, 어진 자의 '반구저기反求藷己(돌이켜

스스로 반성함)' 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주염계周濂溪가 뜰의 잡풀을 베지 않고 천연 그대로 감상한 것이나

맹자가 우산牛山이 민둥산으로 된 것을 보고 한탄한 것이 비록 하나는 작은 경관을 두고 그런 것이고

하나는 큰 경관을 두고 그런 것이어서 형세를 달리하고, 하나는 만물의 흥성을 보고 그런 것이고

하나는 쇠미를 보고 그런 것이어서 자취를 달리하지만, 군자가 외물을 보고

감회를 붙이는 바는 애당초 같지 않음이 없다.

 

승려가 말하였다.

"어스름하게 일말一抹(한번 죽음)로 보이면서 아득하게 남쪽 하늘의 결함을 깁고 잇는 것이 지리산입니다.

정 선생(정여창)이 일찍이 깃들어 사시면서 덕을 기르고, 조 선생(조식)이 만년에 자취를 숨기시고 고상한 덕을

기르셨지요. 남방의 기운을 지긋이 눌러주는 진산을 이루고, 명산 가운데 으뜸이 된데다가 다시 두 현인

(일두一蠹와 남명南冥)에게 이름을 의탁하여, 장차 천지와 더불어 영구히 전함을 함께할 것이니,

역시 이 산의 큰 행운이라고 일컫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스므레하게 마치 사람이 있는 듯하면서 보이지 않되 그 북쪽 모퉁이에서 쪽진 머리를 미미하게 들어낸 것은

금오산金烏山(고려 말 길재吉再의 은신처)입니다. 고려 500년 강상의 의탁은 '단지 이 산의 가운데에 있다' 라고

이르지 못하겠습니까? 바로 수양산(백이 · 숙제의 은신처)과 더불어 멀리 만세토록 함께 서로 높을 것이니,

오늘 그것을 보는 것은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비슬산琵瑟山 아래에 쌍계雙溪(쌍계서원, 훗날 도동서원道東書院으로 바뀜. 조선 5현의 첫머리에 위치하는

김굉필의 도학을 계승하기 위해 퇴계와 한강의 주도로 유림의 협조를 받아 세워졌다. 1607년 선조 40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 됨)가 있고, 공산公山 아래에 임고臨皐(임고서원, 정포은을 추모키 위해 명종 8년 1553에

창건되고, 1555년 '임고' 라 사액되었음)가 있다. 옛 현인이 흘러내려 주는 아름다움을 후대인들이 삼가 법도로

지티니, 무릇 처음에 어찌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해서였겠는가? 다만 '병이秉彛(천성의 떳떳함)' 로 말미암아서

높은 산 같은 위대한 분을 우러르려는 것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산에 올라서 이렇게

바라보는 자도 그분들을 사모하여 앞사람들을 위연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갈천葛川의 주인(임훈林薰)은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으며 순수하고 행실이 있다.

나는 남몰래 항상 한 번도 방문을 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그리고 운문雲門 선생의 '헌앙軒昻(당당함)하고

불기不羈(매임이 없음)한 절개' 는 내 스스로 이산해李山海에게서 들을 수 있어서 지금까지도 감히 잊지 못한다.

백운은 화왕火王과 대니戴泥에서 유연하므로, 당연히 이백유 · 이공속 · 곽정양이 항상 시선을 그곳에

두었을 것이지만, 나는 몰래 송추松楸(선영이 있는 고향)의 감회 때문에 서글퍼하다가, 곧 오열하여서

능히 눈을 들 수가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각각 한 잔씩 따라서 권하였으나

나는 방휘旁諱(방친傍親의 상중이었던 듯함 - 역자 주)가 있어서 술잔을 들지 못하였다.

 

마음대로 구경한 끝에 각자 피로가 심해서 바위를 배개 삼아 잠깐 잠이 들었다.

잠을 다 자고 나서, 다시 서로 더불어 배회하면서 멀리 조망하였다. 또한 《연보年譜》를 펼쳐서, 주부자(주희)의

「무이산기武夷山記」와 「남악창수서」 및 주자 · 장식 두 선생의 시를 읽으니, 혹 오늘의 구경과 핍진한 것이

많이 있었다. 이를테면 '다만 마음으로써 멂을 기약할 뿐, 시야의 넓음을 탐한 것이 아니다' 라는 구절은

어찌 단지 오늘 높은 곳에 올라 조망하는 일의 모범이 될 뿐이겠는가?

그렇지 않고 역시 산에 있어 노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불가불 알아야만 할 것이다.

 

평소 이런 시문을 읽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오늘 가야산 제일봉 절정 위에서 한 번 외울 수 있으니

그렇게 함으로써 운취가 더욱 기이해지고 맛이 더욱 깊어졌다.

스님들이 무릎을 꿇고서 청하여 말하였다.

"오늘 고종高蹤(고상한 행동거지의 인사들)을 모시고 와서 이 산을 오를 수 있게 되었사오니,

원컨대 한마디 말씀으로써 축軸 가운데 보물로 삼기를 청하옵니다."

우리들은 서로 보면서 웃고, 시에 능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

나는 옛날에 내형內兄인 여약汝約 이인박李仁博 · 경범景范 유중엄 · 태수台叟 김담수金聃壽 · 이경 · 이정우를

따라서 함께 이 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분들은 우물가에 둘러서 앉아서는 어지러이 잔질하기를 무수히 하고,

시를 읊고 수창하여 시편을 계속 쏟아내어 술에 취한 붓이 마치 흐르는 듯이 하였다. 나는 유독 시에 능하지 못해

종일토록 한 구절도 얻지 못해서 아주 여러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파할 즈음에 임하여 내가 한 편의 시를

지었는데, 말미에 '천 년 처사의 마음을 묵계하노라' 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해학스런 말로

화답하여 서로 함께 깔깔 웃고 파하였다. 지금 그 일이 벌써 18년이 되었다. 내형과 경범은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우물도 폐하여 말라버렸으니,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슬퍼하고

감개무량해 하는 정회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저녁 무렵에 소리암에 내려오는데 험한 돌길을 어렵사리 지나느라 피로하고 초췌함이 또한 심하였으나,

올라갈 때의 어려움에 비교하면 비단 열에 아홉은 감소한 이상의 느낌이니, 참으로 남명 조식께서 가르치신 바

'선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듯이 어렵고 악을 따르기는 무너져내리듯 쉽다' 고 하신 말씀이 실로 오늘의 '착제着題'이다.

처음에는 상봉을 거쳐서 백운대를 지나 해인사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고하였다.

"우리들이 여기 온 것이 어찌 다만 산을 노니는 사람처럼 걸음을 마음대로 하여 즐기고 완상하여, 그렇게 함으로써

경무의 부리는 바가 되려고 한 것이겠는가? 오늘 산을 오름에 얻은 바가 또한 이미 넉넉하다. 어찌 또한 조용히

체득하고 적용하여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과 기운을 기르고 난 후에 천천히 산을 즐기고 감상하는일을 하지 않으랴?"

모두 말하기를 "그러하다" 라고 하였다.

 

이날 밤 봉천대奉天臺에 오르자, 달빛은 아직 밝지 않고, 구름 낀 산은 흐릿하며, 바람의 힘이 매섭고 드세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산간의 집들은 으레 나무판으로 외벽을 꾸며 사이를  뜨게 하고 안에다가 다시 흙담을

겹으로 만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구름과 안개가 어지러이 들어오고 얼음과 눈이 부딪혀 오고 뒤덮어서

견뎌낼 수가 없다. 삼경에 홀연 종소리를 들었다. 산속 한밤중에 맑은 소리를 얻으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스스로 촉발한다.

 

 

 

 

정선 <해인사> 21.8×67.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인은 곧 잔잔한 물에 산천경계가 일그러지지 않고 나타난다는 말로 주관의 분별지가 끊긴 곳에

자성심自性心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선인들에게 산속 청량한 가람은 그런 체험을 하기 좋은 곳이었으리라.

 

 

 

 

 

 

 

 

가야산 伽倻山

 

 

경상남도 합천군과 경상북도 성주군 사이에 있는 1,432.6미터의 산.

주봉인 상왕봉象王峰 · 두리봉 · 남산南山 · 단지봉丹芝峰 · 매화산梅花山 등 연봉과 능선이 둘러 있고,

복판에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다.

 

 

 

 

 

 

 

자신의 인격적 완성을 위하여 고투하는 선비들의 산놀이가 어떤 것인지를 이 글은 여실히 보여준다.

봉천대奉天臺에 이르러 동행한 한 사람이 여기가 최상의 경지라고 말하였으나

봉우리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더욱 높은 봉우리가 있었다.

그것을 알고 저자는 이것이 바로 여慮의 경지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지지이후유정知止而后有定이니 정이후능정定而后能靜하고 정이후능안靜而后能安하고

안이후능려安而后能慮하고 려이후능독慮而后能得이니라" 하고 한 구절의 뜻을 끌어 온 것이다.

헌대어로 풀이하면 "그칠 데를 안 디에 정定함이 있으니, 정定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 라는 말이다. 생각하는 경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얻음

의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얻음이란, 지선至善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 그곳에 그치는 것을 말한다.

지선의 경지를 터득하여 완전히 지선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서 생각함慮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선비들의 산놀이는 해학을 잃지 않았다.

곽준郭峻(1551~15970은 감탄하기를 잘하는 분이었던 듯하다. 내원사內院寺에서 그 그윽하고 교요함을 사랑하여서

언젠가 거기서 책을 일그리라고 맹서를 하였는데, 정각암淨覺菴을 보고는 더욱 기뻐하고 좋아하자 동행하였던

이인제李仁梯란 분이 "양정(곽준)은 의당 여기에서도 맹서를 해야 하겠소이다" 라고 꼬집는다.

그리고 원명사圓明寺에 이르러 보니 봉우리를 걸터앉아 두루 비호되고 단벽(단청)을 새로 칠해 갓 개창한 것은

내원사가 미칠 바가 아니므로 저자는 "곽양정의 맹서가 의당 또한 없을 수가 없다" 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런 말을 실제로 하며 일행이 모두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산에 올라 옛 현인들이 거처하던 곳을 하나하나 바라보거나 동행한 승려의 말을 들으며서

그분들의 자취를 환기하여 자신의 덕성을 함양하여야 하겠다고 결심하는 부분은 매우 숭고한 정신경계를 드러내었다.

그러면서도 18년 전 이 산에 형뻘 되는 분들과 올라 주연을 베풀고 자신은 시를 짓지 못하여 여러 사람들의 웃음

거리가 되던 일을 회상하는 대목은 또 너무나 인간적이다. 추억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하지 않은가?

또한 이 글은 오늘날 생태중시의 관점에서 크게 주목할 부분이 있다.

곧 다음 부분을 되읽어볼 필요가 있다.

 

 

주렴계(주돈이)가 뜰의 잡풀을 베지 않고 천연 그대로 감상한 것이나 맹자가 우산牛山이 민둥산으로 된 것을

보고 한탄한 것이 비록 하나는 작은 경관을 두고 그런 것이고 하나는 큰 경관을 두고 그런 것이어서

형세를 달리하고, 하나는 만물의 흥성을 보고 그런 것이고 하나는 만물의 쇠미를 보고 그런 것이어서

자취를 달리하지만, 군자가 외물을 보고 감회를 붙이는 바는 애당초 같지 않음이 없다.

 

 

주체를 완성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외물의 변화에 느껴 자신의 감회를 붙일 줄 아는 사람이다.

감회를 붙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위의 글을 보자.

 

 

산의 안팎은 파란색 · 보라색 · 노란색 · 흰색이 흩어지고 얽혀서 무늬를 이루니,

각각 물건을 낸 하늘의 법칙을 따라서 생성의 이치를 붙였다.

누가 그것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였는지 전혀 알지 못하겠으나, 흐드러진 운취와 색상은 뒤섞이고

아득하여 서로 어우러져 있으니, 노니는 사람의 완상에 이바지 할 수 있을 정도요,

어진 자의 '반구저기反求藷己(돌이켜스스로 반성함)' 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연의 생성변화를 그 자체로서 즐길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끝에 자기반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활물로서 온전히 보존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글은 조선 중기의 학자 정구鄭逑(1543~1620)가 가야산을 유람하고 쓴 글의 일부이다.

1579년(선조 12, 기묘) 늦가을, 이인개 · 이인제 형제 · 곽준과 함께 시냇가 글방에서 글을 읽고 있다가,

고을의 명산인 가야산을 등반하기로 하여 9월 10일, 쌀 한 말, 술 한 통, 반찬 한 합, 과일 한 바구니와 책 몇 권을

꾸려 나섰다. 12일, 홍류동과 홍하문을 거쳐 학사대에 도착하였고, 전부터 아는 신열이라는 스님이 길 안내를

하였다. 13일 내원사의 득검지와 여러 비석을 감상하였다. 14일, 정각암 · 성불암 · 원명사 · 상소리사 · 봉천대를

거쳐 상봉에 올랐다. 15일에는 봉천대를 다시 찾고, 원명암에 묵었다. 16일과 17일에는 해인사에 머물고,

18일에는 제월당을 돌아보고  퇴락한 심원사를 찾았으며 도은사에 이르렀다.

19일 백운대에 올랐다. 21일에는 사인암을 찾았다.

사인암은 사신암舍身巖이라고도 부른다.

 

정구 일행은 산행에서 주자 곧 주희가 장식 · 임용중과 함께 남악(형악)을 유람하면서 주고받은

시와 서발문을 합하여 이루어진 《남악창수집》을 자주 참조하였다.

(중략)

 

정구의 호는 한강寒岡이다. 관향은 청주인에, 경상도 성주 사월리沙月里에서 태어났다.

조부 응상應祥은 김굉필의 문인으로 그의 사위가 되어 그의 집안은 영남 사림에 속하게 되었다.

정구는 13세 때 조식曺植의 수제자로서 성주 향교의 교수로 있던 오건五健에게 <주역>을 배웠다.

정구는 조식의 학문을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조식과 이황의 영향을 받으면서 제자를 길러내고 스스로

학문을 이룩하였다.

(하략)

 

 

 

 

인용: 심경호 著 <산문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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