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노 부자 Nicola Pisano & Giovanni Pis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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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사조 이야기/르네상스 미술

피사노 부자 Nicola Pisano & Giovanni Pisano

Doldosa 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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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노 Nicola Pisano (아버지 피사노)

 

 

출생 1220경
사망 1278/84 

이탈리아의 조각가.


그의 아들 조반니와 그들 작업실에 고용된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13세기 후반,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조각 양식을 창안했다.

그의 태생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260년(중세 피사의 역법[曆法]으로 고치면 1259년이 될 수도 있음) 피사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 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지만, 1266년 기록에서는 그를 '풀리아(이탈리아 남동부에 있는 지방)에서 온 장인(匠人) 니콜라'라고 2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피사노가 풀리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가 미술을 배운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가 조각을 배운 것은 아마 중세의 관행에 따라 기존의 작업실에서 도제살이를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풀리아에서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아마 호헨슈타우펜 왕가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가 그의 거대한 새 건물을 꾸미기 위해 고용한 장인들 중 한 사람에게 배웠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프리드리히가 고용한 미술가들은 신성 로마 황제로서의 그의 지위를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고대 로마의 조각 양식을 모방했다.

그와 달리 피사노가 실제로 풀리아를 떠난 후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토스카나나 롬바르디아 지방의 작업실에서 도제살이를 했을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이 두 지방의 양식이 뚜렷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피사 대성당의 설교단(1259/60) 이전의 작품은 그의 것으로 확인된 것이 없지만, 그 설교단의 조상들에 내재해 있는 강한 고전주의 정신은 단순한 제작 경험이나 그당시 고대 로마 조각을 보고 느낀 황홀한 심경 이상의 것을 나타내고 있다. 피사 설교단의 조상들에 나타나 있는 매우 독특한 양식은 카푸아의 아피아로(路)에 있는 프리드리히 개선문에 새겨져 있던 주피터와 황제의 고문들을 나타내고 있는 조각 파편들(현재 카푸아의 캄파노 주립박물관에 있음)과 거의 비슷하며, 피사노가 프리드리히의 미술작업장에서 조각을 배웠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준다.

피사는 신성 로마 제국과 가까운 동맹관계를 유지했는데, 피사노가 그 도시로 이주한 것과 그가 새긴 설교단에 갑자기 뚜렷한 고전풍의 양식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이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피사 설교단은 서양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전의 모든 양식들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양식이 명확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프랑스풍의 고딕 조각과 건축에서 비롯된 독특한 양식과 로마 양식의 부조,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프레스코·모자이크 장식, 전형적인 토스카나·롬바르디아 양식 등 폭넓은 양식들에서 끌어낸 새로운 표현의 예술을 열어놓았다.

그는 이렇게 폭넓은 미술 양식들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냈으며, 그것들을 훌륭하게 하나로 통합해 서술적 조각에 새로운 웅장함과 활력을 주고 1260년 이후의 토스카나 미술에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었다(고딕 예술).

피사 설교단을 만드는 동안 피사노의 양식은 극적으로 변천했다.

부조 패널인 〈예수의 봉헌 The Presentation of Christ in the Temple〉에서 뚜렷이 볼 수 있는 넉넉한 구성과 율동적이고 부드러운 움직임 대신에 부조의 전체 면적에 비해 조상들이 더 작아지고 서로 겹쳐지도록 공간을 뒤섞어놓는 방식이 나타났다. 조상들은 더욱 활기에 차 있고 극적인 가능성을 충분히 강조하기 위해 비틀어져 있다. 그러나 이 후기 양식은 초기 양식의 부정이라기보다는 그가 처음부터 가졌던 인간적·정서적인 주제에 대한 관심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었다.

특히 피사 설교단 가운데 마지막으로 제작된 부조 2점에 잘 나타나 있는 양식적 변화는 그의 아들 조반니 피사노를 비롯해 그의 작업실에서 일한 다른 조각가들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다. 조반니 피사노, 프라 굴리엘모, 아르놀포 디 캄비오 등 니콜라 피사노의 작업실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새로 의뢰받은 시에나 대성당의 설교단(1265~68)과 페루자의 광장에 있는 마조레 분수대(1278)를 공동 제작했다. 시에나 설교단은 피사 설교단과 거의 비슷한 구성을 갖고 있으며 부조에 나타난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풍부한 감정 표현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피사노가 그 설교단을 설계했다는 증거와 고대 로마 양식이나 고딕 양식을 사용한 여러 보조 조각가들의 개인적인 성향이 명백히 나타나 있다. 피사노가 피사 설교단에서 그토록 성공적으로 통합한 두 개별적인 전통이 시에나 설교단에서는 다시 각각 독립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전 양식과 고딕 양식 사이의 이러한 불안정한 관계는 페루자 분수대에서 점점 더 뚜렷해지는데, 거기에는 25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분수대에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관한 이야기와 이솝의 우화, 인근에 있는 지방을 고전적으로 상징화한 것, 학문 및 달마다 할 일들, 동시대의 역사적인 인물들과 〈구약성서〉의 등장인물들 및 문장(紋章)동물들이 복합적으로 새겨져 있다.

페루자에서의 이러한 양식적 변화는 그 이전의 작품에서와 같이 복잡한 서술적 군상 대신 각각의 조상들을 개별적으로 다룬 결과이기도 하다.

출처;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4p1083a

 

 


피사노  Giovanni Pisano (아들 피사노) 

 

 

출생 1250경, 피사
사망 1314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의미의 고딕 조각가로 평가된다.

 

아버지인 니콜라 피사노 의 고전주의 영향 아래 조각을 시작했으며,

 아버지가 죽은 뒤로는 이 고전 양식을 당시 북부의 고딕 양식과 재통합하여 꾸준히 이어나갔다.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일하면서 얻은 조각 개념을 철저히 자기화시켰기 때문에 초기 작품은 아버지의 작품과 거의 비슷하다. 니콜라 피사노가 시에나 대성당의 설교단을 의뢰받았을 때(1265) 처음으로 아버지의 조수로서 일했다고 전해진다. 그당시 그가 독립된 장인(匠人)이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아직 10대의 소년이었음에 틀림없다.

어쨌든 1285년 9월경 그는 피사의 시민권을 거부하고 시에나에 머물렀다. 이무렵 그는 시에나 대성당의 정면 설계와 조각 장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나타난 화려하고도 질서정연한 양식은 이후 중부 이탈리아에 생겨난 고딕 건축 정면 장식의 원형이 되었다. 조각 장식이 정면 전체를 뒤덮고 있는 프랑스식 설계와는 달리 시에나 대성당 정면의 도안은 훨씬 더 건축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낮은 층은 작은 기둥과 차분한 잎무늬로만 꾸며져 있으며, 잎무늬는 작은 기둥의 방향을 따라 수직으로 새겨져 있다.

 

문 위의 상(像)이 새겨진 상인방(上引枋)을 제외하면, 조상은 실물보다 약간 큰 예언자상들이 있는 입구 위의 아치선에서 시작해 정면의 나머지 부분에 두루 새겨져 있다. 조상은 분리된 벽감(壁龕)에 각각 들어 있지만, 앞으로 구부리고 있는 불안한 자세로 말미암아 정면의 넓은 공간을 가로질러 서로 대면하고 있으며, 그와는 달리 정면구조를 결정하는 명확한 건축선(建築線)들을 완화시키고 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시에나 대성당 정면의 조상과 프랑스(특히 옥세르 대성당)의 잎무늬 장식 및 인물상 부조의 도안이 서로 비슷함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1268~78년에 대한 참고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 기간에는 프랑스를 두루 여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에나 대성당의 정면에 이어 1301년에 완성한 피스토이아의 설교단은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이 설교단에 새겨진 5편의 서술적 부조는 전체적인 건축 구조와 마찬가지로 그의 아버지인 니콜라 피사노가 40년 전에 피사의 설교단에 새긴 조상들의 주제와 거의 비슷하지만, 그 양식은 피사 설교단에 내재해 있는 표현 내용을 새로운 수준의 강도로 나타내고 있다.

〈수태고지 Annunciation〉·〈예수 탄생 Nativity〉·〈예수탄생 소식을 들은 양치기들 Annunciation to the Shepherds〉 등에서는 피스토이아 설교단의 모든 부조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격앙된 감정이 패널 전체에 고동치고 있다. 인물·동물·드레이퍼리·풍경 등이 불가능한 상태로 비틀려 있고, 울퉁불퉁한 표면과 깊이 새겨진 부조 위로 빛이 흩어지고 있으며, 각각의 인물은 그가 관여하고 있는 개개의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처음의 피사 설교단의 부조에서 피스토이아 설교단의 부조로 양식이 바뀌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예전의 좀더 크고 무거운 구조의 형태들과는 대조적으로 표면을 깊게 파서 전체적으로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피사노는 피스토이아 설교단에서와 같은 조상들을 다시는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아버지의 초기 작품에 내재해 있던 보다 장중하고 고전적인 정신으로 되돌아갔다. 그 이유를 상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가장 그럴 듯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조반니가 피스토이아 설교단을 완성할 무렵 이미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조토의 거대하고 장엄한 양식을 경험한 것을 들 수 있다.

실제로 피사노는 조토가 파도바에서 감동적인 프레스코를 그린 것과 거의 같은 시기(1305경)에 그곳의 아레나 예배당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Madonna and Child〉라는 대리석상을 새겨놓았다. 그밖에 14세기의 전환기에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시작한 준제국(準帝國) 정치운동에도 자극을 받아 더욱 공공연하게 고전주의로 되돌아갔을 것으로 보인다.

1302~10년 다시 피사로 돌아와 대성당의 설교단을 만들었다.

이 설교단은 그뒤 해체되었다가 현재 어느 정도 복원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피스토이아 설교단의 부조 양식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표현을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마지막 작품은 1311년 제노바에서 룩셈부르크의 마르가레테를 위해 만든 묘비(현재 '팔라초 비앙코'에 파편들이 있음)였다. 1314년 시에나에 있었다는 것을 끝으로 그에 대한 기록은 끝나는데, 아마 그후 곧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에나에서 만든 작품에 뚜렷이 나타나듯이 그는 이탈리아의 유일한 고딕 조각가였으며 이탈리아 중부의 모든 예술사조에 깔려 있는 고대 로마의 유산을 항상 의식했다.

 

 

 

출처;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4p1086a

 

 

고대의 발견 - 니콜라 피사노

 

 

시에나 대성당의 설교단 (1266/68년경)

대리석, 350 x 170 cm

 

피사 (Pisa) 출신의 니콜라 피사노 (Nicola Pisano, 1215?-1278?)중세 이탈리아 조각에 혁신을 가져온 인물로, 그의 조각 작품은 훗날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태동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가 1266/68년경에 제작한 시에나 (Siena) 대성당의 대리석 설교단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팔각형의 상단부 벽면에는 각각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하는 부조들이 설치되어 있다. 피사노의 조각은 비잔틴 미술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는 고대를 발견하여 그 조각적 언어를 재해석하였고, 이로써 중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니콜라 피사노의 예술혼은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 전수되었고, 이른바 "피사노가"는 서양 미술사에서 조각의 발전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팔각형의 설교단을 고대의 기둥들이 받치고 있다. 동물 형상을한 조각상 등위에 기둥이 놓여있다. 설교단 상단 벽면 부분에는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등 예수의 생애가 묘사되어 있다.




설교단 상단부 모서리에 독수리 조각이 보인다. 성서를 펼쳐 놓는 곳으로, 예수의 제자 요한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조각된 이곳에서 요한 복음이 읽혀졌다.








인물들의 신체 그리고 표정 및 동세가 피사노 이전의 중세 조각과는 전혀 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피사노가 그의 조각적 언어를 발견한 곳은 고대 미술에서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장면. 우측 상단부에 아기 바구니에 등장하는 예수가 화면 전경에 다시 한번 나타난다. 이렇게 중세 미술에서는 한 장면에 여러 이야기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아기예수를 경배하는 동방박사.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 아기 예수를 성전에 바치는 마리아와 요셉. 화면 우측에는 이집트로의 피신이 새겨져 있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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