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작, 이성일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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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작, 이성일 낭송

잠용(潛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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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그리운 바다 城山浦"

작시/ 李生珍

낭송/ 이성일

영상 제작/ Youngbum Kim

유튜브 엽로드 2011.5.3. / 조회수 71,989회 (2021.2.23 현재)

 

그리운 바다 성산포 1


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도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필거야
태양은 수만 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귀를 찢기웠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감으면 보일꺼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꺼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꺼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꺼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2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날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 버린다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서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을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내버리고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듯
넓은 바다도 물 속으로 물 속으로 밤을 피해간다

 

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
바다 한가운데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한 모금의 물을 건질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 가장 죽기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치 않아서 서로 떨어질 수 없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사슴이여 살아있는 사슴이여
지금 사슴으로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꽃이여 동백 꽃이여
지금 꽃으로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슴이 산을 떠나면 무섭고
꽃이 나무를 떠나면 서글픈데
물이여 너 물을 떠나면 또 무엇을 하느냐
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매 맞는 것
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는 것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하지 않지만...

 

그리운 바다 성산포 3


어망에 끼였던 바다는 빠져 나오고
수문에 갇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갈매기가 물어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하루살이 하루 산 몫의 바다도 빠져 나와
한자리에 모인 살결이 희다
이제 다시 돌아갈 곳이 없는 자리
그대로 천년 만년 길어서 싫다

 

꽃이 사람 된다면
바다는 서슴지 않고 물을 버리겠지
물고기가 숲에 살고 산토끼가 물에 살고 싶다면
가죽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 들겠지
그런데 태어난 대로 태어난 자리에서
산신께 빌다가 세월에 가고
수신께 빌다가 세월에 간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는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 보다도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그리운 바다 성산포4 - 낭송 김미숙)

 

그리운 바다 성산포 4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나타난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그리운 바다 성산포5 - 낭송 윤설희)

 

그리운 바다 성산포 5


일어설 듯 일어설 듯 쓰러지는 너의 패배 발목이 시긴 하지만
평면을 깨뜨리지 않는 승리 그래서 네 속은 하늘이 들어앉아도 차지 않는다
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아니면 일제히 패배하라 그러면 잔잔하리라
그 넓은 아우성으로 눈물을 닦는 기쁨 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성산포에서는 살림을 바다가 맡아서 한다 교육도 종교도 판단도 이해도
성산포에서는 바다의 횡포를 막는 일 그것으로 독이 닳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오늘 아침 하늘은 기지갤 펴고 바다는 거울을 닦는다
오늘 낮 하늘은 낮잠을 자고 바다는 손뼉을 친다
오늘 저녁 하늘은 불을 켜고 바다는 이불을 편다


바다가 산허리에 몸을 굽힌다 산은 푸른 치마를 걷어올리며 발을 뻗는다
일체에 따듯한 햇살 사람들이 없어서 산은 산끼리 물은 물끼리
욕정에 젖어서 서로 몸을 부빈다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칼이다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양이다


그릇 밖에서 출렁이는 서글픈 아우성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갈증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짐승이 짐승보다 산이 산보다 바다가
더 높은 데서 더 깊은 데서 더 여유 있게 산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하늘이여, 바다 앞에서 너를 쳐다보지 않는 것을 용서하라

하늘이여, 바다는 살았다고 하고 너는 죽었다고 하는 것을 용서하라
너의 패배한 얼굴은 바다 속에서 더 아름답게 건져내는 것을 용서하라
그 오만한 바다가 널 뜯어먹지 않고 그대로 살려준 것을 보면
너도 바다의 승리를 기뻐하리라...


하늘이여, 내가 너를 바다 속에서 보는 것을 용서하라.

 

(사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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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李生珍) : 1929년 충남 서산 출생. 국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교육대학원 언어학과에서 수학했다. 《분수》 동인으로 활동했다. 서울 보성중학교 교사를 했다. 평생 바다와 섬에 관한 시를 썼다. 1969년 현대문학에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시 <제단>을 발표, 등단했다. 감각적이며 시각적인 이미지를 토대로 하여 현대 생활을 밝고 맑게 그리고 있다. 그의 시는 직접 발로 뛰며 시적 대상을 찾아다닌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특히 섬에 관한 시는 걸어다닐 힘이 있는 한 계속된다고 할 정도로 강한 집착을 보인다.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 문학상을,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시인상을, 2001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제주도 명예 도민증을 받았다. [출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1978 작성자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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