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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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관한 글

진주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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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설이 다가오면

설빔이며 맛있는 먹거리

그리고 인사를 드리며 받는 세뱃돈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청년시절까지는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 드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동네 어르신들께도 세배를 드렸다.

마을 단위로 함께모여 단배(旦拜)를 올기기도 하였다.

절에서는

부처님들과 보살님들

그리고 나한님들과 신중님들께 차례로 세배(統謁) 드리고

어른스님들께 차례로 세배 올렸다.

일제 때

일본의 풍습에 따라 양력설을 쇠라고 했다.

앞에서는 양력으로 쇠고 몰래 음력 설을 쇠면서

이중과세(二重過歲)의 풍습이 생겨났다.

일제의 영향을 받은 이 승만과 박정희도 마찬가지...

전두환은 독재의 흔적을 지우려

국풍을 일으킨다며

민속의날로 이름을 바꿔 음력설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기독교인인 김 영삼정부에 와서

음력설을 정식으로 설공휴일로 삼아서 정착시켰다.

그것은 민주와 함께하는 3민(민족,민중,민주)의 영향이었다.

문제는 김 대중정부.

가장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김 대중씨가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기자회견을 하면서

회견말미에 이중과세의 어려움이 있으니 국민들의 뜻을 모아

하나로 결정했으면 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력이 좋다고..."

그래서 98년 2월4일 공청회가 열렸다.

서울대 손 봉호교수가 좌장이 되어 열린 세미나에

"신정은 쉬고 설은 쇠어야 한다"는 등의 글로 음력설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해 온 나에게

기자들이 연락을 해서 꼭 가봐야 한다고 하였다.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고 왜 내가 가야하나?"하자

"그동안 이 문제에 관해서는 스님밖에 관심을 가진 이가 없으니

스님이 가셔야 합니다."하고 간곡히 말했다.

그래서 청중으로 참여했다.

그날은 입춘이어서 제주도에 있는 정방사에서

오전에 법문을 하고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비행기로 날아와서

공청회장에 참여했다.

손 봉호교수 등 양력 옹호론자들이 주로 발표를 하였다.

대강의 주제는

"음력설의 영어 표기가 chiness new year이므로 우리 것도 아니고

논어에 보니 주나라의 설은 한족과 달리 음력 1월1일이라 했으니

중국도 음력이 아니며..."등이었다.

단상에서의 발표가 끝나고 객석에서도 한마디 하라고 하여

손을 들었더니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일어나서 말했다.

"위원장님!영어에 표기된것을 따르자고 하시니

영문지도에 Japan sea라고 되어있으면 우리도 일본해라고 표기해야합니까?

중국 사람들이 주나라의 설이 이상하게도 음력1월1일이라고 되어있으며

수서 등에는 신라의 설이 주나라의 그것과 같이 음력1월1일이라 하였으니

음력 설이야말로 우리 것 아니겠습니까?

일제와 독재시대에 총칼을 가지고도 바꾸지 못한 것을

더구나 이렇게 경제위기까지 온 상황에

국민들을 다시 분열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음력설을 그대로 지켜져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설을 지키는데 조그마한 기여를 한 셈이다.

 

 글: 법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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