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 박물관에서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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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로댕 박물관에서의 소회

blondje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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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를 관광하면서 특히 로댕 박물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비교적 많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어

대도시의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그의 코너가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로댕의 작품만 모아 놓은 로댕 박물관은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로댕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의 로댕 박물관 다음으로 가장 많은 로댕의 작품을

소장한 박물관입니다. 쥘르 마스트바움이라는 사업가가 로댕의 작품을 수집하여 필라델피아 시민에게 기증을 해서

1929년 박물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공되기 3년 전에 세상을 떠나 이 박물관을 보진 못했습니다.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오귀스트 로댕은 미켈란젤로, 베르니니와 더불어 세계 3대 건축가로 일컬어집니다. 10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전문적인 수업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1864년 파리의 유명한

공방의 수석 조수로 일하면서 재봉사로 일하던 로즈 뵈레를 만나 동거를 하게 됩니다. 187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1875년 이태리 여행을 하면서 미켈란젤로와 여러 조각가들의 작품에 감명을 받습니다. 파리로 돌아와

1876년 '청동시대'를 제작하고 그 작품을 국가가 사들이면서 점점 유명해지게 됩니다. 이태리 르네상스나 중세 프랑스 

조각으로부터 많은 자극과 감화를 받았으며, 18세기 이래 오랫동안 건축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던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 예술의 자율성을 부여하였습니다. 로댕의 작품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생각하는

사람'의 이성적인 느낌과 '키스'의 관능적인 모습은 인간이 가진 정열과 이성을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해줍니다. 

1917년 11월 17일 로댕은 로즈 뵈레 사망 몇 달 후 사망합니다. 그는 죽어서는 로즈 뵈레와 함께 그의 역작인 뮈동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 밑에 묻히게 됩니다. 사망 후 그의 주거 및 전 재산은 만년의 작업장이었던 파리의 호텔 비롱에 

그의 미술관을 개설한다는 조건으로 국가에 기증되었습니다.

 

로댕이 예술적으로는 위대하다 해도 저는 그의 사생활, 특히 두 여인 때문에 그를 개인적으로 예술만 떼어 위대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상대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한다지만 로댕의 경우는 좀 심한 것

같습니다. 로즈 뵈레는 평생을 로댕 옆에서 온갖 시중을 들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자기 아들로 인정 안 한다는 로댕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녀의 성을 붙여주고 로댕이 결혼을 미루다 53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불과 2주 후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한 여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 모델이었으며 폭풍 같은 열정과 낭만적인 영혼의 소유자였던

프랑스의 여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입니다. 까미유는 그룹 인물상과 인체의 관능성에 특히 관심이 있었으며, 로댕의

유명한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들' 제작에도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로댕은 20년 동안 부부처럼 지내온 로즈 뵈레가

있었으며 까미유와 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 많은 여자들 사이를 오가며 여성 편력 

또한 심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까미유는 그와 결별하였습니다. 이후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끊고 홀로

조각가로서 치열함과 열정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하지만 까미유는 점점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고

사람들과 떨어져 고립되어 갔습니다. 1909년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1913년 그녀의 절대적인 후원자인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 충격이 더해졌습니다. 그 해 3월 8일 까미유의 어머니와 형제들의 동의 하에 그녀는 빌에브라르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해 9월 7일 프랑스 남부 정신병자 수용소에 수용

되었고 까미유의 병세는 점차 악화되어 수용소에 수용된 지 30년만인 1943년 10월 19일 뇌졸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녀는 사망 후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무덤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물론 본인들의 선택이었지만 로즈 뵈레나 장래가 촉망되던 여류 조각가 까미유는 로댕과 인연이

닿지 않았으면 훨씬 평탄한 여자의 길, 예술가로서 빛나는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까움에 위대한 예술가 로댕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수록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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