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 뒤에도 ‘국정원 그림자’

댓글수0 다음블로그 이동

명진 스님 뒤에도 ‘국정원 그림자’

세발까마
댓글수0

명진 스님 뒤에도 ‘국정원 그림자’  


등록 :2017-11-06 22:16 gksrufp


봉은사 주지 맡으며 정부에 쓴소리
“비위·좌파경력 인터넷 전파 확산”
청 지시 받고 사찰·비판여론 조성


명진 스님은 2010년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주지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당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6일 발표한 ‘명진 스님 불법사찰 사건’ 조사 결과, 

당시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요청으로 국정원이 명진 스님을 광범하게 사찰하고, 심리전단의 댓글 활동 등을 통해 비판 여론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개혁위는 이날 “청와대는 2010년 1월부터 민정수석·홍보수석·기획관리비서관실 등을 통해 명진 스님의 사생활, 비위, 발언 등 특이 사항을 파악·보고하고, 비위사실 및 좌파활동 경력을 인터넷상에 적극 확산할 것을 국정원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개혁위는 “원세훈 전 원장이 간부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명진 스님에 대한 견제활동을 지시했다”며 “국정원 담당부서는 명진 스님의 정부·대통령 비난 발언, 개인 비위 사항 등 동향을 종합한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 및 국정원 지휘부에 수차 보고했다”고 전했다. 개혁위는 특히 “국정원 심리전단은 원 전 원장과 청와대 지시에 따라 2010년 3월부터 4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사이버상에서 토론글에 찬반투표를 하거나 댓글을 게재하고 인터넷 매체에 칼럼을 게재하는 등의 방법으로 명진 스님에 대한 비판 여론을 조성하고, 보수단체의 견제활동을 유도했다”며 원세훈 전 원장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해 검찰에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개혁위는 다만 국정원 존안자료나 관련자에 대한 조사 결과 조계종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 전환이나 명진 스님을 주지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과정에 국정원이 외압을 행사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명진 스님은 당시 봉은사 주지 4년 재임 중 마지막해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화 과정에서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비판하는 법회를 매주 열면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함께 비판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봉은사 경내에 ‘중수부 검사들 출입 금지’ 펼침막을 걸어놓기도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원희복의 인물탐구]조계종 승적박탈 명진스님… 불교를 정치에서 해방시키려는 ‘정치적 스님’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입력 : 2017.06.17 15:05:00 경향신문


종교문제에 기자가 뛰어들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좀 두렵다. 그런데 한 스님의 승적 박탈에 원로들이 들고 일어섰다. 5월 31일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함세웅(신부)·김중배(전 언론인)·권영길(노동운동가)·김영호(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최종진(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등 본란에 소개했던 인사들이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한 스님의 일에 종교계는 물론 시민·사회·문화계 원로들이 화를 낸 것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당사자는 명진 스님이다. 그는 지난 4월 5일 승적이 박탈됐다. 요즘 충북 제천 월악산 보광암에서 지내고 있다. ‘집도 절도 없어’ 가끔 서울에 올라오는 그를 인사동에서 만났다. 백기완 선생은 “절집의 큰나무 명진 스님이 절집 내부의 법규에 따라서 중옷이 홀랑 벗겨져 버렸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여전히 승복을 입고 있다. 그는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옷을 입을 헌법적 자유가 있다”며 웃음을 띠었다. 그는 원로들의 성명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벼락 맞은 느낌이었다. 한 분 한 분이 다 한국 사회에서 대단한 분이고, 독재정권과 싸운 분이다. 한 분만 해도 한 짐인데, 40여 분이 모여 기자회견을 했다. 절집이 얼마나 엉망이면…. 부끄럽고 개인적으로 무겁다. 지금까지도 무겁게 살았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무겁게 살라고 이러시는가.”

당시 백기완 선생은 명진 스님 승적 박탈 소식을 듣고는 주변에 ‘소집령’을 내리고 직접 기자회견문을 썼다. 건강도 안 좋아 ‘말발’로 버티는 백기완 선생이 직접 글을 쓴 것은 매우 격노했다는 의미다.

조계종은 승적 박탈 이유로 종단 비방과 사찰 재산의 위법한 양도를 꼽았다. 진짜 승적 박탈의 이유는 뭔가. 

“결국 자승 총무원장과 나의 개인적 관계일 것이다. 2007년 대선 때 자승 원장이 이상득 의원을 데리고 와 봉은사에서 이명박 후보와 인사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다. 대선이 끝나고도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문제, 종교 편향성 문제, 전과 14범 문제를 공공연하게 발언했다. 게다가 자승 원장이 총무원장이 되고 종단 운영이 엉망이 됐다. 자리가 돈으로 거래되고…. 2013년 자신의 비리를 폭로하려던 적광 스님을 경찰이 보는 앞에서 끌고가 집단폭행했다. 권력의 비호 아래 종단 부정이 만연했다. 이제 그것을 밝혀야 한다.” 

그는 이런 적폐를 뿌리 뽑기 위해 지난 1월 “총무원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명진 스님은 문재인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과거 사고로 보자면 곧 ‘정치적 실세’로 등장할 수 있다.

“2009년 10월 경남 양산 보궐선거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다. 그때 민주당에서 그(문재인)를 양산에 출마시키려 했지만 안 되자 한명숙 총리가 나에게 ‘스님이 설득해달라’고 연락해 왔다. 그때 나는 1000일 기도로 밖에 못 나갈 때다. 그래서 ‘봉은사로 오시라’ 해서 함께 만났다. 마침 그날 한양대 교수였던 고 이영희 교수님 부부도 와 있었다. 같이 ‘노무현 대통령도 억울하게 돌아가셨으니 정치를 해서 세상을 바꾸라’고 간곡히 권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스님, 정말 저는 정치에 뜻이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권유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면 이번 사태를 정치의 도움으로 풀 생각은 안해봤나.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데…, ‘내 문제에 정치권력이 도와줄 생각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정당한 방법으로 자승과 시시비비를 가리겠다. 다만 ‘과거 정권같이 불교계 부정을 감싸주지 마라, 권력은 불편부당을 유지하라’고 했다. 옛날같이 불교계가 정치권력을 이용하는 것을 바라서도, 그래서도 안 된다.” 

명진 스님은 이후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여러 번 만났고, 2013년 3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철탑에 올라 농성할 때 같이 철탑에 올라 위로하기도 했다. 명진 스님은 세월호 참사 항의집회는 물론 촛불시위에도 항상 앞장섰다. 물론 그의 이런 행동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그는 대학생들과 노동자들과 통일운동가들과 함께하는 소위 운동권 스님으로 유명하다.

명진 스님은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외가인 충남 당진에서 자랐다. 고등학교(서울공고)를 졸업한 19세에 해인사로 출가해 백련암 성철스님 행자를 시작으로 절밥을 먹었다. 선방에만 머물던 그는 1985년 비디오 한 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처음 광주항쟁을 폭도의 소행으로 알았는데 국가권력의 탄압임을 알게 됐다. 이럴 때 중은 혼자 수행만 해야 하는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1986년 ‘9·7 해인사 전국승려대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2000명이 모인 승려대회는 정치권력에 대한 불교계의 첫 자주화 선언장이었다. 1987년 9월 개운사 주지 시절에는 ‘생명해방대축제-민족·민주열사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이후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연임에 반대하는 조계사 ‘4·10 승려대회’에서 대회사를 읽었다. 선방에서 수행만 하던 그는 ‘바른 말’을 하고 ‘행동하는 스님’으로 변신한 것이다. 


5월 31일 백기완 선생을 비롯한 종교·사회·문화·학계 원로들이 명진 스님의 승적 박탈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채원희 제공

5월 31일 백기완 선생을 비롯한 종교·사회·문화·학계 원로들이 명진 스님의 승적 박탈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채원희 제공 


진보적 잡지 <민족21> 발행인을 했다. 스님이 왜 언론사업을 했나.

“처음에는 강만길 교수가 발행인을 했는데 정부위원회 위원장으로 가면서 자리가 비었다. 기자들이 찾아와 발행인을 맡아 달라고 해서 맡았다. 그냥 이름만 걸어달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 내가 책 써서 번 돈 대부분이 <민족21> 제작과 쌍용차에 들어갔다. 하~하~.”

그동안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후원회장 등 통일문제에 관심이 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사실 이 질문을 하면서 문익환 목사나 문정현 신부에 비추어볼 때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답을 듣고 싶었다) 

“1988년 염무웅 선생 권유로 독일에 가면서 황석영 작가 등과 함께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윤이상 선생과 안석규 박사 등을 만났다. 그때부터 우리 민족의 문제는 분단이고, 통일이 안되면 우리 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돌아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위원회 본부장을 맡는 등 불교계에서 남북교류 일을 했다. 게다가 <민족21> 발행인으로 북 역사학자들과 교류도 했다. 다양한 루트로 북에 가다보니 많은 곳을 갔다.” 

명진 스님은 종단의 비리를 까발리고 거리에서 구호나 외치는 소위 ‘운동권 스님’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2006년 봉은사 주지를 맡자 매일 새벽 예불부터 참여하는 1000일 기도 원칙을 실천했다. 주지 시절 투명한 재정운영은 물론 설법으로 150명 신도를 10배나 늘렸다. 2010년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강남 좌파 주지를 내쫓아야 한다’는 발언도 그의 유명세 때문이었다. 강남에 있는 봉은사가 어떤 절인가. 많이 배우고, 돈좀 있다는 신도들이 다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좌파적 발언 몇 마디에 신도가 모일까? 

불교는 뭐인가.(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금방 나에게 물은 것같이 ‘묻는 것’이다. 흔히 기독교가 믿음의 종료라면 불교는 끝없는 물음의 종교다.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시간은 어디로 가는가. 우주공간은 어디서 끝날까 등등 끝없이 묻는 것이다.” 

계속 묻다 답을 알았을 때가 해탈의 순간인가. 

“그렇다. 해탈은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사물을 보는 관점은 분명한 것이 아니다. 시간·공간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이것은 현대 물리학도 풀지 못하는 난제 중 하나다. 또 나라는 존재는 뭐냐? 이런 끝없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아무 데도 없다. 부처님도 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럼 인간은 영원히 해탈하지 못하고 가는 존재인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돼 있다. 인간이라는 틀, 중이라는 틀, 2017년 6월 14일이라는 틀…, 인식하는 세계, 잘못된 관점을 벗어던지는 것이 해탈이다. 구원을 받고 성스러운 세계가 해탈이 아니다. 과학·철학적으로 계속 묻다보면 ‘모름’으로 결론난다. 그것은 인간이 생각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나를 모른다.’ 이 소크라테스의 고백이 불교의 핵심과 통한다.”

그가 이끄는 수행모임을 ‘단지불회’(但知不會·아는가, 단지 알지 못함을)로 이름 붙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을 옥죈 잡다한 지식·정보에서 해방되는 것이 해탈이고, 이것을 앎으로써 해방된 사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이다. 그는 누구처럼 승가대학이나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따지도 않았다. 어려운 경전을 해석하는 논문을 쓰지도 않았다. 그의 불교 해석은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처절한 스승, 바로 ‘죽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무엇인가. 망설임 없이 ‘죽음’이라고 대답한다. 죽음은 삶을 투철하게 성찰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처음 마주친 죽음의 대상은 불행하게도 어머니였다….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부부 간 불화와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삼베옷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채 화장터로 걸어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화장장 인부들이 쇠꼬챙이로 시신을 뒤적이던 기억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이게 뭐지?’ 하는 물음으로 서 있던 나.”(<스님은 사춘기> 11쪽.)

그의 이런 설법에 감동 받은 사람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다. ‘좌파 스님’의 설법에 이 시대 최고 재벌이 감동해 찾아온 것은 기막힌 역설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의 수행과 설법 내용은 2011년 <스님은 사춘기>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다. 이 책을 보고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찾아왔다. 이 부회장은 ‘애플 스티브 잡스가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데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해 그에게 주면 좋아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과 그의 인연은 여러 번 이어졌고 실제 이 책을 삼성 태블릿PC에 e북으로 탑재해 출시하기로 하고 작업까지 마쳤다. 그러나 명진 스님 쪽에서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취소했다고 한다. 명진 스님은 “이 부회장에게 ‘3대째 가업이지만 가족기업이 아닌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민기업이 되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다시 현실문제로 돌아왔다. 이제 그가 승적을 회복할 방법은 ‘절법’으로는 없다. 종정의 특별사면과 이를 종회에서 결의해야 하지만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결국 사회법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면 불교계 내부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 현재 일부 스님과 신도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기자가 ‘스님들 매일 촛불을 켜는데, 그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맨위로

https://blog.daum.net/keiti/16545582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