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안교(萬安橋)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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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안교(萬安橋)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

앵봉(鶯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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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안교(萬安橋)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정조(正祖, 1776~1800 재위)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陵)을 참배하러 갈 때 행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돌다리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陵)을 양주(楊州)에서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긴 후

자주 참배하여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능행길은 원래 용산에서 한강을 건너고

노량진과 동작을 거쳐 과천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에는 다리가 많고 고갯길이 있어서 행차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시흥으로 길을 바꾸며 이곳 안양천을 지나게 하였다.

 

정조 19년(1795년)에 당시 경기도 관찰사 서유방(徐有防, 1741~1798)이

왕명으로 3개월의 공사 끝에 이 다리를 완성하였으며,

축조 양식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무지개 돌다리로 평가된다.

원래 위치는 남쪽으로 460m 떨어진 안양교 사거리의 교차 지점에 있었으나

1980년 도로 확장으로 이곳에 옮겨 복원되었다.

만안교 옆에는 서유방이 글을 짓고 조윤형(曺允亨)이 쓴 만안교비(萬安橋碑)가 있어

다리의 연혁을 설명하고 있다.

 

길이 31.2m에 너비 8m의 만안교는 7개의 아치형 갑문을 통하여

물길을 안내하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석조교의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하천 바닥에는 두께가 두 뼘(30~40cm)에 달하고,

가로와 세로 평균 70~80cm에 이르는 박석을 남북으로 30.8m,

동서로는 31m, 총 289평의 면적에다가 깔아 놓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679번지

 

 

만안교비(萬安橋碑)

 

만안교(萬安橋)의 축조를 칭송함(머리글을 겸함.)

남충현(南充縣,현재의 과천) 관아 남쪽 20리(8km)에 안양천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화성(華城)으로 가는 행차길이다.

우리 성상(聖上, 정조대왕)께서 해마다 원침(園寢,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을 참배하려면,

이 하천을 건너게 된다.

올봄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이 하천을 건넘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대체로 행차길에는 하천이 있고 반드시 다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 다리는 나무로 놓였다가 왕이 행차한 뒤 바로 철거하였다.

따라서 얼음이 풀릴 때와 장마가 질 때에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였다.

이에 전 경기관찰사 서용보가 이 다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돌다리로 바꾸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미천한 신(臣, 현 경기관찰사)이 명을 받고,

초가을 음력 7월에 일을 착공하여 3개월 만에 준공하였다.

교량은 길이 15장(丈, 1장은 10자)에 폭은 4장이며, 높이는 3장이고 수문은 다섯 개이다.

임금께서는 이 일을 아시고 감독하는 사람과 장인들에게 차등있게 상을 내리고

특별히 ‘만안교’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신이 삼가 생각건대 왕들이 다리로 편안히 건너게 된 것은 한(중국의 漢나라)의

장안교(長安橋)에서 비롯하였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또한 도보로 건너는 작은 다리와 수레로 건너는 큰 다리가 성주(成周, 중국의 주나라) 때에

만들어졌으나 돌로 쌓아 만년을 전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이 다리는 다행히도 화성의 행차길에 있어 왕의 수레는 1년에 한 번,

어머니의 가마는 10년에 한 번씩 육룡(六龍, 왕의 수레, 말 여섯 마리를 이름)에 멍에을 얹고

8개의 방울을 울리며 편안히 지나갔다가 편안히 오기를 만년을 한결같이 할 수 있다.

그리고 편리함은 만백성에 미쳐서, 멀고 가까운 짐 꾸러미들이 튼튼한 다리를 건너게 되어

이제는 옷을 걷어 올리거나 험한 길로 돌아갈 걱정이 없어졌다.

이로써 만년토록 임금의 큰 은혜을 입고 자애로운 덕을 기리게 되었으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는가!

공사를 처음 시작할 때 하천가에서 돌을 캐냈는데, 과연 돌이 나와 경비가 절반으로 줄어서

마치 하늘이 도운 것 같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신(臣)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머리를 숙여 그 일을 기록하며 기리어 말한다.

 

왕께서 해마다 한 번씩 원침에 행차하시니 이 다리 건너기를 만 번을 하옵소서

복(福)이 함께 이르게 되었으니 아래에는 하천이 있습니다.

때때로 어머니의 가마를 모시고 만년토록 편안하소서.

은혜가 만백성에 미치니 마음 놓고 건넘에 환성을 올리도다.

천년만년 편안하기가 반석과 같도다.

 

정헌대부 지중추부사 겸 경기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 수원부유수 개성부유수강화부유수

광주부유수 도순찰사 규장각검교직제학 신(臣) 서유방은 삼가 글 내용을 지음.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신(臣) 조윤형은 삼가 비석에 새길 글씨를 쓰고
학신(學臣) 유한지는 비석 전면(前面)의 글씨를 삼가 씀.

감동(監董, 감독관) 첨사(僉使, 절도사 아래의 첨절제사) 김천보

오위장(五衛將, 중앙군사조직 오위의 장수) 장연, 김대연, 김원섭

영비(營裨, 감사나 유수를 따라 일을 돕던 무관직 비장) 가선(嘉善) 서협수

영교(營校, 군영의 장교) 가선(嘉善) 서의린, 영리(營吏, 관아의 아전) 이효석

각수편수(刻手邊首, 조각장의 책임자) 이삼흥, 석수편수(石手邊首, 석공장의 책임자) 최귀득, 박복돌

홍예편수(虹霓邊首, 무지개 돌을 쌓는 책임자) 최흥서, 야장편수(冶匠邊首, 대장장의 책임자) 정일성

상지(上之) 19년(1795년) 9월 세움

 

 

만안교공원의 만안정(萬安亭)

 

 

萬安亭記(만안정기)

 

정조대왕이 수원 능행(화산)을 위해 건조한 만안교(萬安橋)는

대왕이 친히 작명한 홍예교(虹蜺橋, 무지개 모양의 칠간수문)로서

안양의 본향인 만안구(萬安區)는 이로부터 유래한다.

만안(萬安)은 신상이 두루 평안함, 곧 만강(萬康)의 뜻으로

만안교에는 대왕의 효심에서 발원한 능행의 편의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통행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도 깃들여 있으니

여기 조촐한 휴식터를 만들어 만안정(萬安亭)이라 이름함은

안양8경 중 제4경인 만안교에 서린 대왕의 어진 뜻을 오늘에 되살려

시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북돋고 나날의 삶이 평안하기를 기원함에서다.

 

무자년(戊子年, 2008년) 여름에

시인 김대규 선생 짓고, 갈샘 신진숙 쓰다.

 

 

만안교 소공원

 

 

석수교회

 

 

삼막천(三幕川)

서울 관악구 호암산(393m)과 안양시 만안구 삼성산(481m) 사이 삼막사계곡에서 발원하여

석수동에서 삼성천에 유입 한 후 안양천으로 합류하여

한강을 거쳐 서해로 흐르는 지방하천이다.

 

 

경부선과 만안로

 

 

관악역(冠岳驛)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과 함께 개업했으며,

역명은 인근의 관악산에서 따온 것이다.

부기역명은 안양예술공원으로, 인근에 안양유원지가 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73번길 46

 

안양 9(구)경 가자

安養 九景(안양 9경)

1경 안양예술공원, 2경 안양천, 3경 평촌중앙공원,

4경 망해암 일몰, 5경 안양1번가, 6경 최경환 성지,

7경 평촌1번가 문화의 거리, 8경 병목안시민공원, 9경 만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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