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 - 국보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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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 - 국보 제23호

앵봉(鶯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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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지진을 대비한 설계

 

청운교, 백운교 다리 밑에는 이중으로 된 홍예(虹蜺, 반원형의 무지개 모양)를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위와 아래의 사다리꼴형 돌의 형태가 서로 반대로 끼어 있다.

이는 이곳 경주지방에 지진 발생이 잦아 천년 전에도 지진에 대비한 내진으로 설계한 것이다.

지진의 힘이 아래로 작용할 때는 밑에 있는 돌이,

위로 작용할 때는 위의 돌이 서로 저항을 하는 것이다.

 

 

 

國寶 第23號 佛國寺 靑雲橋와 白雲橋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 - 국보 제23호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4계단으로 되어 있는 위로는 16단의 청운교가 있고 아래로는 18단의 백운교가 있다.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 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 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 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청운교는 높이 3.82m· 너비 5.11m, 백운교는 높이 3.15m· 너비 5.09m이다.

 

 

 

가구식 석축(架構式 石築) - 보물 제1745호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축조된 가구식 석축과 조화를 이룬 청운·백운교가 놓였고,

그 앞에는 평지를 이루며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구품연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어 있다.

가람서쪽에 있는 극락전 중심의 구역은 대웅전구역보다 한 단 낮추어 배치되었는데,

여기에는 정면에 안양문을 세우고, 그 앞에는 연화·칠보교의 계단을 축조하였다.

극락전 주위에는 안양문과 연결하여 회랑이 둘러졌는데

동쪽에는 대웅전 회랑과 연결되어 별도의 회랑을 두지 않았다.

안양문과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꾸민 가구식 석축이 동서로 놓였는데,

동쪽 자하문 앞의 것은 백운교의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단의 석축을 변화 있게 꾸며 조화를 이루었다.

안양문 앞에서는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석축을 쌓되 중간 중간 칸을 이루어

다듬은 석주(石柱)와 인방석을 가구식으로 걸고, 그 가운데를 자연석으로 채운 행태이다.

자하문이나 범영루 앞의 하층 석축은 밑에서부터 거대한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가공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올린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범영루의 돌출부 기둥 밑에는 점차형의 석재를 차곡차곡 쌓아 돌기둥을 만들었고

또 석교 밑에서는 정교한 홍예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구역의 서측회랑 하부 석축이 포함되는데,

구조형식을 살펴보면 수직의 석주와 수평의 주두석 및 동자주, 초석, 갑석으로

장방형의 격자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자연석을 밀실하게 채워 넣는 수법으로 쌓았으며,

대웅전 석축은 1단, 극락전 석축은 2단으로 구성되어 약간의 차이가 있다.

 

 

 

범영루(泛影樓)

 

범영루는 750년경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 건립하였고

1593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12 년과 1688 년에 각각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3년 불국사 복원 때 정면 1칸, 측면 2칸, 3층의 옛모습 그대로 중건한 것이다.

범영루에 지금은 법고(法鼓)가 매달려 있으나

원래는 범종각(梵鐘閣)으로써 범영루는 범종각의 이름이다.

누각의 모양을 하였으므로 루(樓)라 하였고 범영(泛影)은 범종의 소리를

그림자에 비유하여 범종의 소리가 온 누리에 번져서 넘치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최초의 이름은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이라고 한다.

이는 수미산(須彌山) 모양의 팔각(八角) 정상에 108명이 앉을 수 있도록 누를 짓고

아래는 오장간(五丈竿)을 세울 수 있도록 설계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수미산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정상은 욕계(欲界) 33천의 위이다.

108 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번뇌를 통틀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수미범종각이라는 이름은 소리가 33천의 온 세상에 울려 퍼져

인간의 모든 번뇌를 씻어 없애주는 것을 뜻한다.

 

 

 

자하문(紫霞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전(大雄殿)으로 통하는 중문(中門).

백운교와 청운교를 올라오면 이 문으로부터 부처님의 나라가 전개된다.

자하문은 부처님의 몸에서 비추는 자금광(紫金光)이 안개처럼 서린문이라는 뜻이다.

건립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기단의 주춧돌과 신방석(信防石). 문지방돌 등이

통일신라시대(676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문도 그 무렵에 건립되었을 것이다.

그 후 1436년에 중수하였고, 임진왜란 때(1593년) 불타 버린 것을 1628년에 재건하였으며,

1630년에 중창하고, 1781년에 중건하여, 1966년에 크게 보수하였다.

넓은 석조(石造) 기단(基壇)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세워진 지금의 이 문은,

다포계(多包系)의 공포(栱包)를 짜 올린 팔각(八角) 지붕을 하고 있으며,

건축 양식은 조선 후기에 속한다.

 

 

 

자료출처:불국사 www.bulguk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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