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유엔군 초전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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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유엔군 초전기념관)

앵봉(鶯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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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유엔군 초전기념관)

 

경기도 오산시 경기대로 742 (외삼미동) 

유엔군 초전기념관 www.osan.go.kr/osanUnfw/

 

 

 

죽미령전투(竹美嶺戰鬪) - 6시간 15분간의 전투, 죽미령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고개에서 유엔군과 북한군의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7월 5일 새벽 3시, 빗속을 뚫고 죽미령 고개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도로와 철로 부근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도로를 포함한 좌측 능선에 B중대를,

철로 좌측 편에 있는 진지 내 우측 고지에는 C중대를 배치하고,

105mm 포대를 죽미령 후방 수청리에 포진시켰다.

오전 7시 수원근처에서 북한의 전차부대의 모습을 드러났다.

8시 16분 첫 사격을 시작으로 스미스 부대는 포탄을 쏘아대며 공격하였지만

소련제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오전 10시, 약 10km에 달하는 긴 행렬의 북한군 트럭과 보병이 나타났다.

3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보병을 향해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을 쏘아댔고

아군, 적군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져 갔다.

그러나 북한군이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전차가

중앙을 돌파하면서 방어선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탄약과 병력이 소진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2시 30분 퇴각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540명 중 보병 150여 명,

포병 31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북한군 역시 약 5,000명 중 15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유엔군과 북한군의 첫 전투는 승패와 관계없이 유엔군의 참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거나 적어도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 하에

남침을 감행 하였는데, 남침개시 10여 일만에 미 지상군의 참전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또한 유엔군의 파병은 유엔 창설이후 처음으로 유엔의 기본정신에 입각하여

유엔기를 앞세우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집단적 행동을 펼친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고 하겠다.

 

 

 

M48A2C 패튼(Patton) 전차(戰車),

M48A2C Patton Tank(U.S.A)

 

M48전차는1953년 미군에 배치된 중전차로 총 12,000대가 생산되었다.

이 전차는 M48전차를 개량한 것으로 항속거리가 늘어나고 성능이 향상된

M17 측거 장치를 장착하여 전차포의 명중률을 향상 시켰다.

우리군은 1966년 베트남 파병에 따른 전력 보완책으로 M48 전차를 최초 도입하였으며,

1971년 군 현대화 계획에 따라 M48A2C 전차를 주한 미군으로부터 인수하여

육군 각 군단의 기갑여단에서 운용하였다.

M48A2C 전차는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고 있어 연비가 좋지않고

개량 또한 이루어지지 않아 처음 생산된 원형을 계속 유지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장비의 노후화로 일선 부대에서 도태되기 시작하여

2007년에는 육군에서 완전히 퇴역하였다.

퇴역한 M48A2C 전차 가운데 일부는 사격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M48A2C 패튼(Patton) 전차 제원

길이 6.9m, 폭 3.6m, 무게 48ton, 최대주행거리 260km, 탑승인원 4명

무장 : 90mm T54강선포, 12.7mm M2重기관총, 7.62mm M73기관총

 

 

 

F-86F 세이버전투기(Sabre Fighter) - U.S.A

 

F-86은 미국 North American사에서 제작한 미국 공군 최초의 후퇴익 제트전투기로

애칭은 Sabre(끝이 뾰족한 검)이고, 1947년 10월 최초로 비행을 하였다.

한국 공군은 6.25전쟁 후 북한의 MIG-15 제트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프로펠러 전투기인 F-51D를 대체하여 1955년 F-86F 5대를 최초로 도입,

제트기 보유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1968년까지 총201대를 도입하였다.

F-86F는1967년 서해 덕적도에 침투한 무장 간첩선을 격침하였다.

또한 영화‘ 빨간 마후라(1964년)’와

곡예비행팀인 '블루세이버(Blue Sabre Team, 1959~1966년)’를 통하여

필승 공군의 상징으로 그 위용을 떨쳤으며, 1993년 퇴역하였다.

 

세이버 전투기 제원

길이 11.4m, 너비 11.9m ,높이 4.5m, 중량 6,883kg

성능 : 최대속도 1,056km/h, 항속거리 2,408km, 순항거리 815km/h, 상승한도14,326m,

승무원 : 1명,

무장 : 캘리버50 기관총, 로켓, AIM-9 미사일, 5 00Ibs폭탄

제작사 : North American(미국)

 

 

 

M1 90mm 고사포(高射砲)

M1 90mm Anti-Aircaft Artillry(U.S.A)

 

1940년부터 1950년대까지 미 육군이 사용한 견인 대공포(牽引 對空砲)로써

제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약 10kg의 포탄(砲彈)을 초속(秒速) 810m의 속도로 발사할 수 있어 당시에는 근대화 된 장비였다.

M1 90mm 고사포(高射砲)는 대구경(大口徑) 대공포(對空砲)로

저고도, 고속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1950년대 이후부터 지대공(地對空) 미사일이 등장하면서 점차 퇴역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SSR-584 레이더와 연계한 고도의 사격통제 장치를 장착하여

 대공포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중률을 자랑했다.

또한 빠른 포구초속으로 대전차포(對戰車砲)로도 사용 되었으며 해안포(海岸砲)로도 일부 운용되었다.

우리군은 1955년 미국으로부터 도입하여 공군기지와 주요 군사시설에 배치하여 운용하였다.

 

M1 90mm 고사포 제원

길이 5.1m, 최대사거리 11,500m 무게(중량) 8,550kg, 발사속도 22발/1분,

4륜 포가(四輪砲架) 탑재 운용, 십자형 포상(十字型 砲床)을 설치하여 사격하며,

포신 후좌(砲身後座)에서 포탄을 자동으로 장전(裝塡) 가능

 

 

 

KM900 경장갑차(CM6614)

KM900 Light ArmoredVohicle (Korea)

 

1960년대 후반부터 이탈리아의 피아트사에서 생산된 사륜형 장갑차로

우리군은 1970년대 중반 북한의 특작부대 침투대비와 수도권 방어를 위해 도입되었다.

 

길이 : 5m, 폭 : 2.5m, 중량 : 8.4ton, 최대속도 : 100km/h, 최대주행거리 : 700km,

탑승인원 : 9명, 무장 : 7.62mm M60기관총

 

 

 

14.5mm 중고사 기관총

(14.5mm Heavy-Aicraft Machine Gun,U.S.S.R)

 

1949년 소련에서 생산된 기관총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대공용(對空用)으로 운용하였다.

길이 : 4.6m, 최대사거리 : 7,000m, 폭 : 1.7m, 발사속도 : 분당 2,400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Memorial Facility appointed by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新 유엔군 초전기념비

New Monument of UN Forces First Battle

 

건립일 1982년 4월 6일

건립자 교통부, 경기도

 

6 · 25전쟁 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에서 전사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초전비는 북한군에 맞서 유엔군이 방어한 최초의 성벽임을 나타내는

세 겹의 높은 탑신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중앙에 스미스부대원의 전투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매년 7월 5일을 기하여 죽미령전투의 의의를 기리고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추념식이 거행된다,

 

 

 

유엔(United Nations)

 

6. 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군의 침략 중지 및 격퇴'를 위하여 결의안을 승인하였다.

이 결의안에 따라 유엔 회원국은 육 · 해 · 공군을 참전시켜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16개국이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하였다.

이외에도 40여개의 나라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물자를 지원하였다.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붕괴된 국군은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계속적으로 병력 재정비와 보충을 통해 군의 규모를 확대해 나갔다.

육군은 전쟁 초기 낙동강 전선으로 후퇴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이르기도 했지만

인적 · 물적인 손실을 보충하면서 병력과 장비의 증강을 도모하고

우방국의 지원을 받아 전세를 만회할 수 있었다.

개전 당시 8개 사단이었던 육군은 정전협정체결 당시에 18개 사단으로 성장하였으며,

병력도 497,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 참전연인원 : 621,479명

○ 부상자 : 450,742명

○ 전사자 : 137,899명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은 유엔 참전국 중에서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한국에 전투부대를 파병하였으며,

유엔군 사령부를 지도하며 한국에 파병된 유엔참전국 부대를 통합 지휘하였다.

전쟁 동안 수행한 주요 전투는 오산(죽미령)전투, 대전전투, 낙동강방어작전,

인천상륙작전, 평양탈환작전, 장진호전투, 지평리전투이다.

 

○ 참전기간 : 1950. 6. 27 ~ 1955. 3

○ 참전규모 : 8군(8th Army) 극동해군(Far East Naval Forces), 

극동공군(Far East Air Forces)

○ 참전연인원 : 1,789,000명

○ 부상자 : 92,134명

○ 전사자 : 36,574명

 

 

 

영국(United Kingdom)

 

1950년 6월, 영국은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UN 참전국 중 두 번째로

자국의 육 · 해 · 공군 병력을 한국에 파병하였다.

영국 해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포함하여 수많은 전투에 전투자산을 투입하였으며,

2개의 영국 육군 여단을 제1영연방사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국군이 참여한 주요 전투는 낙동강방어선전투, 박천전투, 임진강전투,

가평전투, 코만도작전, 해피밸리전투 그리고 후크고지전투 등이 있다.

 

○ 참전기간 : 1950. 6. 29 ~ 1957

○ 참전규모 : 2개 보병여단(2 Infantry Brigades), 1개 특공대(1 Commando Unit),

함정 50척(50 Ships), 11개 비행중대(11 Air Squadrons)

○ 참전연인원 : 81,084명

○ 부상자 : 2,674명

○ 전사자 : 1,108명

 

 

 

캐나다(Canada)

 

캐나다는 2만6천여 명 이상의 용사가 유엔의 일원으로 극동지역의 6 · 25전쟁에 참여하였다.

캐나다 군인들은 가평전투, 355고지전투와 후크고지전투 등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왕립 캐나다 해군의 구축함들은 한반도 해안에서 순찰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왕립 캐나다 공군은 태평양을 건너며 공수임무를 수행하였다.

 

○ 참전기간 : 1950. 7. 25 ~ 1957. 6

○ 참전규모 : 1개 보병여단(1 Infantry Brigade), 함정 8척(8 Ships),

1개 공수비행대대(1 Transport Squadron)

○ 참전연인원 : 26,791명

○ 부상자 : 1,212명

○ 전사자 : 516명

 

 

 

터키(Republic of Turkey)

 

터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한국에 육군 1개 여단을 파병하였다.

여단 내에는 보병을 비롯하여 포병 · 공병 · 수송 · 통신 · 의무 · 병기 부대들이 포함되어 있어

독립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 편성을 갖추고 있었다.

터키 여단은 자신들의 사상자에 비해 적에게 10배의 사상자를 낸

전과를 올려 유엔군의 사기를 높였다.

전쟁동안 수행한 주요 전투는 김량장전투와 네바다 전초전이다.

 

○ 참전기간 : 1950. 10. 18 ~ 1951. 6

○ 참전규모 : 1개 보병여단

○ 참전연인원 : 21,212명

○ 부상자 : 1,155명

○ 전사자 : 891명

 

 

 

 

호주(Australia)

 

호주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육 · 해 · 공군 모두 참전하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한국원조 결의에 따라 곧바로 2척의 함정과 1개 비행대대를 파견하였고,

9월 27일에는 보병 1개 대대를 파병하였다. 전쟁기간 해군은 항공모함 1척, 구축함 2척,

프리깃함 1척 수준의 전력을 유지하면서 해상작전을 실시하였다.

전쟁동안 수행한 주요 전투는 마량산전투, 애플오차드전투, 구진전투,

청주전투, 사미천전투, 박천전투, 가평전투이다.

 

○ 참전기간 : 1950. 6. 29 ~ 1957. 8

○ 참전규모 : 3개 보병대대(3 Infantry Battlalions), 함정 9척(9 Ships),

1개 전투비행대대(1 Fighter Squadron), 1개 수송기대대,

1개 정비대대, 1개 기병대대(1 Base Squadron)

○ 참전연인원 : 18,000명

○ 부상자 : 1,216명

○ 전사자 : 340명

 

 

 

필리핀(Philippines)

 

필리핀은 미국, 영국에 이어 지상전투부대를 한국에 파병한 최초의 아시아 국가이다.

1950년 9월 19일 필리핀 전투부대(PEFTOK)의 다섯 전투부대(BCT) 중의 첫 번째가 부산에 도착하였다.

필리핀 병사들은 율동전투, 아스날고지전투, 이리고지전투에서 용감하게 한국을 위해서 싸웠다.

 

○ 참전기간 : 1950. 9. 19 ~ 1955. 5

○ 참전규모 : 1개 대대전투단

○ 참전연인원 : 7,420명

○ 부상자 : 313명

○ 전사자 : 113명

 

 

 

태국(Kingdom of Thailand)

 

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먼저 유엔의 한국지원에 호응해 지원의사를 표명하였다.

6 · 25전쟁 발발 5일 후인 6월 30일 쌀 4만톤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지지를 보냈다.

태국은 1개 대대의 육군 병력 이외에도 프리깃함 3척과

왕립 타이 공군의 C-47 수송기를 보내는 등 육 · 해 · 공군을 모두 파견했다.

태국군은 포크찹고지 방어에서 3차에 걸친 중공군의 공격을 백병전으로 격퇴함으로써

'작은 호랑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하였다.

 

○ 참전기간 : 1950. 11. 7 ~ 1957. 2. 6

○ 참전규모 : 1개 보병대대(1 Infantry Battalion), 함정 5척(5 Ships),

1개 수송기편대(1 transport Formation)

○ 참전연인원 : 6,326명

○ 부상자 : 1,139명

○ 전사자 : 129명

 

 

 

 

네덜란드(Netherland)

 

네덜란드는 미국 · 영국 · 호주에 이어 네 번째로 한국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먼저 해군 구축함 1척을 파견하였고,

이후 총 6척의 함정을 파견하여 미 극동해군과 함께 해상작전을 수행하였다.

한국의 전황이 악화되자 네덜란드는 보병 1개대대를 파병하였다.

보병대대는 1950년 11월 23일 부산에 도착하여 11월말에 전방으로 이동한 후

미 제2사단에 배속되어 작전활동에 들어갔다.

전쟁동안 수행한 주요 전투는 횡성전투와 인제전투이다.

 

○ 참전기간 : 1950. 7. 16 ~ 1955. 1

○ 참전규모 : 1개 보병대대(1 Infantry Battalion), 함정 1척(1 Ship)

○ 참전연인원 : 5,322명

○ 부상자 : 645명

○ 전사자 : 124명

 

 

 

콜롬비아(Republic of Colombia)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군대를 파병하였으며, 육군과 해군을 지원하였다.

콜롬비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프리깃함 1척과 보병 1개 대대를 파병하였다.

1951년 6월 15일 콜롬비아 대대가 부산에 도착함으로써

콜롬비아는 유엔 참전국 중 마지막으로 전투부대를 파병한 국가가 되었다.

콜롬비아 보병대대는 미 제24사단에 배속되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전쟁 동안 수행한 주요 전투는 강원도 금성진격전투, 김화 400고지전투, 불모고지전투이다.

 

○ 참전기간 : 1951. 5. 8 ~ 1955. 10

○ 참전규모 : 1개 보병대대(1 Infantry Battalion), 함정 1척(1 Ships)

○ 참전연인원 : 5,100명

○ 부상자 : 448명

○ 전사자 : 213명

 

 

 

그리스(The Hellenic Republic : Greece)

 

그리스는 6 · 25전쟁에 참전하여 보병 1개 대대와

7대의 C-47 다코타 항공기로 구성된 공군 1개 공수비행대대를 파병하였다.

공수비행대대는 장진호전투를 지원하였으며, 총 2,916회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리스군은 미 해병 사단을 직접 지원하여 전 · 사상자를

후방지역으로 후송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쟁 중 수행한 또 다른 주요 전투는 노리고지전투와 북정령전투이다.

 

○ 참전기간 : 1950. 12. 9 ~ 1955. 12

○ 참전규모 : 1개 보병대대(1 Infantry Battalion),

1개 공수비행대대(1 Transport Squadron)

○ 참전연인원 : 10,255명

○ 부상자 : 617명

○ 전사자 : 187명

 

 

 

뉴질랜드(New Zealand)

 

뉴질랜드는 6 · 25전쟁에 영연방 연합군의 일원으로 육군과 해군을 파병하였다.

뉴질랜드는 1950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두 척의 호위함을 급파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병, 수송, 공병, 통신부대 병력 약 1,000여 명의 육군을 파견하여

유엔작전에 이바지하였다.

뉴질랜드군은 6 · 25전쟁 당시 가평전투와 고왕산전투 등의 주요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 참전기간 : 1950. 8. 1 ~ 1957. 7. 27

○ 참전규모 : 1개 포병연대, 함정 6척

○ 참전연인원 : 6,000명

○ 부상자 : 81명

○ 전사자 : 45명

 

 

 

에티오피아(Ethiopia)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상군을 파견한 유일한 나라였다.

집단안보라는 신념을 위해 1950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지지를 발표했고,

8월에 물자를 지원하고 파병을 결정하였다.

에티오피아의 각뉴(Kagnew)대대는 1951년 5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계속 운용되었다.

6 · 25전쟁 기간 동안 적근산전투, 화천지구전투, 양구부근전투 등

250여 차례에 달하는 전투를 수행하며 대부분 승리하는 전과를 이루었다.

 

○ 참전기간 : 1951. 5. 6 ~ 1955. 1

○ 참전규모 : 1개 보병대대(1 Infantry Battalion)

○ 참전연인원 : 3,518명

○ 부상자 : 536명

○ 전사자 : 122명

 

 

 

벨기에(Kingdom of Belgium)

 

벨기에는 룩셈부르크와 함께 보병대대를 구성하였다.

1951년 1월 31일, 부산에 도착한 전투대대는 미 제3사단 예하의 영국군에 배속되었다.

벨기에 부대는 보급로 확보작전과 최전선 작전에 참가하며 적군의 남하를 저지하였으며

금굴산 진지를 확보하였다.

 

○ 참전기간 : 1951. 1. 13 ~ 1955. 6

○ 참전규모 : 1개 보병대대(1 Infantry Battalion)

○ 참전연인원 : 3,498명

○ 부상자 : 336명

○ 전사자 : 106명

 

 

 

프랑스(French Republic)

 

1950년 7월 29일,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의거하여

한국에 해군 함정을 보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다.

11월 29일 한국에 도착한 프랑스 보병대대는 미 제2사단 23보병연대에 배속되어

쌍터널, 지평리, 단장의 능선, 원주, 부채뜰, 인제, 철의 삼각지대,

티-본(T-Bone)고지, 화살머리, 송곳, 충아산전투에 참전하였다.

 

○ 참전기간 : 1950. 7. 22 ~ 1955. 6

○ 참전규모 : 1개 보병대대, 함정 1척

○ 참전연인원 : 3,421명

○ 부상자 : 1,008명

○ 전사자 : 289명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한국에 공군부대를 파병하였다.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지상군 파병이 어렵게 되자 공군만을 파병하게 되었다.

1950년 11월 '하늘을 나는 치타'로 불리던 제2전투비행대대는

미군으로부터 F-51 무스탕전투기 16대를 인수받아 공중작전에 투입되었다.

남아프리카 공군부대는 미 공군에 배속되어 후반차단 작전과 폭격작전을 수행하였다.

전쟁동안 수행한 주요 전투는 스트랭글 폭격작전과 강압작전이다.

 

○ 참전기간 : 1950. 11. 16 ~ 1953. 10

○ 참전규모 : 1개 전투비행대대(1 Fighter Squadron)

○ 참전연인원 : 826명

○ 부상자 : 0명

○ 전사자 : 37명

 

 

 

룩셈브루크(Luxembourg)

 

벨기에와 룩셈브루크는 '벨기에 / 룩셈브루크 전투대대'를 통합으로 구성하여 대한민국에 파병하였다. 1951년 1월 31일, 부산에 도착한 전투대대는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에 처음으로 투입되었다.

초기 영국 29여단에 배속된 룩셈브루크 부대는 이후 수원으로 이동하여

미 제3사단에 배속되어 최전방 작전에 참가하였다.

룩셈브루크 부대가 참전한 주요 전투는 임진강전투, 학당리전투, 철원전투 등이다.

 

○ 참전기간 : 1951. 1. 31 ~ 1953. 1

○ 참전규모 : 2개 보병소대

○ 참전연인원 : 85명

○ 부상자 : 17명

○ 전사자 : 2명

 

 

 

덴마크(Kingdom of Denmark)

 

덴마크는 의료지원국 중에서 병원선을 파견한 유일한 국가였다.

8,500톤 규모의 화물선을 병원선으로 개조한 유틀란디아호는 360개의 병상, 4개의 병실,

3개의 수술실, 엑스선 촬영실, 안과와 치과, 그리고 실험실을 갖춘 현대적인 해상 종합병원이었다.

덴마크 병원선은 1951년 3월 초 부산항에 도착한 뒤 부산항을 거점으로 의료지원을 하다가,

1952년 11월부터는 인천항에 정박하여 헬리콥터 데크가 설치된 이후

민간인 부상자를 대상으로 의료지원을 실시하였다.

유틀란디아호는 유엔군 사령부에 배속되어 24개국에서 온 4,981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6,000명에 달하는 한국 민간인을 진료하였으며,

등록되지 않은 민간인까지 합하면 12,000여 명이 넘는 한국인을 진료하였다.

 

○ 참전기간 : 1951. 3 ~ 1953. 8

○ 참전규모 : 병원선, 유틀란디아호(Red Cross Hospital Ships, Jutlandia)

○ 참전연인원 : 630명

○ 부상자 : 0

○ 전사자 : 0

 

 

 

 

인도(Republic of India)

 

인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호응하여 1950년 11월 초 의료지원부대의 파병을 결정하고

의사 14명, 행정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된 제60야전병원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제60야전병원은 인도 공수사단 편제의 부대였던 관계로 공수작전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미 제187공수연대 전투단이 공정작전을 실시할 때에는 함께 편성되어 공정작전을 지원하였다.

2개 제대로 나누어 본대는 영연방 제27여단에 배속되었다.

영국군을 직접 지원하였고, 분견대는 대구에 주둔하고 한국 육군병원을 지원하였으며,

한국 민간인을 진료하기도 하였다.

제60야전병원은 1951년 7월 영연방 제1사단이 창설되자

사단야전병원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였다.

 

○ 참전기간 : 1950. 11. 20 ~ 1954. 2

○ 참전규모 : 제60 야전 의무대대

○ 참전연인원 : 627명

○ 부상자 : 23명

○ 전사자 : 3명

 

 

 

노르웨이(Norway)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주둔했던 노르매시(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에는

총 623명의 노르웨이 남녀 의료진이 근무하였다.

미 제8군 소속으로 의정부에 세워진 노르매시 부대는 최전선인 동두천으로 이전 후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9만여 명 이상을 치료했으며 10만여 번의 수술을 시행하였다.

 

○ 참전기간 : 1951. 7. 18 ~ 1954. 10. 18

○ 참전규모 : 이동외과병원(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 참전연인원 : 623명

○ 부상자 : 0

○ 전사자 : 3명

 

 

 

스웨덴(Kingdom of Sweden)

 

스웨덴은 한국에 최초로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하였다. 1950년 9월 23일, 스웨덴 의사 10명,

간호사 30명, 기타 행정요원 134명으로 구성된 스웨덴 적십자 지원단을 파견하였고,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은 미 제8군 사령부의 통제를 받으며 부산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였다.

200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시작하였다가 그 후 점점 시설을 확대하여 450병상으로 늘어났다.

전쟁기간 부상군인의 치료를 담당하였으나 전선이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에는

민간인 환자의 진료와 한국 의료진에게 의료기술을 지원하였다.

 

○ 참전기간 : 1950. 9. 23 ~ 1957. 4

○ 참전규모 : 적십자병원

○ 참전연인원 : 1,124명

○ 부상자 : 0

○ 전사자 : 0

 

 

 

이탈리아(Italy)

 

이탈리아는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으나 한국에 의료지원부대를 파병하였다.

이탈리아는 1950년 8월 국제적십자연맹이 6 · 25전쟁의 전상자 치료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자 의료지원부대의 파견을 결정하였다.

이탈리아 적십자사는 군의관 6명, 행정관 2명, 약제사 1명, 군목 1명,

간호사 6명, 사병 50명으로 구성된 제68적십자병원을 편성하고,

의약품과 의료장비를 준비하여 1951년 11월 16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150개의 병상규모로 운영되었던 제68적십자병원은 서울 영등포에 주둔하며

유엔군 장병과 민간인에 대한 진료활동을 하였다.

 

○ 참전기간 : 1951. 11. 16 ~ 1955. 1. 2

○ 참전규모 : 제68적십자병원(68th Military Red Cross Hospital)

○ 참전연인원 : 189명

○ 부상자 : 0

○ 전사자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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