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장릉(坡州 長陵) - 사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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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릉(坡州 長陵) - 사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앵봉(鶯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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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사적 제203호 장릉

 

 

 

파주 장릉입구에서 나눠 준 부채 및 무료 입장권(우대권)

 

 

 

장애인과 영유아를 위한 휠체어 유모차 보관소(무료 대여)

 

 

장릉 재실 입구의 포병부대원(?)들~~

 

느티나무 고목에 파랑새가 육추(育雛) 중에 있어 

이 모습을 촬영하려고 각지에서 몰려든 사진동호인들

 

 

 

 

파랑새 둥지

 

 

 

파랑새(broad-billed roller)

 

학명은 Eurystomus orientalis calonyx SHARPE. 이다.

수컷의 머리 꼭대기와 머리 옆은 검은 갈색이고, 윗등은 푸른색을 띤 갈색인데,

어깨·아랫등·허리·위꼬리덮깃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불명확한 푸른 녹색이 된다.

아랫등 이하의 깃털은 기부가 갈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고르게 푸른 녹색은 아니다.

턱 밑과 멱은 머리 꼭대기보다 다소 엷고 검은 갈색이다. 멱 중앙의 깃털은 자색을 띠며

또한 아름다운 푸른 자색의 축반(軸斑)이 있다. 가슴과 옆구리는 등과 같은 색이다.

배·아래꼬리덮깃·아랫날개덮깃·겨드랑이깃은 선명한 녹색인데,

7월에 시작하는 털갈이에 의하여 얻어진다. 암컷은 일반적으로 수컷보다 색이 엷다.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 번식하는 흔하지 않은 여름새이다.

주로 노거수가 산재하는 활엽수 또는 혼효림, 도시공원·농경지 부근 등에서

서식하며 나무에 있는 구멍(自然樹洞)에서 번식한다.

산란기는 5월 하순에서 7월 상순이며, 한 배의 산란수는 3∼5개이다.

새끼는 알을 품은 지 22∼23일이면 부화된다. 암수가 함께 키운다.

곤충류가 주식인데 주로 딱정벌레목·매미목·나비목을 먹는다.

우리 나라, 일본, 중국의 우수리·만주동부, 히말라야산록 등지에 분포한다.

겨울에는 중국남부,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자바·발리, 미안마, 인도 등지에서 월동한다.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파랑새 사진출처 : 고양사진문화발전회 | 파주장릉 파랑새,소쩍새 - Daum 카페

 

 

 

파주 장릉 재실(​坡州 長陵 齋室)

 

이 건물은 인조(仁祖)와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의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이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를 한 때에는 제관(祭官)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와 그의 부속 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의 문헌인 춘관통고(春官通考)에 의하면 장릉의 재실은

전사청 8칸, 제기고 2칸, 안향청 6칸, 재실 5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금천교(禁川橋)

 

금천교는 왕릉의 입구에 위치한 돌다리로 왕릉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금천교를 경계로 속세의 영역과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나누어지며

금천교를 건너는 순간 신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왕릉의 금천교는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 오라’는

엄숙함과 경건함을 뜻하는 작은 시내를 말한다.

 

 

 

홍살문(紅살門)

 

신라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유교국가인 조선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나무 건축물로출입문의 역할을 했지만,

출입의 기능보다 상징성이 더 중요시 되었던 문(門)이다.

형태는 한자 '門(문)'의 형상에서 따온 것이다.

문이지만 주변에 담장이 없었기 때문에 방어를 하거나 출입을 통제하는 목적은 없다.

9m 이상의 둥근기둥을 지주석 위에 고정시키고

두 개의 기둥을 양쪽에 두고 문짝은 달지 않았다.

기둥과 기둥 사이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 모양의 뾰족한 나무를 나란히 박아 연결하고,

그 가운데에는 삼지창을 설치하거나 삼태극 문양을 설치했다.

하지만 태극문양과 삼지창이 없는 형태도 많다.

홍살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은 기둥의 색을 붉은색으로 칠했고

상부에 설치한 화살모양의 나무살 때문이다.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은 나쁜 액운을

화살 또는삼지창으로 공격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홍살문을 설치하는 곳은 서원이나 향교에 설치하였으며, 집안 재실에도 설치하였다.

또한 능과 묘에도 설치했으며 충신, 열녀, 효자 등을 배출한 집안이나

마을에도 홍살문을 설치하도록 했으며,

신성시 되는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판위(版位)

 

능의 출입문 격인 홍살문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가로 세로 각 1.5m 정도의 사각형 자리가 있다.

배위(拜位)라고도 하며 왕과 왕세자를 비롯한 제관들이 도착하였을 때

사배(四拜)로써 인사를 드리고 잠시 멈추어 예를 갖추는 곳이다.

 

 

 

향어로(香御路)

 

홍살문에서 정자각을 잇는 돌길로, 박석(薄石, 얇은 돌)이 두 줄로 넓게 깔린 길을 말한다.

예전에는 참도(參道)라 하였으나 문화재청에서 일제강점기 이후에

왜곡된 왕릉 용어를 순화하면서 향어로(香御路)로 변경하였다.

왼쪽에 신(神)이 가는 길을 ‘향로(香路·神路)’라 하고,

오른쪽에 왕 또는 제관이 가는 길을 ‘어로(御路)’라 한다.

좌측의 향로는 능의 주인인 신이 다니는 길로 우측의 어로보다 약 10cm 정도 높고 넓다.

일반적으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300척(약 90m)이나 능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수라간(水剌間)

 

제향 음식을 관리하는 건물로 수복방의 맞은편에 있다.

 

 

 

수복방(守僕房)

 

능을 지키는 수복자와 제사를 준비하는 관노(官奴), 하급 관원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정전 일곽 중 가정 소박한 건물이다.

수직방(守直房)이라고도 하며, 통상 정자각(丁字閣) 동남쪽에 놓여

제사 때 제관의 대기와 준비 장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정자각(丁字閣)

 

건물 바닥 평면이 '정(丁)'자 처럼 생겨 붙인 이름이다.

제사용 건물이며 정청과 배위청으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다.

정자각, 수라간, 수복방 이 세 건물은 제향봉행(祭享奉行)의 중심건물이다.

 

 

 

향어로(香御路)는 정자각 월대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월대 동쪽까지 접근되는데

이곳에서 계단을 통해 배위청에 오른다.

정자각의 계단은 정면에 두지 않고 측면에 만든다.

이것은 참배자가 서쪽(왼쪽)을 바라보면서 들어가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해가 동쪽(시작과 탄생)에서 서쪽(끝과 죽음)으로 지는

자연 섭리를 인공 건축물에 활용한 것으로

동쪽 계단은 신계(神階)와 어계(御階)로 2개, 서쪽 계단은 1개다.

올라갈 때는 참배자가 왕의 영혼과 함께 하지만

내려올 때는 참배자만 내려온다는 것으로

왕의 영혼은 정자각 뒷문의 신로(神路)를 통해 봉분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신계는 기본적으로 3단으로 돼 있으며 양옆에 구름무늬와

삼태극을 조각한 석고(石鼓, 북)가 있는데 석고는 진행을 가리킨다.

어계는 배석이 없으며 단순한 장대석의 3단 계단이다.

동계를 오를 때는 오른발을 먼저 내딛는다.

동쪽으로 오른 월대의 형태는정전의 기단 폭과

배전의 기단 폭이 일치하는 일반배전형이 많으며,

월대의 높이도 기본적으로 3단 장대석을 쌓았다.

헌관은 월대에 올라 배위석에서 4배하고 동문을 통해 정청으로 들어간다.

 

 

 

 

예감(隸坎) -망료위(望燎位)

 

제례를 마친 제관들은 정청 서쪽 문을 통해 나와 월대 서쪽 어계를 거쳐 내려온 뒤

정자각 북서쪽에서 제례의식을 끝낸다는 의미로

지방을 불사르고 제물을 예감(隸坎 또는 望燎位)에 묻는다.

예감은 가로 세로 2자, 깊이 30cm 정도의 정(井)자 형태로 나무뚜껑을 올린다.

조선왕조 초기 능인 건원릉과 헌릉에는 잔대 형식의 소전대라는 석물이 있었으나

세종대부터 소전대 대신 예감으로 대체했다.

 

 

 

朝鮮國 仁祖大王 長陵 仁烈王后 祔左

 

 

장릉 비문 역문

 

인조 헌문열무명숙순효대왕(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은

만력(萬曆) 을미년(1595. 선조 28) 11월 7일(乙亥)에 탄생하여 처음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졌고,

천계(天啓) 계해년(癸亥年, 1623, 인조 1)에 즉위하였다.

숭정(崇禎) 기축년(己丑年, 1649, 인조 27) 5월 8일(丙寅)에 승하(昇遐)하니

재위는 27년이고 나이는 55세이다.


왕비(王妃) 명덕(明德) 정순(貞順)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는

만력 갑오년(甲午年, 1594, 선조 27) 7월 1일(丁丑)에 탄생하여

계해년(癸亥年, 1623, 인조 1)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숭정 을해년(乙亥年, 1635, 인조 13) 12월 9일(乙酉)에 승하하니 나이는 42세이다.


처음에는 파주읍 북운천리에 묘좌로 산등성이는 같으나 혈자리를 달리하여 장사되었다가,

숭정 기원 후 103년(1731, 영조 7 辛亥) 8월 30일(庚申)에

교하 구읍 자좌(子坐) 언덕에 이장하고 합장하였다. 겉(외형)은 임좌(壬坐)이다.

 

 

 

 

산신석(山神石)

 

산신에게 제사 지내는 산신석으로

능침의 강(사초지 경사면)이 끝나는 정자각 뒤 동북쪽에 세웠다.

 

 

 

장릉에 대하여~~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장릉(長陵)은 조선 제16대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합장능이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위치한 장릉(莊陵)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능이며,

김포시에 위치한 장릉(章陵)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추존)과 인헌왕후 구씨의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인조(1595~1649)는 1623년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光海君)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정책 대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추진하고 국방력을 강화하였으나,

재위 중 이괄의 난(1624),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때문에

세 차례나 서울을 떠나 공주, 강화도,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현재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에서 청(淸)군에 항복하고,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의 치욕을 당하는 등

굴곡 많은 삶을 감내해야 했다.

 

인열왕후(1594~1636)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 인평대군을 낳은 후

용성대군을 낳다가 산후병으로 세상을 떴다.

장릉은 처음에 파주 북쪽의 운천리에 조성되었으나, 뱀과 전갈이 석물 틈에 집을 짓고 있어

영조7년(1731) 현재의 파주 갈현리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 반금친명(反金親明)

여진족이 세운 후금(청나라)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명나라에 친선을 표하는 정책,

이후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은 인조반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청 태종이 2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는데,

이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이라고 한다.

 

 

 

세계유산 조선왕릉(世界遺産 朝鮮王陵)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崇慕)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 조선은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했다.

그리하여 42기 능 어느 하나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조선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조선왕릉 royaltombs.cha.go.kr/

 

 

 

 

파주 장릉(坡州 長陵) - 사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 제16대 인조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의 능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는

제14대 왕 선조(宣祖)의 손자이자 추존 원종의 아들이다.

1623년에 광해군(光海君)과 당시 집권당인 대북파를 반정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에 이괄의 난(인조 2년, 1624년)을 수습하였고,

정묘호란(인조 5년, 1627년)과 병자호란(인조 14년, 1636년)을 겪었다.

이후 군제를 정비하여 총융청과 수어청 등을 신설하였고,

북변(함경도 변두리)과 연해(육지 가까이에 있는 바다)의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鎭)을 설치하였다.

인조 27년(164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본래 묘호를 열조(烈祖)라 하였다가,

최종적으로 인조(仁祖)라 하였다.

인열왕후(仁烈王后, 1594~1635)는 서평부원군 한준겸의 딸로

광해군 2년(1610년)에 인조와 혼인하여 인조 1년(1623년)에 왕비가 되었다.

6남 1녀를 낳았으며, 인조 13년(1635년)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갈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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