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산 구억마을(군동리, 군서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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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 구억마을(군동리, 군서리)에서

앵봉(鶯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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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첫 도읍지 위례성의 혼이 서린 구억마을(군동 1리)

 

 

직산 구억마을 지명유래

 

구억마을(구억말, 구억촌-九億村)의 지명은 직산현지(稷山縣誌, 1899년 간행)에

읍치 동변면 허문리(虛門里) 내구아리(內舊衙里) 외구아리(外舊衙里)

방축리 남산리 판정리 산직촌이 있는데,

허문리(虛門里)와 내구아리(內舊衙里)는 구억말(군동 1리), 외구아리(外舊衙里)는 금성(군동 2리),

방축리(군동 3리)로 1914년 일제강점기 천안군 성산면 군동리로 변경되었다.

구아리(舊衙里)의 발음이 구아말, 구아촌(舊衙村)이 변하여 구억말 구억촌으로 되었으며,

더 좋은 뜻의 한자 구억촌(九億村)이 되었다.

구억마을은 직산(稷山) 역사 중심으로 백제 온조왕의 첫 도읍지

위례성(慰禮城, BC18~BC5)의 터 잡은 땅이며, 삼국의 각축장으로 고구려~신라시대에는

사산현(蛇山縣)으로 용(龍)에서 뱀(蛇)으로 격하되었다.

고려초(936년경) 태조 왕건(王建)이 순행하며 직산최씨 최양유(崔良儒)에게 사직을 지켰다고 하여

이름을 직산이라 하였다(社稷之衛 因名稷山)고 후손 최홍재(崔弘宰) 묘비명에 전한다.

명소(名所)로는 백제시대 성산(城山, 사산성-蛇山城), 제원루(濟源樓)터,

백제 개국공신 조성(趙成, 직산조씨 시조)의 묘와 신도비, 직산현 관아, 영소정 터,

도영지와 휴류암(부엉바위), 여단(厲壇, 당재), 아사산 송림(衙舍山 松林), 직산초등학교 등이 있다.

-글 : 윤종일-

 

 

군동리(郡東里)

과거 직산군의 중심지였던 구직산(과거 직산군의 중심지)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이다.

직산현 읍치지인 읍내 동쪽 마을이므로 동리(東里)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군동리라고 하였다. 직산현 관아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군서리(郡西里)

과거 직산군의 중심지였던 구직산(과거 직산군의 중심지)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이다.

직산현 읍치지인 읍내 서쪽 마을이므로 서리(西里)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군서리라고 하였다.

직산향교, 온조왕 사당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위례정(慰禮亭)

 

 

 

승사랑 직산 조공 계남의 송적비(承仕郎 稷山趙公 繼楠의 頌蹟碑)

 

 

 

기독교 대한감리회 직산읍교회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민익현 가옥(閔益鉉 家屋)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0호

 

1820년(순조 20년) 규장각의 대제학으로 있었던

민승세(閔承世)가 직산(稷山)으로 낙향하여 지은 집이라 한다.

안채는 ‘ㄱ’ 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안채의 상량문(上樑文)에

"광서 16년 경인 윤 이월 십육일(光緖 十六年 庚寅 閏 二月 十六日)"라고

상량(上樑)한 날이 쓰여 있어 건축 연대가 1890년(고종 27년) 임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ㅡ’ 자 형태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부분적으로 많이 고쳐진 집이나, 조선 말기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며,

집 뒤에는 집안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가묘(家廟)가 있다.

현재의 주인 민익현 씨는 집을 지은 민승세 공의 5대손이 된다.

 

 

 

직산향교(稷山鄕校)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9호

 

지정 연월일 : 1997. 12. 23.

직산향교는 유학(儒學)을 가르치던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이다.

1413년(태종 13)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초의 위치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져 있는 구향교골이며,

숙종대에 이르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직산향교는 앞쪽에 교육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동 · 서재(東 · 西齋)를 두고,

뒤쪽에 제례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식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명륜당에는 직산향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문 현판과

조선시대 직산 선비의 향촌 활동을 알리는 다양한 고문서 자료가 보존되어 있으며,

봄, 가을에 공자에게 제례를 올리는 춘추 석전제(春秋 釋奠祭)와

다양한 유림(儒林) 활동이 이루어지는 직산 유교문화의 거점이자 상징적인 공간이다.

 

 

 

온조왕 사당(溫祚王 祠堂)

 

온조왕은 백제(百濟)의 시조(始祖)로

아버지는 고구려왕인 주몽(朱蒙, 동명성왕)이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였다. ​

온조왕 사당은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온조왕 사당이 직산현 관아 동북쪽으로

2km 정도 거리에 세종 11년(1429년) 7월에 세웠고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1499년)’에서는 “온조왕 사당이 세조 11년(1465년)에

직산현 관아 동북쪽으로 1.5km 정도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사당은 정유재란(1597년)에 불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그 후 선조 36년(1603년) 온조왕 사당의 건립 제의가 있었고,

조선 인조 17년(1639년)에 남한산성에 건립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

현재 남한산성에는 온조왕의 사당인 숭렬전(崇烈殿)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토대로 천안시에서는 현재로서 문헌상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위치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자료는 미흡하나,

백제 왕인 온조왕을 재인식하고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사당을 신축하였다.

 

 

 

성산 탁주 제조장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직산중앙교회

 

 

 

직산현 관아(稷山縣 官衙)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2호

 

지정 연월일 : 1976. 1. 8.

직산현 관아는 조선시대의 행정관청 건물이다.임진왜란 후인 1606년(선조 39)

신순일(申純一) 현령(縣令)에 의해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조선 후기 지리지와 지도에는 객사 19칸, 동헌(東軒) 14칸, 내아(內衙) 30칸 등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내아 · 동헌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 4동이 남아 있다.

현감이 업무를 보던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 4칸은 큰 대청이 있고 좌우로 온돌방이 있다.

현감의 살림집인 내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삼문은 정면 9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창고로 쓰던 고방(庫房)이 딸려 있다.

다른 지역 관아와 달리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로 이루어져 있다.

‘호서계수아문’이란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호서의 첫 관문이라는 뜻으로

한양에서 삼남으로 통하는 길목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많은 관리(官吏)와

시인이 오가면서 글을 남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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