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 등록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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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 등록문화재

앵봉(鶯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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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중령 십자가(The Carne Cross)

 

이 십자가는 1951년 4월 22일~25일 벌어진 임진강 전투 당시

글로스터셔 연대 1대대를 지휘했던 칸 중령이 포로생활 중 만든 것으로 

1951년~1953년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행해진 예배에 사용되었다.

J.P. Carne 중령은 영국 글로스터부대의 대대장으로 중공군 제1차 공세(1951년 04. 22~04.30) 당시

적성 일대에서 임진강을 방어하던 중 중공군 2개 사단의 집중 공세를 받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철수작전을 지휘했다.

이때 글로스터대대는 많은 인명 손실을 입고 겨우 39명만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

이 작전으로 미 제1군단이 전후방을 동시 차단하려는 중공군의 기도를 분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25 전사에서 설마리전투는 영국 제29여단이 적성 일대에서 임진강을 방어하던 중

중공군의 제1차 공세를 저지하며 격돌한 방어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제29여단은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3일간 버텨냄으로써

인접부대의 철수를 엄호하고 이로 인해 좌우의 인접부대가 안전하게 철수하여

서울 북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칸 중령의 글로스터대대는 6.25 전쟁에서 부여된 임무를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 전투부대로 평가받고 있다.

 

 

 

솔마리 전투(*설마리 전투)

 

1951년 4월 22일 ~ 25일 글로스터 언덕 위에 세운 이 기념비는

다음 양 부대의 영웅적인 공적을 찬양하여 기리 기념키 위함이다.

글로스터샤 연대 제1대대

영 포병 제170 경박격포대 C소대

이 양 부대는 자유를 수호키 위하여 4일간이나

거대한 수의 적병에게 포위된 중에서 용감한 투지력을 발휘하였다.

 

 

 

이 기념비는 한국 정부의 자혜스러운 도움으로 건립되었다.

글로스타샤 연대 제1대대는 이 기념비가 또한 그들에 못지않게

자유를 사랑하고 그들과 또 다른 영국 연방군에 종군 중 산화한

용맹스러운 한국인을 추모하리라 간절히 비는 바이다.

 

 

 

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坡州 英國軍 雪馬里戰鬪碑) - 등록문화재

 

이 비는 한국전쟁 당시 설마리 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혈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고자 1957년에 건립하였다.

주변의 돌들을 채석하여 쌓아 올리고, 상하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비(碑)를 부착하여 만들었다.

위쪽에 있는 비 2개 가운데 왼쪽에는 유엔기를 새기고, 오른쪽에는 희생된 영국군의 부대 표지를 새겼으며,

아래쪽의 왼쪽 비에는 한글로, 오른쪽 비에는 영문으로 당시 전투 상황을 기록하였다.

유엔군의 참전 상황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 2-2번지

 

 

 

전투 약사(戰鬪 略史)

 

1951년 봄 중공군 제63군의 3개 사단은 서울로 향하는

적성, 연천지구 침공로에 대공격을 감행하여 왔으며,

적군의 진격로에는 영국군 제29여단이 임진강이 굽어 보이는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영국군 “그로세스터스샤” 연대 제1대대는 제170 박격포 대대 C중대와

오늘날 “임진 포대”로 명명된 포병단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영국군 여단 휘하의 “벨줌” 대대와 두 개의 다른 대대는 “그로세스터스샤” 연대 동측에 포진하였으며,

제8“쎈추리온” 전차대와 25“파운드” 포탄의 제45야포대 및 제55공병중대가 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단의 방어지역은 12,000미터에 달하는 광범한 전선이었다.

1951년 4월 22일은 따뜻한 봄 날씨였으며, 바로 이날 임진강 격전은 시작되었다.

전투 첫날밤 “그로세스터스샤” 대대는 10배에 달하는 적군에 대항하여 용전하였다.

그러나 다음 2일간의 혈전 끝에 설마리 계곡까지 후퇴하였다.(전적비 지역)

4월 24일까지의 격전에서 생존자들은 이 기념비 위에 솟아있는 고지에 집결하였으나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탄약은 거의 소모되고, 피로와 허기에 지친 상태에서도

대대는 그날 밤 적의 연속적인 공격을 물리치고 고지를 사수하였으며,

4월 25일 아침 적의 포위망을 마지막으로 공파하기 위한 공격을 감행하기까지 진지를 고수하였다.

“그로스타” 연대는 혈전 끝에 67명만이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59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526명은 포로가 되었으며, 이들 중에는 180명의 부상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3년간의 포로수용소에서 34명이 사망하였다.

이 격전에서 “그로스타” 연대는 2명이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모든 장병들의 희생정신은 세계 전사에 빛나고 있다.

3일간에 걸친 이들의 과감한 격전은 당시 중공군 진격을 지연시키고

유엔군의 재편성에 소요되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또한 중공군의 서울 침공을 저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한편, 한국전쟁 중(1950-1953) 영국군은 1,109명이 전사하고 2,674명이 부상하였다.

 

 

 

임진강 격전 약도(臨津江激戰 略圖)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옆에 위치한 '다친 새들의 쉼터 조류 방사장'

 

 

 

다친 새들의 쉼터 조류 방사장

 

안내문

이곳은 동물원이 아닙니다.

각종 사고 또는 밀렵 현장에서 다친 새들이 임시로 쉬어가는 쉼터입니다.

따라서 심신이 지치고, 흥분된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아래의 주의사항을 준수하시어

이 새들이 무사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1. 방사장 철망에 손대거나 가까이 접근하지 마십시오.

(특히 어린이들의 손가락을 넣으면 위험합니다.)

2. 긴 막대기나 철근 따위의 물건으로 새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3. 관리자의 허락 없이 모이를 주지 마십시오.(과자, 사탕 등은 먹지 않습니다.)

파주 조류방사장 안내 또는 긴급구조 밀렵감시단 연락처 031-958-4119

 

국가지정문화재 관리단체

(사단법인) 한국조류보호협회 경기 파주시지회

천연기념물(야생조수류) 보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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