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멘 스텐베이크 ((Harmen Steenwyck, 1612-16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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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하르멘 스텐베이크 ((Harmen Steenwyck, 1612-1655년)

林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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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멘 스텐베이크

STEENWIJCK, Harmen


Dutch painter
 (b. 1612, Delft, d. 1656, Leiden)

Dutch painter. 
Harmen Steenwijck and his painter brother Pieter were the sons of a spectacle 
and lens maker who lived in Delft from 1590s to 1654. 
Both sons became pupils of their relative David Bailly who lived and worked in Leiden. 

Harmen studied there between 1628-1633. 
He moved from Leiden to Delft in 1628 and shared a studio with his brother. 
In 1654 he traveled to the East Indies, returning to Holland the following year. 
He worked in a luminous and illusionistic manner, resembling that of Bailly, Dou and Lievens.

Still-Life
1640
Oil on panel, 27 x 39 cm
Private collection






Still-Life
1640
Oil on panel, 26 x 38 cm
Private collection





Still-Life of Fruit and Dead Fowl
c. 1650
Oil on panel, 78 x 102 cm
Private collection

'Still Life with Fruit and Dead Fowl', 1630 (oil on canvas)

HARMEN STEENWYCK (1612-1656)
'Still Life with Fruit and Dead Fowl', 1630 (oil on canvas)







Still-Life
-
Oil on panel, 82 x 115 cm
Private collection





Still-Life
.
-Oil on oak panel, 26 x 37 cm

Private collection





Still-Life
-
Oil on canvas, 25 x 39 cm
Private collection





Vanitas
c. 1640
Oil on panel, 37,7 x 38,2 cm

Stedelijk Museum De Lakenhal, Leiden
Harmen Steenwijck, Vanitas stilleven, 1640



Vanitas Still-Life
c. 1640
Oil on panel, 39 x 51 cm
National Gallery, London



'Still Life of Game, Fish, Fruit and Kitchen Utensils', (oil on panel)

HARMEN STEENWYCK (1612-1656)
'Still Life of Game, Fish, Fruit and Kitchen Utensils', (oil on panel) 




'Vanitas', 1640 (oil on wood panel)

HARMEN STEENWYCK (1612-1656)
'Vanitas', 1640 (oil on wood panel)





an hourglass, flute, open book, candle and peaches on a wooden ledge by harmen steenwyck


jagdstillleben mit totem gefl체gel und figurenstaffage by harmen steenwyck


a kitchen still life with fish by harmen steenwyck

















인간생활의 허영 / 하르멘 스텐베이크  

심재엽 파스칼 2011.11.25 10:41







인간생활의 허영 / 하르멘 스텐베이크

(1645년경, 51x39cm, 오크 나위 위의 유화, 런던 내셔널 갤러리)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화가 하르멘 스텐베이크(Harmen Steenwyck, 1612-1655년)가 그린 

‘인간생활의 허영(An Allegory of the Vanities of Human Life)’이라는 이름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이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정물화를 비롯해 풍경화나 초상화 등 인간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그림이 유행하였다. 

이 시대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황금시대였으며, 그 경제적 부와 물질적 풍요가 극에 달하면서 

화가들은 바니타스, 곧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덧없음과 헛됨을 그림에 담았다.

 

이 그림에는 많은 물건들이 너부러져있다. 

화면의 중앙에 음산한 해골이 있으며, 그 주위로는 아무렇게나 놓인 책들과 악기가 있고 

뒤쪽에는 일본도(刀)를 비롯해 불 꺼진 향로가 있다. 

왼쪽에는 조개껍데기와 크로노미터라는 당시의 시계가 보인다. 

오른쪽에는 나무 상자 위에 커다란 술병과 함께 류트라는 악기가 뒤집혀있다. 

무언가 심상찮은 분위기이다.

 

이 모든 물건들은 청각(악기)과 후각(향로), 촉각(칼)과 미각(술병) 등 인간 감각과 연관된 것들로, 

감각과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 현실을 제각기 무거운 침묵의 언어로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특히 전체적인 도상들의 어수선함은 풍요 속의 허탈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 작품은 구약성서의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전도 1,2)라는 내용을 상기시키는 작품으로,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이는 바니타스의 전형이다.

 

이 그림 속에서 인간 지식을 상징하는 책은 지식의 허영을 고발하고 있다. 

책은 인간들에게 지식과 학문 습득의 수단이지만, 역시 허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전도 1,18). 

리코더와 숌(오보에의 전신)으로 묘사된 악기는 구혼과 사랑의 행위에 동원되는 것으로 

흔히 감각적 사랑의 기쁨을 나타낸다. 

특히 그림에서 관악기는 남성성을 나타내며, 부드러운 곡선의 현악기는 여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속적이며 쾌락적인 향락을 암시한다.

 

일본도와 조개껍데기는 당시 수집가들의 진귀품으로 부와 풍요를 상징하며,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부와 풍요에 대한 인간의 탐욕 또한 허영이 아닌가?

 “사람은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것뿐이라, 바람을 잡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전도 5,15). 

특히 빈 조개껍데기는 죽음과 허무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드러낸다. 

일본도는 무기의 힘으로도 죽음을 무찌를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런 일을 감시할 웃어른이 있고 그 위에 또 웃어른이 있다.”(전도 5,7)는 성서의 말을 상기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림 오른쪽 상단의 탁자 위에 놓인 끈이 달린 병은 술병이며, 그 옆의 물체는 류트를 엎어놓은 것이다. 

술과 악기 역시 인간 삶의 쾌락과 즐거움을 나타낸 것이다. 

크로노미터와 불이 막 꺼진 램프는 인간생활의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암시한다. 

특히 크로노미터는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전도 3,1)는 말처럼 

우리가 지상에 머무는 시간의 유한성을 말하며, 

막 불이 꺼져 연기 꼬리가 남은 램프 역시 시간의 흐름과 인간 존재의 허약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해골 형상, 죽음을 의미하는 그 해골은 턱이 빠져있다. 진리를 전하고 다닌 설교자의 해골인가? 

그 턱이 빠져있는 모습에서 진리의 외침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고발하는 동시에 

지나치게 말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턱도 없고 이도 온전하지 못한 그 보잘것없는 모습이 죽음의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왼쪽 윗부분의 빛이 해골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가 죽음이며 죽음 앞에서 인간의 모든 욕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단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 해골에 비친 빛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며, 

모든 인간 삶의 허영은 해골이 상징하는 죽음에 지배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있다.

 

인간의 개인적인 허영과 욕망으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자주 보이고 사람의 욕망 때문에 자연의 재앙이 

난무하는 시대에 내 자신을 반성하고 일상의 내 행위가 항상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아닌가?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림의 빛줄기와 그 빛으로 환한 모습을 드러내는 분홍색 탁자보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삶의 기쁨과 희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편에 다시금 희망의 가치를 새겨본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사 석사, 

파리 3대학교(Sorbonne)에서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각주>
바니타스(Vanitas)는 16-17세기의 네덜란드플랑드르 지역에서 정물화에 특히 관련있는 상징과 관련된 예술작품의 한 종류로, 
그 이외의 장소들과 다른 시기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특히 중세 유럽은 흑사병30년전쟁이 휩쓸고간 역사적 시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어원
라틴어 명사 바니타스 [vanitas, ‘공허한’을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 바누스 (vanus)가 어원]는
 '공허', '헛됨', 또는 '가치없음',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의 관점으로 세속적인 물건과 일시적이고 무가치한 것을 추구하는 걸 뜻한다.
 성경전도서 1:2;12:8에서 이 단어와 함께 자주 인용된다.
 불가타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에서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라는 운문으로 번역했다. 
그 운문은 킹 제임스 성경에서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번역됐다
.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새 국제판 성경의 번역이다. 
모티브
일반적인 바니타스화의 상징에는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두개골, 썩은 과일 (부패); 거품 (인생의 짧음과 죽음의 갑작성), 
연기, 시계, 모래시계 (인생의 짧음), 악기 (인생의 간결함과 덧없음)이 포함된다.





 

Vanitas Still-Life
c. 1640
Oil on panel, 39 x 51 cm
National Gallery, London





'Still Life: An Allegory of the Vanities of Human Life', 1640

The Skull

The Shell

Books and Musical Instruments

The Silk and The Sword

The Stoneware Jar


The Composition of the Objects

Steenwyck has used the diagonals to construct the composition.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비트코인, 튤립, 바니타스, 그 이중적 의미


[중앙일보] 입력 2017.12.18 01:00 수정 2017.12.18 19:42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거품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 거품 터지기 전에 빨리 샀다가 차익 내고 바로 팔면 되지 않겠어? 
나는 뼈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을 누구는 그냥 앉아서 며칠 만에 번다니 왠지 억울한걸?” 
드디어 주변에도 이런 말을 하며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를 고민하는 지인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17세기 네덜란드 상인과 직공들도 그 말 똑같이 하면서 튤립 구근을 샀다가 망했다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상공업이 발달한 동네 사람들이었는데 바보여서 그런 일을 겪었겠어?”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의 얇은 귀도 살짝 움찔거리곤 한다.
 
암호화폐 열풍이 처절한 버블붕괴로 끝난 17세기 네덜란드 튤립광풍의 재현이라고 
이미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경고했다. 
비트코인을 ‘암호튤립,’ ‘튤립광풍 2.0’이라 비웃기도 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심지어 “튤립 구근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보니, 설문에 응한 경제학자 96%가 비트코인이 버블 상태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아예 거래 금지를 주장한다.
 하지만 거품이 있더라도 대안화폐로서의 잠재력과 저변의 블록체인 기술 때문에 지나친 규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지금 상태가 버블이 아니라는 극소수 의견도 있다.
 바니타스 정물, 1668, 마리아 판 오스터비에크(1630-1693)작, 캔버스에 유채, 73x88.5cm,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빈

바니타스 정물, 1668, 마리아 판 오스터비에크(1630-1693)작, 캔버스에 유채, 73x88.5cm,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빈

 
경고와 가능성을 들으며 양쪽 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팔랑거릴 때는, 튤립이 그려진 네덜란드 ‘바니타스’ 그림을 보면 좋다.
 ‘바니타스’는 ‘헛됨’ 또는 ‘허영’을 뜻하는 라틴어인데, 그것을 제목으로 한 정물화들이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다
이런 정물화들은 화려하고 값진 물건들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해골을 함께 그려서, 
인간이면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죽음 앞에서는 부귀영화와 쾌락이 다 부질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해골 외에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모래시계, 
인간의 생명이 언제라도 꺼질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비누방울과 불 꺼진 양초, 
죽음으로 덧없어질 각종 금은보화, 수입사치품 등이 등장하곤 한다.
 
그 중 주목할 게 튤립이다. 
원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꽃도 단골 요소인데, 언젠가 시들 젊음과 생명의 상징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튤립의 경우, 특히 마리아 판 오스터비에크의 그림 속에 나오는 것처럼 
흰 바탕에 붉은 줄무늬가 있는 희귀한 튤립의 경우(그림1), 부귀의 상징까지 겸한다. 
튤립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수입된 ‘물 건너온, 있어 보이는 꽃’이라 유럽 부자들의 필수 사치품이 됐고, 
마침 네덜란드가 유럽 교역의 중심으로 황금시대를 맞으면서 떼돈을 번 신흥부자들이 너도 나도 축에 빠지랴 사들이니 
값이 뛰어올랐고,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걸 보고 소상인과 직공, 하인 들까지 가리지 않고 투자에 뛰어드니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네덜란드 튤립광풍이었다.
바니타스, 1640, 필리프 드 샹파뉴(1602-1674)작, 판자에 유채, 28x37cm, 테세 박물관, 프랑스 르망

바니타스, 1640, 필리프 드 샹파뉴(1602-1674)작, 판자에 유채, 28x37cm, 

테세 박물관, 프랑스 르망

 
그러다가 마침내 버블이 붕괴한 후 튤립은 허영과 헛됨, 즉 바니타스를 온몸으로 증언하는 상징이 되었다. 
즉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튤립은 세 가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째, 꽃으로서 언젠가 시들 생명을 상징하고, 
둘째, 한때 집 한 채를 능가하는 가격의 재화로서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셋째, 터져버린 거품으로서 그런 부귀영화의 헛됨과 허영의 말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림2)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바니타스 그림이 이중적이며 모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주문한 것은 앞서 튤립광풍의 발단이기도 한 네덜란드 신흥부자들이었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그림 속의 사치품들은 주문자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 
게다가 정밀한 묘사는 보는 사람들에게 감각적 쾌락을 선사하고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림3) 그런데 다음 순간에는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고 찰나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아마도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 그림을 보며, 부를 과시하고 더욱 쌓고 싶은 욕망과, 그러한 부귀영화는 
거품 같이 꺼지는 헛된 것이라는 교훈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중용의 길을 추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1599-1652)작 , 캔버스에 유채, 67x86cm, 개인 소장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1599-1652)작 , 

캔버스에 유채, 67x86cm, 개인 소장


튤립버블이 처참하게 붕괴한 이후에도 네덜란드인들은 튤립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 않았고, 
튤립 구근을 모두 불태워버리지도 않았다. 튤립이 그려진 바니타스 정물화를 보며 버블붕괴의 교훈을 되새기는 한편, 
비이성적으로 투기를 하는 대신 합리적으로 부가가치 있는 튤립의 재배와 개발에 투자를 계속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날 네덜란드가 세계 최대 튤립 수출국이자 최대 화훼 수출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암호화폐를 대하는 경우에도 이런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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