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재사에서 마애 권예 선생 학술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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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재사에서 마애 권예 선생 학술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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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가 주최하고 성균관유도회안동지부가 주관하며 마애권예선생

유적보존회가 후원하는 '마애(磨厓) 권예(權輗) 선생 학술대회'가

11월 15일 오후 2시 안동시 서후면 권태사길 87 안동권씨능동재사

(陵洞齋舍) 앞 마당에서 열렸다.

프리렌서 장혜옥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권용주 마애유적보존회장이

내빈소개와 인사말을 했다.

내빈은 김창복 성균관유도회안동지부 회장을 비롯하여 김휘동 전 안동시장,

권영택 전 영양군수, 이재업 성균관유도회경북도본부 회장, 박원갑 경북도

향교재단이사장, 권숙동 안동권씨안동종친회장, 권오극 안동향교 전교,

권기호 안동권씨파종회장협의회 회장 등이며 이날 유림대표, 안동권씨

부정공파종회원,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권용주 마애유적본존회장은 마애유적본존회에 도움을

많이 준 이재업 성균관유도회경북도본부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김창복 회장이 대회사를, 이재업 회장, 권영택 전 영양군수, 박원갑 이사장이

 축사를 각각 하였다.

 

축사가 끝나자 황만기 안동대 교수는 '마애 권예의 직도(直道)의 삶과

낙강정(洛江亭)'에 관하여 학술 연구를 발표했다.

낙강정은 마애 권예(1495- 1549)가 중종, 인종, 명종 세 조정에서 벼슬하다가

이조판서로 있을때 용퇴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 1212- 1300)이 무예를 익히면서 노닐던 곳에 만년의 장수지소

(藏修之所)로 삼은 곳이다.

권예는 조선선비들의 참화로 불리는 4대 사화의 하나인 기묘사화의 중심에

서서 공명정대한 신념으로 극복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권철경(權哲經)과 어머니 창원황씨의 사이에 영주시 순흥면

병산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22세에 사마 양시에 입격하였고 같은 해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조선

중종조에서 24세 나이로 임금을 모시고 근사록을 강론하면서 조광조를 비롯한

기묘사화 당시 임금에게 직접 직언을 하였다.

그의 나이 43세 때인 1537년 탄핵이 되기도 하였고 또 이듬해인 1538년엔

파직되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안동에서 낙향한 이후 10여 년 간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에서 낙강정을 건립하고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성산사에서

은거적 삶을 살다가 55세인 1549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항상 올곧고 강직한 성품으로 불합리한 폐단을 지적하고 반듯한 처신을

생활화함으로써 20여 년의 벼슬길에도 항상 백성들의 구휼과 교육에 정열을

기울기도했다.

퇴계(退溪)는 마애의 지조와 절개는 쉽게 녹지않은 보배와 정밀한 쇠에 비유하여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퇴계 7인 절구 마지막 구의 판서연(判書淵) 세 글자로 인해

낙강정은 판서연으로 거듭 태어나서 세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갑현 동양대 명예교수는 '마애 권예의 실기 편찬 내력과 우음시 7수 풀이'를

발표했다.

마애 선생은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 권행(權幸)의 20세손이다. 그는 학문이 빼어나고

문장에 능하여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5세 기묘사화 때 예문관 대교(待敎)로서

조광조(趙光祖) 일파의 탄압을 반대하는데 앞장섰다. 이어 홍문관교리, 사간원사간,

홍문관직제학 등 삼사(三司)의 요직을 역임하고 35세에 강원도 어사가 되어 민정을

순찰하였다. 39세에 공조참관을 시작으로 호조참판, 병조참판을 거쳐 43세에 대사헌,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45세(1539년)에 모친상을 당하고 고향에 내려와 47세에

낙동강 상류 공수포(公須浦)에서 낙강정을 지어 10여 년 간 은거하다가 1549년

2월 2일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애선생의 유시(遺詩) 19제(題) 38수(首) 중에서 만년에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우음시(偶吟詩)가 4제 7수가 있다. 마애선생 관직 생활 20여 년 동안 언관(言官)

으로서 임금에게 올린 계차(啟箚) 등의 사적은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DB에서 196건이나 검색된다.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한 후 10여 년 동안 은거할 때도 많은 저작이 있었을 것이나

현재 전하는 것은 19제(題) 30수(首)의 시(詩)와 해진 교지 5장 뿐이다. 선생의

학문 세계는 물론 사승(師承)이나 교유(交遊) 관계도 알 수 없으며 만년의 삶 또한

자세히 밝힐 수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학술대회를 빛내기 위해 안동권씨부정공파 문해문중, 부정공파 돈목회

(敦睦會) 등 6개 개인이나 단체에서 대형화환을 보내왔다.

주최 측은 대회를 마친 참석자 전원에게 '마애선생실기(국역) 등 책자 2권과

안동간고등어 한손씩을 선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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