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치마바위 위의 대형 각자(刻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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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인왕산 치마바위 위의 대형 각자(刻字)

노란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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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산행에서 인왕산 치마바위에 일제강점기때 쓰여진 각자(刻字)를 확인하고 좀 더 알아보았다.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경호실에서 펴낸 <청와대 주변 역사⋅문화유산>에

인왕산 각자에 관한 기록이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다.

 

‘조선총독부(조선총독부)가 새긴 각자(刻字)’라는 제목의 글을 정리해 보았다.

 

인왕산 정상 봉우리 아래부분 병풍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중앙과 좌측부분에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주관이 되어 새긴 몇 개의 대형 각자가 있다.

이 바위는 치마바위(이 책은 치마바위를 좀 더 아래쪽으로 기술하고 있다)를 말한다.

 

<청와대 주변 역사⋅문화유산>에서

 

이 바위에 새겨진 각자는 광복이후 시민단체들이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쪼아서 흔적을 지워서 정확한 내용 파악이 어려우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오른쪽 대형 각자는 <천황폐하만세天皇陛下萬歲>이고, 가운데는 파악이 불가능하며,

왼쪽은 <소화(昭和:일본의 당시 연호)십사년(1939년)>으로 시작하여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1937년 10월 조선총독부에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등을 강요하기 위하여 만든 맹세문)의 내용을 새기고

<조선총독부 학무국>으로 끝맺다.

 

<청와대 주변 역사⋅문화유산>에서

 

 

<청와대 주변 역사⋅문화유산>에서

 

그러나 이 글은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추정이고,

2010년 9월 15일자 <시사저널> 1091호에 실린 이순우(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의 글에 정확한 기록이 나와있다. 

 

이순우의 글을 정리해 보면,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 1874~1955)가 쓴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이라는 구호를 새겨놓은 바위 글씨라고 한다.

1939년, 그해 가을에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에서 이른바 ‘대일본청년단대회(大日本靑年團大會)’가 개최되었고,

이를 영원히 기리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인왕산 암벽에 기념각자(記念刻字)로 남겨놓은 것이 바로 이 글씨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 1939년 2월24일자에,

 서울에서 이러한 대회가 열리게 된 연유와 기념각자의 기공식 관련 기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신보 1939년 9월17일자에는, 그 전날 인왕산 현지에서 거행된 기념각자 기공식의 장면을 전하고 있다.

“이 기념문자는 인왕산 허리의 높이 39m, 폭이 40m 되는 큰 바위에다 사방이 아홉 자(즉 2백73cm) 되는

‘동아청년단결’의 여섯 자를 새기기로 한 것이며

오는 10월부터 착공하야 명년까지 마치기로 하고 경비의 일부를 의연금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기념문자로서 신동아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상징이 되게 하며

이 글자를 생각함으로써 동아(東亞)의 오족(五族)을 대표한 청년들은 더욱 단결을 굳게 할 것을 맹세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일제 강점기 유리 원판 자료에는 인왕산 바위 글씨를 새기는

공사 장면이 담긴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당시의 광경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자료를 살펴보면, 바위 글씨의 구성은 오른쪽부터 첫째 열에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

둘째 열에는 ‘황기 이천오백구십구년 구월 십육일(皇紀 二千五百九十九年 九月 十六日)’,

셋째 열에는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朝鮮總督 南次郞)’라는 큰 글씨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약간 왼쪽으로 사이를 띄어 ‘한 열에 28글자씩, 네 줄 길이’로 대일본청년단대회를 개최한다는 사실과

기념각자를 남기는 연유를 한자(漢字)로 서술한 내용이 잔뜩 새겨져 있었으며,

그 말미에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토키사부로’라는 한자 글귀가 자리했다고 한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인왕산의 얼굴에 대형각자가 새겨진, 쓰라린 역사를 간직한 인왕산은

겸재 정선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에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제일 압권이다.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조선 영조 27년(1751년), 리움미술관(국보 제216호)

 

평생지기 이병연이 병상에 누워 있자 비가 갠 인왕산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비에 젖은 인왕의 거대암반이 맑게 개인 햇빛을 받아

암반본연의 색이 서서히 드러내려고 하는 순간의 인왕의 묵직한 위엄을 묘사하고 있다.

안왕이 본색을 되찾는 것처럼 친구도 회복하길 기원했으나 친구 이병연은 나흘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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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연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인왕산의 얼굴에 일제가 새긴 낙인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업보로 국토 곳곳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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