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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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흔적

전남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백산(栢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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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전첩비 안내판.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李忠武公 碧波津 戰捷碑)


지정번호 : 향토유형유산 제5호.
지정일 : 2001년 10월 30일.
소재지 :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682-4.
안내번호 : 061-540-3139

 

 

1956년 11월 29일 건립된 이 전첩비는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에 의해 가장 통쾌한 승리를 불가사의하게 거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면서 진도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한 점에서 군민 정신문화의 교육적 가치가 있다.

 

이 전첩비의 구조를 살펴보면, 높이 3.8m, 폭 1.2m, 두께 0.58m의 비신을 자연암을 떨어내어 조형한 높이 1.2m, 폭 4.7m, 길이 5.7m 규모의 거대한 거북좌대(귀부) 위에 세웠으며, 그 위로 높이 1.2m, 폭 1.2m, 길이 2.1m의 크기의 머릿돌을 올려놓았으며 동양 최대 높이의 비로 알려지고 있다.

 

비문은 시인 이은상 짓고 글씨는 이 고장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는 점에서 그 예술적 가치 또한 인정받고 있다.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에 의해 가장 통쾌한 승리를 불가사의하게 거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년 11월 29일 건립되었다.

 

비신 높이 3.8m, 폭 1.2m, 두께 58㎝이다.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이 고장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

 

 

비문(碑文)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새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에서 풀려 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 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公)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 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甘浦島)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 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津)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 사 만고에 깊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안내문.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전경.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안내문.

 

 

 

 

 

 

 

 

 

 

 

 

 

 

 

 

 

 

 

 

 

 

전첩비에서 바라본 벽파정과 감부도.

 

 

벽파 관광 안내도.

 

 

 

202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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