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리수 - 부활(1931, Columbia Record 40162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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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音盤, 留聲機로 듣던 大衆歌謠

이애리수 - 부활(1931, Columbia Record 40162 A)

故鄕母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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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글]카톨릭평화신문 [가톨릭 문화산책]<50> 문학(10) 톨스토이의 '부활'

    우리가 받아들인 소설 「부활」

     '황성옛터'로 유명한 가수 이애리수는 1932년(고침,1931년)에 '시베리아 찬바람이 지구상에 떨치니 보기는(고침, 거리는) 죽은 듯하나

    실상은 살았도다'로 시작되는 가요 '부활'을 히트시켰다.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국문학사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남선은 1914년 11월 「청춘」 제2호에 「부활」을 '갱생'이란 제목으로 집중 소개했다.

    이후 「부활」은 '해당화'나 '부활한 카추샤' 같은 제목으로 꾸준히 번역, 출간됐다. 톨스토이를 존경한 이광수는 「어둠의 힘」이란

    톨스토이의 소설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일본 중역이었지만). 러시아 여성의 대명사 '카추샤'가 나오는 우리 가요는 10곡이 넘을 터인데,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이하 생략) 



      

     李愛利秀 - 復活

    작사 작곡 미상


    1. 시베리아 찬바람이 地球上에 떨치니

    거리는 죽은 듯 하나 實相은 살았도다

    버러지는 땅에서 들썩들썩 하면서

    陽春佳節 기다리면서 나오기를 힘쓰네


    2. 춤을 추네 춤을 추네 나풀나풀 춤 추네

    百花가 피어 우거진 봄동산 저 봉접(蜂蝶)들

    復活歌를 부르며 香氣롬을 맡으라고

    기쁨으로 춤을 추면서 향아(香娥)로서 나라든다


    3. (伴奏로써만 演奏)


    이애리수(1910-2009), 부활(1931)
    Lee, Alisu, Korean singer in 1930s.
    Title, Resurrection.
    She was a actress who played the role of Katyu sha in Tolstoy's Resurrection.
    She recorded this 'Resurrection Song' in 1931. Her voice was very stout and strong.
    Her life was as dramatic as a novel. She was born on the year Korea fallen into the colony of Japan.

    She died in 2009 after long living in seclusion. 



    - 다음 글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이애리수(李愛利秀, 1910~ 2009331)는 일제 강점기의 연극배우 겸 가수이다.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본명은 이음전(李音全)이다. '애리수'라는 예명은 서양 이름 '앨리스'를 음차한 것이라 이애리스라고 표기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9세 때부터 배우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삼촌이 연극배우라 순회 극단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애리수는 신극좌, 민중극단, 취성좌 등에서 아역 배우로 활동하면서

    점차 유명한 여배우로 성장했고, 조선연극사, 연극시장 등 흥행극단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다.

     이 시기는 대중가요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배우가 가수를 겸하던 때였다.

    인기 배우였던 이애리수도 막간 가수로 활동하다가 자연스럽게 음반을 취입하였다.

    1931년에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부른 메리의 노래, <라인강, 부활 등 번안곡이 정식 데뷔곡이다.

     

      1932년에 빅타레코드로 옮긴 뒤 발표한 전수린 작곡의 황성의 적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대중가요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애리수의 고향인 개성의 만월대를 소재로 삼아 나라 잃은 슬픔을 그린 이 노래는 1920년대에 만들어져 이애리수가 연극 공연 중 막간에 부르면서

    크게 유행하였고, 이때 정식으로 발매된 것이었다. 이 노래는 황성옛터로 제목이 변경되어 오랫동안 불리고 있다.

     

      이애리수는 전문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성의 소박한 가창법으로 노래하였고,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전문 여가수들이 등장하면서

    인기가 수그러들었다. 이 무렵 두 번이나 음독자살 소동을 벌인 끝에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연예계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은퇴한 뒤 소식이 끊어지며 한 때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오다가 2008년 일산의 한 요양원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2009331100세에 단 1년만을 남겨두고 노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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