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무책임한 맛집 기행과 봉달파의 밀리 유산 답사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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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기행과 밀리유산 답사기

유성의 무책임한 맛집 기행과 봉달파의 밀리 유산 답사기<3>

봉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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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무책임한 맛집 기행과 봉달파의 밀리 유산 답사기<3>



장어하면 상아 식당과 일본 해군 수상기 기지  


지난 3월 10일, 밀덕질 기행을 겸한 “봉달파와 함께하는 유성의 무책임한 맛집 기행”이 미식의 고장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곳 중 하나인 전라남도 여수(麗水)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진즉에 후기 포스트를 작성했어야 하나, 워낙 제가 귀차니즘의 화신인데다가 밀린 포스트들 작성에도 쌔가 빠지는 지라 거의 2개월 가까이 밀린 이제야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


한참 지났지만...쩝~~


오늘 소개해 드릴 맛집은 여수에 들리시면 반드시 거쳐야만 될 필수 코스이자 “장어(長魚)”라면 이곳, 바로 “상아 식당”입니다.
물론 이곳은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여수 맛집”이라고 치면 바로 1번으로 튀어나올 만큼 유명 식당이라 다소 식상하시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으로 압니다.


여수 맛집이라고 검색하면 바로 튀어나오는 그곳..

 
하지만 이곳을 굳이 소개시켜드리는 이유로는 앞서도 밝혔다시피 현지인도 추천하는 맛집임과 동시에 우리 봉달파와도 관계 깊은 관계에 있기 때문이죠.
바로 이곳은 우리 봉달파의 실세 중에 실세이시자 고독한 미식가이기도 하신 유성 님의 사촌 형님 분께서 경영하시는 식당이며(두둥~~!!), 거기다 이 식당 바로 인근에 밀덕이라면 한 번쯤 들러봐야 할 밀리터리 유산과 우리 근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장소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촌 형님이 경영하시는..흠..장어식당 차리려면 봉달파 가입도 한 번..ㅋㅋ

 

여수는 원래 남해 변방의 자그마한 어촌이었지만 조선시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를 지내면서 군사도시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18년 개항과 함께 일본 어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기 시작한 도시입니다.
여수의 관광 전문가 정태균씨에 따르면 여수라는 도시의 근대화는 1923년에 시작되어 국제 여객선이 들어오고, 일본 선박이 줄을 이었으며 멀리 있는 섬까지 일본인들이 이주해 조개, 장어, 참치 등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어종은 모조리 포획해 갔다고 합니다.


1920년대 여수항 모습..


이후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철도와 교각이 세워졌고 한때 일본인들만 1,000명이 거주할 정도로 섬마다 일본인 어부들이 넘쳐났으며 일제강점기 여수는 천혜의 보물인 바다를 일본에 강탈당했던 한이 맺힌 항구였습니다.

이후 여수는 일제에 의해 한반도 남해의 수산물 수탈기지로 변모했고 이곳으로 이주한 일본인들과 일제 총독부에 의해 철저히 식민지화 되었습니다.


한반도 남해의 수산물 수탈기지가 되었다..일제 강점기 여수 어시장..

 
잘 알려져 있듯이 진남관(鎭南館 국보 제 304 호)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했던 곳인데 일제는 1930년대에 이런 조선인들의 역사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진남관을 일본인들을 위한 초등학교로 썼으며, 원래 전라좌수영 성을 두 동강내어 그곳에 도로를 뚫고는 오사카 길이라고 불렀죠.
최근에 이 끊어진 맥을 다시 잇는다는 의미에서 이곳에 다리를 놓았는데 그것이 “좌수영 다리”라고 합니다.


쪽발들이 좌수영 성을 허물고 닦은 도로인 오사카 길과 좌수영 다리..

 
현재 수리 중이라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는 진남관과 정면으로 마주한 섬이 장군도인데요, 이곳은 여수 옛 항과 돌산 사이의 빽빽한 소나무 숲이 울창한 무인도입니다.
장군도는 조선 연산군 때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이량(李良)이 왜구를 막기 위해 그 자리에 수중성을 쌓은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는데 왜구의 배들이 여수 해변으로 들어왔다가 물이 빠지면 그 자리에 갇히도록 설계된 곳입니다.
이곳도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원래 심겨져있던 대나무를 없애고 대신 벚나무 1,000그루를 심은 다음, 봄이 되면 벚꽃놀이 하면서 지랄 떨었다고 합니다.


여수 장군도는 조선시대 군사 시설의 하나였다는..섬 중간에 벚나무가 보인다..


여수의 배경 이야기를 하다가 스토리가 약간 옆으로 샜는데요, 아무튼 구 여수 도심 곳곳에 일제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으니(일본 사찰 터에 세워진 여수 최초의 여관인 남도 여관이나 조선 식산업 은행이었던 옛 제일은행 건물 등등..) 그곳도 한 번 둘러보시고 문제(?)의 상아 식당으로 향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통장어탕과 장어구이로 유명한 이곳은 여수 시내에서 요새 신도시 개발 지구로 뜨고 있는 웅천으로 향하는 해안 도로를 달리다보면 그 중간 지점 정도에 있는 신월동에 위치해 있습니다(주소: 여수시 국동 1082-7)
여기서 봉달파의 고독한 미식가이시자 상아식당 홍보부장(?)이신 유성 님의 간단한 리뷰를 보겠습니다(홍보 부장 아녀요? 아니면 말고..캬캬캬캬)  


처음 개업했을 때는 지금처럼 가게 규모가 크지 않았죠. 식탁 4개정도 있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섬에 골프장도 들어서고 개발이 많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신월동이 여수에서도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 지역이었죠.

국동이라고도 했는데 요즘 여수에서 가장 뜨는 지역이 웅천이고 상아 식당을 조금 지나면 바로 웅천입니다.



하여간 여수 변두리에서 작은 가게로 시작을 했었는데 이곳이 이렇게 유명한 맛집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해진 통장어탕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처음 레시피는 지금처럼 시래기가 아닌 무를 넣고 끓여 냈죠.
당시 무로 끓인 장어탕도 맛있기는 했지만 문제는 무가 쉽게 물러져서 미리 많이 끓여 두었다가 손님상에 올렸더니 무가 물러지고 모양도 안 나오고해서 시래기를 넣고 끓인 것으로 압니다.


아무튼 시래기를 넣고 끓여보니 맛도 괜찮고 물러지지도 않아 지금의 레시피가 완성된 거죠.


그렇게 시레기 첨가~!! 뭐 그렇다고 합니다..


형수님이 워낙 타고난 손맛을 자랑하는 분이셨던 지라 그렇게 만든 장어탕을 찾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고 이후 돈을 벌어 옆에서 영업하던 훨씬 큰 가게를 인수해 오늘의 규모가 됐습니다(거의 새우가 고래를 삼킨..)


타고난 손 맛을 자랑하신다는 형수님이 이분이신 듯..

 

그리고 장어구이는 별일 없으면 사촌 형님, 아니 사장님이 직접 구워줍니다.
사장님 왈 “전라남도에서 내가 가장 장어를 맛있게 굽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장어 굽기에 대해선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장어부심? 하긴 그런 게 있어야..)

일반인들이 장어를 구울 때 소금구이는 비교적 굽기 쉬울 수도 있지만 양념구이는 대체로 지나치게 많이 구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장어구이 장인께서 직접 장어를 구워서 내오는 덕에 손님들은 가장 적당한 굽기의 장어구이를 편하게 먹을 수 있는데, 몇 년 전 여수 액스포 때는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질 않아서 사장님이 장어굽다가 앓아누울 지경 이었다고 하더군요.


요게 바로 장어굽기의 달인께서 구워주신..캬..살살 녹는다는..


차츰 입소문이 나자 여수 지역방송에서 처음 소개가 되었고 그 뒤로 최불암 할배 나오는 한국인의 밥상, 1박 2일 만화가 허영만 편에도 소개가 됐는데 요즘은 방송 출연 섭외는 거의 거절한다고 합니다.
하긴 이제는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낄 만큼 손님이 많으니 그럴 만도 하겠죠.



장어탕뿐만 아니라 회도 팔고, 서브 메뉴로 멍게 비빔밥도 내는데 얼마 전 멍게 비빔밥이 생각나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멍게로 멍게 젓갈을 담았는데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찌게에 조금씩 넣어 먹었던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한 것이지만 맛있는 멍게 젓갈 담그는 것도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한 듯합니다.


멍게 젓갈은 사촌 형네 가서 사 드셈...


전어 철에는 전어회, 전어구이, 전어무침도 내는데 문제는 전어를 받아서 수족관에 두면 금방 전어가 죽어서 사장님이 고민 고민 하다가 한 가지 실험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수돗물을 하루쯤 재워(?) 뒀다가 바닷물과 여러 비율로 섞어보았는데 5:5 비율일 때 전어가 가장 잘 살아 있었다고 하네요.
그전 바닷물 100%일 때는 전어가 움직이다가 두 시간을 못 버티고 죽었다고 합니다.
근처 횟집 사장님들이 같은 시간에 전어를 받았는데 상아식당 전어만 유독 죽지 않고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으니 비결이 뭐냐고 하도 물어 오기에 흔쾌히 노하우를 알려 드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수족관 전어를 살리려면 수돗물 5대 바닷물 5라는..뭐..그런..ㅠ.ㅠ


이상이 유성 님의 상아식당 리뷰였습니다.


아무튼 이곳의 장어구이와 통장어탕과 관련해선 제가 이러쿵저러쿵 설명 드리지 않아도 인터넷 상에 수많은 리뷰들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시겠습니다(전 미맹에 가까운 지라..)

만약 우리 봉달파 여러분들 중 이곳을 방문하시고자 하시는 분은 미리 연락주시면 유성 님이 사촌 형님께서 운영하시는 가게이기도 하므로 은쾌히 20% 디스카운트 된 가격에 모실 리가 없습죠(-_-;;)
우린 그런 거 책임 못 지기 때문에 무책임한 맛집 기행임을 잊지 마세요.


다만 미리 연락 주시면 흔쾌히 젓가락만 들고 합석해드릴 용의는 충분히 있사오니 부담 없이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캬캬~~!!)


연락 주시면 가서 신나게 같이 먹어드릴 수는 있습니닷! 캬캬캬

  
이쯤에서 밀덕들의 맛기행에 빠지면 섭섭한 인근 밀리 유산 답사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미식가들의 성지인 이곳 상아 식당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숨겨진 밀리터리 문화유산이 아직도 그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습니다.
상아식당에서 웅천으로 약 4~5km 정도 가다보면 왼쪽으로 펼쳐진 해안가에 툭 튀어나온 널따란 콘크리트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 나온 공구리 구조물..이게 뭘까요?


별 생각 없이 보면 그저 어선들을 정박시키는 접안 구조물 정도로 생각되는 이 구조물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 해군이 건설한 군사적 용도의 구조물이었습니다.


이 구조물은 바로 한반도에 단 두 곳만 설치된 일본 해군의 수상기 기지 중 하나로, 이곳 이외에 진해에도 수상기 기지가 건설되었지만 현재 해군 사관학교 부지 안에 위치해 있으므로 평상시 일반인이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한 관계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시로 일반인이 찾아볼 수 있는 일본 해군의 수상기 기지가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일본 해군이 건설한 수상기 기지의 일부..

      
일제 강점기에서 태평양 전쟁 패전 시기까지 일본 해군은 한반도 내에 여러 곳의 항공기 기지를 설치하였지만 수상기만을 위한 전용 정비 시설과 이착륙 시설을 구비한 곳은 진해와 이곳 여수 수상기 기지뿐이었죠.


당시 한반도에 건설된 일본 해군 항공대의 기지들..

노란색은 육상 기지, 녹색은 수상기 기지, 적색은 공용 기지..


진해 비행장은 1936년 10월 1일 일본 해군 진해 요항(要港) 수비대 소속의 진해 항공대가 창설된 것을 시작으로 패전 때까지 일본 해군 항공대의 기지 역할을 했으며 육상 발진기를 위한 육상 기지 이외에도 수상기를 위한 기지가 따로 설치되었습니다.
이후 진해 항공대는 1944년 12월 15일 큐슈 사세보에 사령부를 둔 제 951 항공대에 통합되었다가 패전을 맞습니다.


진해 해군 사관학교 내에 남아있는 수상기 기지의 흔적..


여수 수상기 기지는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에 계획 정비된 수상 비행기 기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만의 탄수이 수상기 기지와 더불어 영구적 시설과 배후 정비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일본 해군이 나름 심혈을 기울인 수상기 전용 기지였습니다.

원래 진해 항공대 소속의 기지로 설치되었으나 기록에 따르면 1944년 12월 15일부터 제 951 항공대 분견대가 주둔하였다고 합니다.


여수 일본 해군 수상기 기지의 당시 모습을 담은 도면..

 
주로 전함이나 순양함 같은 대형 군함에 탑재되어 탄착 관측이나 적함 수색에 등에 상용되거나 장거리 대형 기체로 초계 임무 등에 투입되던 2차 대전 당시의 수상기와는 달리, 일본 해군은 직접 전투 임무도 수행할 수 있는 수상 전투기라는 것을 패전 시기까지 계속 운용했죠.

제 1 차 세계 대전 당시 전성기를 구가했던 수상 전투기(水上戦闘機)라는 기종은 이 무렵에는 이미 대부분이 소멸했지만 이 멸종된 기종을 2차 대전 시기에 부활시킨 군대가 유일하게 수상 전투기 부대를 운용하고 있던 일본 해군이었습니다(뭐, 총검 닥돌이 주전술이었던 육군에 비하면 이 정도야 애교 수준..)


1차 대전 이후 수상기는 초계 임무에나 쓰이며 전투기로는 그 생명을 다 했으나..


일본 해군은 중일 전쟁 시기 나카지마(中島) 95식 수상 정찰기(九五式水上偵察機)가 중국군의 버팔로 같은 미국제 구형 전투기를 격추한 사례를 보고 수상기도 공중전을 벌일 수 있다며 한껏 고무됩니다.
이에 필 받은 일본 해군은 남방 작전 시 태평양 상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에 진출했을 때, 육상 비행장을 만들 수없는 섬이나 새로운 비행장을 건설할 때까지 제공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상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정찰기가 아니라 전투기로도 쓸 수 있겠당~~!! 95식 수상 정찰기..

 
그래서 이들은 15식 수상 전투기라는 이름으로 수상 전투기의 개발을 카와니시 항공(川西航空機)에 의뢰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제로센에 플로트를 달아 수상 비행기로 개조한 나카지마 A6M2-N, 즉, 2식 수상전투기(二式水上戦闘機)였습니다.

이놈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그럭저럭 활약할 수 있었지만, 사실 일본 해군 최강의 전투기라는 제로센도 미 해군의 와일드 캣 전투기와 교전 시 항속거리를 빼면 이놈이나 그놈이나 수준이었는데 전쟁 극초반을 지나면 아니나 다를까 완전한 머구리가 됩니다(플로트를 단 전투기가..뭘 어쩔 수가 없다는..)


제로센의 수상기 버전인 2식 수상전투기..하지만 이미 머구리..


이미 전투기의 성능 면에서 한참 뒤떨어져 버린 상황이었지만 일본 해군은 그래도 수상 전투기의 개발을 고집했고 그렇게 2식 수상전투기의 후계기로 카와니시 N1K1 쿄후(強風)까지 만들어 내었으나 이 무렵에는 이미 수상 전투기가 더 이상 설 자리는 없어져 버렸죠.


미련을 못 버리고 만들어 낸 수상 전투기 N1K1 쿄후..


물론 일본 해군의 경우, 점령한 섬의 방어를 위해 비행장을 건설하려면 완성할 때까지 제공권을 유지할 이런 종류의 기체가 필요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상대했던 미군의 경우, 우수한 건설 능력과 많은 수의 항모 보유 등으로 이런 기체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수상 전투기와 함재기 또는 지상 이륙기와의 공중전은 불 보듯 뻔한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비행장을 못 만들거나 완공할 때까지는 수상기로 버텨야 한다! 크흑~~


아무튼 여수지역은 별다른 산업 시설이 있던 곳이 아니었고 진해처럼 대규모 함대가 주둔하거나 가덕도처럼 대한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지만 이 지역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며, 전라선의 출발 지점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1941년, 여수 요새사령부를 현재의 여수중학교 자리에 설치한 이후, 여러 군사 시설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여수 지역에 들어서기 시작한 일본군의 방어 시설들..


또한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일본 본토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만든 여수항을 보호할 필요도 대두되었기에 대한해협에 침투할 가능성이 높은 연합군의 잠수함과 혹시 모를 연합군의 상륙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 이곳에 수상기 기지를 건설하게 됩니다.

패전 직전인 1945년 5월 15일자 일본 해군 호위 항공대의 배치 기준에 따르면 사세보(佐世保) 주둔 일본 해군 제 951 항공대 여수 분견대에는 제로센을 수상 정찰기로 개량한 아이치(愛知) E13A 영식 수상정찰기(零式水上偵察機) 6기가 배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군이 촬영한 여수 수상기 기지와 이곳에 배치되었던 영식 수상정찰기..

 
여수 신월동에 있는 구 일본 해군의 수상기 기지는 한반도 남해안을 정찰하기 위한 수상기들을 이착륙시키기 위해서 설치한 시설로, 단순히 수상기들을 이착륙시키고 계류하기 위한 임시 시설이 아니라 수상기들을 배후 정비창으로 이동시켜 수리하는 제반 시설까지 마련되어 있는 본격적인 수상기 기지였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이착륙장 뒤로 정비창과 수리소 등의 확인이 가능..

   
다시 말해 해상에 착수한 수상기를 현재 해안에 남아있는 구조물을 통해 육상으로 끌어올린 다음, 뒤쪽에 위치한 격납고와 정비고로 이동시켜 보관하고 정비하는 각종시설물들이 있었고 현재 이 시설은 한화 여수 공장 안에 위치해 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습니다.


이곳이 일본 해군 수상기를 위한 기지 겸 종합 정비창이었단 걸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수상기들을 정비하고 보관하던 시설들은 해방 이후 새로운 아픔으로 우리에게 크나 큰 상처를 남겨주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여수 14 연대 반란 사건으로 유명한 국방경비대 제 14 연대가 반란을 일으킨 주둔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 이 일본 해군의 군사 시설은 한국군에게 이관되었고 제 14 연대가 이곳을 주둔지로 창설되었으며 이후 제주도 4.3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이 결정되자 1948년 10월 19일에 반란을 일으킨 장소가 바로 여기였습니다.


14연대 반란 사건이 최초로 벌어진 곳이 바로 이곳..

 
예전에 이곳에는 14연대 주둔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이는 언제나 그렇듯 뭔가 조금 켕기고 부끄럽고 쪽 팔리다 싶으면 무조건 감추기에 급급한 이 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한 관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지금 이곳엔 그 사실을 알려주는 그 어느 것도 없다는..걍 휑~~


밝히기엔 조금 그렇지만 밀덕이시자 전쟁사와 관련한 관심도로 따지자면 이 나라의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으시다 생각되는 유성 님도 인근에 거주하시며 사촌 형님네 가게를 수십 차례 들락거리면서 저곳을 지나쳤지만, 저곳이 일본군 수상기 기지였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밀덕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여수 제 14 연대의 반란이 일어났던 곳인지 조차 까맣게 모르셨다고 하니,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모쪼록 새로운 시각과 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를 바라면서 인근의 상아 식당을 들르시기 이전에 저곳을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또 다른 경험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상아 식당을 방문하시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장어구이와 장어탕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 소주 한 잔 하지 않으실 수가 없을테니 일단 저곳부터 먼저 둘러보신 다음에 상아 식당에 들르시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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