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그 긴장과 오류의 경계..<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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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

일촉즉발..그 긴장과 오류의 경계..<上>

봉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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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그 긴장과 오류의 경계..<上>



“냉전(冷戰.. The Cold War)”이란 유명 칼럼니스트 월터 리만(Walter Lippmann)이 1947년 출판한 그의 저서 <The Cold War>의 제목에서 유래되었고, 미국의 재정전문가이며 대통령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크(Bernard Baruch)가 1947년 의회토론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공식 용어처럼 사용되게 되었다.


 
이 용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부터 1991년 소련 붕괴까지 계속되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측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측간의 대립을 지칭하는 말로 이 기간 동안 양측의 경쟁, 특히, 군비경쟁이 절정에 달했으며, 핵무기를 비롯해 대량살상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그 파괴력이 끝없이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끝없이 대립하는, 말 그대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서 양측은 끊임없이 서로를 감시했고 언제든지 서로를 절멸의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두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그것이 냉전 체제였다..


이 기간 동안 인류는 핵전쟁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으며, 양측은 서로를 몇 차례나 전멸시킬 수 있는 파괴적인 무기를 겨냥해놓고 있었고 이런 경쟁은 냉전 말기인 1980년대에 그 절정에 달해서 소련은 약 45,000발, 미국은 약 25,000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파괴력을 담보로 잡는 “상호확증파괴 전략(Mutual Assured Destruction strategy)”이라는 소위 “미치광이 전략(MAD전략)”에 기반한 “공포에 의한 평화”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겨우겨우 양자 간 동시 멸망을 피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핵은 있지만 쓰면 다 죽자는 얘기니 화살을 날린다..불안한 미치광이 전략..


하지만 이런 첨예한 대립과 긴장 상황은 자그마한 불씨 하나로 언제든지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구조였고, 마치 사라예보의 총성 한발로 전 세계가 대전쟁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1차 대전의 사례처럼, 실제 냉전 기간 동안 이념과 권력 유지를 위해 얽히고설킨 다자간 동맹 구조는 언제든 이런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실제 양측이 인류를 헬 게이트 속에 빠트릴 뻔 했던 사례는 우리에게 알려진 경우만 해도 수십 차례가 넘고(베를린 봉쇄..판문점 도끼 만행..쿠바 사태..등등..) 개 중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 핵을 쏘기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경우엔 황당하기까지 한 사례들도 있었다.


아무튼 이런 첨예한 대립은 양측의 긴장을 극도로까지 몰아붙였다.


많이 알려진 사례도 있지만..


오코(Oko 구 러시아어로 눈을 의미..)는 1970년대 초에 개발이 시작된 구소련의 위성 미사일 방어 조기 경보 시스템이었다.


이동 및 정지 궤도 감시 위성으로 구성된 이 시스템은 서방측 탄도탄 기지 상공을 돌며 소련군의 장거리 방공 레이더 시스템을 보완하고 적외선으로 탄도탄 엔진의 배기가스를 탐지,  탄도 미사일의 발사를 확인하여 조기 경보를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인공 위성으로 미국의 탄도탄을 감시한다! 소련의 신형 감시 체계였던 오코 시스템..


길이 2m, 지름 1.7m, 총중량 2,400kg의 드럼통 모양인 오코 위성은 자체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주 감시 장비인 350kg의 적외선 망원경으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발사를 탐지 할 수 있었는데 1972년, 시스템의 첫 번째 감시위성이 발사되었고 2010년까지 총 100개가 넘는 감시위성이 발사되었다(마지막 감시위성인 코스모스(Kosmos) 2469가 2010년 9월 30일에 발사 되었고 2015년 12월부터 새로운 감시체계인 EKS 시스템(Edinaya Kosmicheskaya Sistema)으로 대체...)


2010년까지 총 100개가 넘는 감시위성이 발사되었던 오코 프로그램..


이 조기 경보 시스템은 소련 방공군(Soviet Air Defence Forces)과 전략 미사일군(Soviet Strategic Missile Troops)에 직접 연결되어 있어 서방측의 탄도탄 미사일 발사가 확인되면 곧바로 당시의 전략인 상호확증파괴 원칙에 따라 서방측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강제적인 핵공격을 수행하도록 되어있었다.
참고로 소비에트 미사일군은 1989년까지 1,400발의 대륙간 탄도탄(ICBM), 300개소의 발사 통제센터 및 28군데의 미사일 기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이 보유한 7가지 유형의 대륙간 탄도탄 중 약 50%가 육상 발사형 ICBM 핵탄두의 대부분을 운반할 수 있는 다탄두(MIRV) 미사일인 R-36M(SS-18 새턴(Satan))과 UR-100N(SS-19 스틸레토(Stilleto))였다.


오코와 연결되어 즉각 보복할 수 있었던 소비에트 미사일군과 R-36M 탄도미사일..


한편, 냉전의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던 1976년 3월, 소련은 서유럽을 목표로 새로 개발한 신형 핵탄두 탑재 중거리 미사일 RSD-10(나토 코드명 SS-20 사브르(Sabre), 2단 고체연료 로켓, 사정거리 5,500km..)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추정에 따르면 1986년까지 소련은 소련 동부와 바르샤바 조약기구(Warsaw Treaty Organization) 가맹국들에 총 837발의 핵탄두를 투사할 수 있는 279개의 RSD-10 중거리 미사일 이동식 발사기를 배치했다.


신형 핵탄두 탑재 중거리 미사일 RSD-10과 이동식 발사차량..


이에 대응하여 1979년 12월, 나토군 사령관은 서유럽에 572개의 새로운 중거리 핵미사일인 퍼싱(Pershing) II 미사일 108발과 지상 발사형 순항미사일 BGM-109G 그리펀(Gryphon) 464발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이 신형 중거리 미사일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벨로루시 또는 리투아니아에 위치한 전략 표적을 10분 이내에 공격할 수 있었기에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의 대립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장거리 순항 미사일인 BGM-109G 그리펀의 경우, 영국에서 모스크바까지 타격 가능..)


눈에는 눈, 이에는 이..지상 발사형 순항미사일 BGM-109G 그리펀과 사정거리..


또한 여기에 기름을 붓는 사건마저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그 사건은 바로 우리에게도 깊은 상처를 안겨준 대한항공 여객기 007편 격추 사건이었다.
1983년 9월 1일, 소련군은 항로를 잃고 소련 영공으로 들어온 민간기인 대한항공의 여객기를 격추시켰고, 이로 인해 여기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사망자 중엔 래리 맥도널드(Larry McDonald) 미 하원의원과 다른 많은 미국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 직후인 1983년 11월 말, 미국은 첫 번째 퍼싱 II 미사일을 서독에 배치했고, 1985년 말까지 총 108기의 발사대가 배치되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KAL 007 격추 사건..

 
이제 양측의 관계는 거의 극단의 끝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악화되었고, 이 시기 소련은 지도자인 유리 안드로포프(Yuri Andropov)뿐만이 아니라 군부와 KGB를 포함한 모든 기관들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관계자 중 일부는 당시 소련 지도층 중에는 오히려 미국의 공격을 기대하며 신속히 보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것은 곧 상대방의 도발을 인식하자마자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그 팽팽함을 깨트리는 작은 실수와 오류는 곧바로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했다.


이제 움찔하면 당기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대한항공 여객기 007편 격추 사건이 발생하고 약 3주 뒤인 1983년 9월 26일, 팽팽한 긴장감이 극을 향해 치닫던 이때, 모스크바 인근 소련 조기 경보위성 오코 시스템의 운영 센터 가 있던 세르푸코프(Serpukhov)-15 벙커에서 침묵을 산산조각 내며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오코 시스템 관제 센터였던 세르푸코프(Serpukhov)-15..


자정 직후, 벙커에 설치된 소련의 조기경보 컴퓨터는 미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소련으로 향하고 있다는 놀라운 정보를 토해내었고 이 관제센터의 책임자였던 소련 방공군 소속 스타니슬라브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중령은 경악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조기 경보시스템의 위성 중 하나가 미국이 5발의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감지했고, 그것들은 소련을 향하고 있었으며, 벽 스크린엔 그 궤도가 표시되기 시작했고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켜진 빨간색 화면에 “발사!(LAUNCH!)”라는 단어가 깜박였다.


발사!


소련군 가운데 가장 정예 병력인 방공군, 그중에서도 투철한 사명감과 높은 교육 수준으로 무장한 엘리트 장교였던 페트로프 중령의 임무는 매우 명확하고도 간결했다.
그의 임무는 적의 모든 미사일 공격을 파악하고 그 정보를 소련의 군사 및 정치 지도부에 그 즉시 보고하는 것이었으며, 당시 소련군의 교범에 따라 적의 핵공격에 노출되면 곧바로 핵 보복을 가하는 것이었음이 지극히 당연했을 뿐만 아니라 1983년의 대립구도에서 보복 공격은 거의 확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련 방공군 가운데서도 최정예 엘리트 장교였던 페트로프 중령..


당시 상황을 페트로프 중령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자.


“그 상황은 갑자기 닥쳤습니다.

사이렌이 울부짖고 커다란 백라이트가 있는 빨간 스크린 위에 <발사>라는 단어가 미친 듯이 깜빡거렸지만 저는 몇 초 동안 거기 앉아서 그걸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오코 시스템의 경고 신뢰성은 최고 수준이라 교육받았기에 당시 상황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맙소사! 미국 놈들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맙소사! 미국 놈들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허거걱~~


잠시 후 사이렌이 다시 울렸고, 두 번째 미사일이 발사되었으며 3번째와 4번째, 5번째 미사일로 이어지자 컴퓨터는 자동적으로 탄도를 계산한 후, 경보 수준을 <발사>에서 <공격>으로 변경했습니다.“


페트로프 중령은 싸구려 러시아산 담배를 피우며, 셀 수없이 수많은 시간 동안 연습했고 이런 상황이 닥치면 그가 반드시 취해야 할 행동들을 생각했다.


“우리가 상황을 보고하기 전에 얼마나 판단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매뉴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1초마다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므로, 지체 없이 소련의 군대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통보해야한다고 교육받았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전화를 하는 것이었죠. 최고 사령관에게 직통 전화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마치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졌죠.“



당시 오코 조기 경보시스템의 경보는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해 보였지만 페트로프는 의구심을 품었다.


왜냐하면 미국에 의한 최초의 핵 공격은 분명 소련의 반격 수단을 완벽히 무력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달랑 5발이 아니라 수백 발의 탄도탄을 동시에 발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소련 전략 미사일군의 전술 또한 이와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선제 공격이라면 일제히 수백발의 동시 발사가 당연하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결정은 그에게 맡겨졌고 만약 그가 시스템이 경고한 그대로의 정보를 상부에 전달한다면 당시의 상황 하에서 소련 지도층은 즉각적인 반격을 지시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모든 판단을 전적으로 맡기라고 교육받았던 이 신형 조기경보 시스템이 그토록 전적으로 신뢰할 만큼 정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마침내 시스템 오류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실제로 고공의 구름에서 발생한 적외선을 위성이 잘못 포착한 것..) 
오코 시스템에 의해 목표물이 확인된 후에는 28~29단계의 보안 단계를 통과해야만 했고 만약 그의 판단이 틀렸다면 첫 번째 핵폭발이 몇 분 후에 일어났을 터였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그대로 정보를 전달했으면 즉각 보복이 당연..

 
페트로프 중령은 소련 방공군 사령부의 당직 장교를 불러 시스템 오작동을 보고했고 그는 자신에게는 고작 23분의 시간만이 있었는데 23분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무척 기뻤다고 밝혔다.
2013년의 인터뷰에서 페트로프 중령은 당시 경보가 틀렸다는 자신의 판단을 결코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받은 민간 교육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군사 교육만 받지 않아서 나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팀에서 민간 교육을 받은 유일한 장교였으며 자신 동료들은 모두 직업 군인 훈련만을 받은 전문 군인들이라 오로지 명령을 내리고 이에 복종하는 것만 교육받았으므로, 만약 그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 시간에 근무 중이었다면 그들은 지시에 따라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그대로 보고했을 것이라 증언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소련은 즉각 반격을 가했을 것이고 미국 또한 그랬을 것임에 틀림없다(그렇게 되었다면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저지먼트 데이가 되었겠지..)


명령대로 즉각 핵 스위치를 돌렸을 것이고 그랬다면 저지먼트 데이가..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처음으로 들었던 소비에트 방공 미사일군 사령관 유리 보틴체프(Yury Votintsev)는 페트로프의 올바른 판단을 칭찬하며 보상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상황 일지를 제대로 적지 않았다는 이유로 되려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상부에서 약속한 것과 같은 보상 따윈 전혀 받지 못했고 그 이유로는 만약 그가 공식적으로 보상을 받는다면, 그들이 자랑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확인해주는 꼴이 되어, 그의 윗선과 시스템 개발에 관여한 고위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 처벌을 받아야했기 때문이었다.


군대 다 그런 거지...특히 소련군이라면 더더욱..


이후 페트로프 중령은 덜 민감한 직책으로 재배치되었다가 조기 전역되었다.


이 사건에서 페트로프의 역할이 그렇게 결정적이었는지 약간의 의문점도 있긴 한데, 그 이유로는 그가 독자적으로 소련의 미사일을 발사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그의 유일한 임무는 단지 위성감시 체계를 운영하며 명령 체계에 적의 미사일 공격을 보고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정보에 따라 소련 지도층이 서방에 대한 보복 공격을 할지 여부를 결정했을 것이었으므로 그의 역할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결정을 내리는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므로, 그로 인해 제 3 차 대전, 아니 인류 멸망이라는 대재앙의 단초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드시 그의 역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시스템이 이런 방식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곧 소비에트 군대의 수치”라고 그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조그마한 오류하나 때문에 인류 전체가 절멸할 수도 있었던 시기를 우리는 살아왔고(뭐 현재도 별 다를 바는 없지만..) 이 엄청난 아이러니는 분명 첨예한 대립의 극단에 놓인 긴장 상태에서 기인한 것임에 틀림없다.


분명한 건 극단적인 대립 상황에선 작은 실수나 오류 하나만으로 파멸이 올 수도..


하지만 페트로프의 경우는 오히려 대단치도 않게 여겨질 만큼 인류 운명이 정말 황당한 일로 붕괴했을 지도 몰랐을 코미디에 가까운 일까지도 벌어진 적이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s://www.amazon.com/Cold-War-Study-Foreign-Policy/dp/B000FT637K
http://www.theimaginativeconservative.org/2016/11/george-orwell-cold-war-john-rodden-john-rossi.html
http://atomic-annhilation.blogspot.kr/2015/12/mutual-assured-deterrence-mad.html
http://space.skyrocket.de/doc_lau/r-36m.htm
https://www.wearethemighty.com/gear-tech/what-you-need-to-know-about-the-banned-missile-the-us-is-developing
https://www.pinterest.co.kr/pin/203787951866688156/
http://www.redkalinka.com/Russian-Blog/224/_The-other-man-who-saved-humankind/
http://atomic-annhilation.blogspot.kr/2014/12/miunteman-icbm-field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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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daum.net/mybrokenwing/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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