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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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 태평양

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3>

봉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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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3>



일본 육군은 2차 세계 대전 초기부터 일찌감치 보병의 대전차 육박 공격에 대한 전술을 채택하고 있었고 그 내용을 보병 운용에 관한 필드 매뉴얼, 즉 교범이라 할 수 있는 “보병조전(歩兵操典)”에 떡하니 박아놓고 있었다.


물론 이 교범에는 보병의 대전차 육박 공격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는 자위적 전투를 위한 것으로 되어있었으며, 적 전차의 성능, 지형 등에 따라 투입하는 장비와 인원을 고려하여 공격반을 편성하며 고립 된 적 전차, 혹은 보병과 적 전차가 분리되어있을 때를 노리도록 되어있다.
공격 시기는 야간을 이용하는 것을 권장하였고, 공격 기회는 적 전차가 벙커나 참호 같은 장애물을 통과하며 속도가 떨어졌을 때, 혹은 고장을 일으켰을 때 등을 노리도록 하였으며, 부칙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기회”를 얻기 위해 연막탄의 활용도 필요하다고 서술하고 있다(나름 이해는 간다는..)


 적 전차가 장애물을 통과하며 속도가 떨어졌을 때를 노려라!


1928년에 개정되어 태평양 전쟁 발발 시까지 사용된 보병 조전에 따르면 적 전차에 대한 폭발물의 사용은 전문 교육을 받은 공병 또는 전투 공병에 해당하는 작업대(作業隊)가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따라서 공병 또는 작업대의 하사관인 반장과 2명에서 3명의 병사가 팀을 만들고, 이 팀 몇 개 조가 육박 공격반을 편성했으며 장비는 발연통 폭약, 수류탄 등으로 무장하고 가벼운 복장에 충분히 위장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각 조마다 1대 또는 상황에 따라 1대에 수개 조가 공격을 가하고 공격조는 지형을 이용하여 잠복해 있다가 적 전차가 충분한 거리에 접근하면 사각을 노려 육박 공격을 감행, 적 전차에 폭약, 혹은 지뢰를 장착한다.
우선 공격해야할 목표는 선두 차량 또는 지휘 전차였으며 장착에 성공한 병사는 몇 미터 떨어져 엎드린 다음, 폭발 위험을 피하고 전과가 불확실한 경우 집요하게 공격을 반복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그래도 나름 교범엔 그럴 싸하게 써 놓았다는..

  
언 듯 보면 일본 육군이 채택한 이런 대전차 전법은 현대의 시각에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내용이지만 막상 태평양 전쟁에 돌입한 이후 본격적으로 연합군의 중전차들이 전선에 투입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며 막장의 상황으로 급변했다. 

이는 앞서 설명한 바대로 개전 직후 수 년 만에 전차는 급속도로 대형화 중장갑화 되었고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던 일본군은 이들 연합군 중전차들을 상대할 충분한 위력을 가진 전차와 대전차포의 개발 계획이 일치감치 달나라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저런 놈들이 튀어 나올 때..냠~~ ㅠ.ㅠ


또한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에 벌어진 할힌골 전투에서 보병의 대전차 육박 공격이 어느 정도 씨가 먹힌다고 판단한 그들은 그들 기준에서 보병의 대전차 육박 공격이란 시간과 돈은 안 들고 효과는 만점이라 판단했기에 이런 쓰레기 전술을 적극 채택하였기 때문이었다(사람 목숨은 돈으로 안 친당께요~~)
여기에 더해 1943년 이후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전황 하에서 우선순위의 생산 물품은 수송함과 항공기였고 전차와 대전차포의 생산은 후순위로 밀렸으며, 당연히 전쟁 말기가 되면 일본군이 가진 대전차 전투이란 보병이 맨몸으로 전차에 육박하는 것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다! 대전차 총검술~!! 과연 그 수밖에는 없었을까?

 
물론 그런 와중에도 당시 일본군의 기준으로 보면 그럴싸한 물건도 개발되었고 그중엔 제법 고급 기술인 먼로 노이만 효과를 이용한 2식 척탄기(二式擲弾器) 같은 물건도 있었다.
2식 척탄기는 쉽게 말해 대전차 총류탄 발사기의 일종으로 당연히 저런 고급기술(?)이 적용된 물건을 자체 개발한 것은 아니어서 독일이 개발한 총류탄 발사기 쉬스벡커(Schiessbecher)와 여기에 사용되는 대전차 총류탄의 도면을 1942년에 입수하여 모방 생산한 물건이었다.


제법 고급 기술인 먼로 노이만 효과를 이용한 2식 척탄기..


가끔 제 2 차 대전 중에 일본의 강력한 동맹국이자 기술 선도국 독일이 왜 일본에 판저슈렉이나 판저파우스트 같은 신형 대전차 무기를 양도하거나 그 기술을 전해주지 않았냐고 묻는 경우를 보았는데 이는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대전차 무기는 37mm 94식 속사포(九四式速射砲)와 같은 대전차포를 제외하고 보병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달랑 97식 자동포(九七式自動砲)라는 명칭의 고색창연한 대전차 라이플이 전부였다.

대평양 전쟁 시기엔 이미 구식화된 대전차 라이플 97식 자동포..

 

이 대전차 총의 관통력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수직으로 착탄한 경우 사거리 220m에서 30mm, 420m에서 25mm, 700m도 20mm의 강판을 관통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정도 관통력으로는 비록 1939년의 할힌골 전투에서 소수가 사용되며 장갑차에 절대적인 위력을 보여 주었다고는 하나, 태평양 전쟁에 들어서면 전차가 아니라 경전차 앞에서마저 잽도 안 되는 수준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전체 무게가 약 60kg에 달할 정도로 총 자체도 거대하여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1정 당 10명이 달라붙어야 할 만큼 골 때렸으며 가격 또한 당시 돈으로 정당 6,400엔이었으므로 97식 경장갑차(九七式軽装甲車) 테케(テケ)가 약 5만 엔, 38식 보병총이 77엔 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비쌌는지 알 수 있다(허름한 저거 8정이면 장갑차가 1대..-_-;;)


저 무대포 대전차총 8정이면 장갑차 1대가 뙇~~!!


따라서 일본군이 태평양 전선에서 최초로 전차다운 적의 전차를 마주쳤을 때 발생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그들에게는 이에 대처할 효과적인 수단은 물론 여기에 사용할 탄약마저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약 1,200정이 생산된 당시 일본군 보병의 유일한 대전차 화기였던 97식 자동포(포라는 게 웃기는 대전차 라이플..)는 더 이상 연합군의 전차 장갑에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성형작약탄의 개발은 초기 단계에 머물렀고, 1930년대 중반에 성형작약 탄두가 있는 어뢰 개발과 관련한 일본 해군의 시도는 육군에서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


 해군은 좀 관심 있었지만 육군은 쌩깜.. 해상자위대의 성형작약식 97식 어뢰..


이런 일본의 벌거벗은 대전차 대책에 거의 유일한 한줄기 빛이 있었으니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나치 독일이었다.


독일은 소총에 장착해 보병과 벙커 및 경장갑 차량에 대해 약 280m까지 각종 유탄을 날릴 수 있는 총류탄 발사기인 쉬스벡커(Schiessbecher)를 1942년부터 도입하였고 이 발사기는 K 98k, G98/40, StG 44 및 FG 42 같은 독일군의 모든 개인총기에 부착이 가능했으며, 1944년 5월까지 총 145만 세트가 생산되었다. 

이 중 70,879개의 쉬스벡커 세트가 핀란드, 이탈리아 같은 중요 동맹국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이중에는 일본도 끼어있었다.


 

일본의 벌거벗은 대전차 대책에 한줄기 빛이.. 총류탄 발사기 쉬스벡커..


1942년 3월 2일, 독일의 8,000톤급 화물선 탄넨펠스(Tannenfels)가 일본 요코하마를 향해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 항구를 출항했고 여기엔 독일 국방군 병기국(Heereswaffenamt.. HWA) 소속 고위 독일군 장교가 타고 있었다.
독일 국방군 병기국의 탄도 및 탄약 부서(Wa.Prüf.1) 소속 파울 니묄러(Paul Niemöller) 대령과 2명의 기술자는 선내에 일본에 인도할 중요한 물품들을 적재하고 있었으며, 이는 일본 육군 총사령관에게 직접 인도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물품이었다.


요코하마를 향해 독일 화물선 탄넨펠스가 비밀리에 떠났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연합군 봉쇄선을 뚫고 1942년 5월 12일, 요코하마에 도착한 니묄러 대령은 일주일 후인 5월 19일, 일본 육군 참모총장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니묄러 대령은 그에게 히틀러의 친서를 직접 전달했다.
니묄러 대령이 일본에 도착한 지 6주 후, 또 다른 독일 병기국 소속 장교 발터 메르켈(Walter Merkel) 소령이 독일 수송선 드레스덴(Dresden)을 타고 요코하마에 도착했고, 이 둘은 도쿄에서 일본 군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전쟁 전부터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30명의 독일인 엔지니어 및 화학자들과 함께 일본군을 위한 모종의 병기 개발에 돌입했다.


독일 국방군 병기 개발국의 고위 장교가 일본으로 파견된다..


당시 니묄러 대령은 일본의 병기 개발과 관련하여 여러 산업체와 관련 부서들을 방문했고 이곳에서 기대와는 달라서 많이 낙담했던 모양으로, 1942년 12월 11일, 그가 독일 육군 참모본부에 보낸 전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보인다.


이곳에는 새로운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의문이 생김. 일본인은 독창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강력한 협조가 필요함. 방문한 기업들은 높은 노동 투입량에 비해 거의 성과를 보이지 못함. 조직력과 창의력이 뛰어난 재능있는 인원들이 부족함(I have doubts because there is little new. Strong support of the Japanese is necessary, since they are little inventive on their own. The visited companies show little achievement by high labour input. Remarkable is the lack of organizational and inventive talented people...이거 요새 우리 기업들 얘기 같아 왠지 불편..-_-;;)


흐음..왠지 남 얘기 하는 게 아닌듯..


아무튼, 니묄러 대령 일행이 도착한 직후부터 일본에서는 성형작약 대전차 수류탄이 연구되기 시작했으며 그 바탕은 당연히 독일로부터 가져온 실물 대전차 유탄인 Gewehr-Panzergranate와 Große Gewehr-Panzergranate 및 그 도면이었다.

이 성형작약 대전차 유탄의 개발은 급속도로 진척되어 약 1개월 후인 1942년 6월부터 이미 광범위한 테스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7월에 자체 생산품에서 수류탄을 사용한 첫 발사 테스트가 수행되었다.


독일제 총류탄 발사기를 검사하고 일본제 소총에 맞게 수정한지 불과 1개월 만에 일본 자체 모델 생산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공식적으로 2식 척탄기(二式擲弾器)라는 이름으로 제식화 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독일제(위)를 일본군 소총에 맞게 카피한 놈이 튀어 나왔다..


1942년 7월 21일, 일본 육군 기술본부에 대해 8월 10일까지 40mm 대전차 유탄 300발과 30mm 대전차 유탄 300발을 각각 제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또한 8월 하순까지 2식 척탄기 30세트를 제작하라는 지시 또한 하달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38식 소총용 2식 척탄기 10,000세트와 30mm 대전차 유탄 100,000발의 제조 지시가 나왔으며 10월 8일, 제작된 40mm 대전차 유탄 2,000발과 2식 척탄기가 육군 병기창에서 라바울 주둔 일본 육군 제 17 군에 보내졌다.



당시 독일제 대전차 유탄을 모방한 일본제 유탄의 성능은 1942년 7월에 실시된 테스트에서 직사 의한 명중의 경우 40mm 대전차 유탄이 50mm 수직 장갑을 전탄 관통했으며, 60mm 장갑은 발사된 탄 중 절반이 관통에 성공했다(유효 사거리 약 70m..)

이는 1944년 4월, 미군이 노획한 2식 척탄기와 유탄을 사용해 실시한 “일본 대전차 무기 사격 테스트(Firing Tests of Japanese Anti-tank Weapons)”의 결과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제 40mm 대전차 유탄은 M3 스튜어트(Stuart) 경전차의 포탑 측면 38mm 장갑을 별 무리 없이 관통했고 최대 63.5mm까지 관통이 가능했다고 되어있다.


테스트 해보니 그럭저럭 쓸만한 놈이었다..최소한 경전차는 확실히..


다만 30mm 대전차 유탄은 완전히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되어 더 이상 테스트되지 않았으며, 이는 일본 측도 마찬가지라서 테스트 결과, 30mm는 별 쓰잘데기 없다고 판단되어 시제품 이외에는 더 이상 대량생산되지 않았다.


어쨌든 일정 거리에서 정확히 명중시키기만 하면 약 40~50mm의 관통력은 무리 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이 물건은 어쩌면 자체 측면 38mm, 포탑 측면 50.8mm의 장갑을 가진 태평양의 맹수 M-4 셔먼 전차에게도 충분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역시 황군스럽게도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먼저 당시 일본의 조악한 산업 생산력이 이 물건의 발목을 잡았는데 2식 척탄기용 40mm 대전차 유탄은 1944년 2월 기준으로 매월 10,000발의 생산과 공급이 요구되었지만, 실제 이 시기 4개월 동안 월평균 생산량은 달랑 4,860발에 불과했다.


잘만하면 셔먼도 잡을 수 있었지만..생산량이..크흑~~


1942년 8월부터 대량 생산된 최초의 2식 척탄기와 대전차 유탄이 전선 부대에 전달되었고 실제 전투에서도 꽤나 활약을 보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944년 3월에 시작된 부건빌(Bougainville) 전투에서 투입된 일본군 각급부대 지휘관들로부터 이 무기가 미군 전차에 대해 꽤나 효과적임이 보고되고 있으며 좀 더 많은 수량의 보급을 요구하고 있다(부건빌 전투에서 최소 4대 이상의 전차가 이놈에 의해 파괴된 걸로..)


저기 나오는 것들 중 그나마 쓸만한 놈..제일 왼쪽 2식 척탄기..

 
하지만 본토의 수뇌부들은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이 대전차 병기의 대량 생산보다는 엉뚱한 방향으로 대가리를 굴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구경을 더 크게 하여 전과를 확대시킨다는 것이었다.
먼로 노이만 효과를 이용한 성형작약탄의 효과를 확대시키는 것은 너무나 심플한 것으로 단순히 그 구경을 늘이면 되는 것인데 문제는 구경을 늘이면 늘일수록 그 덩치도 커져서 결국 보병이 쉽게 휴대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데 있다.


성형작약탄의 성능을 높히는 건 간단하다..구경을 늘이면 된다능~

 
성형작약탄을 이용한 최초의 보병용 로켓 발사기인 바주카를 개발한 미군도 이 문제에 당연히 봉착하였고 이들 역시 성형작약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시행착오를 계속했다.
우선 대전차용 수류탄 M10(M10 anti tank grenade)을 개발해 보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실용성이 부족했고 이놈을 경량화해 소총에서 발사하는 M9A1 대전차 총류탄은 소총용 공포탄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충분한 거리를 비행하지 못했으며 그 위력도 약했다.


우리도 해 봤는데 별로 신통치 않아서리..

 
그러자 이들은 제 1 차 세계 대전 중에 개발한 원통형 로켓 발사기에 주목했고 너무 무거워서 실용성이 부족했던 M10 수류탄에 로켓을 붙여 날려보자는 아이디어로 제작 개발된 것이 바로 1942년에 제식 채용된 M1 바주카였다(총류탄으로 쏘기도 무거우면 아예 어깨에 메고 쏴 버려! 독일의 판저슈렉이 등장한 것은 바주카 등장 1년 후인 1943년..)


아예 어깨에 메고 쏴 버려! 사진은 바주카 개발 당시 모습..

  
하지만 40mm 대전차 유탄의 성능에 감동을 한 움큼 집어먹은 일본군 수뇌부들은 어떡하면 그 구경을 더 늘여 성능을 향상시키면서도 맨몸뚱이 보병들이 적의 중전차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궁리한 것이 아니라 별 괴랄한 방법을 연구했다.


이들은 어렵게 얻은 성형작약탄의 원리를 항공기용 폭탄, 즉, 클러스터 폭탄을 개발하는 기초로 사용했고 이들은 성형작약탄을 30발 또는 72발 내장한 대형 클러스터 폭탄을 개발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이들이 여기에 홀랑 빠져버린 것은 일견 타당한 부분도 있는데 대부분의 장갑 차량들은 상부 장갑이 가장 얇은 부분이었고 항공기로 성형작약탄을 내장한 클러스터 폭탄을 전차 부대 상공에서 투하하면 이들을 일거에 일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원래 꼴통들이 요런 거 좋아라 함..일거에 일소..) 


만들라는 건 안 만들고 엉뚱한 짓거리를..성형작약 항공폭탄..


개발된 성형작약식 항공폭탄은 표준 2식 척탄기용 40mm 대전차 유탄의 몸체에 꼬리 날개를 단 아주 베리 심플한 구조였고 투하와 동시에 퓨즈의 잠금 장치를 해제하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폭탄의 개발을 완료했을 즈음엔 일본군의 항공기가 연합군 전차 부대 상공에 아예 도달할 수가 없었으므로 결국 클러스터 폭탄의 전과는 제로로 끝났다.


항공폭탄 만들었는데 항공기가 못 뜬다..그래서 손으로..크흑~~ ㅠ.ㅠ


이후 니묄러 대령의 요청으로 판저파우스트(Panzerfaust)와 성형작약 탄두를 내장한 최초의 와이어 유도식 대전차 유도탄인 X-7 롯카프첸(Rotkäppchen.. 참조 → http://blog.daum.net/mybrokenwing/338)의 도면까지 U보트를 통해 일본에 도착했지만 이미 때는 완전히 늦어버린 이후였다.


최신 대전차 유도미사일 도면도 줬지만..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하지만 흔히 일본군이 판저파우스트나 바주카의 확대 개량 버전인 판저슈렉(Panzerschreck)을 제때 장비하지 못하고 “지뢰 안고 몸빵”같은 짓이나 반복했던 것을 두고, 이것들이 개발되었을 때에는 이미 연합군의 해상봉쇄선으로 인해 독일로부터 제대로 기술이나 도면을 전수받지 못해서 그랬다는 엉뚱한 변명들을 보곤 하는데, 이는 실로 비겁한 자기변명이라 할 수 있겠다.


독일 아색기들이 안 가르쳐 줬어! 그래서 못 만들었당께! 과연 그럴까?


이미 일본은 1942년 중반에 이미 성형작약탄의 원리와 관련 병기 기술, 그리고 유능한 실무자와 기술자들까지 전수받고 있었으며 1943년 4월에는 독일로부터 판저슈렉의 도면까지 건네받았다.
따라서 패전 무렵에야 겨우 완성한 일본군판 바주카, 시제 4식 7센치 분진포(試製四式七糎噴進砲)를 두고, 현재의 일본은 물론 국내의 관련 서적들까지 물자 부족과 개발에 난항을 겪어 내내 늘어지다가 그 꼴이 났다고 떠들고들 있는데, 사견으로는 이는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이거 만들려 했는데 돈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자원도 없고..정말??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성형작약탄의 원리를 알고있고 관련 기술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며(그것도 독일로부터 파견된..), 2식 척탄기와 대전차 유탄이라는 실전 병기마저 보유하고 있는 것에 더해 완전한 판저슈렉의 도면까지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개발하기 어려워서 늦어버렸다는 변명을 이해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헛소리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Me-262와 Me163B의 도면을 가지고도 6개월 만에 뚝딱 개발 완료한 나카지마 킷카(中島 橘花)나 미쓰비시(三菱) J8M 수스이(秋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별 쓰잘데기 없지만 그래도 만들긴 만들어 내었쟈나?)


그리 없다는 것들이 이건 어케 만들었다냐?


저런 사정들을 종합하여 볼 때, 당시 일본군 수뇌부는 기술 부족이나 예산, 물자 부족 등의 이유가 아니라 저런 고급진 무기를 가지고 전차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대전차 자폭 삼지창 자돌폭뢰(刺突爆雷) 같은 괴랄한 물건이나 급조폭탄를 안고 보병이 직접 적 전차에 뛰어드는 것이 가장 확실하며 돈도 안 든다고 판단했던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그게 아니라면 다른 내용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능..)


미군이 지네 전차를 같은 식으로 때려 잡을 때 이것들은..


따라서 이 일본군의 사람 목숨을 돌같이 하면서 결국 거꾸로 가버린 성형작약탄 개발 사례를 기쁜 마음으로 삽질 랭킹 4위에 선정한다.
혹시 일본에 들어왔던 독일 장교들이 중간에 돌아갔거나 미군의 폭격에 사망해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사족을 달자면, 일본에 파견되었던 니묄러 대령과 메르켈 소령은 일본 패망 시까지 일본에 있다가 미군에 체포된 다음, 독일로 소환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s://blogs.yahoo.co.jp/yamatetsu1441/4718404.html
http://www.geocities.jp/torikai006/
https://www.artstation.com/artwork/OGvqJ
http://blog.livedoor.jp/gurigurimawasu/archives/34496889.html
http://regimentals.jugem.jp/?eid=374
http://fhsw.wikia.com/wiki/Type_97_Anti-Tank_rifle
http://www.ww2incolor.com/modern/GER+RGL+AR+prob+re-enact+16569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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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daum.net/mybrokenwing/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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